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61화 (261/280)

제261화

대통령이 대체 어떻게 가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뮤직비디오 미션처럼 장소가 필요했을 때야, 베이즈처럼 촬영지 허락을 쉽게 받게 도와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벌써 본선 16강에 돌입했다.

지금부터는 글로벌 비전 제작진에서 모든 장소를 다 섭외해주고, 비자 등도 매끄럽게 해결해주었다.

생각을 정리한 내가 대통령에게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시죠?”

그런데 대통령의 답변이 또 뜻밖이었다.

“글로벌 비전에서 한국이 우승하면, 대한민국이 다음 글로벌 비전 결승전을 유치하게 됩니다. 이건 아시죠?”

“네 알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글로벌 비전의 프로듀서인 베이즈가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글로벌 비전 결승은 이전 대회 우승자의 나라에서 주최한다.

또한 글로벌 비전 우승자는 다음 글로벌 비전 무대에서 축하 공연을 하게 된다.

글로벌 비전 결승은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이는 전 세계인의 축제다.

관공서 입장에서는 자국 가수가 글로벌 비전에서 우승할 경우, 상당히 큰 국제 행사를 유치하게 되는 셈이었다.

박이도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저희는 충분히 비원더가 우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저희 대한민국은 상당히 큰 국제 행사를 유치하게 되지요. 당연히 저희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비원더는 꼭 이번 대회, 우승해주세요, 저희가 발 벗고 나서서 비원더를 돕겠습니다.”

“실례합니다만 대통령님께서 무엇을 도와주실 수 있죠?”

나는 일부러 구체적으로 질문했다.

약간 버릇없어 보일 수 있었지만, 어차피 지금은 비공개 회담이었다.

공개 회담으로 돌입하기 전, 가급적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글쎄요 뭐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겠지요. 공익 광고도 매우 많고. 홍보 대사라던가. 가수가 공공기관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의외로 많으니까요.”

딱히 끌리는 제안은 아니었다.

내가 진짜 동의하는 명분이 있어서 공익 광고나 홍보 대사를 담당하는 것이야 의미가 있겠지만, 굳이 관심도 없는 자리를 인맥으로 얻은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곤란한걸.’

* *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운전석의 배영웅 매니저가 걱정스럽게 우리에게 말했다.

“뭔가 예감이 안 좋아요. 본인이 필요할 때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는 용도로 이용하려고 하는 느낌인데요. 선거 때라든지요. 선생님도 정치와 너무 엮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시거든요.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각이죠.”

내가 되물었다.

“하지만 막상 친하게 지내자고 먼저 그쪽에서 이야기하면 거절할 방법이 있나요?”

“딱히 없긴 합니다. 뭐 그건 아티스트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죠. 저와 선생님이 생각해야지요. 일단 보고부터 하시죠.”

배영웅 실장은 차를 돌려 TYB 본사로 향했다.

회의실에 들어가 보니 천채왕 프로듀서와 회사 임원진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배영웅 매니저가 대통령의 ‘제안’을 설명했다.

내용을 다 들은 후, 천채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걱정이네.”

내가 되물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 솔직히 정치인, 그것도 대통령을 적으로 만들면 너무 피곤하지. 권력은 권력이니까.”

환희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그냥 제안을 들어줘야겠네요.”

천채왕이 살짝 눈을 찌푸렸다.

“그러면 좋겠는데,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환희야. 대통령이 적이 되면 안 되지만 우리 편이 돼도 너무 피곤해지거든. 하여튼 국민에 절반은 대통령을 싫어하기 마련이야.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 정치란 게 그런 거니까. 그래서 적당히 거리를 두면 이상적인데.”

천채왕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봤다.

다들 마땅한 아이디어가 없는 듯, 먼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문득 누구에게 조언을 구해야 할지 깨달았다.

그 사람이라면 해답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 * *

소득 없는 회의가 끝나고, 나는 호텔로 향했다.

이제는 우리의 숙소도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한 소속사가 아예 우리 멤버들에게 호텔을 잡아 주었다.

혹시나 있을 유출을 대비해 매일 방호수도 바꾸었다.

오늘은 특별히 투룸 방에서 투숙한다.

동생과 함께 있기 위해서였다.

방에 들어가니 동생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오빠 왔어?”

“그래.”

공항에서 나는 동생과 헤어져 이산가족이 될 뻔한 경험을 했다.

이후 나는 내 경호 인력 중 일부를 반드시 동생에게 배치해달라고 매니저 팀에 부탁했다.

다행히 동생의 인적 사항이 유출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될지 혹시 모르니 조심해야 했다.

동생은 테이블에 기댄 상태로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가수를 시작했을 때는 대입 수험생이던 동생이 어느새 대학교 1학년을 거의 마무리해 가고 있었다.

다행히, 동생은 가야금 전공으로 순조롭게 커리어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내 예상대로, 내가 경제적 지원만 조금 해주니 동생은 금방 국악 뮤지션으로서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내일 또 해외 공연 때문에 비행기 탄다며? 이번에는 어디가?”

“내일은 이탈리아. 1주일간 있다가 올 거야.”

고작 대학교 1학년인데도 벌써 국제 행사에서 공연하기 시작했으니 말 다했다.

“너, 보통 국제 행사 가면 정치인도 만나냐?”

“자주 보지? 우리 국악팀을 부른다는 건 보통 큰 국제 행사를 한다는 거니까. 대통령이나 수상이 오는 경우가 제일 많고, 총리나 시장도 자주 보고.”

“너 그럼 박이도 대통령하고 만난 적도 있어?”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이라는 듯, 표정에는 미동 하나 없었다.

“그럼. 한 네댓 번 봤나?”

나는 동생에게 대통령을 만난 이야기를 풀었다.

물론 그가 우리에게 한 ‘제안’은 뺀 채로 말이다.

어차피 우리를 만났다는 사실 자체는 곧 언론에 공개될 예정이니 동생에게 알린다고 해도 부담도 없다.

“나도 사실 오늘 봤거든.”

“아 그래? 어땠어?”

나는 내가 느꼈던 ‘감정만은’ 사실대로 동생에게 말하기로 했다.

“말만 해도 좀 피곤해지는 타입이더라.”

“아 좀 그렇지? 정치인은 아무래도 계산적이니까. 적당히만 하고 잘라.”

“그게 되냐…?”

“우리는 되던데? 하긴 오빠는 우리랑은 다르게 ‘진짜 스타’니까. 정치인들이 껌딱지처럼 붙을 수도 있겠다. 뭐 그래도 그냥 적당히 넘기면 되는 거 아니야?”

“글쎄….”

동생이 룸서비스로 나온 연어 샐러드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며 골똘히 생각했다.

“뭐, 박이도 대통령처럼 철두철미하고 계산적인 사람만 있는 건 아니야.”

“뭐, 다른 정치인도 봤어?”

“국무총리도 봤고, 부산시장도 봤고… 얼마 전에는 제주에서 공연해서 제주 도지사랑도 인사했거든?”

동생의 인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네가 나보다 월드 스타다 야.”

“물론 그중 박이도 정치인보다 더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게 누군데?”

동생의 하소연을 다 듣고 난 뒤 나는 혀를 쯧쯧 찼다.

“뭐 그런 사람이 다 있냐. 과격하네. 예의라곤 없잖아? 그야 그렇게 하면 자기 표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동생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내 말에 격하게 동의했다.

“그지! 완전 안하무인이었다니깐.”

‘잠깐, 이거 뭔가 해결책이 될 수도 있겠는데?’

나는 귀로는 동생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무언가 작전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비원더 3인은 미디어 데이를 가졌다.

한국 도착 당일에는 너무 피곤해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다음날에는 대통령의 일정이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또 불발되었다.

언론사의 불만이 많아 우리는 서둘러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우리 입장에서는 3일째 휴식도 못 한 채로 진행하는 강행군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기자 인터뷰 열기는 예전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원재호 님께 질문드립니다. 최근에 연주에서 사용하고 있는 키보드가 일제 YAMAHA여서 야마하의 매출이 늘고 있는데요. 애국을 위해 국산 키보드로 바꾸실 의향은 없으실까요?”

“주환희 군, 이제는 스캔들 기사는 더는 없다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권노을 군, 과거의 살찐 사진이 자꾸 발굴되는데요. 뭐라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하도 시시하고 말초적인 질문이 이어져 듣는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간담회에 참가한 미디어 규모가 예전의 몇 배는 되어 보였다.

아무래도 비원더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스타가 되다 보니 음악을 원래 잘 다루지 않는 매체들까지 앞다투어 우리 미디어 데이에 기자를 파견한 모양이었다.

그중에서는 제법 얄미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요즘 일부 일본 언론에서는 ‘비원더의 선전은 일본 대표 베이즈와는 달리 실력보다는 한국 정부의 도움 덕분이다.’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미 PR팀을 통해 대응 방안은 논의해 둔 질문이었다.

재호가 마이크를 잡고 미리 약속한 대로 대답했다.

“대답할 가치가 없는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겠습니다.”

* * *

3시간이 넘는 미디어 데이가 끝났다.

우리는 녹초가 된 채로 대기실로 돌아왔다.

내가 재호를 칭찬했다.

“대답 잘했어. 깔끔하던데?”

재호가 진저리를 쳤다.

“저런 질문 들으니까 대통령 제안도 피해야 할 거 같아.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글쎄, 어떻게 행동한 들 일본 언론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을 거 같다만.

슬쩍 고개를 돌려 배영웅 매니저를 봤다.

그도 표정이 안 좋아 보였다.

내가 슬쩍 배영웅 실장에게 질문했다.

“무슨 일이시죠?”

“저, 사실. 야당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재호랑 환희도 배영웅 실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배영웅 실장에게 이목이 집중됐을 때 나는 그를 보며 물었다.

“대통령과 같은 제안인가요?”

“그렇습니다.”

선거 직전에 자신과 같이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어찌 보면 별것 아니지만, 가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부탁이 들어왔다.

나는 정치는 잘 모른다.

다만 정치인들의 투표 대결에서 가수인 우리가 장기판의 말처럼 활용되는 일에는 확실히 거부감이 들었다.

다만 이미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된 우리에게는 이제 너무 많은 스폰서 제안이 온다는 것이 문제였다.

‘예전에는 민티의 스폰서 제안만 피하면 됐는데. 이젠 정말 빡세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했던가.

비원더의 인기가 커지는 만큼, 비원더는 주변에 더 많은 비리를, 욕망을, 그리고 사람의 마음속 어둠을 끌어당겼다.

그 결과로 비원더의 인기를 노리고 다가오는 이들이 점점 많아졌다.

글로벌 비전의 프로듀서 베리가 내게 했던 경고도 떠올랐다.

스타가 되면 될수록, 귀찮은 일도 많아진다는 사실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고 보면, 벌써 30일의 휴가 중 1/10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그냥 버려 버렸다.

빨리 이 일을 마무리 짓고 맘 편히 휴식을 취해야 앞으로의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다.

다행히 내게는, 이 사태를 타개할 안이 딱 하나 있었다.

내가 배영웅 매니저에게 물었다.

“저희 연습은 어떻게 할까요? 기존 연습실서 하나요?”

“그러게요. 연습실 시설이 아깝긴 한데. 지금 비원더 숙소가 완전히 기자진과 팬덤으로 둘러싸여 있어서요. 다른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재호가 아쉽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거기 참 정들었던 곳인데요.”

내가 재호를 위로했다.

“괜찮아. 어차피 그래봐야 한 달밖에 못 쓰는 거였잖아? 그다음에는 본선을 치르러 가야 하니까.”

“그렇긴 한데….”

우리가 글로벌 비전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후, 모든 것이 뒤바뀌어 있었다.

한국에서의 대접이 예전과는 전혀 달랐다.

세계시장에서 우리의 위치가 달라졌기 때문이겠지.

이제는 달라진 환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익혀야 할 때였다.

다행히 나에게는, 그 방법이 있었고 말이다.

내가 배영웅 매니저에게 요청했다.

“우선 저 전화 한 통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회의 일정도 잡아 주실 수 있나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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