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52화 (252/280)

제252화

곡이 완성된 후, 비원더는 강도 높은 연습을 시작했다.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화성과 리듬을 가진 곡이니만큼 오랜만에 밴드도 각 잡고 긴장을 유지한 채로 연습했다.

특히 우리가 집중한 부분은 하모니 파트였다.

하모니에서 ‘그루브’를 맞출 것, 그게 우리의 과제였다.

점점 훈련을 거듭하다 보니 하모니가 하나의 목소리처럼 가다듬어졌다.

그런데 연습 후 우리가 부른 노래를 다시 들어보면 매번 뭔가 좀 아쉬웠다.

뭐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뻔하다는 느낌이었다.

재호도 나와 비슷한 느낌인지 한쪽 눈을 찡그렸다.

내가 슬쩍 코러스 전문가인 조민하 선배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선배?”

조민하 선배는 무심하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뭐, 나쁘지는 않은데요? 예전보다 많이 늘었네요.”

“저는 조금 아쉬운데요.”

“뭐, 어쩔 수 없지 않겠어요? 이제부터는 진짜 최고의 하모니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사실 굉장히 오랜 기간 수련해야 해요. 단기간에는 어렵죠.”

“끄응….”

사실 조민하 선배의 말이 정론이었다.

1~2주 만에 뛰어난 하모니를 만들 수 있다면야 누구나 최고의 중창단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3~4일 후에 세계 최고의 여가수, 바로네스 메이어스와 상대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어떤 묘수라도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역시 김지태 선배의 조언대로 해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연습실 바깥으로 나왔다.

그런데, 낯익은 사람이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네스 메이어스였다.

그녀가 갑자기 내게 버럭 고함을 쳤다.

“당신! 정말 비열하군요?”

“뭐가요?”

“당신, 콜롬보와 이야기했다면서요? 무슨 비열한 짓을 꾸민 거죠?”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고민했다.

‘당연히 나는 바로네스 메이어스에게 콜롬보와 만났다는 사실을 말한 적이 없어. 나를 만난 걸 본 건 배영웅 실장님뿐이고, 실장님이 바로네스에게 이야기했을 리가 없지. 그런다는 건?’

생각을 끝낸 후, 내가 대답했다.

“콜롬보에게 들으신 건가요?”

바로네스 메이어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아직도 전 남편을 믿으시나요? 그토록 당하고도?”

상대는 쉬이 대답하지 못한 채 숨을 골랐다.

정곡을 찔린 모양이었다.

그녀가 훨씬 진중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지금은 당신이 내 경쟁자니까요. 충분히 나에게 심한 일을 할 수도 있죠.”

“절대 남편 때문에 당신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이죠?”

“그건 비밀입니다.”

지금 내 패를 깔 수는 없었다.

바로네스 메이어스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경고했다.

“그 인간이랑 엮어서 나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그만둬요. 그 인간하고 한배를 타서 좋을 거 하나 없어요. 그건 내가 보증하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당신에게 폐 끼치는 일은 없게 할게요. 그러니까 당신도 이제 전남편 말에 그만 휘둘리세요.”

“그럼 토미는 왜 만난 거죠?”

“…그건 곧 아시게 될 겁니다.”

바로네스 메이어스는 내 말을 듣고는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바깥으로 나가 버렸다.

그녀의 매니저를 맡은 언니가 서둘러 그녀와 함께 빠져나갔다.

“해 줄 사람이 없어서 가족이 해 주는 건가. 안 됐네….”

옆에서 가만히 나를 지켜보고 있던 배영웅 실장이 말했다.

“권노을 아티스트께서 요청하신 내용 준비하고 있습니다.”

“잘되고 있죠?”

“정말 놀랍게도, 딱 권노을 아티스트 말대로였습니다.”

“네네. 잘 좀 챙겨 주세요. 이왕이면 대회 전에 터트리고 싶으니까요.”

“근데, ‘그렇게 된다고 해서’ 우리에게 이득이 있나요?”

“물론 이득이 있죠. 하지만 일단, 그런 것을 떠나서도 알려져야 하는 일이니까요”

배영웅 매니저도 동의했다.

‘뭐, 결국 ‘그 일’이 일어나면 제일 큰 이득은 우리 비원더가 보게 되긴 하겠지만.’

* * *

비원더 3인이 다시 연습실에 모였다.

밴드 없이, 오로지 멤버들뿐이었다.

“코러스를 넣는 방식으로는 이기기 어려워.”

내 말에 다들 동의했다.

모두, 하모니로 바로네스 메이어스의 그루브를 상대하는 일에 한계를 느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를 이길 방법이 딱 하나 있지.”

재호가 되물었다.

“그게 뭔데?”

“보여줄게.”

나는 녹음실에 들어가, 하우스 밴드가 녹음한 반주를 틀어놓은 채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를 듣던 재호와 환희의 눈빛이 달라졌다.

나와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이거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녹음이 끝나고, 녹음실 바깥으로 나왔다.

“어때?”

내 질문에 환희가 대답했다.

“가능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재호는 이미 다음 작업을 준비 중이었다.

“어디 보자… 이렇게 곡을 바꾸려면 구성을 다 엎어야겠지?”

“정확해.”

하지만 이렇게 하면 분명히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었다.

* * *

2라운드 무대 전날 밤.

바로네스 메이어스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이 되어 아이를 재우고, 음악 연습마저 끝낸 늦은 시각.

이제야 그녀는 가수 ‘바로네스 메이어스’가 아닌, 자연인 ‘조안 메이어스’가 되었다.

득의양양하던 미소는 사라지고, 한숨만 남았다.

‘이제 스케줄 정리조차 되지 않아.’

다행히 그녀와 음악을 함께하던 동료들은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

문제는 매니징 인력들이었다.

전 남편의 바람기를 견디지 못해 이혼한 후로, 모든 대형 음가 회사가 그녀를 거절했다.

그녀와 오랜 기간 함께했던 스태프들도 모두 그녀를 떠났다.

그중에도 그녀와 함께 활동하던 심복인 비서 ‘로빈’이 토미 콜롬보 편에 선 것이 뼈아팠다.

별수 없이 그녀는 친인척을 동원해 근근이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바로네스 메이어스에게 업무가 과중하게 몰리기 시작했다.

음악에만 집중하기도 바쁜데, 업무까지 확인해야 했으니 말이다.

가수이자 대표이자 엄마이자 셀럽이자 음악가까지.

1인 2역이 아니라 1인 5역을 해야 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무리하게 일하다간 얼마 못 가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 이제 진짜 쉬어야 하는데….”

그때였다.

핸드폰이 사정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팝스타이던 시절에는 매니저가 바로네스 메이어스의 전화를 관리했다.

이제는 얄짤 없이 스케줄 관련 모든 전화를 본인이 확인해야만 했다.

“여보세요? …네?”

주최 측 PD의 전화였다.

급히 인터뷰해야 하니 헬기를 타고 기자 회견장으로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확인하니 어느새 드림 크루즈 갑판 위의 헬기 착륙장에 헬기가 하나 대기하는 중이었다.

바로네스 메이어스는 서둘러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새벽 6시가 좀 안 됐다.

‘아니, 무슨 해도 안 뜨는 시간에 기자 간담회를 해? 무슨 일이 있길래?’

그녀는 투덜대며 옷을 갈아입었다.

워낙 급하게 헬기에 타느라 정신이 없어 뉴스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녀를 쳐다보는 스태프들의 시선이 뭔가 달라졌다.

안된 사람을 보는 듯한 연민이 느껴진달까?

그녀는 자기 옆자리의 언니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언니 역시 이른 기상을 몰랐는지 코까지 골며 잠을 청하고 있었다.

“아 진짜! 무슨 매니저가 연예인보다 먼저 잠을 자!”

헬기 조종사에게라도 물어보려 했더니만, 그는 운전하느라 바빠서 바로네스 메이어스와 대화할 틈조차 없었다.

일단 급하게 헬기에 탄 그녀는 꼼짝없이 아무런 소식도 모른 채로 기자 회견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바로네스 메이어스는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기자 회견장이 진행되는 빌딩의 옥상에 도착했다.

옥상에 발을 디디자마자 경호 인력들이 급히 그녀를 인수인계했다.

바로네스 메이어스가 항의했다.

“잠깐! 잠깐! 대체 무슨 인터뷰 때문에 가는 거예요? 내용은 알아야 준비를 하잖아요? 너무 급해요!”

멀리서 낯익은 얼굴의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저 건들건들한 걸음걸이에, 나이 파악 못하는 주책바가지 가죽점퍼 패션은….’

글로벌 비전 진행자, 코미디언 말론 웨이였다.

평소라면 무덤덤하게 쳐다봤을 얼굴이지만, 이런 이상한 상황에서 아는 얼굴을 보니 심지어 말론조차 반가웠다.

바로네스 메이어스가 큰소리로 말론을 불렀다.

“말론! 뭐야 이거?”

“마이 레이디! 왔군 왔어. 뭐야. 너 기사 못 본 거야?”

“지금 몇 신 줄 알아? 뉴스 볼 시간이 어디 있어.”

“댕(Dang)~. 그럼 지금 빨리 대기실에서 내용 확인해봐. 내가 적당히 시간 끌고 있을 테니까. 메이크업도 받아야 할 거 아냐? 어이! 여기 스태프 좀 파견해줘요.”

말론은 그대로 휘리릭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별수 없이 바로네스 메이어스는 메이크업을 받으며 기사를 확인해야 했다.

기사를 보자마자 그녀는 기절할 만큼 놀랐다.

[충격! 슈퍼 매니저 토니 콜롬보 전격 구속!]

-미성년 모델들을 자택에 가둬둔 혐의

-허락 없이는 나가지도 못한 ‘현대판 노예’ 충격.

-정신적, 육체적인 학대가 계속돼… CIA는 현재 200년 형 구형을 검토 중.

그녀가 죽일 만큼 미워했던 남자, 토미 콜롬보가 하루 사이 몰락했다.

그녀를 골치 아프게 했던 소송이, 굉장히 쉬워질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자신과 소송을 벌이는 주체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어안이 벙벙해진 그녀에게 누군가가 꼭두새벽부터 전화를 걸었다.

본인을 배신하고 전남편에게 붙었던 로빈의 통화였다.

-조안!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알잖아. 토미가 어떤 놈인지. 그 자식이 나를 협박했어. 우리 좋았잖아. 다시 같이하면 안 될까?

이제 갑은, 바로네스 메이어스가 되었다.

갑자기. 바로네스 메이어스의 모든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 * *

바로 그 순간, 권노을은 일찍 일어나 일찌감치 천채왕과 통화 중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았어. 토미 콜롬보 주변에 대해 매우 질 나쁜 소문이 있더라고! 언론 데스크들과 관계를 잘 맺어서 자꾸 기사화를 막았지만, 그런데도 자꾸 제보는 들어오고 있는 거야. 그래서 몇몇 정보를 우리가 ‘합쳐서’ 아는 기자에게 줬지. 그것뿐이야.

나는 토미 콜롬보의 몰락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그리고 직접 그를 만나, 그가 내 기억 속의 콜롬보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미성년 모델 착취로 감옥 간 녀석이, 딱 봐도 미성년자로 보이는 모델들과 함께 있었으니 말이다.

어떤 물고기를, 어디에서 잡아야 할지가 정해진 이상, 다음은 미끼를 던지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회사에 부탁해서 콜롬보 관련 내용을 확인하니 정말 순식간에 증거가 나왔다.

내 예상보다도 하루빨리, 2라운드 하루 전날에 모든 내용이 팩트 체크까지 되어 기사화되었다.

-…토미 콜롬보 그 친구가 방심한 거지. 미국하고 중남미 쪽 언론만 막고 있더라고. 한국 회사가 영국 언론에 소스를 토스하면 완전히 아킬레스의 건이 노출되는 거지. 근데 노을아, 이게 너한테 도움이 되냐? 우리 그냥 남 좋은 일 해 준 거 아냐?

“아니요. 바로네스 메이어스에게 좋은 게 저에게 좋은 거죠.”

내가 무슨 대단히 이타적인 사람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것 또한 2라운드에서, 세계 최고의 팝스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겠다는 내 계획의 일부였다.

내 계획은 점차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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