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43화 (243/280)

제243화

“어디라고요?”

나는 배영웅에게 되물었다.

분명 방금 전, 배영웅이 내게 글로벌 비전 본선 첫 라운드 주최 장소를 알려준 것 같은데.

전혀 못 들어 본 곳이었다.

“세이셀요.”

배영웅 실장이 다시 알려 줬는데도, 잘 모르는 곳이었다.

배영웅 실장이 세계 지도에서 세이셀을 찾아 주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서쪽, 마다가스카르섬 위에 있는 작은 섬이었다.

재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외네요. 저런 작은 곳에서 대회를 시작하다니.”

“그게 오히려 좋죠. 주최 측 배려를 많이 해줄 테니까요. 실제로, 이전 글로벌 비전 대회도 모두 분석해 보면 작은 도시에서 주최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 데는 왜 제작진을 배려해 주는 걸까요?”

“관광 수입, 홍보 효과 등을 노리는 거죠.”

“음….”

전 세계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방송이다 보니, 그만큼 촬영 장소 하나도 글로벌한 관심 대상이 되었다.

그게 좋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거슬리는 면도 있었다.

대회가 너무 상업적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우리의 무대는 뒷전이고, 무대 자체의 화제성을 활용해 돈을 버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뭐, 나도 할 말이 없네. 글로벌 비전 우승자가 누구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니까. ‘글로벌 비전’이라는 대회 자체의 이름만 기억에 남고. 이런 식이면 우리도 가면 갈수록 주최 측에 이용만 당할 거 같은 느낌인데.’

아무래도 목표를 상향 조정해야 할 것 같았다.

단순히 대회에서 우승을 목표로 하는 것을 넘어서, 대회 자체를 능가하는 진짜 슈퍼스타가 되는 것으로 말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누군가 타인에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배영웅 매니저가 우리에게 이후의 1라운드 일정도 전달했다.

기본적으로 ‘글로벌 비전’ 본선은 총 128개 팀 중 1개가 남을 때까지 진행하는 토너먼트다.

우승까지는 앞으로 총 8번의 대결이 남은 셈이었다.

대결마다 국가는 물론, 대륙까지 바꿔가면서 진행하는 초호화판 오디션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초반 4라운드까지는 제작진이 공수한 초대형 크루즈 섬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어쩔 수 없는 조치예요. 사실 128개 팀을 데리고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천문학적인 돈이 드니까요. 차라리 크루즈 하나 대여하는 게 싸게 먹히죠.”

그런 연유로, 글로벌 비전 참가자들은 당분간 크루즈에서 지낼 예정이었다.

환희가 손바닥을 비비며 흥분했다.

“크루즈 좋은데요.”

재호가 농담을 던졌다.

“카메라 쫙 깔렸다. 연애는 안 된다구.”

“저 이제 그런 거 안 한다니까요. 요새는 운동해요. 운동!”

재호가 큭큭 웃었다.

그러고 보면 요새 환희는 ‘주하늘’의 인격으로 활동하는데 완전히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어디서나 편안한 본래의 모습으로 행동했다.

내 충고대로, 환희는 충실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일단 환희 리스크는 많이 줄어든 셈인가?’

덕분에 환희의 노래 실력도 많이 늘었다.

연기하는데 소모하던 에너지가 사라지니 순식간에 노래 연습의 효율이 높아진 것이다.

오늘 연습이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오늘은 글로벌 비전 본선을 참여하기 위해 출국하기 전, 마지막으로 우리 노래를 점검하기로 했다.

회의가 끝난 후, 비원더 3인은 빅4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전문적인 아카펠라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여하튼 아카펠라였다.

내가 주 멜로디를, 환희가 꾸밈음 테너를, 재호는 베이스 음과 비트박스 등 각종 음을 담당해 아카펠라 버전으로 편곡한 존 레전드의 ‘Ordinary People’을 불렀다.

내 노래를 확인하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원래부터 복잡한 구성의 노래를 바꾸는 것보다, 이 노래처럼 단출하게 피아노 하나 보컬 하나만 있던 노래를 아카펠라로 세련되게 바꾸는 일이 더 어려웠다.

1달간 후닥닥 배운 아카펠라치고는 제법 그럴듯한 느낌으로 편곡해 부르고 있는 듯했다.

그 순간, 빅4의 매튜가 눈짓으로 신호했다.

멤버들 모두 노래를 멈췄다.

이게 최종 미션이었다.

잠깐 노래를 멈추고 난 후 다시 부르기.

드럼도 없이 오직 3인의 호흡만으로 박자는 물론, 음정까지 정확하게 맞춰야 하는 엄청나게 고난도의 작업이었다.

그중 굳이 말하자면 환희가 제일 어려웠다.

나는 멜로디고, 재호는 멜로디가 적은 베이스 혹은 비트박스를 하면 됐다.

그에 반해, 환희는 복잡하고 미묘한 꾸밈음을 소화해야 했다.

음감과 박자, 그리고 감정이 완벽에 가까워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환희와 같이 미친 듯이 특훈했지.’

사실 환희와 어젯밤 내내 이 ‘멈췄다가 음 잡기’ 연습을 둘이서 했다.

그 결실이, 지금 나와야 할 순간이었다.

[우리는!]

아! 하고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화음이, 정확한 박자와 볼륨과 느낌과 음정으로 조화를 이루어 흘러나왔기 때문.

‘어제 내가 밀어붙여 진행했던 개인 훈련이 효과가 있었어.’

빅4가 뿌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매튜가 우리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이걸 한 달 만에 해낼 줄은 몰랐습니다. 못 할 줄 알고 시킨 겁니다만.”

“그런 거셨나요?”

“‘이처럼 아카펠라의 세계는 넓습니다. 정복할 수는 없으니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도전하세요.’ 뭐 그런 식의 고별 연설을 준비했죠. 별 의미는 없었네요. 아, 어쩌지.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말 할지는 생각 안 해봤는데요….”

다른 멤버들이 매튜에게 눈짓했다.

매튜가 눈웃음을 짓더니만 우리를 꼭 포옹하며 말했다.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습니다. 이제 글로벌 비전에서 멋진 무대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보컬 그룹은 팀 호흡, 팀 호흡, 또 호흡입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마세요.”

“넵!”

그렇게 우리는 특훈을 마치고, 글로벌 비전 대회로 발을 디뎠다.

* * *

세이셀로 가는 길은 매우 멀었다.

직항이 있을 턱이 없었다.

일본을 경유해 두바이에 가서, 그곳에서 세이셀로 넘어갔다.

두바이에서는 반가운 만남이 있었다.

조민하 선배의 룸메이트였던 작가, 메리였다.

“지금부터 딱, 우승할 때까지. 120일간만 함께하는 거예요. 오케이?”

“네네 알겠습니다. 계약 관련 자세한 사항은 배 실장님과 이야기해주세요.”

“오브 코스~.”

메리는 TV부터 영화까지, 각종 매체를 섭렵한 베테랑 작가였다.

앞으로는 그녀가 비원더의 ‘서사’를 짚어 줄 예정이다.

그런데, 우리 서사가 좀 독했다.

‘이렇게 독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세이셀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크루즈에 탔다.

크루즈의 이름은 ‘드림 크루즈’였다.

이곳은 크루즈가 출항하는 곳이자 출정식을 하는 곳이었다.

실제 1라운드 대결은 남아프리카를 돌아다니다, 그 중심인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서 할 예정.

그렇다면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자리를 잡아 짐을 푸는 일이었다.

항구에 가니, 어마어마하게 큰 배가 보였다.

노아의 방주가 있었다면 이 정도 크기였을까?

얼핏 봐도 30층 건물은 되는 듯한 높이의 배였다.

파도에 넘실대는 웅장한 크기의 크루즈를 보니 그간 내 걱정이 아이들 장난처럼 느껴졌다.

흥분을 최대한 가라앉히고 안으로 들어가니 낯익은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나와 데뷔 오디션 ‘슈퍼스타 T’의 동기이자, 미국 대표 ‘루비아이’의 서브 보컬 애드리아나였다.

“애드리아나!”

“노을 오빠!!! 롱 타임 노 씨!(오랜만이야.)”

애드리아나는 긴 생머리에 조개를 절묘하게 배치했다.

인도양의 따듯한 휴양지인 세이셀에 잘 어울리는, 남국 느낌의 원피스 차림이었다.

마치 인어공주처럼 보였다.

내가 먼저 물었다.

“벌써 왔어?”

“어제 왔지. 오빠! 숙소 봤어? 방 대박이야. 무슨 5성급 호텔 같아.”

“그래?”

“무슨 방 안에 스파랑 사우나가 다 있다니까!”

“와~.”

환희가 다급하게 내게 외쳤다.

“우리도 빨리 가보죠? 궁금하네요.”

“그러던가.”

애드리아나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짐 풀고 연락해~. 콘서트장이나 같이 가자.”

‘배 안에 콘서트장이 있다고?’

우리 숙소를 확인하면서 전체 구조를 확인했다.

콘서트장은 물론 레스토랑, 파티룸, 심지어 배 안에 수영장까지 딸려 있었다.

이건 뭐, 정말 말 그대로 떠다니는 6성 호텔이었다.

그런데 어째, 이상했다.

우리에게 배정된 호수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시설이 초라해졌다.

급기야 우리 호수에 가서는, 방문조차 심플해졌다.

무슨, 모텔 방문 같은 모습이었다.

재호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도둑… 들어오는 거 아냐? 방문은 괜찮나?”

배영웅 실장이 열쇠로 문을 열었다.

“음…!”

더블 침대 두 개의 썰렁한 구성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10만 원 이하 가격의 좀 많이 담백한 숙소 구성.

화장실에 샤워기라도 하나 달린 게 용했다.

창문도 쥐꼬리만 해서 마치 감옥처럼 느껴졌다.

의자 등의 가구도 조잡하기 짝이 없는 플라스틱제였다.

배영웅 매니저가 탄식했다.

“이게 대체…? 연습생도 안 묵을 거 같은 숙소인데요?”

루비아이의 숙소는 천국과 같다고 애드리아나가 말했다.

굳이 애드리아나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뭐가 잘못된 거지?’

* * *

우리에 대한 대접은 가면 갈수록 첩첩산중이었다.

처음에 나는 이렇게 정신 승리를 했다.

‘에이, 워낙 크루즈 시설이 좋잖아? 방에선 잠만 자고 밖에서 계속 있으면 되지.’

근데 그게 안 됐다.

드림 크루즈 안에서는 철저하게 방의 등급에 따라 계급이 나누어졌다.

카지노는 물론, 콘서트장 등 각종 부대시설은 1등급 방 혹은 2등급 방만 사용 가능했다.

우리 같은 4등급 실 사람들은 가지 못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식사 시간이었다.

우리는 ‘설마 밥 가지고 장난을 치겠어….’라는 희망을 품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뚱한 표정의 백인 웨이터가 우리 호수를 확인하더니, 점심을 가져왔다.

“식사입니다.”

“이게… 식사라고요?”

우리 식사는 땅콩버터 샌드위치와 사과였다.

덜렁 흰 빵에 땅콩버터가 들어있는 게 전부였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TV 출연자인데, 적당히 해야지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건 진심이었다.

웨이터는 빠르게 우리 자리를 떠나 버렸다.

우리는 형편없는 식사를 테이블에 둔 채로 덩그러니 남겨졌다.

환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먹는 거 가지고… 그러면 안 되는데.”

내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그건 한국이고 여긴 아프리카니까 그런 건가?”

“아니! 이게 대체 왜 이럴까요? 기준이 뭐죠?”

“그러게? 실장님, 저희 뭐 시청률이 낮았나요?”

땅콩버터를 입에 집어넣고 있던 배영웅 매니저가 고개를 저었다.

샌드위치를 삼킨 후, 그가 대답했다.

“시청률 훌륭했습니다. 뮤비 평가도 저희가 탑 10에 들 정도로 좋았고요. 우리 위에 몇 팀 없었어요.”

이미 식사를 한입에 끝내버린 환희가 뒤통수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그럼 뭘까요?”

“내가 물어볼게.”

내가 나서기로 했다.

애드리아나에게 슬쩍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애드리아나, 지금 뭐하니?

바로 답장이 날라왔다.

-어 식사 중이야.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슬쩍 질문했다.

-메뉴가 뭔데?

-? 스시 오마카세. 오빠도 같은 거 아니야?

‘……오마카세라고라고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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