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31화 (231/280)

제231화

김지태와 이전에 했던 전화 통화가 힌트였다.

김지태는 이미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폭로는 방송국 이사인 김종윤의 아버지와 예정 엔터 회장이 함께 짜고 친 전략이란 거군요. 선배님을 우승시키기 위해.”

김지태의 통화 음성이 떨렸다.

-사퇴하겠습니다.

그의 말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네?”

-이 대회, 사퇴하겠다고요.

솔직히, 마음이 좀 흔들렸다.

김지태는 비원더를 제외하면,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게다가 이번 미션 주제인 ‘힙합’은 김지태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강민정은 클래식 출신 뮤지컬 소프라노 가수였고, 바질 리스크는 정통 록밴드였다.

힙합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에 반해, 김지태는 힙합 댄서 경력자였다.

거기다가 김지태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보컬리스트이기까지 했다.

당연히 이번 미션에서 비원더를 제외하고는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그가 사라져 준다면 우리의 우승은 매우 확실시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지태에게 사퇴를 종용할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계속할 이유도 없지요.

“무슨 말씀이시죠?”

-저는, 후배님 당신과 가수 대 가수로 한 판 붙고 싶어서 나온 겁니다. 우승은 지금도 관심 없어요. 저는 해외 나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니, 솔직히 나가면 안 돼요.

“나가면 안 되실 것까지는 없지 않나요?”

-저에게는 한국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아.’

그 순간 나는 김지태의 상황을 이해했다.

김지태는, 해외를 나갈 수 없었다.

그에게는, 갓 아이를 낳은 임산부인 애인이 있었으니까.

글로벌 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여하면 최소 5개월 이상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경쟁에 참여해야 했다.

당연히 애인을 지켜줘야 하는 김지태로서는 꺼려질 수밖에 없는 조건.

그의 소속사인 예정 엔터는 가수의 의향과는 상관없이, 어떻게든 김지태를 우승시켜서 자신의 입지를 늘리려 하는 것이었다.

“선배.”

-왜요 후배님.

“걱정하지 마시고 최선을 다해서 해주세요. 제가 100%의 선배님을 꺾고 우승해 드릴 테니까요. 최선을 다한 선배님을 보고 싶습니다.”

김지태의 호방한 웃음소리가 전화기로 들려왔다.

-아하하하! 아~ 역시 권노을 후배 재밌어! 내가 사람은 잘 봤다니까. 그럼 내일 대결 제대로 붙어 봅시다. 하지만 선물은 하나 주겠습니다.

“선물이요?”

* * *

그 전화 통화 덕분에 나는 김지태가 무언가 ‘선물’을 전달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노트북을 보던 배영웅 매니저의 얼굴에 놀람이 번졌다.

‘얼굴을 보아하니 김지태의 ‘선물’이 도착한 모양이네.’

슬쩍, 나도 숙소 내 컴퓨터로 포털사이트를 확인해봤다.

월척이었다.

제목: 김지태, 소꿉친구와 열애 고백. 상대는 코러스 때부터 동료

소제목: 이혼 소송이 끝나 이제야 밝혀….

‘복잡한 상황이 정리되어 이제야 밝혀. 팬들에게 솔직한 게 도리라 생각.’

‘일반인인 애인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해 인적 사항은 밝히지 않겠다.’

당연히, 기사를 접한 네티즌들은 뒤집어졌다.

아무래도 10대 팬이 많았던 주환희 스캔들이 주로 젊은 커뮤니티에서 화제였다면, 전 국민에게 인지도가 있는 국민가수 김지태의 스캔들에는 온 커뮤니티가 뒤집어졌다.

특히 뉴스 댓글이 난리가 났다.

심지어 애인의 정체까지 네티즌 수사단은 금방 찾았다.

-저 애인이란 사람 이혼녀임. 애까지 딸림.

ㄴ 그걸 니가 어케 알어

ㄴㄴ 그건 말 못 해줌

ㄴㄴ내가 김지태 엄마다 ㅈㄹㄴ

ㄴ피치 재벌 대표랑 이혼했다는데?

ㄴㄴ거기 겜 개 재미없음. 다 갓챠던데

ㄴㄴ아 호구랑께요.

네티즌 수사대는 놀라운 수사력으로 재빠르게 진실에 접근해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주환희 스캔들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는 점이 비원더 입장에서는 중요했다.

천채왕이 기사를 살피며 말했다.

“여기도 불타고 있네. 하지만 그렇다고 환희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야. 어쩔래?”

천채왕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내가 헛기침을 한 후 대답했다.

“사과나 탈퇴는 안 됩니다. 인정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하늘이가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사실이잖아요! 인정해야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아닌데? 너 최근 반년간 연애 안 했잖아. 그래 봐야 작년 정도까지 아니야? 근데 이 기사 보면 지금까지도 맨날 여자 만나는 것처럼 썼어.”

기사를 꼼꼼하게 보면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무엇보다, 사진 중 엉터리가 몇 개 섞여 있었다.

그중 하나는 환희랑 서로 질색하는 외국인 방송인 ‘젤다’와 환희가 마치 사귀는 것처럼 편집한 사진이었다.

내가 그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사진! 너 젤다랑 이런 사진 찍은 적 있어? 완전 둘이 개랑 고양인데?”

“없어요….”

하늘이가 말끝을 흐렸다.

천채왕 프로듀서가 박수를 쳤다.

“그래! 이거는 쓸 만하겠네. 원본사진은?”

배영웅 실장이 말을 추가했다.

“알아보겠습니다. 보아하니 구룡도 콘서트 때 같네요. 맞지요?”

“네!”

최소한의 인력으로 매니지먼트 팀을 운영한 것이 이럴 때 힘을 발휘했다.

김나리 대리가 순식간에 원본사진을 찾아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원래 비원더 3인과 문루아까지 5인이 한꺼번에 찍었던 사진을 적당히 오려 붙여서 마치 2명이 함께 찍은 사진처럼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2006년, 아직 사진 편집 툴이 그렇게까지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조작이 너무 어설펐다.

게다가 대중들은 이 사진이 조작되었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어려웠다.

‘나처럼 미래를 아는 놈이 아니라면 안 걸렸을 수도 있겠지. 네 이놈, 잘 걸렸다.’

* * *

새벽까지 잠 못 이루던 비원더 팬덤 커뮤니티가 뒤집어졌다.

조간신문에 대형 단독 보도가 터졌기 때문.

[젤다, 주환희와 인사도 한 적 없다 황당]

(중략)

…젤다는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주환희와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번 본 게 전부’라며 ‘구룡도는 친분이 있던 문루아와 권노을을 마나 잠깐 인사했다. 주환희는 권노을과 같은 멤버여서 사진 한 번 함께 찍은 것이 친분의 전부’라고 밝혔다.

본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젤다와 주환희의 폭로 사진은 사실 비원더 3인과 문루아, 젤다까지 5인이 함께 찍은 사진을 편집한 것이었다.

심지어 매니저가 직접 찍은 사진이라 한다.

(후략)

커뮤니티에 댓글이 와르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역시 주작이었어. 색화… 아니 씹덕환희 믿고 있었다구.

-그래. 우리 환희는 2d밖에 안 좋아한다능~

-뉴스가 사진 조작해도 되는 건가요? 그게 수신료의 가치에요? 폐지 운동 갑시다.

ㄴ 일단 항의 트럭 박죠. 모금해주실 분?

-사실 우리 환희는 게이였어.

ㄴ 게이는 아님. 2d 여자 너무 좋아함. 인정할 건 인정하자.

ㄴㄴ 반박할 수 읍다 ㅋㅋㅋㅋㅋ

팬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엄밀히 말해 주환희의 모든 연애 썰이 무혐의로 판명 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 하나라도, 강고해 보이던 증거가 깨졌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비원더 팬덤의 기세가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팬덤이 반격을 시작하자 단숨에 인터넷은 주환희의 팬과 안티의 전쟁터로 변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났을 즈음에는 이미 온 커뮤니티가 댓글 전쟁으로 난장판이 된 후였다.

‘좌우지간 주환희 이 녀석, 어그로는 죽여주는군.’

환희는 거실 소파에서 쓰러져 자고 있었다.

노트북을 품에 안고 누워있는 걸 보니 날 세워서 민심을 체크한 모양이었다.

“차라리 컨디션 관리하게 잠이나 자지.”

“그게 되냐?”

재호가 소파에 누워있는 환희에게 이불을 덮어 주며 태클을 걸었다.

내가 슬쩍 환희 품 안의 노트북을 꺼냈다.

이런 걸 껴안고 자면 자는 것 같지도 않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화면에는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와 포털뉴스가 가득 떠 있었다.

재호도 기사를 확인했는지, 내게 물었다.

“야. 진짜 관심 장난 아니드라. 월드컵이나 대선인 줄 알았어.”

“우리나라 노래 대표를 뽑는 거니까. 약간 국가대표선발전 같은 느낌도 있지.”

“노래 국가 대표 선발전인데 연애 여부가 뭐 그리 중요하냐?”

이상론적으로 보면 재호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비원더는 애초부터, 아이돌 기획사인 TYB에 소속된 팀이다.

선발 또한, 의도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오디션 프로 ‘슈퍼스타 T’의 TOP4 중에 선발했다.

아무래도 비원더 팬덤은 아이돌 팬덤과 비슷한 분위기가 처음부터 형성됐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지금까지 유지됐다.

벌써 슬슬 사생팬이 많아져 이번 대회가 끝나면 동생과 새로 집을 알아봐야 할 판이었으니 말 다 했다.

하지만 이를 나쁘게만 볼 게 아니었다.

결국 비원더의 팬들은 우리에게 투표할 것 아닌가.

거꾸로 생각하면, 환희의 스캔들로 우리의 팬덤이 붕괴되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표는 크게 깎일 확률이 높았다.

충분히 패배의 원인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급히 젤다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젤다도 도와주겠다고 대답했다.

[주환희랑 만난다는 오해를 받느니 죽어버릴 거예요. 빨리 오해 풀어주세요.]

‘뭐, 둘 다 서로 싫어하니까. 리버스 천생연분인 건가?’

덕분에 회사 홍보팀과 연결해 빠르게 애드리아나의 해명 기사를 뿌릴 수 있었다.

아직은 조간 뉴스의 힘이 강한 2006년이었다.

새벽에 뉴스를 뿌려 두니 반응이 슬슬 왔다.

게다가 천채왕의 압박이 먹혔는지 통해 은근슬쩍 주환희 스캔들 기사가 인터넷에서는 내려갔다.

이미 신문과 방송으로는 기사 내용이 퍼졌지만, 원본 기사가 사라진 것만으로도 환희 팬덤의 사기가 오를 터였다.

내가 천채왕 프로듀서에게 요청했던 내용이었다.

일단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다.

이제는 최고의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데… 어째, 편곡자인 재호는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재호가 투덜댔다.

“힙합이라니. 상황도 안 좋은데 미션마저 너무 김지태한테 유명한 거 아냐?”

“뭐 우연이겠지.”

“이젠 우연 같지 않다구.”

카메라가 없는 우리 내부 숙소라서일까.

재호는 마음껏 속에 있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재호가 고생하기는 했다.

재호는 어디까지는 클래식, 혹은 밴드 음악 위주의 편곡가였다.

갑자기 1주일 만에 힙합곡을 써오라 하니 멘탈이 깨질 만했다.

다행히 나와 밴드 마스터가 ‘더 루츠’ 풍의 밴드 힙합을 하면 여지까지 우리가 해왔던 기조를 유지할 수 있다 제안했다.

덕분에 재호는 제정신을 유지한 채로 편곡을 완료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준비한 또 하나의 필살기가 있었다.

힙합이라고 하면 갱스터 랩 등 미국스러운 장면을 연상하게 되지만, 사실 힙합은 태초부터 동양풍을 애호했다.

오죽하면 쿵푸 영화에서 따온 ‘우탱 클랜’이라는 팀이 있을 정도.

이에 착안해 나는 아예 ‘무협 컨셉’으로 오리엔탈 사운드를 잔뜩 넣은 힙합을 해보자고 재호와 밴드 마스터에게 제안했다.

[야~ 노을이 너 천재 아이가! 함 해봐라!]

밴드 마스터는 물론, 재호까지도 내 아이디어를 흔쾌히 승낙했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해봐야지.’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미국 클리블랜드의 한 주택.

한국 드라마 ‘태조 왕건’ 덕후인 여대생 제이미가 퉁퉁 부은 눈을 한 채로 시리얼을 먹고 있었다.

부모가 자기 돈을 뜯어 가질 않나, 학점은 달랑달랑하지 않나, 다 때려치우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또 오늘의 일을 해야 했다.

이거만 보고 오전 맥날 알바 뛰다가 오후에 전공 수업 들으러 가는 일정이었다.

학비가 너무 비싸, 알바로 돈 벌면서 대학을 다녀야 하는 자기 신세를 생각하니 절로 쌍욕이 나왔다.

제이미는 아침을 먹으면서 볼 만한 방송이 없을까 싶어 쭉쭉 티비 채널을 돌렸다.

그러다, 한 동양인들이 나오는 방송에서 시선을 멈췄다.

“어? 뭐야 이거?”

화면 속에는, 구세주가 서 있었다.

아니, 사실은 그냥 가수인데, 제이미가 보기에는 구세주로 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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