제262화
제주시 강수영 시장과 통화 중이던 박이도 대통령은 대통령실에서 한 보고를 받았다.
비원더의 소속사인 TYB가 대통령과의 접견을 요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회의실에 회의 참석 인원들이 도착한 상태였다고까지 했다.
박이도의 입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그렇지.’
결국 자신의 설득이 통한 모양이라고 박이도는 생각했다.
이게 박이도가 대통령에 오른 방식이고, 그가 군림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상대의 약점을 정확하게 찔렀다.
그러면서도 적당히 상대와 거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었다.
그렇게 상대방을 조종하는 방식으로 그는 승승장구했다.
그것은 비원더도 마찬가지였다.
군대 문제부터 결승전 도시 유치 문제까지 다양한 이슈를 활용하면 국가 권력은 언제든 가수를 귀찮게 할 수 있었다.
하다못해 소속사 세무조사에 들어갈 수도 있는 법이다.
검찰보다 무서운 것이 세무서니까.
박이도 대통령은 비원더와 하루빨리 딜을 하고 싶었다.
그의 날카로운 이성으로 분석해 볼 때, 가수의 인기는 쉬이 식는다.
길어야 6개월?
짧으면 3개월이면 비원더에 집중된 전 국민의 관심은 사라질 거라고 박이도 대통령은 판단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빠르게 비원더와 함께 무언가 이벤트를 만들어야 했다.
‘지금 서두르면 4개월 뒤 전국 총선에서는 괜찮은 도구로 쓸 수 있겠군.’
표 계산을 완료한 박이도가 강 시장과의 전화 회의를 조금 빨리 마무리했다.
“그래 강 시장, 하고 싶은 내용은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는 걸로 합시다. 중요한 손님이 오셔서.”
-아… 그러시죠. 저도 중요한 용건이 있으니 기다리겠습니다.
박이도가 통화를 급하게 마무리하고는 승리의 웃음을 지으며 청와대의 한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에는 비원더 3인과 배영웅 실장, 그리고 이전 미팅에는 없던 천채왕 프로듀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박이도 대통령은 5인과 차례로 악수했다.
천채왕이 쾌활하게 대화를 주도했다.
“대통령님 제안은 잘 받았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천채왕 프로듀서가 주로 말하는 역할을 맡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고위 임원, 그것도 오너가 직접 답해주는 편이 대통령 입장에서도 편하고 좋았다.
“그래, 저희와 어떻게 함께할 결심은 서셨습니까?”
“사실 무슨 활동을 같이하자는 건지 잘 이해는 가지 않습니다. 그냥 지금 이 만남을 공개적으로 가졌으면 됐을 텐데요. 벌써 이게 비원더와 두 번째 만남 아닙니까? 대통령님의 소중한 시간을 2번이나 써도 되는지….”
박이도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천채왕 프로듀서는 사업가답게 대통령 제안에서 재빠르게 이상함을 느꼈다.
사실 단순히 비원더와 접점을 만들고 싶었다면 그냥 적당한 명분을 가지고 공개회의를 진행하면 그만이다.
예컨대, ‘장애 아동을 돕기 위한 회의를 했다’라고 1시간 정도 적당히 회의 시간을 때운 후, 이를 토대로 사진 찍고 보도자료를 보내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적당한 명분을 가지고 회의를 진행하면 정적 입장에서 아이돌을 정치에 이용한다는 비판도 하기 어려울 테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하수의 전략이지.’
당장 박이도 대통령은 지지율을 올려야 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게 정치다.
대통령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비원더와 만날 수 있는 찬스를 예비 카드로 가지고 싶었다.
이를 위해 지금 미팅을 주선한 것이었다.
그가 비원더와 진행할 회의는 ‘우승했을 경우, 글로벌 비전 주최’를 위한 회의였다.
어차피 우승한다면 언젠가는 해야 할 회의지만 자기 주도로,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하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비원더가 언제 탈락할지 모르니 하루라도 빨리 써야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필요 없겠지. 아직 휴가가 1달 남았으니까.
천채왕 대표가 박이도 대통령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대통령님께서 미리 말씀해주신 덕에 저희도 제대로 숙고할 수 있었습니다. 결승을 우리나라에서 주최하게 된다면 당연히 국가와 상의해서 진행해야겠죠. 그래서….”
‘그래서?’
박이도 대통령은 살짝 당황했다.
이제부터 자신이 치고 나가야 할 타이밍이었는데 천채왕 프로듀서의 말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천채왕 프로듀서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저희가 지금 제주시 강수영 도지사와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비전 결승 같은 큰 행사라면 발 벗고 도와주시겠다고 말씀 주셨습니다. 미리 안건을 알려주신 대통령님의 마음씨에 감사합니다.”
대통령은 아차 싶었다.
이미 비원더가 단독으로 지자체와 대화를 시작해 버리면 대통령으로서는 할 일이 없어진다.
당연히, 대통령을 만나 회의할 일도 없다.
게다가 사람의 마음이란 게 이상해서, 대통령을 만난다고 하면 정치적 행보로 느껴지는데 시장이나 도지사랑 만난다고 하면 그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통령이나 제주 도지사나 같은 당 소속의 정치인인데 말이다.
‘당했다….’
박이도 대통령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방법이 없었다.
무리수를 두지 않고 제주시와 비원더 사이에 청와대가 끼어들 방법은 이제 없었다.
그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 *
비원더 3인 모두 호텔 방에 도착하자마자 널브러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심 모두 이번 청와대 미팅이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문제는 잘 해결되었다.
정치권과 불필요한 접촉 없이 잘 사건이 마무리했으니까.
내가 떠올렸던 문제 해결법이 제대로 먹혔다.
어차피 월드 스타가 된 이상 정부와 협업은 피할 수 없었다.
특히, 만약에 우리가 글로벌 비전을 우승하게 된다면 더더욱 그랬다.
우리 때문에 국제 행사를 한국에서 주최하게 되는데, 어떻게 정부와의 협업을 피할 수 있겠는가?
‘정부와 어차피 함께해야 한다면, 차라리 우리가 주도하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언론과 팬들에게 노출할 수 있지 않을까?’
피할 수 없다면 아예 뛰어들어 주도권을 쥐면 됐다.
이 생각을 떠올린 다음부터는 대응이 쉬웠다.
천채왕 프로듀서와 함께 빠르게 사내에 글로벌 비전 결승 유치 대비 TF를 만들었다.
그리고 천채왕 프로듀서가 직접 지자체와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가 먼저 주도적으로 준비를 시작해 버리자 대통령은 막상 응원 정도밖에 할 일이 없어졌다.
‘먼저 나서는 게 정답이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노래라면야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이겨낼 수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나라도 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는 배영웅 실장에게 하소연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해외에서 쉬면서 천천히 연습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너무 관심이 많아서 한국에 있는 게 편하지도 않네요.”
배영웅 매니저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러게요. 차라리 해외로 가버리는 것도 생각해봐야겠어요.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으세요?”
내가 슬쩍 재호랑 환희를 쳐다봤다.
둘은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는 듯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숨고 싶은데요.”
배영웅 실장이 우리에게 충고했다.
“그런데요. 이건 아셔야 해요. 비원더는 이제 글로벌 비전 16강입니다. 전 세계 어디서나 알아보는 사람은 있다고 보셔야 해요. 저는 물론 천채왕 선생님도 비원더 같은 월드 스타는 프로듀싱해 본 적이 없어요. 국내라면 저희도 경험이 있지만, 해외에서는 비원더의 안전을 완전히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배영웅 매니저에게 내가 제안했다.
“그러면 차라리, 아는 사람이 이미 있는 곳으로 가면 어떨까요? 아무래도 숨기가 훨씬 편할 테니까.”
“아는 사람 누구요?”
* * *
예정 엔터테인먼트 사무실.
백진우 이사가 초조하게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 직원이 귓속말로 무언가를 은밀하게 보고했다.
‘비원더가 지금, 일본에 가고 있습니다.’
백진우가 순간, 눈이 초승달 모양이 되며 하회탈처럼 웃기 시작했다.
“일본? 껄껄껄껄껄. 일보온? 예정 엔터가 어디에 거점을 두고 있는지 몰라? 아니면 알고 저러는 거야? 제 발로 얼굴을 호랑이 아가리에 들이미는구만? 그럼 제대로 물어뜯어 줘야지.”
원래 그의 계획은 16강 전에서 베이즈와 비원더의 대결 때 비원더를 물리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묘수도 이미 준비해 둔 상태였다.
하지만 이렇게 비원더가 자진해서 예정 엔터의 본진인 일본으로 들어와 준다면, 예정 엔터는 오히려 환영이었다.
“한번 제대로 뜨거운 맛을 보여 주지. 언론사에 통화 돌려!”
* * *
‘아는 사람이란 게 앤젤이었나.’
우리와 라이벌로 데뷔해서, 이제는 같은 회사의 동료가 된 앤젤.
그는 요즘 한국을 거쳐 일본에서 활동 중이었다.
덕분에 아예 맨션조차 아닌, 단독 주택을 하나 구입해서 거주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했다.
배영웅 매니저가 앤젤의 숙소를 우리의 쉴 곳으로 추천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이곳은 TYB의 소유이기 때문에 활용이 쉬웠다.
게다가 숙소가 워낙 커서 매니저 및 경호 인력까지도 숙소에 묵을 수 있었다.
또한 앤젤이 이곳에 산다는 것은 모두에게 비밀이었다.
덕분에 보안 유지도 가능했다.
마지막으로 정작 이 집의 주인인 앤젤은 전국 순회공연을 위해 지방에 가 있는 상태였다.
일본은 워낙 큰 나라라, 지방 공연을 시작하면 당분간 도쿄로 돌아올 일이 없었다.
“이 정도면 괜찮죠?”
배영웅 매니저의 말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비원더 팬덤에게 이미 얼굴이 팔린 배영웅 대신 TYB 일본 지부 직원이 마트에서 생필품을 조달했다.
혹시나 얼굴이 팔릴까 봐 선글라스와 모자,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녀야 하긴 했지만 일본 시내는 그래도 한국보다는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대중의 관심을 받고 싶어 가수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관심이 너무 심해지니까 관심이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휴식 기간에 우리는 한 일본 기사를 발견했다.
+
제목 : 보신주의의 팝 비원더 대전율의 혁명 로큰롤 베이즈. 그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본문 : …(중략) 비원더는 그저 뻔한 팝 노래를 부른다. 사랑 노래 위주다. 발라드라 할 수 있겠다. 노래 실력 외엔 딱히 두드러지는 게 없다.
그에 반해 베이즈는 전복적이다. 강렬한 록 사운드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노 소울 인 머니’. 기독교의 교조주의를 경고하는 ‘킬 더 바울’까지. 모든 곡이 강력하다. 이것이 아티스트다. 수준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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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개소리야?’
기사를 읽으며 나는 코웃음을 쳤다.
일본 언론 기사를 번역한 한국 기사의 네티즌 댓글이 딱 내 마음이었다.
-베이즈 님들 세계에서 제일 돈 잘 벌지 않아요? 웬 자본주의 비판? 그럴 거면 절에 다 시주하고 스님이 되시든가.
-대체 지금 록이 왜 반동인지 누가 설명해주실 분? 록 전성기는 70년대 아닌가요?
-일본에서 기독교 비판한 게 대체 뭐가 전복적임… 미국이나 한국에서 하면 인정.
한국의 민심은 확연히 비원더에게로 쏠려 있었다.
제아무리 비원더가 싫은 사람들도, 한일전만은 이기고 싶어질 테니까.
문제는 해외 반응이었다.
웃기게도 일본 언론의 마타도어가 해외에는 제법 잘 먹혀들고 있었다.
대중 친화적인 팝가수 비원더와 예술성 있는 록스타 베이즈의 대결로 점점 대결 구도가 잡혀가고 있었다.
당장 베이즈와 대결해서 이겨야 하는 우리에게는 이런 분위기가 썩 탐탁지 않았다.
‘뭔가 이 구도를 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겠어.’
잠시 휴가차 샌프란시스코에 가 있던 우리 팀의 메인 작가인 메리에게 이 이슈를 대응하는 전략을 짜보자는 메일을 보냈다.
배영웅 매니저가 내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여러분들, 베이즈 공연 가보신 적 있나요?”
“그러고 보니… 없네요?”
나 외에 재호나 환희도 없었다.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해서는 일본 가수의 영상을 구하기 힘들었다.
일본은 모든 공영 영상을 철저하게 유료로만 팔았기 때문이었다.
베이즈 정도의 대형 밴드라 해도 직접 콘서트에 가지 않는 한 공연 영상을 구하기는 제법 까다로웠다.
재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베이즈 공연을 본 적이 없네요. 공연에 가보면 좋을 텐데. 당연히 베이즈도 글로벌 비전 준비 중일 테니 공연은 안 하겠죠.”
배영웅 매니저가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dvd로는 확인해 볼 수 있죠.”
배영웅 매니저 품 안에서 베이즈의 공연 실황이 튀어나왔다.
“지금 바로 보시죠!”
내가 바로 dvd를 손에 집어 들며 외쳤다.
그리고, dvd로 베이즈의 공연 실황을 살펴보면서 나는 베이즈의 약점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