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권노을.
영어 자막으로는 ‘노엘 퀀’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의 무대를 처음 보는 순간, 제이미는 교통사고처럼 덕통사고를 당해 버렸다.
그 과정은 이랬다.
제이미가 처음 알아본 것은, 심사위원들이었다.
현재 제일 잘 나가는 작곡가 이스트 웨이브는 당연히 익숙했다.
“오! 이스트 웨이브가 웬 아시아 방송에?”
그러고 보니, 그 옆에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연금처럼 빌보드 10위권에 돌아오는 캐롤 곡의 주인공이자 왕년의 슈퍼 디바, 바네사가 앉아 있었다.
20살인 제이미가 기억할 때쯤에는 이미 왕년의 가수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워낙 유명한 가수라 얼굴은 익숙했다.
바네사와 이스트 웨이브, 그리고 잘 모르는 아저씨 한 명이 심사위원이었다.
계속해서 그들이 인터뷰하는 편집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본격적인 오디션 전에 흥을 돋우는 용도로 촬영한 심사위원 인터뷰 영상인 모양이다.
흥미롭게도, 심사위원들이 모두 입을 모아 한 명만을 이야기했다.
바로 노엘 퀀이었다.
이스트 웨이브의 반응부터 보자.
“퐈이어 키드! 노엘은 이번 예선에서 정말 증명했지. 노래마다 놀랍게 소화해 냈어. 이제는 미국에서도 주목받는 가수가 됐다구. 이 노래 보면 그럴 만하지.”
이스트 웨이브는 연신 따봉을 외치며 권노을의 무대에 대해 길게 칭찬했다.
바네사도 마찬가지였다.
“엘비스는 아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 아닐까? 비틀스, 마이클 잭슨과는 달리 작곡력보다는 오로지 가창력으로 뜬 스타니까. 그 가수의 노래를 리메이크하면서도 전혀 원곡의 가창력에 눌리지 않았어. 감탄했어.”
어마어마한 칭찬 세례였다.
방송을 보다,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진 제이미는 슬쩍 구글에 ‘노엘 퀀’을 쳐봤다.
‘……!’
그리고 검색 결과에 놀랐다.
너무 부정적인 글이 많았다.
정확히는, 권노을보다는 그의 동료인, 주환희라는 멤버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투성이였다.
-완전 바람둥이라던데.
-잠잘 틈도 없이 예선 준비해야지. 너 시간 많나 봐? 아오!
-아닐 거야. 사실 주환희 걔 게이래.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뭔 소리인가 싶었다.
미국에서 가수는 원래 마음껏 이성과 데이트하는 존재다.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남자 연예인이랑 사귀고 그걸 가사로 옮기는 걸로 유명한 가수도 있는 판이었다.
그런데 비원더라는 그룹의 팬은 희한하게도, 멤버가 연애하는 것을 싫어했다.
‘동양 문화인가? 흠. 아니 지들이 사귀면 사귀는 거지. 뭔 신경을 그리 써?’
여튼, 조금 흥미가 생긴 건 사실이었다.
어느새 비원더의 멤버 3인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외워졌다.
잘 알지도 못하는 언어의 이름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변화였다.
다시 고개를 돌려 TV를 살펴보던 제이미가 잠시 숨을 죽였다.
편집 영상으로 비원더가 부른 엘비스의 ‘It's Now or Never’ 무대 영상이 보였다.
3인이 너무도 묘한 몸짓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노래는 발성이 제대로 걸린 성악에 가까웠다.
리듬은 고고 리듬, 아니 삼바 리듬인가, 좌우지간 남미 느낌의 비트였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으로 온갖 국적과 창법이 섞인 노래였다.
근데… 왠지 좋았다.
특히 권노을의 강렬한 고음이 제이미의 마음을 후벼 팠다.
여태껏 별것 아니게 보였던 권노을의 얼굴에서 살짝 광채가 보이기 시작했다.
제이미는 여태껏, 동양 남자를 이성적으로 좋아해 본 적은 없었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보다 털도 적을 것 같은 그들이 남성이라 느껴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제이미는 권노을의 무대 영상을 보며 살짝 설렜다.
“아 아냐!”
제이미가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었다.
‘그래 침착하자. 저건 편집의 묘일 수도 있어. 곧 하는 라이브 무대에서는 진실이 밝혀지겠지.’
라이브 무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전에 보여주는 편집 영상에서는 비원더가 어떻게 마지막 결승 무대를 준비했는지 빠른 템포로 편집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우선 권노을의 인터뷰로 시작했다.
“힙합이란 주제를 받고, 솔직히 좀 당황했어요.”
이어서, 재호가 녹음실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 질렀다.
“아! 갑자기 힙합이라니. 나는 힙합 아예 못 한다구우~! 이런 미션을 주면 어떻게 해!”
“가만있어봐.”
바로 다음 컷에서 권노을은 한 중년 남성을 데려왔다.
비원더를 담당하는 밴드의 리더인 모양이었다.
밴드 리더와 권노을의 리딩으로 순식간에 컨셉이 채워져 나왔다.
권노을이 재호에게 CD를 여러 장 건네주며 말했다.
“자 이게 더 루츠. 힙합이지만 리얼 밴드야. 이 밴드를 참고하면 우리 느낌을 유지하면서 힙합을 쓸 수 있어. 우탱클랜 앨범도 확인해 보고. 이 우탱클랜이 ‘무당파’거든? 동양풍 나는 사운드로 만들어 보면 어때?”
권노을이 다양한 레퍼런스로 길을 뚫어주자, 비로소 원재호가 힘을 얻고 조금씩 작업을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권노을이 맥을 짚은 이후로 술술 음악 작업이 풀리기 시작했다.
원재호가 아무렇게나 연주하는 듯한 음이, 제이미가 듣기에도 너무도 아름다운 소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음악을 너무 빨리 듣고 싶어졌다.
제이미는 일찍 집을 나가기를 포기하고 소파에 제대로 걸터앉았다.
아침 운동을 포기하면, 얼추 이 방송을 거의 다 볼 수 있었다.
‘다이어트는 내일 하면 되는 거니까.’
제이미는 자기 합리화를 완료한 후, 본격적으로 브라운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화면이 전환되어, 이번에는 주환희가 좌절하는 모습이 나왔다.
편집이 절묘했다.
방금 검색을 통해 제이미조차 알게 된 스캔들 관련 내용은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주환희를 보여 줄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왜 스트레스를 받는지는 짐작할 수 있게 연출했다.
주환희가 투덜거렸다.
“가사가 안 떠올라요.”
권노을이 되물었다.
“왜?”
“힙합은 가장 솔직해야 하는데. 자꾸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 돼서.”
“야, 이건 오리엔탈 사운드잖아?”
“그렇죠?”
“그럼 아예 무협 톤 어때? 자기를 깨닫고, 수행하고, 결국은 절대 고수가 되고. 이 느낌으로 가는 거야.”
“고수라… 뭔가 괜찮은 거 같기도 한데요.”
권노을의 밝은 에너지에는 전염성이 있었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반드시 그는 대책을 찾았다.
그 집념 덕분에 좌절하는 주변인도 털고 일어나게 만드는 그런 힘이.
그리고 바로 지금, 무대에 빛이 쏟아지며 권노을의 노력의 결실인 공연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우와~.”
무대를 확인한 제이미가 기분 좋은 놀람에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미국의 심플한 무대에 비해, 비원더의 무대는 너무도 유려하고 섬세하며 아름다웠다.
중국 사극에서나 나올법한 고풍스러운 동양풍 건물이 디스플레이 배경으로 등장했다.
이윽고 아름다운 동양풍 선율과 함께 음악이 시작됐다.
힙합이라고는 하지만 강렬한 에너지 못지않게 아름다운 절제미가 돋보이는 연주였다.
시작하자마자 주환희가 무림 고수처럼 펄쩍 텀블링하며 뛰어 들어왔다.
동양풍 한복을, 세련되게 요즘 느낌으로 어레인지한 옷차림이었다.
의외의 등장에 깜짝 놀란 관객들이 더욱 크게 환호했다.
주환희는 멜로디가 가미된 랩을 시작했다.
[지금 내겐 놀 틈이 없지
네가 노는 동안 연습하지
하지만 누구보다 기분 좋지
그건 바로 너 때문이지]
랩의 끝에서 주환희는 살짝 윙크하며 카메라에 대고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꺅! 눈빛 치워. 나한테 윙크하지 마 주환희!”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이미의 눈빛은 계속 뚫어져라 주환희를 주시하고 있었다.
주환희 다음에는 원재호가 경쾌한 스텝을 밟으며 들어왔다.
새하얀 얼굴에 말끔한 이목구비, 순백의 생활한복은 너무도 옳은 조합이었다.
그야말로 귀공자 그 자체.
그가 진중한 느낌으로 프리-코러스를 이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후렴에는 권노을이 등장했다.
푸른색을 주환희와 대비되는 붉은 한복 차림이었다.
권노을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강렬한 고음을 내뿜었다.
[이제 달려 어디라도
같이 달려 너와 함께
저 끝까지 모든 꿈을
네게 줄게 내가 네 꿈
이룰게]
권노을의 후렴을 듣는 순간, 제이미의 온몸을 타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권노을의 후렴을 듣는 순간, 제이미는 깨달았다.
‘이건 이제 멈출 수 없다.’
제이미는 바로 검색 결과를 새로 고침 했다.
그리고 폭소했다.
갑자기 호의적인 글이 온 커뮤니티에 전방위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
심지어 영어로 된 글들이었다.
-와 미쳤다 미쳤다.
-주환희 벌스 뭐야! 이거 우리 들으라고 한 말 아니야? 걱정하지 말라고?
ㄴ 트렌드 느리시네. 기사 조작하다 걸림. 한국어로 해명 기사 뜸
ㄴㄴ 아니! 그런 정보 있으면 바로 공유 줘야지. 번역 좀요
ㄴㄴ니가 해.
-저 옷 대체 뭐임. 너무 예뻐. 나도 한 번만 저런 옷 입어봤으면 좋겠어.
-저런 남친 어디 없냐.
ㄴ 꿈 깨.
제이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홀린 듯이 키보드를 집어 무언가를 입력했다.
-얘들아 나 못 참겠다. 팬 페이지 만들란다. 붙을 사람?
ㄴ 저요 저요
ㄴ뭐래? 링크 불러?
ㄴㄴ 디스코드 지금 판다. 딱 기다려.
제이미는 그대로 디스코드 팬 페이지를 만들어 링크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오! 주환희 걔만 좀 조심했어도 무조건 우승인데! 걔는 왜 그랬대? 조심 좀 하지!!! 지금이 그딴 짓 할 때 얏!”
…과몰입의 시작이었다.
* * *
권노을은 자신의 노래가 전 세계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키는지도 모른 채로, 마지막 브릿지 파트를 준비 중이었다.
기분은 좋았다.
딱 봐도 관객 반응이 어마무시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춤을 추느라 노래에 풀파워를 쓰지 못했던 지난 무대와는 달리 이번 무대는 나는 아예 안무를 배제하고, 노래에 집중했다.
당연히 노래가 이전 무대보다 더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고민했었어
이 길만을 걸어갈지를
하지만 깨닫게 됐어
언제나 그랬다는 거를
너는 내 길을 비춰줬어
언제나 그랬듯이]
드럼부터 기타, 베이스, 코러스까지.
모든 악기가 켜켜이 쌓이면서 층계를 오르듯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동양풍 멜로디의 신시사이저가 추가됐다.
쾅!
팡파르와 같은 드럼 심벌즈 소리와 함께 노래의 절정 고음 애드립 파트가 나왔다.
[이제 나는 돌이켜 보겠어
행복할 수 있게 하겠어
조금만 시간을 줄래~!]
어마어마한 고음이었다.
지금껏 해왔던 고음과는 또 차원을 달리했다.
래~로 5초 정도 고음을 끌고는 다시 ‘워어어!’ 하는 애드립으로 한 번 더 높은 음을 치고 나갔다.
마지막에는 애드립으로 화려하게 스캣을 그리면서 용의 움직임처럼 변화무쌍하게 음을 그리면서 마무리했다.
펑펑펑펑펑!
그 고음 절정의 순간, 무대에 매화꽃이 피어났다.
‘이왕 무협 컨셉으로 간 거, 끝장을 봐야지.’
화산파의 절대 고수만이 피울 수 있다는 ‘매화’ 그 매화를 노래로 피우는 컨셉을 준비했다.
직접 천채왕이 공수해 온 생화가 무대에 흩날렸다.
관객들의 함성에 무대가 쿵쿵쿵 흔들릴 지경이었다.
원래 나는 ‘귀로 듣는 가수’였다.
아무래도 평소에는 비주얼에 신경을 덜 쓰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 ‘글로벌 비전’을 통해 점차 컨셉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급기야 이번 무대는 의상, 무대 장치까지 꼼꼼하게 신경 써서 비주얼 위주의 무대를 만들었다.
여지까지 무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구성의 무대였다.
‘이제 후회는 없어.’
뭐 그래도, 우승하면 조오오금 더 좋겠지만 말이다.
* * *
무대를 마치고, 우리는 바로 무대 뒤로 올라갔다.
의상을 턱시도로 교체하기 위해서였다.
옷을 갈아입은 후에는 바로 무대로 가 다른 무대 리액션을 따야 했다.
재호와 환희도 이번 무대는 제법 만족스러웠는지, 상기된 얼굴로 서로 하이 파이브를 했다.
옷을 다 갈아입고 나오고 있는데, 관객석에서 어마어마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무대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함성이 터진 이유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무대 쪽 화면을 확인한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외쳤다.
‘아니, 이건 또 뭐야?’
함성의 이유는 무대가 아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