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58화 (258/280)

제258화

-잠을 안 자?

천채왕이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네. 하루 평균 3시간 정도 잔다는데요? 이게 가능한가요?”

-그게 되면 나도 진작에 그렇게 했겠지! 잠자는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데. 하지만 그건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거야. 그러다 죽어.

“맞습니다. 그러다가 제 명에 못 살죠.”

나는 천채왕에게 저스트 클릭, 특히 스티븐에 대해 그동안 내가 확인한 내용을 공유하고 있었다.

음악 업계에 정통하고 건강에도 관심이 많은 천채왕은 금방 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모든 내용은 다 들은 후, 그는 나와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활동하게 두면 스티븐이란 친구는 죽어.

“아마 주변이 강요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내가 본 프레드릭과 저스트 클릭의 매니저에게는 죄책감이 없었다.

자기들이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스티븐은 본인이 원해서 잠잘 시간도 줄이고 바쁘게 활동하는 것일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살 수 있게 약을 달라고 요청했을 것이고, 그 요청을 매니저는 들어줬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천채왕의 생각은 달랐다.

-그건 자살 방조나 마찬가지야. 지금 나, 저스트 클릭의 공연 영상 다 찾아보고 있거든?

“예.”

-스티븐 이 친구 벌써 눈빛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어. 얘 이렇게 활동하다간 곧 큰일 나. 지금 당장 멈춰야 해. 나도 평생 음악 판에 있었지만, 음악보다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해. 예술이고 사업이고 일단은 살고 봐야 한다고!

음악에 걸어야 할 것 있고 걸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 법이다.

스티븐은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의 목숨을 다시 되돌려 주려 했다.

“어떻게 하면 스티븐을 멈출 수 있을까요?”

* * *

음악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던 무렵, 나는 또 하나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미국 언론 CNN과의 인터뷰였다.

주제는 ‘이스트 웨이브’와의 작업기였다.

나는 곧 발매될 이스트 웨이브의 신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동양인 가수가 미국 최고의 힙합 프로듀서와 협업한 초유의 프로젝트인 만큼 해외 언론의 관심이 은근히 많았다.

덕분에 오늘 나도 메이저 언론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인터뷰 자체는 평이했다.

‘어떻게 이스트 웨이브와 만나게 되었나요?’와 같은, 한 백 번은 반복해서 대답했던 질문들이 나왔다.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는, 인터뷰가 끝난 후 시작됐다.

모든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가 녹음을 멈추었다.

그제야 기자가 마음이 편해졌는지 내게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인터뷰 재미없었죠?”

너무 솔직해서 살짝 당황했다.

“네 조금.”

“이스트 웨이브가 워낙 천방지축이라, 그 친구랑 관계가 꼬이면 워낙 피곤해져서요. 좀 방어적으로 인터뷰 기사를 쓸 수밖에 없네요. 원래는 이렇게까지 재미없는 기자는 아닌데. 미안합니다.”

“미안하실 건 없습니다.”

기자의 이름은 제리 워런, 예술 분야에서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자라고 들었다.

뿔테안경과 영국식 악센트가 인상적인 금발 머리의 백인 남성이었다.

그가 담배를 꺼내 피우며 말했다.

“사실 인터뷰는 뭐… 좀 그래요. 대충 어느 정도 예상되는 질문과 답변을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역시 허를 찌르는 사실을 발굴하는 취재 기사가 제 취향입니다.”

“그러시군요. 보통 어떤 기사를 쓰시나요?”

제리가 킥킥 웃었다.

그가 입에 문 말보로 레드도 그의 웃음에 맞춰 살짝 흔들렸다.

“뭐 좋은 기사는 재미없죠. 나쁜 이야기 위주로 씁니다.”

나쁜 이야기라면 나도 하나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제가 좀 이상하다 느끼는 내용이 있는데, 제보해도 되나요?”

제리 워런의 눈에서 갑자기 안광이 나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품속의 수첩과 펜을 꺼내며 말했다.

“언제든 환영이죠. 뭔가요?”

* * *

대결 전날, 비원더의 마지막 리허설이 끝났다.

모든 멤버가 다 방 바깥에서 대기하는 상황, 방에는 원재호만이 남았다.

비원더의 메인 프로듀서 원재호는 숨을 죽인 채 마지막 리허설 녹음을 확인했다.

‘오케이’를 외치긴 했지만, 마지막 연주에도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이럴 때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연습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10일간 혹독하게 연습했는데 마지막 날까지 괜히 오래 연습했다간 괜히 컨디션을 망칠 수 있어.’

마지막 날은 차라리 컨디션 조절을 위해 푹 쉬는 편이 나았다.

그간 나름대로 다양한 리허설을 거치면서 얻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원재호는 음악을 차근차근 들어봤다.

이번 곡은 민티의 테마곡을 재해석한 스무스 재즈곡인 ‘Feels like makin mint’였다.

자신이 봐도 이번 곡은 정말 기교가 뛰어난 음악이긴 했다.

재즈 장르를 만나자 코러스의 조민하 선배부터 세계적인 하우스 밴드들까지, 모두가 그야말로 음악적으로 날뛰었다.

듣기 쉬운 멜로디를 유지하면서도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강렬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러면서도 비원더 특유의 강력한 보컬과 심플한 멜로디 라인은 유지했다.

그래미 상을 수상한 재즈 앨범들과 비교해서도 손색이 없는 수작이었다.

특히 재즈 장르로 가자 박찬용 드러머가 비로소 자신의 숨겨진 진가를 발휘했다.

덕분에 누구보다 아방가르드한 고급 재즈 음악이면서도 누구나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고급스러운 팝 음악이 완성됐다.

음악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서 저스트 클릭을 이길 수 있을까?’

저스트 클릭의 음악의 단순 명쾌한 에너지가 비원더의 고급 팝보다 아무래도 대중에게 더 잘 먹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여기까지 했을 무렵, 원재호는 권노을이 문 바깥에 서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야 권노을 너는 안 쉬고 뭐 하냐?”

권노을은 뚫어져라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원재호가 권노을에게 핀잔을 주었다.

“야, 지금 핸드폰을 보고 싶냐? 안 걱정돼? 꼭 이겨야 하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거. 솔직히 이길 수 있겠냐? 음악이 좋긴 한데. 난 잘 모르겠어.”

권노을이 원재호를 빤히 쳐다보더니 슬쩍 말을 얹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그건 나도 안다구! 하지만 이걸로 되겠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고 이기리란 보장은 없다.

이번 같은 경우에 더더욱 그랬다.

저스트 클릭은 현재 팬들이 가장 바라는 단순하고 상쾌한 트렌디 팝송을 불렀다.

제아무리 비원더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대중성에서 그 단순명쾌함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원재호에게 권노을이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권노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슬쩍 입을 열었다.

“이기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

“뭐?”

원재호가 되물었다.

권노을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었다.

“잠이나 잘 자 둬. 잠이 보약이야. 음악보다 잠이 더 소중하다 너?”

권노을은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긴 채 바깥으로 나가 버렸다.

‘뭐지?’

권노을의 말은 이해가 되지 않는 수수께끼 같았다.

하지만 왠지, 그의 말은 위안이 되었다.

긴장이 풀린 탓이었을까, 원재호는 서서히 잠이 오는 것을 느꼈다.

‘조금만 잘까….’

원재호는 그대로 녹음실 소파에 쓰러져 죽은 듯이 잠을 자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아침 대기실, 비원더의 모든 멤버가 아침 일찍부터 드레스 리허설을 준비 중이었다.

나는 일부러 기분을 풀어주려 재호를 놀렸다.

“재호 너답지 않게 늦었다?”

“시끄러 다 너 때문이야.”

“나 때문?”

“덕분에 잘 잤다고! 이제 피곤하진 않아.”

다행히도 재호 컨디션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환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팀은 강제로라도 7시간씩은 자려 노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안 그러면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2주에 하나씩, 무대를 만드는 강행군이 벌써 6주째 계속되고 있었다.

게다가 앞으로 4개나 무대가 더 남았고, 앞으로는 돌발 미션도 더 많아질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128개나 되었던 팀도 이젠 32개로 줄어 있었다.

이런 오디션을 매번 최선을 다해 잠을 아끼면서 준비했다간 몸이 망가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너무 당연해. 스티븐은 지금 이미 건강하지 않은 상태일 거야.’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2주에 한 번씩 오디션 무대를 소화한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강행군이었다.

심지어 매번 시차가 바뀐다.

글로벌 비전은 대륙을 횡단하면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잠이 모자라면 건강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스트 클릭은 그에 모자라 매일같이 클럽 공연으로 날 밤을 새우며 놀았다.

당연히 체력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리하게 활동하면서 얻은 트렌디한 감각이 그들의 음악의 강점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잃은 ‘건강’은 어쩌면 음악보다도 더 소중한 가지였다.

‘스티븐은 물론, 프레드릭도 건강이 좋을 리가 없어.’

나는 슬쩍 곁눈질로 저스트 클릭 쪽 대기실을 확인했다.

‘…매니저가 없군. 역시.’

매니저가 바뀐 상태였다.

속으로 몰래 미소를 지었다.

내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 * *

말론 웨이가 힘차게 팔을 흔들며 우리를 소개했다.

“다음 순서는! 세상에서 제일 흑인스러운 아시아인 보이 밴드. 비! 원! 더!”

‘으 그놈의 흑인 타령은 좀… 역풍이 두려운데?’

조심조심 무대 위로 걸어왔다.

하우스 밴드 멤버들 또한 비장한 표정으로 무대에서 자리를 잡았다.

이번 무대는 특히 하우스 밴드가 멤버들 못지않게 중요했다.

눈짓으로 재호가 밴드 멤버에게 지시했다.

곧 밴드 마스터의 아름다운 신시사이저 소리와 함께 음악 연주가 시작됐다.

박찬용 드러머의 안정적인 드럼 소리가 더해졌다.

전형적인 재즈 드럼의 바운스가 느껴지면서도 절도가 있었다.

군대 행진곡 같으면서도 힙합 댄스곡 같기도 한 독특한 리듬감의 드럼 연주였다.

여기에 미도리와 소닉 독의 현란한 기타, 베이스 연주가 합쳐졌다.

조민하 선배 또한 깜짝 놀랄 정도로 도전적인 재즈 화성으로 곡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나는 음악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그만 닭살이 돋았다.

전율이 일 정도로 고급스러운 음악이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노래한다는 일이 이미 축복인 거 같은데?’

일단은 승패를 떠나, 이 무대를 실컷 즐기기로 했다.

승리는 이미 나의 것으로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 * *

무대를 끝내고 대기실로 내려오는 길에 재호와 눈이 마주쳤다.

재호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만족했냐?”

“만족했지. 진짜 100% 완전 비원더 음악이었어. 역사에 남을 음악이야. 지금은 저스트 클릭의 음악이 더 인기 있겠지만, 3년만 지나 봐. 대중의 머릿속에 저스트 클릭은 싹 사라지고, 대신 비원더의 오늘 무대가 남을걸!”

“그 말은….”

격려의 말을 건네려는 나를 보고는 재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질 수도 있지. 어떻게 매일 이기겠냐구. 오늘 진짜 멋진 무대를 했으니까. 그걸로 됐어. 만족해 만족!"

아무래도 재호는 이미 패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사실 환희나 다른 팀원들도 비슷한 의견인 듯했다.

재호처럼 대놓고 패배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도 재호를 부정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대기실의 모니터를 켰다.

무대 위에는 저스트 클릭의 2인이 서 있었다.

무대 위 두 사람의 표정이 왠지 매우 어두웠다.

환희가 무심코 질문했다.

“저스트 클릭은 항상 신나고 에너지가 넘쳤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둘이 분위기가 안 좋네요. 싸웠나?”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럴 리가!’

둘은 서로 싸울 만큼 사이가 가깝지 않다.

무대가 곧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프레드릭이 언제나처럼 경쾌한 비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무대 한 가운데에 스티븐이 우뚝 섰다.

그때였다.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스티븐이 비틀거리더니만, 거품을 물고 쓰러져 버린 것이다.

“뭐야!”

모니터링하던 우리 대기실까지도 아수라장이 됐다.

물론, 나를 빼고 말이다.

‘미안해요 스티븐. 그래도 죽는 거보단 낫잖아요?’

모두 내 예상 범위 안의 일이었으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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