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40화 (240/280)

제240화

영미권 최대 비원더 팬 커뮤니티인 ‘워너B’의 운영자가 된 제이미.

그녀는 지금 초조하게 인터넷을 뒤져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비원더는 위기였다.

처음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1주일 안에 글로벌 비전 본선 진출자 모두의 신곡 뮤직비디오가 나온다는 느닷없는 예고가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늦게 지역 예선이 끝난 비원더의 경우에는 고작 결승을 치른 지 3주 만에 뮤직비디오가 나온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뮤직비디오를 준비할 시간이 없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이 매우 안 좋았다.

뮤직비디오를 다급하게 찍는 중인데, 컨셉 상 핵심인 여배우 섭외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

팬들은 당혹했다.

-이거 뮤직비디오 나올 수는 있는 거야?

-노엘 목소리 듣고 싶은데. 그냥 라이브 실황으로 라도 해줘.

ㄴ그러네. 기획사 어쭙잖은 편집 장난질보다 이게 나을 듯

ㄴㄴ모르는 소리 하지 마. 다른 데는 다 초호화 로케이션으로 찍는데 우리 애들 뮤비만 썰렁하면 뉴비 영업에 좋겠어?

-제작진 주작 지리네.

ㄴ결과 조작은 안 하겠지만 이건 거의 조작급 아니냐.

하지만 제아무리 불평해도, 이미 제작진이 공고한 뮤직비디오 데드라인은 점점 다가왔다.

비원더의 소속사 TYB는 침묵으로만 일관했다.

제이미는 목이 타 콜라 한 잔을 원샷했다.

하지만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오늘 12시 공개라고 했지? 딱 뮤비 나오면 보고 자자.”

하지만 제이미는 직감했다.

오늘 자기는 글렀다고.

뮤직비디오가 구리다면, 화가 나서 소속사 욕과 제작진 성토로 날밤을 새울 것이다.

좀 확률이 낮아 보이지만, 만약 뮤직비디오가 훌륭하다면 N차 감상하고 커뮤니티에서 다른 팬들과 서로 떠들고 즐기며 날밤을 새울 터였다.

‘제발 제발 제발…!’

제이미는 근 3년간 긋지 않았던 성호를 긋고 바로 뮤직비디오를 확인했다.

“어?”

시작하자마자 제이미는 놀람의 탄성을 질렀다.

놀이공원 앞 호수 무대에서 비원더 3인이 밴드 앞에서 공연하는 모습과 함께 뮤직비디오가 시작됐다.

더럽게 잘생겼네, 하고 제이미는 생각했다.

정말 비원더 3인이 인종과 국가를 초월할 정도로 잘생겨서일까?

아니면 그들의 음악과 인격과 서사에 반해서 외모까지 잘생겨 보이는 걸까?

본인도 몰랐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냥 그들이 너무 은혜롭게 생겼다는 그 사실이면 충분했다.

그 순간, 제이미의 눈에 서양 여성이 스쳐 지나갔다.

“뭐야?”

비원더 3인이 노래하고 있는 무대 뒤에는 성이 있었다.

그 성의 창문에는 공주 차림의 여성이 서 있었다.

제이미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눈을 의심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율리아 뵘???!!!”

율리아라면 지금 제일 잘 나가는 배우 아닌가!

잡지 표지란 잡지 표지는 죄다 장악한 그 여배우였다.

“쟤가 왜 여기에 있어!”

제이미는 이후 노래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뮤직비디오의 내용은 어땠는지 아예 기억도 하지 못했다.

디즈니 풍의 노래에 잘 어울리는 디즈니 풍의 뮤직비디오였다는 정도의 인상만 남았을 뿐.

자신의 걱정이 그대로 반전되어 짜릿한 승리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 섭외가 안 된다고? 율리아가 섭외됐다 율리아가! 저스틴 팀버레이크 같은 세계 최고의 팝스타라도 율리아를 섭외하긴 어려울걸!”

바로 제이미는 커뮤니티에 들어가 승전고를 울렸다.

-봤냐! 이게 비원더다! 율리아 뵘이 뮤비에 나온다고!

ㄴ뮤비 섭외가 안 된다고? My Ass(장난치냐!)

ㄴ이런 사람을 섭외할 줄 누가 알았겠어 ㅋㅋㅋㅋㅋ

ㄴㄴ아침에 계란후라이 하나 구워달라 했는데 갑자기 5성 호텔 쉐프가 온 격이네~

ㄴ편안~

-믿고 있었어요 TYB!

제이미는 손에 가슴을 가져다 댔다.

두근대는 심장이 가시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도 댓글을 달며 날밤을 새워야 할 것 같은데?’

* * *

TYB 홍보실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지금 시각은 아침 9시 50분, 뉴욕 시각으로 자정이었다.

10분 뒤면 비원더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될 예정이었다.

한국 전역의 기대를 받고 글로벌 비전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비원더의 첫 프로젝트이니만큼, 홍보실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TYB의 홍보팀장 또한 크게 긴장한 상태였다.

‘절대 이번에는 실수하면 안 된다…!’

이미 각오한 상태였다.

A&R팀(* 음반 기획팀)은 비원더의 뮤직비디오 촬영 상황을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너무 다급해서라고 핑계를 댔지만, 홍보팀장은 아마 ‘홍보실에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엉망이라서’ 그랬을 거라고 결론지었다.

A&R팀을 탓하기도 뭐 했다.

갑자기 1주일 만에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오라니, 말이 안 됐다.

홍보실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 중이었다.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고, 전 세계의 언론이 비판 기사를 쏟아내면, 적어도 본국의 비판 기사라도 막을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다.

갑자기 홍보실 문이 열리고,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선생님…!”

직원들에게 ‘선생님’이라 불리는 존재, 회사의 오너 천채왕이었다.

천채왕은 싱긋 웃으며 구석에 의자를 끌고 와 아무렇게나 앉았다.

“기사 모니터링 하기는 회사 전체에서 여기가 제일 좋잖아? 그래서 왔죠. 백 팀장님 잘 부탁해요.”

“아, 역시… 최대한 기사를 막아 보겠습니다.”

천채왕의 눈이 동그래졌다.

“막아?”

“그래서 직접 오신 거 아닌가요?”

“내 정신 좀 봐. 홍보실에는 말 안 했나 보네. 배영웅 실장답지 않게 실수했네. 아니다, 1주일간 잠도 못 자고 일하다 방금 쓰러진 사람한테 무슨 소릴, 그냥 내가 말해줬어야 했구나. 내 불찰이네. 팀이 작으니까 이런 문제가 있구나.”

“무슨 말씀이시죠?”

천채왕이 뭐라 말하려 입을 여는 순간, 한 여직원이 방 안에 외쳤다.

“곧 릴리즈됩니다! 스탠바이!”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글로벌 비전의 네트워크를 통해, 비원더의 신곡 ‘Magic Ice’가 방영된 것이다.

홍보실의 가장 큰 메인 모니터에 신곡 뮤직비디오가 상영됐다.

홍보팀장은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혜성을 머리에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율리아… 뵘…?”

천채왕이 머리를 긁적이며 홍보팀장에게 말했다.

“백 실장님 미안해. 미처 말을 못 했어.”

홍보팀장이 머리를 짚었다.

사실 살짝 화가 났다.

각 잡힌 블라우스가 흐트러지지 않게,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감정을 제어하기 어려웠다.

결국 홍보팀장은 천채왕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선생님 이런 대박 기획이 있었으면 지체하지 말고 홍보실에 공유해 주셨어야죠!”

“너무 바빠서, 나도 한 3시간씩 잔 거 같은데….”

“3시간이고 1시간이고 잘 만들면 뭐 하냐! 알려야 보배지! 라면서 홍보실에 중요성을 강조하신 게 선생님 아닌가요?”

“아하하 그치. 그게 나지.”

“이런 보물 같은 기삿감을 만들어 두시고 전달을 안 하시면! 홍보팀이 어떻게 일합니까! 네?”

천채왕이 서둘러 모니터를 가리켰다.

“백 실장! 봐!”

“뭐요?”

모니터링 모니터에, 전 세계의 비원더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물론 모두 극찬이었다.

* * *

비원더 멤버들은 그날 오전을 해외 반응을 보며 보냈다.

권노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거 뭐. 우리 기사보다 율리아 기사가 더 많이 나오는데?”

환희가 툴툴댔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율리아 뵘인데. 여신인데! 여신이 한국에 강림했는데. 그럼 우리 기사가 더 많이 나오겠어요?”

“…아직도 외국 여자 취향은 못 버리는구나.”

환희가 억울하다는 듯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렸다.

“그게 아니고! 율리아 뵘은 진짜 대세라고요. ‘007 세 번 산다’ 안 봤어요?”

“안 봤는데.”

재호도 고개를 저었다.

이후 환희에게 율리아 뵘이 얼마나 대단한 여배우인지 30분 정도 강습받았다.

짧게 이야기하면 올해 아카데미상까지 유력한 최고 화제의 여배우였다.

그런 그녀가 팝스타도 아닌, 비원더의 뮤직비디오에 나온다는 건 물론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사실 우리 뮤직비디오에 대한 모든 반응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라는 식의 비판이 조금씩 튀어나왔다.

하지만 판세를 한 번에 뒤집어 버린 기사가 있었다.

율리아 뵘이 직접, 미국의 라디오 방송 NPR에 인터뷰를 때려버린 것이다.

-…비원더 뮤직비디오요? 제가 나가고 싶다고 졸랐어요. 억지를 부린 거 같아서 미안해요.

이 인터뷰 이후, ‘돈을 얼마나 먹였냐’ 혹은 ‘가수랑 노래는 하나도 안 보이고 율리아 뵘의 공주 복장만 기억난다’ 같은 비아냥들은 싹 사라졌다.

그야말로 대동단결, 모두가 비원더 뮤직비디오 칭찬을 하고 있었다.

훑어보니, 아시아 국가에서 참여한 참가자 중에는 아예 적수가 없는 수준으로 성공했다.

다만 미국 대표 ‘루비아이’ 등 강력한 우승 후보들은 비원더 못지않은 관심을 받았다.

차이가 있었다.

비원더는 ‘놀람’에 가까운 반응이라면 루비아이에는 음악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비영어권 가수이자 비주류인 아시아권 가수로서 아직은 뛰어넘을 벽이 많아 보였다.

* * *

세계의 벽을 뛰어넘을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이윤강 PD가 우리 숙소에 방문했다.

만나자마자 그는 감사 인사부터 했다.

“덕분에 동면기 잘 보냈습니다. 감독님이랑 같이 2일 만에 뮤비 편집하느라 죽는 줄 알았지만.”

“동면기가 끝난 건가요? 벌써 일 다시 시작하세요?”

“글로벌 비전은 전 세계에서 찍다 보니. 저희 팀도 들어가게 됐어요. 메인은 아니지만, 아시아에서 주최하는 대회는 자투리로.”

“와 축하드려요.”

“그 첫 시작입니다. 비원더 소개 영상 찍기.”

이윤강 PD가 내일 있을 촬영을 설명했다.

글로벌 비전 메인 무대는 아시아 예선과는 달리 MC가 있었다.

‘말론 웨이’라고, 나도 몇 번인가 이름을 들어 본 진행자였다.

뭐 때문에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좌우지간 유명인은 맞았다.

그가 직접 한국에 방문해, 비원더를 소개하는 영상을 촬영한다고 말했다.

나는 좀 놀라워서 이윤강 PD에게 되물었다.

“128개국 참여자를 다 만나시는 건가요?”

“에이 설마요. 심사위원 3인과 나눠서 하죠. 1인당 30개국씩.”

‘그게 더 힘들 거 같은데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윤강 PD가 말을 이었다.

“지역별로 거점 도시에서 몰아서 찍어서 별거 없어요. 동남아는 구룡도에서 모이고, 북미는 뉴욕에서 모이고 하는 식이에요. 우리는 도쿄에서 모이고요.”

“알겠습니다. 기대되네요.”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재호가 쾌활하게 대답하자 이윤강 PD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네에….”

* * *

이윤강 PD가 나가고 나서, 재호가 이윤강 PD의 반응을 주제로 올렸다.

“…PD님 반응이 좀 이상하던데? 뭐가 있나?”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분 참 거짓말을 못 하신단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좋긴 한데.”

말하면서 나는 슬쩍 배영웅 매니저를 쳐다봤다.

그나마 그는 뭔가를 알 법한 인물이기 때문.

내 시선을 눈치챈 재호와 환희도 일제히 배영웅 매니저를 쳐다봤다.

시선을 느낀 배영웅 매니저가 한숨을 쉬더니, 말을 꺼냈다.

“사실, 말론 웨이에게 ‘소문’이 좀 있는데요.”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