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57화 (257/280)

제257화

내 질문을 들은 배영웅 매니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스티븐이 억울할 수도 있다고요?”

“뭔가를 넣은 건 사실입니다.”

“저도 확인했어요. 분명 사실이죠.”

“그런데, 자기도 똑같은 약물을 넣어서 마셔요.”

“…뭐라고요?”

간단한 이치였다.

처음에 나와 배영웅 매니저는 스티븐이 뭔가 이물질을 음료에 넣는 행동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음료를 자신과 데이트하는 여성에게 주는 것까지 확인했다.

당연히 스티븐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게는 더더욱 그를 의심할 근거가 있었다.

나는 스티븐의 미래에 예정된 몰락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약물 오남용으로 고통받다 결국 약의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당연히 약물이라는 키워드가 나오는 순간 스티븐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틀렸다면? 오히려 내 미래에 대한 지식이 선입견이 되어서 나를 잘못된 결론으로 빠지게 한 거라면?’

만약에 이전 생에서 내가 들었던 내용이 애초에 오염된 정보라면 어떨까.

회귀자로서 내가 가진 정보가 오히려 나를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나는 결론을 내리기를 유보한 채 다시 자세하게 스티븐을 관찰해봤다.

가만히 보니 이 녀석, 자기가 먹을 음료에도 똑같은 이물질을 집어넣고 실컷 마셨다.

뭔진 몰라도, 자신에게 넣는 이물질이라면 별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닐 수도 있지만.’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후에야 나는 배영웅 매니저에게 내 생각을 전달했다.

스티븐을 만나러 가기 전에, 배영웅 매니저와 작전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배영웅 실장은 내 말을 들은 뒤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 저희가 했던 생각은 다 틀릴 수도 있다는 거네요?”

“그런 셈이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봐야겠네요. 그냥 실력으로 이기는 게 맞겠습니다. 사실 자꾸 폭로로 이기는 것도 이상하니까요.”

“그럴지도요. 그런 의미에서 저 스티븐이랑 인사나 하려 하는데요. 같이 가시겠어요?”

“스티븐이랑요?”

소닉 독이 지적한 대로 나는 스티븐을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직접 보지도 않은 사람을 과거의 지식으로 판단하다 보니 편견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내 기억 속의 스티븐은 여자들과 마약 파티를 일삼다가 약물 오남용으로 일찍 사망한 가수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직접 내 두 눈으로 본 스티븐은,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뛰어난 댄스 팝 가수였다.

직접 그와 만나 이야기해 보면, 그의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소닉 독에게 부탁해서 스티븐과 만날 약속을 잡았다.

스티븐은 중년의 백인 매니저와 함께 VIP 라운지 바에 앉아 껄껄대며 웃고 있었다.

강렬한 가죽 재킷을 입었을 뿐 티셔츠는 훌렁 벗어 던진 채였다.

덕분에 꿀렁거리는 근육이 모두 드러났다.

짧게 버즈 컷을 하고 있어서, 가수라기보다는 건장한 특수 부대원처럼 보이기도 했다.

스티븐은 나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나를 꽉 껴안았다.

“뭐 뭐야!”

나는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190cm의 근육질 흑인 거구가 느닷없이 나를 껴안았으니까.

그가 소 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내게 말했다.

“보고 싶었어요. 노엘! 비원더의 노엘이죠! 나 완전 팬이라구요.”

“저를 알아요?”

“조안하고 혈전 끝에 이겼잖아요? 모르는 게 이상하다구요.”

그가 내게 주먹을 맞부딪치며 친근하게 인사했다.

실제로 보니 너무 다정다감하고 사근사근해서 내가 다 무서워질 정도였다.

‘이 인간 왜 이래?’

대화를 시작한 후, 나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스티븐 이 사람도 나처럼 엄청난 알앤비 보컬 덕후였다.

“그때, 일부러 척 베리의 스타일을 카피한 거 맞죠?”

“맞아요. 그런 것까지 어떻게….”

“진짜 음악은 가스펠뿐이니까.”

스티븐은 최신 알앤비 음악은 물론 50~70년대 소울 음악까지 모두 줄줄 꿰고 있었다.

그야말로 흑인 음악 보컬을 충실하게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나도 그와 비슷하게 알앤비 보컬을 연구하는 타입이다.

솔직히 그 덕분에 그에게 점점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하다 보니 뭔가 이해가 되지 않는데.’

나는 그에게 슬쩍 물었다.

“근데 솔직히 스티븐. 저스트 클릭의 음악 저는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지금 스티븐이랑 이야기해 보니까, 저스트 클릭의 음악은 당신 스타일은 아닌 거 같은데.”

스티븐이 큭큭 웃었다.

“너무 팝스럽고 달콤하기만 하죠?”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정확한 평가였다.

“…그래요.”

‘저스트 클릭’의 곡에 들어가 있는 스티빈의 보컬이 나쁜 건 아니었다.

매끈한 가성, 흑인 특유의 탄력 있는 리듬감, 적당히 듣기 좋은 테크닉까지, 오히려 굉장히 좋은 노래였다.

하지만 스티븐과 이야기해 본 결과, 그는 좀 더 거칠고 소울풀한 정통 알앤비 음악에 맞아 보였다.

스티븐이 무대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말했다.

“원래는 그런 음악을 했죠.”

“지금은 안 하는 겁니까?”

“프레드릭은 내 은인이에요. 덕분에 나 같은 빈민촌의 부랑아가 날개를 달았지. 이제는 나는 전 세계에서 날아다녀요. 프레드릭 덕에 이리되었으니, 그 친구가 원하는 대로 노래해야죠. 덕분에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고.”

그러고 보니 그 부분이 자꾸 찜찜했다.

“자꾸 여자들하고 같이 마시는 음료에 뭘 넣던데. 뭘 자꾸 넣는 거죠?”

“슈거.”

슈거?

방탄소년단 멤버를 말하는 건 아닐 테고.

Sugar… 그러니까 설탕이란 거야?

“그 거무튀튀한 게 흑설탕이에요?”

“마법의 가루야. 그거 넣으면 뭐든지 맛있어진다고요.”

스티븐은 너무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한심해 보였다.

“설탕이고 뭐고, 남들이 먹는 음료에 이상한 거 넣지 마요! 남들이 오해한다구요. 경찰서 가고 싶어요?”

“뭐라고 오해하죠?”

“그런 게 있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아무 여자나 꼬드겨 침실에 가지도 말고. 아니 매니저는 대체 뭐 하는 거야. 그런 거도 안 알려 줬어요?”

“에이. 그래도 여자한테 인기 끌고 싶어서 가수 하는 건데. 노엘 당신은 아니에요? 데이트는 해야죠. 이쁜 여자랑 데이트도 못 할 거면 뭐 하러 노래를 해요?”

이런 면에서는 참 나랑 안 맞는 사람이었다.

나는 최고의 가수가 될 수만 있다면 수도승 같은 삶도 기꺼이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매일 밤마다 시간을 허비했다간 언젠가는 노래도 못 한다고요. 푹 쉬어야지.”

“괜찮아요. 잠은 2~3시간이면 충분해.”

머리가 띵 하고 아팠다.

“뭔 소리예요? 장기적으로 아무리 그래도 하루에 6시간은 자야….”

“의사가 준 약 먹고 푹 자면 3시간이면 된다고요. 과학적으로 다 알아본 거예요.”

그가 눈을 찡긋해 보이면서 약을 먹는 시늉을 했다.

난 아주 잠깐, 한 0.1초 정도 내 상식을 의심했다.

설마 미국에는 잠을 안 자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밀 약물이라도 있는 건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뭔가 속고 있는 거야 이 사람.’

생각보다 사악한 사람이라기보다, 멍청하게 느껴질 정도로 순수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되려 그래서 일반적인 악인보다 더 골치 아픈 존재라는 생각도 들었다.

악의가 없다고 해서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하긴, 저 순수함이 저스트 클릭의 강점이기도 한 것 같네.’

뛰어난 보컬과 프로듀서의 조합이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너무 뛰어난 팀은 깨지기 마련이었다.

결국 멤버 중 누군가가 자신의 명성이 더 높아지면 팀을 깨기 때문이었다.

혹은 음악의 방향이 서로 달라 부딪치는 경우도 많았다.

‘저스트 클릭’의 경우, 프론트맨이자 가수인 스티븐이 오히려 순진하게 프로듀서인 프레드릭의 말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는 프로듀서가 바라는 방식으로 노래했고, 자신보다는 프레드릭의 명성을 키워주었다.

덕분에 이 팀은 결속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내 이전 생에서 스티븐은 일찍 가수 생명을 잃었지만 프레드릭은 2020년대까지 잘나가는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저 결속은 이번 대회가 끝나기 전에는 깨지지 않을 거야. 내가 본 미래가 그랬으니까. 그럼 대체 어떻게 이 팀을 이겨야 하나?’

하지만 왠지 이제는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스티븐의 말에서 뭔가 이상한 구석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 * *

어느새 시간이 지나고 미디어 데이 날이 왔다.

저스트 클릭과의 대결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저스트 클릭과 비원더는 워낙 뜨거운 감자인 팀들이었다.

자연스럽게 기자들의 질문도 우리 둘에게 쏟아졌다.

어떤 기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의 결승전’이라는 말까지 도는 모양이었다.

사실 우리보다는 저스트 클릭 열풍이 훨씬 굉장했지만 말이었다.

다만 언론이 우리에게 물은 질문 중에는 상당히 곤란한 내용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이 있었다.

“서로 상대방의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짧게, 그리고 솔직하게 답했다.

“훌륭한 음악이라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 가장 뜨거운 음악인 거 같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프레드릭이 박수를 쳤고, 스티븐이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지지 않을 겁니다.”

프레드릭이 마이크를 잡고 답변했다.

“저랑 스티븐도 비원더 음악의 팬입니다. 특히 노엘의 보컬은 마제스틱하다 봅니다. 하지만 대중성은 우리가 우위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처럼 모두를 흥분시키는 열정적인 음악을 들고 오겠습니다.”

사실, 프레드릭의 말이 정론이었다.

내가 봐도 저스트 클릭의 쉽고 단순한 대중적인 댄스 팝을 우리가 인기에서 이기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정확히는 누구도 저스트 클릭을 인기로 이기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게 전부가 아냐. 프레드릭은 음악의 완성도에도 부단히 신경을 쓰겠지. 심사위원 점수로 우리가 압살할 거라는 보장도 없어.’

정말 이기기 어려운 상대였다.

미디어 데이가 끝나고, 프레드릭이 내게 악수를 정했다.

나는 그와 악수 후, 함께 대기실로 걸어가며 물었다.

“…방금 보니까, 당신들 둘, 절대 자기들끼리 이야기 안 하더군요?”

미디어 데이뿐 아니라,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절대 단둘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매니저를 통해서만 소통했다.

프레드릭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스티븐이 그런 걸 부담스러워해서요. 음악만 하고 싶은 친구라.”

“물어봤나요?”

“아니요. 스티븐하고는 회사 소개로 만난 사이에요. 그냥 같이 일하는 관계지. 친할 필요야 없죠.”

뭔가 되게 합리적인 말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찜찜한 면이 있었다.

매니저는 프레드릭과는 달리, 스티븐은 동등한 파트너로 대우하지 않았다.

명백하게 매니저는 스티븐을 무시하고 있었다.

프레드릭은 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얼핏 굉장히 효율적인 태도였다.

하지만 한배를 탄 두 사람이 저렇게 서로에게 무관심한 게 좋은 것일까?

‘심지어 그중 한 사람이 매니저에게 석연치 않은 대접을 받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지.’

아무리 생각해도, 스티븐의 매일의 일정은 이상했다.

매일같이 공연하고, 날을 새서 놀고, 3시간 이상 자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몸은 이런 스케줄을 견딜 수 없다.

혹시나 이전에 내가 살았던 미래에서 스티븐이 요절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프레드릭에게 슬쩍 말을 계속했다.

“글쎄요. 한 팀이라면 어차피 같은 배를 탄 사이인데요. 어느 정도 서로 신경 써주는 게 예의 아닐까요? 난 잘 모르겠어요. 그냥 출신 계급도 인종도 본인과 다른 스티븐이 불편해서 피하는 걸로만 보이는데.”

프레드릭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내 짐작이 맞은 듯했다.

“뭐 당신은 실제로 스티븐 없이도 성공할 사람이죠. 인정해요. 하지만 스티븐이 없으면 ‘지금 이 순간’ 글로벌 비전에서 우승은 할 수 없어요. 당신은 가수가 아니니까.”

프레드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처음 보는 무서운 표정으로 매니저에게 걸어가 버렸다.

이걸로, 이번 시즌 저스트 클릭의 운명은 정해졌다.

‘이제 내가 미래를 바꿀 거니까 말이지.’

내가 이기고 싶기도 했지만, 일단 그 전에 사람 목숨은 살리고 봐야 했다.

나는 지금부터, 스티븐을 살릴 생각이다.

‘그러면서 덤으로 비원더도 승리로 이끌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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