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0화
바로 2라운드 준비를 위해 밴드 멤버들과 함께 연습실에서 회의를 시작했다.
지난번 미션을 밴드 마스터의 편곡 위주로 진행한 만큼, 이번에는 코러스인 조민하 선배 위주로 준비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마도 소닉 독과 박찬용 선배, 두 리듬 파트에도 많이 기대야겠지. ‘그것’이 이번 미션에 핵심이 될 테니까.’
메인 프로듀싱을 맡은 재호가 편곡 회의를 주도했다.
“이번 무대는 미션이 있더라구요. ‘트리뷰트’.”
트리뷰트 무대.
특정 인물에게 바치는 무대를 하라는 미션이었다.
가사를 써야 하는 환희가 질문했다.
“가수여야 하나요?”
“가수일 필요는 없어. 가수 트리뷰트면 너무 리메이크 미션으로 제한되니까. 예를 들면 마틴 루터 킹이라던가, 매니 파퀴아오라던가. 이런 부류의 사람도 가능해.”
“갑자기 웬 매니 파퀴아오예요?”
“다음 미션은 필리핀 세부에서 하거덩.”
지금 드림 크루즈는 케이프타운에서 출발해 필리핀을 향하고 있었다.
오세아니아, 하와이를 거쳐 남미까지 가는 강행군이었다.
그중에서 2라운드는 필리핀 세부에서 진행한다.
현지 분위기를 고려해서 필리핀의 영웅 매니 파퀴아오의 이야기가 나온 듯했다.
이후에도 테레사 수녀부터 바바라 부시까지 온갖 위인들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다들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염려가 되었다.
‘결국 중요한 건 무대인데. 바로네스 매이어스를 이기려면 일반적인 위인보다는 어느 정도 무대 기획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해야 해.’
나는 회의의 방향을 틀기 위해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는 히든 미션이 있다 봐야 할 거 같아요.”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민하 선배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히든 미션?”
“바로네스 메이어스의 음악은 다들 아시죠? 진짜 좋잖아요?”
다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을 이어갔다.
“제가 들어 보니까, 바로네스 메이어스의 음악에는 윤기가 있어요. 정말 끝장나게 찰진 ‘그루브’가 있더라고요.”
박찬용 드러머가 동의했다.
“엄청난 그루브지. 드러머 입장에서 말하자면, 바로네스 메이어스의 음악은 팝 음악 역사에 남을 정도의 그루브를 갖고 있다 보네. 아마 20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을 음악일 거야.”
박찬용 드러머의 말이 맞았다.
15년이 지나도, 바로네스 메이어스의 음악은 그루브의 상징이 되어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았다.
여름 시즌마다 전 세계에서 바캉스 시즌마다 울려 퍼지는, 그런 음악이었다.
박찬용 드러머의 도움 덕분에 내가 원하는 주제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내가 말을 보탰다.
“저런 그루브가 있는 음악을 상대가 부르는데, 우리가 존경심을 표현한다고 웅장한 음악을 해봐요. 어떻게 되겠어요?”
재호가 나직하게 탄식을 내뱉었다.
“음울한 장례식 음악처럼 들리겠지. 바로네스 메이어스 음악은 세상에서 제일 흥겨운 음악이니까.”
조민하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건 절대 안 돼요! 즐거운 음악을 해야겠어요. 그러자면 주제부터 흥겨운 분위기의 트리뷰트가 어울리는 사람을 선정해야 할 거 같아요.”
환희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런 사람이…….”
연습실이 조용해졌다.
침묵을 깬 건 밴드 마스터였다.
"최근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 한 분이 돌아가셔서 추모 무대를 한 번쯤 해보고 싶긴 했거든? 미국 가수라 글로벌 대중에게도 잘 맞는 편 같은데.”
조민하 선배가 반색했다.
“그게 누군가요?”
“제임스 브라운.”
제임스 브라운, 흑인 음악의 황제였다.
소울 음악을 완성한 가수고 그 외에도 휭크(funk), 알앤비 등 수많은 흑인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힙합에서도 끊임없이 샘플링되는 음악의 전설이었고, 마이클 잭슨의 무대 매너에도 영향을 미친 가수였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유명을 달리했다.
재호가 나직이 말했다.
“제임스 브라운의 헌정 무대는 제임스 브라운답게, 신나게 해야 말이 되겠네요.”
밴드 마스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루브로 가득해야지.”
이번 무대의 메인 편곡을 맡을 조민하 선배가 결정을 내렸다.
“좋아요! 그럼 이번 무대는 한번 제임스 브라운으로 해보죠!”
* * *
일단 곡 컨셉이 나왔으니 재호와 환희, 그리고 밴드 멤버들이 한창 창작의 고통을 겪는 작곡과 편곡의 시간이 왔다.
거꾸로 말하자면 내게는 조금 여유가 있는 시간이란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난 김에 오랜만에 천채왕 프로듀서와 통화를 나누었다.
-오 그래 노을아, 요새는 안부만 묻네?
천채왕 프로듀서와는 우리 글로벌 비전 무대를 확인하고, 1라운드 통과 때 축하 문자를 보내는 등, 가끔 연락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는 이제는 직접 움직이기보다 비원더의 운영 조직을 서포팅하는 데 치중했다.
세계 대회 진출을 계기로 비원더의 매니지먼트 인력을 크게 늘린 만큼, 운영에도 공수가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바쁘겠지만, 오늘은 천채왕에게 부탁할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그래, 무슨 일로 전화했어?
“하나 알아봐 주셨으면 하는 것이 있어서요. 짚이는 부분이 있는데, 정확하게 알고 싶습니다.”
-뭔데? 활동하고 연관된 거면 알아봐 줘야지.
“연관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은요…."
천채왕은 잠자코 내 말을 듣더니만 ‘오케이’ 한마디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아마 그가 보기에도, 우리 활동과 큰 연관이 있을 법한 정보인 모양이었다.
‘좋아 이걸로 일단 미끼는 던져두었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물론 무대였다.
멋진 무대를 만들지 못하면 제아무리 뛰어난 전략을 준비해도 소용이 없었다.
문득, 다시 그녀의 무대를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네스 메이어스의 단독 콘서트 영상을 돌려봤다.
보면 볼수록 기가 막힌 그루브의 흥겨운 무대였다.
나랑 스타일이 다른 것이지, 나보다 노래를 압도적으로 잘한다고는 볼 수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노래 실력은 내가 우위였다.
다만 이 가수는 분명 자기만의 그루브로, 나와 완전히 다른 색깔의 또 하나의 완성도 있는 음악을 하는 보컬리스트였다.
그냥 내가 압도적인 능력으로 눌러 버리기에는 너무 뛰어난 보컬이란 뜻이었다.
‘그래도 다시 찬찬히 들어 보니까, 솔로 파트에서 내가 밀리는 건 아니야.’
자꾸 듣다 보니 이성을 찾고 그녀의 노래를 비원더의 음악과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분명 그녀는 뛰어났지만, 나보다 노래를 더 잘하는 게 문제는 아니었다.
내 솔로 파트에서는 종류가 다를지언정, 나만의 그루브가 뿜어져 나왔다.
문제는 3인이 화음으로 노래할 때였다.
나름 솔로 파트에서는 3인의 멤버들 모두 자신의 그루브를 가지고 노래했다.
하지만 3인이 같이 노래를 부를 때는 아무래도 바로네스 메이어스처럼 쫀득쫀득한 그루브 감이 살지는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3인이 같이 호흡을 맞추면서 리듬의 감각까지 솔로 가수처럼 맞춘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비원더는 3인조 알앤비 보컬 그룹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는 3인의 화음이 뿜어져 나왔다.
함께 노래할 때도 솔로일 때 못지않은 흥겨운 그루브를 보여주어야 했다.
‘쉽지 않을 거 같은데?’
* * *
재호와 환희가 밴드 멤버들과 음악을 만드는 동안, 나는 노래를 고민했다.
그리고, 나 혼자서 고민해봤자 소용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대신 생각한 것이 바로 나만의 보컬 트레이너였다.
그건 바로 글로벌 비전 한국 지역 예선 준우승자 김지태.
나는 그와 우승을 걸고 내기를 걸었고, 이겼다.
그 보상으로 나는 그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지금이 딱 그 요청을 할 타이밍이었다.
‘뭐 안 그래도 1라운드 방송 끝나고 내게 선배가 문자로 조언을 좀 해줬지만 말이야.’
그에게 통화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뜻밖의 대답이 날아왔다.
헬기를 타고 날아오겠다는 말이었다.
“여기 지금 인도양인데요?”
* * *
정말 거짓말처럼 김지태 선배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헬리콥터를 타고 드림 크루즈에 도착했다.
김지태가 내게 악수했다.
“본 지 얼마 안 됐는데 되게 반갑네요 후배님.”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아! 나 이제 필리핀 살거든요. 예정 엔터를 나오니까 한국에서 살기가 좀… 그렇더라고. 마침 필리핀에 실용음악과 교수 자리가 나서 여기에 자리 잡았어요. 덕분에 금방 왔지.”
지금 드림 크루즈는 전속력으로 필리핀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필리핀에서 구룡도까지 간 후, 거기에서 헬기를 타고 들어오는 정도의 노력은 필요했지만 말이다.
그가 바로 내게 운을 뗐다.
“제롬이랑 대결 너무 멋졌습니다. 저라면 아마 거기서 탈락했을 거예요.”
“에이, 선배님도 저력이 있으신데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비원더 특유의 팀워크와 아이디어가 빛난 거죠. 흑인 국악 가수를 쓸 줄이야. 저는 그런 기발한 착상은 못 해요. 덕분에 그녀도 지금 국제적으로 난리가 났잖아요? 완전 윈윈이었어.”
동생 친구가 잘된 덕분에 덩달아 내 동생도 국악 공연 스케줄이 전 세계적으로 많이 생겨 기분이 좀 좋은 상태였다.
머리를 긁적이며 헤벌쭉한 미소를 짓고 있던 나에게 김지태가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바로네스 메이어스라니.”
“그러게요.”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정말 제가 따라가기 힘든 존재죠. 빌보드 1위 가수를 무슨 수로 이겨요? 저랑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지만, 완전히 동경하던 가수였습니다.”
“그건 저도 그렇습니다.”
“그녀에게는 절대적인 강점이 있어요. 후배님도 알죠?”
“그루브인가요….”
박찬용 선배부터 김지태 선배까지, 내가 인정하는 음악가들이 모두 그녀의 ‘그루브’를 경계하고 있었다.
사실 당연했다.
그녀에게는 평범한 곡조차 자기식으로 변주해 강렬한 레게음악으로 변주하는 리듬감이 있었으니까.
그녀가 부르면 브로드웨이의 노래는 물론 클래식 성악곡까지 모두 끈적하면서 춤추기 좋은 노래로 탈바꿈했다.
그것이 바로 그녀만의 동물적인 강점이었다.
김지태가 선글라스 너머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엔간한 노래는 그녀 앞에서는 딱딱한 목석처럼 보일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팀워크를 올리려고 합니다.”
“팀워크를요? 어떻게요?”
“같이 합창 연습을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독창에서는 그래도 저희도 나름대로의 리듬감이 있는데, 화음을 맞출 때는 잘 안되더라고요.”
김지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 그것도 방법이긴 한데…. 글쎄요… 조금 마인드를 바꿔보면 어떻겠어요? 역발상이 오히려 해답일 수 있어요.”
“역발상이요? 여기서 역발상이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김지태가 내게 귓속말로 아이디어를 전달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 전구가 켜졌다.
‘이거다!’라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거라면 바로네스 메이어스 못지않게 리듬감 있고 흥겨운 무대를 꾸밀 수 있었다.
‘바로 곡 나오자마자 재호랑 환희에게 제안해봐야겠어.’
* * *
내 아이디어에 재호와 환희는 물론, 밴드 멤버들까지 모두 흔쾌히 허락했다.
‘요즘 느낌 나고 좋을 거 같다’는 평이었다.
바로 재호가 내 아이디어에 맞춰 편곡 작업을 시작했다.
‘순조롭기는 하지만, 이런 정공법만 준비해서는 안 되지.’
나는 초조하게 천채왕의 통화를 기다리며 무대를 준비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원하는 통화가 왔다.
“선생님!”
천채왕의 목소리는 놀라움으로 살짝 떨렸다.
-야 노을아! 너 또 하나 월척 건진 거 같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