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6화
음악인들은 대개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자는 패턴으로 산다.
음악 종사자들이 밤의 고요한 시간대에 하는 작업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저스트 클릭’처럼 남들이 노는 시간에 함께 즐기는 음악을 해서 낮과 밤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그에 반해 비원더는 별종이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방식을 선호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건강관리에도 신경 쓰는 타입인 재호가 멤버인 덕분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재호의 평소 기상 시간보다도 훨씬 일찍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크루즈 내부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배영웅 매니저가 볼보 차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차 안에 조수석에 탔다.
여기서 만나기로 한 이유는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일에 관해서 이야기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배영웅 매니저가 나직하게 말했다.
“노을 아티스트는 언제나 참 관찰력이 좋으시네요. 또 맞았어요,”
“역시…!”
나는 내 정보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부러 놀란 척을 했다.
“파티에서 보셨다는 것 말입니다. 노을 아티스트님 짐작이 맞았습니다. 스티븐 그 사람, 굉장히 몹쓸 짓을 하고 다니더군요.”
“단순한 바람둥이가 아니죠?”
배영웅 매니저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사람. 파티에서 만나는 이성이란 이성에게 다 특정 약물을 타는 거 같더군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마약인가요?”
“그런 약물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골치 아파요. 뭔지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일인 건 분명하죠.”
“심각한 문제죠. 더 이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그 사람을 막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는 제가 생각해보겠습니다. 참나! 진짜 요새 느끼는 건데요. 팝가수들 매니저는 뭐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약물을 남용하다가는 가수 본인도 오래 못 가 망가지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이전 생에서 스티븐은 딱 배영웅 매니저의 말대로 죽었다.
팝 시장에서 매니저와 가수는 대등한 계약 관계였다.
누가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매니저가 소속 가수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팝 가수는 그들에게 ‘고객’에 불과했다.
“고객에게 도덕적인 설교를 할 수는 없잖아요? 가수가 잘못돼도 지켜만 볼 뿐이죠. 그게 팝 음악 시장 매니저의 한계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배영웅 매니저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건 윤리에 어긋나요. 저는 매니저 일을 평생 해왔잖아요? 자기 가수가 저렇게 살면 담당 매니저가 모를 수가 없어요. 가수의 인생이 망가진다 싶으면 어떻게든 돕는 게 동업자의 도리 같은데요.”
“모든 사람이 배영웅 실장님처럼 성실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때였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잠깐만, 근데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나는 슬쩍 배영웅 매니저에게 물었다.
“만약 회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건 임원의 책임이기도 하겠죠 실장님?”
“그렇지요?”
“제대로 된 임원진라면 이런 일이 자기 회사에서 일어나면 알게 되기 마련이니까요.”
배영웅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인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기엔 팝 가수는 기본적으로 큰 자산이에요. 그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라는 말이죠. 당연히 그런 핵심 자산의 이슈는 파악해야죠.”
“그렇다면… 아무래도 매니저만 스티븐을 무책임하게 내버려 둔 것이 아닌 거 같네요.”
책임을 져야만 하는 곳이 한 곳 더 있었다.
저스트 클릭을 처음 만난 곳은 분명 ‘민티’가 호스팅하는 파티였다.
그곳에서 나는 직접 ‘민티’의 오너 가문 멤벤 마리를 만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마리가 스티븐의 실체를 모를 리가 없다.
그녀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 * *
배영웅 실장과 이야기를 끝낸 뒤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시간은 새벽 6시, 마침 재호가 일어나 아침을 만들 시간이었다.
그런데 재호가 보이지 않았다.
‘시계보다 더 정확하게 시간을 맞추는 녀석이 별일이네?’
슬쩍 침실에 가보니 재호는 이미 깨어 있었다.
다만, 음악 작업이 잘 안되는지 여기에 아이디어를 적어 둔 종이쪽지가 구겨져서는 바닥에 굴러다녔다.
“웬일이냐? 깨끗하게 정리하는 녀석이 방도 지저분하고. 어? 너 술 마셨어?”
재호 방에서 알싸한 고량주의 향기가 낫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한잔했지이~.”
재호가 술 취한 모습은 생전 처음 봤다.
게다가 보통 하루를 시작할 시점인 오전 6시 30분에 그런다는 점이 더 희한했다.
“뭔 문제 있냐?”
재호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이 짓이 다 무슨 의미가 있냐?”
“이 짓?”
“이렇게 고민해서 음악을 만들면 뭐 하냐구. 화성이니, 화음이니, 멜로디니, 연주니. 어차피 대충 비트만 찍어서 신나게 춤추게 만드는 저스트 클릭 같은 음악을 사람들은 더 좋아하는데!”
이제야 대충 상황이 짐작이 갔다.
아무래도 재호는 어제 저스트 클릭의 공연이 충격인 모양이었다.
빈말로라도 그들의 음악이 예술적으로 깊이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그냥 샘플시디에서 따놓은 듯한 음악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머니 코드를 적당히 뿌려둔 뻔한 음악이었다.
달콤한 도넛처럼 누구나 좋아하지만 몸에는 안 좋은 불량식품 같았다.
그에 비해 재호나 비원더가 추구하는 음악은 고급스러웠다.
재즈와 알앤비를 기초로 탄탄하게 음악을 구성했다.
최고의 연주자들을 모아 만든 리얼밴드가 정성스럽게 모든 곡을 생음악으로 연주했다.
거기에다가 멤버들이 직접 부른 화음까지 얹어져 있었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호텔의 고급 코스요리 혹은 한정식이었다.
하지만 재호가 보기에 고급스러운 비원더의 음악보다 저스트 클릭의 음악이 훨씬 더 인기가 많아 보였다.
‘사실 나도 그런 거 같고.’
지금 이 순간, 저스트 클릭의 음악을 인기로 이기기는 사실 어려웠다.
이 세상이 바로 지금 원하는 음악이었으니까.
재호가 푸념했다.
“저렇게 쉽게 음악 하면서 돈도 잘 버는데, 나는 대체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 이렇게 애써서 연주하구, 편곡하구, 노래하구.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너도 그래. 이렇게 노래 잘해도 뭐 하냐? 저스트 클릭처럼 연애도 못 하구.”
평소와는 달리 약주를 한잔 걸친 재호는 걸쭉하게 자기감정을 털어놓았다.
내가 재호에게 되물었다.
“야, 3년 뒤에 저스트 클릭의 음악이 기억에 남을 거 같냐?”
“음… 잘 모르겠는데?”
“너, 배드보이나 크리샤 기억나?”
“음… 뭐더라?”
“2~3년 전에 유행하던 댄스 음악 가수야. 기억 하나도 안 나지? 유행가란 게 그런 거야.”
히트곡 중에도 꼭 그런 노래가 있다.
3년만 지나도 아예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그런 음악 말이다.
저스트 클릭의 음악이 꼭 그랬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댄스 음악이라 2천년대 당시에는 떴는데, 이후 3~4년만 지난 후에도 아무도 그들의 음악을 기억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들의 빌보드 1위 곡조차도.
프레드릭은 매번 히트곡을 만들었지만, 모두의 기억에 남는 음악은 단 한 곡도 만들지 못하는 그런 타입의 작곡가였다.
재호가 반박했다.
“그래도 저스트 클릭을 모두가 좋아하구. 돈도 잘 벌잖아. 그럼 되는 거 아냐?”
“너는 기준이 뭐냐? 돈인가?”
“내 기준?”
재호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젠 다 모르겠어.”
평소와는 사뭇 다른 리액션이었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솔직히 돈이야. 정확히는 돈을 통해서 내 가족과 나를 지키려고 하는 거지. 나한테 음악은 직업이야.”
“뭐야 지금껏 나한테 기준이 뭐냐고 설교하더니. 결국 돈이냐? 그 기준이라면 저스트 클릭이 최고인 거 아니냐?”
“아니지. 3년만 지나도 사라져 버리는 음악을 가지고 어떻게 평생 음악을 하냐. 생각만 해도 피곤한데?”
재호가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럴까?”
“나 다운 음악을 해야 오래 음악을 할 수 있어.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평생 음악을 해야지. 안 그래?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저스트 클릭 같은 음악은 별로야. 당장은 인기 있을지 몰라도 반년만 지나면 올드해지는 그런 음악이라고.”
재호가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너무 좌절하지 말고. 당장 돈 땡길려고 하기보다 평생 음악을… 음?”
어느새 재호는 자빠져서 자고 있었다.
‘긴장이 풀렸나 보군.’
나는 곤히 잠든 재호를 침대에 가만히 눕히고 바깥으로 나왔다.
‘하지만 저스트 클릭의 음악이 정말 깔쌈하기는 하단 말이야.’
나 다운 음악이 아니다 뿐이지, 사실 저스트 클릭의 음악은 감탄할 정도로 중독성 있는 댄스 팝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이 2020년쯤에는 깨끗하게 잊혀진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했다.
그런 미래를 알기에 나는 지금 재호와는 달리 ‘저스트 클릭’의 음악을 그다지 무섭게 느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 또한 회귀자의 힘이라 이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 우리가 저스트 클릭을 이기기 어려운 건 사실이었다.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 * *
소닉 독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오믈렛 조식을 먹었다.
이제는 예전과는 달리 직원들이 등급으로 가수를 차별하진 않았다.
벌써 토너먼트 3라운드 차가 되었다.
전체에서 3/4개의 팀이 사라졌다.
이제는 팀 하나하나가 모두 VIP급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우리는 우승 후보 중 하나였던 ‘바로네스 메이어스’를 이겨낸 팀이었다.
매스컴의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 팀이란 뜻이다.
직원들의 대우도 자연스럽게 좋아졌다.
소닉 독이 내게 감사를 표했다.
“비원더 덕분에 이런 고급 크루즈에서, 별의별 경험을 다 해 보네요.”
“나 때문에 프레셔스랑 헤어졌다면서요? 그래도 괜찮아요?”
내 입에서 전 여자친구의 이름이 나오자 소닉 독이 얼굴이 굳어 버렸다.
소닉 독이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어차피 헤어졌을 거예요. 그 친구, 나랑 헤어지자마자 바로 배우로 빵 뜨기 시작했으니까. 액션 배우로 이름을 날리더니만 이제는 판타지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됐다고요. 베이스 연주자 따위와는 격이 다르죠.”
"그래도 계속 만났을 수도 있죠. 그건 모르는 거 아닐까요?”
소닉 독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관계는 오래 안 가기 마련이라고요.”
“근데, 프레셔스는 어제 파티 이후로 안 보이네요?”
소닉 독이 내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로 말했다.
“어제 잠깐 봤어요. 이번에는 모로코로 간다더군요. 영화 촬영이 있어서.”
“전 세계를 도시는군요. 진짜 할리우드 배우시란 느낌이네요.”
“그야 할리우드 배우 맞으니까.”
“근데 그렇다고 과연 저스트 클릭이 클럽 공연을 안 할까요?”
“무슨 말이죠?”
나는 질문을 계속 이어갔다.
“클럽 공연에서 프레드릭이 다른 여자랑 뭘 할까요?”
“난 또 뭐라고. 뭐, 바람 피겠죠.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그런 말 할 처지가 되나요?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얼마 전에는 안 좋은 남자라면 말하는 게 도리라면서요?”
“어제 공연은 솔직히 충격이었어요. 그렇게 쉽게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다니. 그런 디제이라면… 나 같아도 사랑에 빠졌을 수 있겠어.”
‘또 어제 공연인가.’
아무래도 재호도 그렇고 소닉 독까지, 모두 어제 저스트 클릭의 공연이 적잖이 좌절을 느낀 듯했다.
적을 미리 알고 대비책을 세우자는 의도로 보여준 공연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우리 팀을 좌절하게 만들어 버렸다.
나는 그를 위로해주기로 했다.
“에이, 소닉 독도 더 멋진 프로듀서가 될 겁니다. 게다가 프레드릭과는 달리 스티븐은 오래 가수 활동 못 할 거 같고.”
“왜요?”
나는 슬쩍 소닉 독에게 스티븐의 ‘문제’를 알려 주었다.
수상쩍은 약물을 술에 섞어 여자들에게 준다고 말이다.
소닉 독이 내게 물었다.
“그 친구 만나본 적 있어요?”
“없는데요?”
그러고 보니, 스티븐하고는 대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노엘이야말로 편견을 가지고 보고 있는 거 같은데요. 내 의견으로는, 스티븐은 비원더 빼고 이 비즈니스에서 만난 가수 중 제일 진국입니다. 좀 더 진중하게 알아봐요.”
‘음… 아닌 거 같은데.’
소닉 독의 생각과는 달리, 나는 스티븐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한 번쯤 그를 만나 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적에 대한 정보는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이 행보가 나를 위기에서 탈출하게 해주는 결정적인 신의 한 수가 될 거라는 것을 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