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37화 (237/280)

제237화

바질 리스크 요한은 글로벌 비전 결승에서 패배한 후 처음으로 외출했다.

여지까지 그는 멤버들끼리 모여 두문불출, 술 마시고 자기를 반복했다.

바질 리스크와 영국 레이블과의 계약은 없던 일이 됐다.

자연스럽게 유럽 및 미국 진출도 취소되었다.

나름 요한은 ‘원래 이럴 운명인 것’이라고 위로했지만, 속은 타들어 갔다.

‘다시 또 그런 기회가 올까?’

요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약속 장소인 중식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오늘은 바질 리스크의 꿈을 빼앗은 존재인 비원더의 권노을과 점심 약속을 잡았다.

권노을이 먼저 위로를 겸해 점심을 사겠다고 말했다.

다시 배고픈 밴드의 생활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요한은 함부로 후배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레스토랑에서 ‘권노을’ 예약을 확인했다.

룸에 예약이 되어 있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권노을이 요한에게 손을 흔들었다.

“선배!”

“무슨 룸을 다 잡았어? 뭐 내가 대단한 손님이라고. 그보다 너는 신수가 훤하네.”

“선배도요.”

“설마! 나는 우울해. 우승해버리신 후배님 덕분에.”

일부러 요한은 죽상을 지었다.

“아이구.”

권노을이 쓴웃음을 지었다.

요한은 금방 권노을을 툭 치며 웃었다.

“야야! 장난이야. 어차피 승부였잖아? 승패는 있는 거고. 인정해. 비원더 무대가 더 흡입력 있었어.”

다만 좀 속이 쓰릴 뿐이었다.

권노을이 요한에게 메뉴판을 보여주며 말했다.

“베이징덕 한 마리 시켰습니다.”

“한 마리? 둘이서? 좀 많을 거 같은데?”

“일행이 한 명 더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권노을 옆자리에도 자리 세팅이 되어 있었다.

요한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누구? 나는 모르는 사람인데?

그때였다.

어디선가 손이 뻗어 나와 권노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와썹?”

권노을이 반갑게 그 손을 덥석 잡았다.

“이스트!”

요한이 입을 떡 벌렸다.

글로벌 비전 심사위원, 이스트 웨이브였다.

“요한이지? 글로벌 비전에서 봤던? 반갑군.”

“네네. 롱 타임 노 씨.”

“롱 타임? 며칠 전에 봤잖아?”

‘하하’ 웃었다.

요한은 지금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심사위원으로 만났다지만, 세계 최고의 프로듀서인 이스트 웨이브와 식사 자리를 함께 가지게 되다니 말이다.

“어떻게 이런 누추한 자리에….”

이스트 웨이브가 베이징덕 다리를 휙 잡아 뜯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만나게 해달라고 그랬어. 바질 리스크는 매니지먼트가 딱히 없어서 연락할 방법이 없더군. 퐈이어 키드가 그나마 친분이 있다 해서 다행이었지.”

요한은 더더욱 당황했다.

“이스트 웨이브 씨가요? 저를 대체 왜?”

“곧 내 신보가 나오는데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이스트 웨이브의 이번 신보의 리드 싱글에 권노을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다는 소식은 이제 전 국민이 다 아는 소식이었다.

그래서 요한은 솔직히 더 글로벌 비전 본선에 참여하고 싶었다.

이미 세계 무대에 진출한 권노을과는 달리, 자신들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해외에 진출할 방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미 세계 진출 기회까지 가지고 있던 비원더가 또 글로벌 비전까지 우승하는 걸 보며 더욱 씁쓸해지기도 했다.

가진 놈은 더 가지고, 없는 놈은 가진 것조차 빼앗기는구나, 뭐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스트 웨이브의 다음 말이 상당히 뜻밖이었다.

“두 번째 싱글 말인데. 거기서 바질 리스크와 일 좀 하나 했으면 좋겠는데.”

‘힙합 프로듀서가 우리 같은 펑크록 밴드 도움이 뭐가 필요하지? 설마 우리랑 같이 녹음하자고?’

은근 요한은 기대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착착 맞아떨어지지는 않았다.

“이미 녹음은 끝났어. 곡은 다 완성된 상태야.”

‘그럼 그렇지.’

요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전병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이스트 웨이브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게, 록 트랙이야. 레드 제플린 같은 정통 록밴드들의 연주를 샘플링했지. 힙합이지만 또 사실상 록 음악이야.”

“오호….”

힙합 프로듀서가 프로듀싱하는 록 음악이라니, 평생 밴드 죽돌이였던 요한에게도 흥미로운 말이었다.

그래 봤자 샘플링을 했다고 하니 힙합곡일 텐데, 대체 왜 바질 리스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스트 웨이브가 요한에게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두 번째 싱글은, 록 페스티벌에서 발표하려고 해. 근데, 록 페스티벌에서 AR을 키고 공연을 하는 건 솔직히 너무 꼴사납잖아? 그래서 적당한 밴드를 찾고 있었어.”

권노을이 말을 보탰다.

“그 라이브 밴드에 바질 리스크를 섭외하고 싶다네요.”

“그… 그게 말이 돼요? 이거 몰래카메라 아니야?”

요한은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카메라를 찾았다.

그만큼 믿기 어려운 말이기 때문이었다.

요한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왜 미국 래퍼가 한국의 인디 밴드를 섭외하냔 말이야? 미국은 고등학교마다 괜찮은 밴드가 굴러다니는 곳이라고. 굳이 밴드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우리처럼 밥벌이도 아슬아슬한 사람들을 고용할 필요가 있나?”

이스트 웨이브가 피식 웃더니 말을 계속했다.

“그래서 니들이 필요한 거야.”

“뭐라구요?”

“확실히 한국은 밴드가 척박한 거 같더군. 근데 그래서 한국 밴드는 어디보다 강인해. 미국에는 바질 리스크같이 펑크록 밴드인데 힙합부터 알앤비, 심지어 클래식 곡까지 소화하는 그런 밴드는 없어. 바로 그게 내가 필요로 하는 밴드고 말야. 내 이번 두 번째 싱글은 완전… 잡탕 음악이거든. 힙합을 기본으로 블루스, 하드락, 시카고 하우스, 심지어 대형 가스펠 콰이어까지 가미했지. 이런 뒤죽박죽의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밴드는 한국에는 없어. 그래서 바질 리스크를 선택한 거고.”

요한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쉽게 해결이 된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스트 웨이브의 매니저가 요한에게 계약서를 건넸다.

이스트 웨이브가 계약서를 가리키며 요한을 설득했다.

“자! 계약서야. 바로 9개월 뒤에 있을, 페스티벌을 함께 공연해 보자는 조건이지. 돈은 제법 줄 거야. 하겠나?”

하지만 정작 그 설득의 대상이던 요한은 이스트 웨이브의 말을 듣지 못했다.

감격에 가득 차 계약서에 이미 사인을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땡큐! 땡큐!”

* * *

식사가 끝나자마자 이스트 웨이브는 음식을 계산해주고는 서둘러 일어났다.

요한 또한 슬슬 자리를 일어나려 했다.

권노을은 요한에게 질문했다.

“벌써 가요 선배?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시죠?”

요한이 고개를 저었다.

“네 덕분에 좋은 기회를 잡았잖아? 이제부터 미친 듯이 연습해서 이 기회를 잡아야지. 우리가 늘 꿈꾸던 페스티벌이야. 비록 우리가 스포트라이트에 중심에는 없지만. 무대를 부숴 버려야지. 언제 어디서 기회가 올지 모르니까. 오늘처럼. 그럼 가볼게. 고마웠어.”

쩝.

아무래도 요한 선배를 보내줘야 할 것 같았다.

다만 아쉬웠다.

앞으로 우리 비원더가 글로벌 비전 본선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면, 바질 리스크와는 당분간 안녕이었다.

바질 리스크는 단순히 좋은 선배가 아니었다.

탄탄한 연주력과 공연 노하우가 있는 훌륭한 팀이었다.

당분간 못 본다고 하니 회포도 풀 겸, 선배들의 공연 노하우를 좀 배워보려 했는데 쉽지 않아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요한 선배와 악수하고 인사를 했다.

“그럼 나도 가볼까?

그때였다.

떠났던 요한 선배가 갑자기 뒤돌아서 나를 보더니, 불쑥 돌아와 내게 다짜고짜 말을 걸었다.

“너 들었지? 예정 엔터가 글로벌 비전에 일본 대표로 참여한다고.”

“네… 네.”

“일본 대표, 그 사람은 진짜 장난 아니다. 조심해야 해.”

“무슨 뜻이시죠?”

“괴물이야 괴물. 너, ‘베이즈’라고 들어봤어?”

“그 베이즈인가요?”

베이즈.

전설의 4인조 록 그룹이었다.

하드록부터 퓨전 재즈까지, 온갖 장르를 다 휩쓸어 무려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일본 톱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슈퍼 밴드였다.

“아니, 그렇게 오랜 경력이 있는 밴드가 오디션에 나와요? 반칙 아니에요?”

요한이 내 말을 웃어넘겼다.

“글로벌 비전은 참가 자격이 없어. 원칙상으로는 조용필 선배도 나올 수 있는 곳이야. 일본의 조용필(?)이라 할 수 있는 베이즈도 못 나오란 법 없지. 아니나 다를까, 당연히 압도적으로 일본 대표에 선발됐더군.”

“정보 감사합니다. 더 알아봐야겠네요.”

머리가 아파왔다.

역대 최고의 관록과 인기를 가진 록 밴드.

게다가 그들 배후에 있는 상대는 예정 엔터, 지금까지 온갖 편법이란 편법은 다 써왔던 상대였다.

또 어떤 짓으로 우리를 방해할지 몰랐다.

마지막으로, 이 팀, 일본 대표였다.

만에 하나 이 팀과 붙는다면 한일전이 된다.

한일전에서 질 수는 없다, 이거 국룰 아닌가.

‘그런데 일본 대표는 사실상 최강의 상대란 말이지.’

갑자기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오늘은 빅4에서 프로듀서이자 비트박스를 담당하는 ‘매튜’와의 훈련 스케줄이 있었다.

물론 우리가 이제야 비트박스를 배울 것은 아니었고, 3인이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리듬감 훈련을 하기로 했다.

매튜는 비원더 멤버 3인을 자리에 앉혀 놓고는, 화이트보드에 뭔가를 그리며 강의를 시작했다.

“자. 음악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죠. 그중, 절대 틀려선 안 되는 게 뭘까요?”

하늘이가 손을 높이 들었다.

“저요! 음정?”

“땡! 음정도 중요하죠. 하지만 그거 아세요? 은근히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 안에만 있으면 낫 배드입니다. 불협화음도 슬쩍 들어가면 나름 괜찮게 들려요. 문제는 음계 안에 안 들어가는 이상한 음이죠. 그래서 어정쩡한 음보다는 정확하게 틀린 음이 차라리 나은 거고요.”

재호가 나지막이 정답을 말했다.

“그러면… 리듬이겠군요.”

“정답입니다. 그 어떤 미숙한 관객도, 팀이 서로 박자가 틀리면 바로 알아봐요. 기초적인 거죠. 만약 글로벌 비전 무대인데, 드럼 비트나, 반주가 안 나오는 상황이 있다고 가정해 보죠.”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세계인들 대상으로 하는 대회이니, 그런 건 없었으면 좋겠네요.”

“만약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번 해볼까요?”

같이 우리 대표곡인 ‘음식 남녀’를 불렀다.

갑자기 기습적으로 매튜가 MR을 끊어 버렸다.

셋이서 아슬아슬하게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금세 리듬이 엉망이 됐다.

매튜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쉽지 않죠? 한번 해답을 같이 찾아봅시다. 우선 내일까지 연습해와 보세요.”

“내일까지라….”

재호가 내게 투덜댔다.

‘내일이 아니라 한 달 지나도 안 될 거 같은데?’

‘뭐 어떻게든 해 봐야지.’

사실 나는 벌써 해답이 보였다.

그때였다.

허겁지겁 배영웅 실장이 뛰어와 천채왕의 메시지를 전했다.

[지금 당장 회의실로 올 것.]

* * *

TYB 본사의 회의실에 가니 천채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천채왕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급작스러운 호출이 왔어.”

“급작스럽다니요?”

“원래는 분명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 갑자기 시크릿 미션으로 대회를 시작하겠다네?”

천채왕이 봉투를 꺼내 주었다.

봉투 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1차 미션: 데모 테이프]

“…이거 예선 때 했던 거잖아요? 이걸 또 하라고요?”

천채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습 미션이야.”

“기한은요?”

“다음 주 월요일까지. 딱 7일 남았어.”

아 돌겠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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