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5화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 ‘저스트 클릭’ 2인조는 다시 스테이지에 올라 공연을 시작했다.
30분 정도만 휴식을 취하고 바로 다시 노래를 불렀다.
내 이전 생의 미래의 기억과 맞춰보니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저 둘은 이렇게 매일같이 곡을 쓰고, 그 곡을 파티에서 공연하면서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켰다.
그렇게 만든 그들의 음악이 비원더의 음악보다 꼭 뛰어나다 할 수는 없었다.
노래는 지나치게 단순했고 보컬도 달콤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남을 음악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대중을 열광시키는 ‘유행가’로는 최적이었다.
나는 관중들의 표정을 확인했다.
프레드릭이 직조한 비트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의 표정에 짜릿함이 가득했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EDM 리듬이 고막을 쿵쿵 울렸다.
거기다가 프레드릭이 만든 달콤한 팝 멜로디가 한 스푼 첨가되었다.
마지막으로, 실크처럼 매끄러운 스티븐의 알앤비 보컬이 노래를 완성해 주었다.
‘그야말로 지금 이 순간, 가장 완벽한 히트 공식을 완성했군.’
내가 저들보다 더 노래를 잘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답하겠다.
비원더의 하우스 밴드가 만든 음악에 대한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고품질 음악과 저스트 클릭의 팝 음악 중 어떤 음악이 더 실력적으로 뛰어난 음악이냐고 묻는다면 비원더를 꼽을 수 있었다.
실력은 우리가 밀리지 않았다.
아니, 비원더가 오히려 나았다.
하지만 곧 휘발될지언정 당장의 대중성에서는 ‘저스트 클릭’이 압도적이었다.
앞으로 1~2년간, 전 세계를 지배할 완벽한 음악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우승했겠지.’
2년 정도만 지나면 저스트 클릭류의 밝은 댄스음악은 사라지고, 멜랑콜리한 힙합 음악과 알앤비 음악이 대세가 된다.
다크한 무드를 살리기 위해 프레드릭은 사생활 논란이 컸던 스티븐과 결별했다는 미래까지도 이제는 기억이 났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의 조합은 ‘운명이 점지해준' 세계 최고의 음악이었다.
그런 음악을 이겨야 했다.
‘생각해 보면 뭐 너무 어려운 일은 아니야. 이미 이전에도 운명을 바꾼 적이 있었으니까.’
내가 데뷔했던 슈퍼스타 T에서 원래 나는 준우승자였다.
하지만 회귀 후 나는 운명을 바꿨다.
원래 우승자였던 문루아가 아닌 내가 승리자가 된 것이다.
이번에도 불가능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뭐 그때는 준우승을 우승으로 바꾸는 거고, 이번에는 참여도 안 했던 대회에서 우승하는 거니까. 좀 난이도가 다르긴 하지만.’
* * *
예상대로 저스트 클릭은 클럽 공연에 진심이었다.
그들은 다음날에도 또 공연을 잡았다.
내 말을 들은 재호가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또 공연 잡았다고? 걔네는 연습 안 하는 거야?”
“박찬용 선배님이 하신 말 기억나? 저게 저 사람들 나름의 연습이야.”
박찬용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했다.
재호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파티가 연습이 되나?”
“확실한 건 쟤네들이 그러는 게 돈 때문만은 아니야. 저번 공연도 그렇고 이번 공연도 그냥 프라이빗한 파티더라고. 돈 때문에 할 정도의 규모의 일이 아니란 뜻이지. 정말 진심으로 파티에서 노래하는 게 좋은 거야. 아마 1년에 200회는 넘게 공연하지 않을까?”
환희가 놀라움의 표시로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는 내게 코멘트했다.
“목 터지겠네요 터지겠어.”
“너 저스트 클릭 무대 본 적 없지?”
재호뿐 아니라 다들 못 들어 본 눈치였다.
“야 상대편이 누군지 분석도 안 해봐?”
재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노래는 들었지. 공연 영상도 비디오로 봤구. 그냥 전형적인 요새 유행하는 댄스 팝이던데? 뭐 그냥저냥.”
“라이브를 안 보면, 저스트 클릭을 모르는 거랑 마찬가지야. 아무래도 오늘 같이 가야겠다.”
재호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어딜 같이 가?”
“어디긴. 파티 말이야 파티. 저스트 클릭이 파티에서 어떻게 노는지 한 번 보러 가자.”
우리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조민하 선배가 말했다.
“다 좋은데 일단 오늘 연습은 끝내고 가야 하지 않을까?”
“아 네네!”
빠르게 연습을 시작했다.
이번에 우리의 컨셉은 ‘스무스 재즈’였다.
달콤한 퓨전 재즈 느낌으로 재해석해서 ‘민티’ 광고음악을 재구성했다.
다른 모든 팀이 경쾌하고 빠른 곡을 할 거라는 생각에 역발상으로 느리고 세련된 음악을 시도했다.
일단 내가 듣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재호가 완성된 노래를 들어 보더니 손뼉을 쳤다.
“됐어! 이 정도면 해볼 만한 거 같은데 어때?”
다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빼고 말이다.
‘오늘 저 사람들을 공연에 데리고 가면 아마 이해할 수 있겠지.’
직접 보여주는 게 역시 제일 빠를 것 같았다.
* * *
연습 도중 쉬는 시간,
다른 사람들은 다 함께 피자를 먹고 있는데 소닉 독만 사라졌다.
그를 찾아 돌아다녔다.
알고 보니 연습실이 아니라 갑판 벤치에서 혼자 부리또를 먹으며 멍하니 석양을 쳐다보고 있었다.
슬쩍 소닉 독 옆에 앉았다.
“무슨 생각 해요?”
“우왓 깜짝이야.”
“…프레셔스를 만난 다음부터, 생각이 좀 많아지셨나 봐요?”
“후우~.”
소닉 독은 한숨만 푹 쉬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이야기 안 하셔도 됩니다.”
“뭐 별거 아니에요. 잠깐 만났었어요. 사귀었죠.”
“얼마만큼이오?”
“…1년?”
전혀 잠시가 아니었다.
게다가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전혀 가벼운 관계도 아니었다.
양측 모두 부모님도 알고 지냈고, 아파트 열쇠도 함께 공유했을 정도였다.
“근데 왜 헤어졌어요?”
소닉 독이 나를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당신 때문에! 내가 한국 밴드에 영입됐으니까! 당연히 못 만나죠.”
“아.”
내 탓도 좀 있다고 생각하니 좀 미안했다.
소닉 독이 큭큭 웃으며 말했다.
“뭐 어차피. 당신 아니었으면 음악 그만둘 참이었어요. 내가 음악가가 아니라면 어차피 나는 프레셔스랑 헤어졌겠죠. 음악만이 나랑 그녀를 이어주는 끈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녀도 곧,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 캐스팅되면서 성공했어요. 요즘은 미국을 떠나 전 세계 로케이션을 돌더군요? 어차피 우리 둘은 헤어질 운명이었던 거죠.”
“라라랜드 같은 이야기군요.”
“라라랜드가 왜요?”
‘아차.’
아직 영화 ‘라라랜드’가 개봉하기 한참 전인 시점이었다.
“별거 아니고요. 근데 그냥 서로 전화로 연락하고, 시간 될 때 만나고 그럼 되는 거 아닌가요? 굳이 헤어질 필요 있어요? 왜 못 만나는 거예요?”
소닉 독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죠. 당신이 뭘 안다고…. 뭐 인제 와서 무슨 소용 있겠어요? 프레셔스한테 남자친구도 있던 거 같고. 나 같은 놈보다 훨씬 유망해 보이던데.”
“그렇긴 하죠.”
소닉 독이 내 어깨를 장난스레 툭 쳤다.
“뭐라고요!”
사실이니까.
소닉 독은 물론 세계 최고의 재즈 베이시스트가 될 존재였다.
하지만 프레드릭은 세계 최고의 팝 작곡가이자 프로듀서가 될 운명이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하여튼 프레드릭은 성공의 크기 자체가 엄청났다.
…하지만 그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만약 그 사람이 어떤 하자가 있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프레셔스에게 말해주나요?”
소닉 독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슬쩍 그의 마음을 떠봤다.
“전 여자친구니까 신경을 안 쓸 수도 있고. 신경이 쓰여서 말해줄 수도 있죠. 소닉 독이 어떤 타입인가 궁금해서요.”
“…이야기 해줘야죠. 내 형제들(흑인 동료들)은 남자 바람기는 남자들끼리 서로 꼰지르지 말자. 뭐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저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남자라면야 상관없지만.”
“그거면 됐습니다.”
사실, 저스트 클릭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여성 편력이 심각하다는 점이었다.
이전 생에서 프레드릭은 40대가 된 2020년대까지도 계속해서 여자를 매번 갈아치웠다.
아내가 아이를 넷 낳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바람을 피웠다.
2020년대에는 그 모든 내용이 폭로되는 기사가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피트니스 선수, 패션모델, 요가 강사 등등 애인의 종류도 다양했다.
프레드릭의 파트너인 스티븐은 더 심각했다.
그는 단순히 바람둥이 정도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음?’
그 순간 잠깐 무언가 어떤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 * *
그날 밤, 우리는 육지에 내렸다.
재호가 투덜대면서 걸어 나왔다.
“이전에는 세부에서 파티하더니, 이번에는 발리에서 클럽까지 대관해서 공연하냐? 아주 그냥 오디션이 아니라 클럽 투어구만?”
내가 받아쳤다.
“그것도 고급 크루즈에서 말이지.”
하지만 사실 나는 이제는 저스트 클릭의 방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다양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중에는 ‘클럽에서 신나게 즐기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부류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 이들에게는 매일같이 클럽에서 신나게 즐기고, 그 기분을 제대로 옮겨놓은 ‘저스트 클릭’의 음악도 좋은 음악이었다.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파티 피플이 된 듯한 기분을 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선을 넘지 않을 때야.’
그게 어려운 일이었다.
남들 대신 즐기는 ‘광대’ 계열의 가수들은 즐기되, 절대로 선을 넘지는 말아야 했다.
마치 슬픔을 노래하는 발라드 가수가 너무 슬픔에 싸여 자살하거나, 알코올 중독 등으로 죽으면 안 되는 것과 비슷했다.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이카로스의 날개는 녹아버리기 마련이었다.
이후에 남는 것은 추락뿐.
어느새 우리는 저스트 클릭이 공연하는 클럽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VIP 티켓이 있던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돈을 내고 평범한 자리에서 공연을 볼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에 서 있던 보안 요원이 어떤 전화를 받더니만,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들여보냈다.
내가 물었다.
“왜요?”
“VIP석으로 모셔달라고 호스트께서 부탁하셨습니다. 들어오시죠.”
“호스트요?”
호스트의 정체는 프레셔스와 마리였다.
클럽에 들어가자마자 마리가 활짝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 기업에서 주최하는 파티에 제 발로 오다니. 무슨 일이에요? 나랑 본격적으로 같이 일하고 싶은 결심이 섰어요?”
마리의 제안을 들어 보지 못한 재호와 환희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내가 잽싸게 말을 돌렸다.
“어떻게 알아보셨죠?”
마리가 무슨 소리냐는 듯 헛웃음을 냈다.
“보디가드까지 잔뜩 데리고, 밴드 멤버까지 함께하면서 이 클럽으로 왔잖아요? 당연히 호스트에게 보고가 가죠. 일단 보고가 가면 제가 당신들을 못 알아볼 리가 있겠어요?”
“아.”
배영웅 실장의 부탁으로 매번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니다 보니, 호스트의 눈에 띈 게 분명했다.
“이 파티가 두 분이 주최한 행사였군요. 그럼 저스트 클릭도 마리와 친한가요?”
“물론이죠. 당신들 빼곤 다 친해요. 자, 과일 안주 드실래요? 동남아 과일은 최고라구요.”
사실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저스트 클릭은 미래에 글로벌 비전의 우승자로 예정된 인물이었다.
당연히 스폰서 가문과의 관계가 좋을 확률이 높았다.
재호가 내게 속삭였다.
‘관계라니 뭐야?’
‘별거 아니야. 나중에 알려줄게.’
그사이, 프레드릭과 스티븐이 껄렁한 발걸음으로 입장했다.
VIP 라운지는 무대와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각도가 좋아서 한눈에 무대가 다 보였다.
‘매번 볼 때마다 VIP 자리에서 보게 되네. 이러다간 일반 관객석에서 보는 기분을 까먹을 거 같군.’
왠지 다음에는 일부러 정체를 숨기고, 배영웅 실장과 둘만 오더라도 어떻게든 일반 관객석에서 무대를 관람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일반석에서만 보이는 풍경이야말로, 내 관객들의 시선이니까.
그 시선을 잊어버리면 안 됐다.
그사이 어느새 무대가 시작됐다.
달콤한 멜로디, 강렬한 비트, 거기에 스티븐의 취한 듯한 몽환적인 노래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파티 무대였다.
무대를 지켜보던 우리 멤버들의 표정이 점점 차가워졌다.
재호가 내게 말했다.
“완벽한데…? 이거, 답이 없어. 그냥 벽이야 벽. 완전히 음악으로 만든 쾌감, 그 자체인데? 이걸 어떻게 이겨? 이건 휘트니 휴스턴이 와도 못 이겨!”
뭐, 내게는 나만 보이는 방법이 있었지만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