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9화
카메라가 갑자기 꺼졌다.
방송은 중단되었지만, 무대는 멈출 수 없다.
모두가 멀뚱멀뚱 쓰러진 스티븐을 쳐다볼 따름이었다.
디제이인 프레드릭 또한 입을 떡 벌린 채 디제잉 테이블에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렇게 10초 정도 흘렀을까.
나는 배영웅 실장에게 다가갔다.
“저거, 왜 아무도 말 안 하죠? 긴급 상황 아닌가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종류의 기절은 응급처치가 늦어지면 생명에 위협이 가기도 한다.
배영웅 매니저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 아침에 보니까, 저스트 클릭 매니저가 사라졌더라고요. 그 영향이 아닐까 싶네요.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의료진은 항상 대기해야 하는데 왜 이러죠?”
“일단 저희 팀 닥터를 출동시키면 어떨까요?”
“그래야겠네요.”
배영웅 매니저가 바로 우리 팀 닥터를 불렀다.
바로 배영웅 매니저를 포함한 스태프들이 모니터 속 화면에 등장했다.
보안요원들이 항의했지만 우리 팀 닥터는 단호하게 그들을 눈빛으로 제압하고는 스티븐을 데려갔다.
‘저게 의사지. 일단 사람은 살리고 보는.’
프레드릭은 두 손을 위로 올린 채 ‘난 몰라’라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잠깐 동안 무대는 침묵에 휩싸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말론 웨이가 다급하게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미안합니다! 다행히도 스티븐은 별문제 없다고 합니다. 스티븐은 안전하게 의료진에게 이송되었습니다. 그리고….”
말론은 말을 하다 말고 프레드릭을 슬쩍 쳐다봤다.
프레드릭은 공허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이제 다 끝났어’라는 표정이었다.
말론이 말을 이어갔다.
“경기 참여가 불가하므로, 저스트 클릭은 ‘부전패’ 처리되었습니다. 비원더가 4라운드에 진출합니다.”
대기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이기기는 했지만 대결에서 이긴 것이 아닌, 부전승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애매했다.
일단은 내가 나서서 멤버들을 독려했다.
“하여튼 저희가 이긴 건 이긴 거니까요. 건강관리도 실력이죠.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격려를 마친 후 나는 방 바깥으로 나갔다.
재호가 되물었다.
“어디 가냐?”
“가봐야지.”
“누구한테?”
“지금 가장 우울한 사람.”
“스티븐?”
‘그럴 리가. 스티븐은 지금 곤히 잠들어 있잖아. 그것도 몇 년 만에 꿀잠을 자고 있지. 오히려 행복 지수 만땅일걸? 진짜 우울한 놈은 따로 있지.’
나는 저스트 클릭의 대기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정말 담배 한 모금이 간절한 표정으로 탄산수를 사약처럼 퍼마시고 있는 프레드릭이 서 있었다.
평소의 쿨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그가 나를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축하해. 덕분에 이겼군. 솔직히, 우리 말곤 비원더 당신들 막을 사람 없을 거야. 날로 먹겠군.”
“우울해 보이네요?”
“우울하다 뿐이야? 나는 이제 다 끝났어!”
프레드릭이 주먹으로 쾅 하고 벽을 쳤다.
쿵 하고 방이 울렸다.
그가 왜 좌절하고 있는지는 짐작이 갔다.
원래 그는 저스트 클릭을 발판 삼아 커리어를 키울 계획이었다.
세계 최고의 작곡가가 된 다음에는 솔로 활동으로 서서히 자신의 입지를 높였다.
그리고 그사이 스티븐은 자연스럽게 건강 문제로 ‘정리’되었다.
이후에도 그는 ‘저스트 클릭’에서의 경력으로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그런데 역사가 바뀌었다.
그가 세계 시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완벽하게 찾기 전에 그의 ‘날개’였던 스티븐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스티븐이 3개월만 더 버텨 줬더라면’ 프레드릭의 인생도 바뀌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정말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이기적이네요 정말. 스티븐은 죽을 뻔했어요. 죽으면 모든 걸 잃는 건데, 당신은 고작 커리어 조금 꼬인 거 가지고 그렇게 죽상인가요?”
프레드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툭 하고 말을 내뱉었다.
“네가 뭘 알아? 스티븐은 자기 스스로 선택했어. 누구도 그의 선택을 뭐라고 할 수 없지.”
“쓰러진 것도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죠. 그동안 무리한 게 터진 거니까.”
“제길! 조금만 더 밀어붙였으면 되는데. 대체 누가 밀고를….”
그거 사실 전데요.
나는 기자에게 슬쩍 스테반에 대한 정보를 흘렸다.
여러 가지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스티븐의 생활 패턴은 이상했다.
아무래도 의사가 그가 무리하는 걸 은근히 장려하면서 스티븐에게 뭔가 약물을 투여하는 걸로 보였다.
그의 건강 상태가 나빠 보인다고 슬쩍 기자에게 말하며 그 증거로 내가 확인했던 파티에서 스티븐이 먹었던 약물들 사진을 보여줬다.
스티븐은 습관적으로 에너지 드링크 및 강력한 각성제를 복용했다.
불법은 아니지만, 저렇게 많은 각성제를 다량으로 지속해서 섭취하면 금방 건강이 무너진다.
저스트 클릭은 대형 음악 유통사와 계약을 맺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솜씨 좋은 변호사와 홍보 대행사를 고용했다.
역시나 탄탄한 홍보 대행사가 뒷배로 있어서 그런지, 폭로 기사가 터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도 읽고 있었지.’
내 목표는 기사를 터뜨리는 게 아니라 스티븐의 건강을 되찾는 것이었다.
적어도 기사를 수습하면서 스티븐의 주치의가 해고되기는 했다.
그리고, 폭로 기사를 방지하는데 매니저가 투입되면서 자연스럽게 매니징 업무에도 공백이 생겼다.
누군가가 스태프를 채우긴 했지만, 주치의를 다시 채울 수는 없었다.
결국 누구도 스티븐에게 각성제를 다시 놔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돼버리고 나니, 어쩔 수 없었다.
스티븐은 약물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힘만으로 무대를 준비해야 했다.
스티븐도 나름 노력했다.
공연 전날 파티 공연을 취소한 거 보면 말이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스티븐은 잠 은행에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하룻밤 10시간 정도 잔다고 되갚을 수 있는 빚이 아니었다.
그리고… 쿵!
그렇게 스티븐은 무대 위에서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프레드릭은 영문도 모른 채 쓰러져 버린 스티븐을 멀뚱멀뚱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프레드릭과 눈을 마주치며 제안했다.
“이제 당신에게 남은 건 하나밖에 없어요.”
프레드릭이 나를 비웃었다.
“내게 남은 게 뭐가 있지? 곧 있으면 음반사와 계약도 끝나. 다 끝났어. 난 다시 밑바닥이라고.”
“스티븐이 남았잖아요. 스티븐에게도 당신 하나 남은 거죠.”
프레드릭은 고개를 떨궜다.
나는 그에게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에는 잘 해봐요. 스티븐을 진짜 대등한 업무 파트너로 인정해야겠지만. 솔직히, 당신의 프로듀싱 재능이나 스티븐의 보컬 능력이 어디 갑니까? 지금도 전혀 늦지 않았어요.”
“…….”
프레드릭은 허공을 응시한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다시 올라오시길 기원하겠습니다. 빌보드 정상에서 봐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프레드릭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내게 쏘아붙였다.
“웃기지 마.”
“네?”
“우리가 너희보다 더 먼저 정상에 가겠어. 오디션 따위에 갇혀 있는 동안… 우리는 다시 팬들 품으로 갈 거야. 이번에는 건강까지 챙기면서.”
“행운을 빕니다.”
나는 미소를 짓고는 방에서 빠져나왔다.
왠지, 저스트 클릭의 미래는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전 세계를 정복하는 세계 최고의 댄스 듀오가 되는, 바로 그 미래 말이다.
* * *
이번 라운드는 글로벌 비전 초반부 무대의 끝이었다.
총 7라운드 중 3라운드를 끝냈다.
이제는 드디어 탈것이 바뀌는 시점이다.
총 128개 팀으로 시작된 대회에서 남은 팀은 고작 16팀.
130여 개 팀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크루즈는 이제 너무 넓었다.
앞으로는 장소를 남미로 옮겨, 전용 비행기로 전 세계 4개 대륙을 이동하면서 무대를 치를 예정이었다.
남은 곳은 남미, 유럽, 아시아, 그리고 미국.
소위 세계 음악 시장의 핵심인 지역들뿐이었다.
이제야 진짜 본 무대의 시작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크루즈에서의 여정을 기념하는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우리 방을 담당하는 직원이 내게 권유했다.
“노엘! 파티 안 와요? 파트 1 끝낸 겸 축하 파티할 예정인데!”
나는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아니요 됐어요.”
파티는 이제 지긋지긋했다.
하우스 밴드 멤버들은 물론, 재호와 환희까지 파티에 갈 차림이었다.
그중 반가운 손님이 한 명 있었다.
프레셔스였다.
그는 소닉 독과 딱 붙어 있었다.
내가 소닉 독에게 슬쩍 눈짓을 줬다.
소닉 독이 나를 보며 수줍게 웃었다.
내가 질문했다.
“두 분 다시 친해지셨네요?”
“어떻게 입장이 잘 정리가 돼서.”
소닉 독은 음악과 개인의 행복은 같이 갈 수 없다는 이상한 생각을 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하나를 버리지 않는 건가요?”
내 질문에 소닉 독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한 번, 둘 다 가져 보려구요.”
“가능할 겁니다.”
프레셔스가 소닉 독에게 ‘뭘 둘 다 가져? 너 바람피냐?’라고 장난스레 쏘아붙였다.
둘이 서로 낄낄대며 웃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자연스레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되는 거겠지?’
그날 밤, 나는 시끌시끌한 소리와 폭죽 소리 속에서도 신기하게 꿀잠을 잤다.
죽음처럼 조용하고, 그러면서도 꿀처럼 달콤한 잠이었다.
푹 자고 일어나 보니 어마어마하게 많은 축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동생부터 동료까지, 모두가 전해 준 축하 메시지를 보면서 비로소 실감이 났다.
‘이제 TOP 16까지 오긴 왔구나…!’
일반적으로 이 파트를 ‘본선 진출’이라고 했다.
여기서부터는 설사 떨어진다고 해도 가수 경력에 들어갈 만한 성과였다.
이제부터는 세계 팝 시장에 앨범을 낸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신인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성적을 기대할 수 있었다.
애초에, 처음에 천채왕과 대회를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최저 성공 기준’이 바로 이 16강이었다.
이 이후부터는 세계대회이니만큼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충분히 성공한 셈이지만, 왠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새벽까지 시끌벅적하게 파티를 해서 그런지 아침의 크루즈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김나리 담당자였다.
“아, 담당자님이셨네요. 깜짝이야. 파티 안 가셨어요?”
“누군가는 아침을 준비해야 하니까요. 그것보다, 연락이 하나 왔습니다.”
“연락이요? 이 아침부터?”
“요!(yo)”
익숙한 저 목소리는… 말론이었다.
“말론! 어제 파티에 간 거 아니었어요?”
말론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노엘은 역시 아직 초보자로군.”
“무슨 말씀이시죠?”
“당연히 어제 파티로 날 밤을 샜지! 지금까지 한숨도 안 잤어!”
“그러다 죽는다고요!”
“농담이야 농담. 나는 어차피 매일 정오에 자고, 저녁에 일어나는 게 루틴이니까 신경 쓰지 마.”
‘정말 몸에 안 좋을 거 같은 루틴이군.’
“그보다,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
말론의 눈빛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제가 꼭 봐야 할 사람인가요?”
“꼭 봐야지.”
그가 주변을 살피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그야 이 방송의 메인 제작자니까 말이야.”
* * *
‘그러고 보니 이상했어.’
미국 방송은 제작자 중심이었다.
그런데 지금껏 글로벌 비전 방송을 하면서 한 번도 ‘제작자가 누군가’라는 질문을 했던 적이 없었다.
심사위원들이 단연 돋보였고, MC와 스폰서가 자꾸 보였다.
당연히 나는 MC인 말론을 스폰서 비슷한 인물로 생각했다.
심지어 메인 PD 역할을 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사람은 스폰서 집안의 이사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당연히 방송은 방송을 제작하는 전문적인 제작자를 필요로 했다.
‘대체 누구일까? 그리고 왜 지금까지 한 번도 보이지 않은 거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숨었던 사람이 왜 갑자기 이제야 나를 만나자고 하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사이, 말론은 어딘가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 방에 제작자가 있어.”
말론이 방문을 두드리자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