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0화
“사실 불륜은 아니고요. 불륜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안 됩니다.”
배영웅 실장이 주변을 살폈다.
심지어 다른 멤버들도 안 들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가 귓속말로 내게 슬쩍 말했다.
‘김지태 씨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소문이 기자들 사이에 파다해요.’
그 말을 듣다 보니 내 눈앞에 김지태의 차에 있던 팬티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 팬티가… 그거였구나 싶었다.
“근데 뭐 여자친구가 있다는 거랑 불륜이란 건 온도 차가 좀 있는 말인 거 같은데요.”
“여자친구란 분이 남편이 있다는 거 같아요.”
“그러면 불륜이잖아요!”
배영웅 매니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생각하기 나름이죠.”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죠?”
어느새 마트에 도착한 우리는 카트에 물건을 담기 시작했다.
마침, 마트에는 아이 손을 잡은 채로 물건을 사고 있는 임산부가 한 명 보였다.
배영웅이 쇼핑 중인 산모를 슬쩍 보며 내게 말했다.
“…그 여성분, 남편이랑 이미 이혼 소송 중이거든요. 아이를 임신하자마자 비서와 바람이 났다네요? 이혼에도 아무런 장애가 없구요. 그러니까 불륜이라기는 애매한 거죠.”
“저런….”
쓰레기 같은 놈에게 걸렸구나 싶었다.
배영웅 매니저가 태연하게 말을 계속했다.
‘김지태’의 이름은 절대 올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원래 그 여성분하고 같이 코러스 하던 동료였다고 하네요. 이혼 소송을 겪으면서 힘들어하는 그분을 도와주다가 자연스럽게 연인이 됐다고 하더군요. 이혼 소송은 막바지고, 아이는 이미 태어나 버렸고요. 누가 봐도 안쓰러운 상황이라 연예부 기자들이 기사화를 안 하는 거 같습니다.”
나는 입을 꽉 다물었다.
뭐라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건을 가지고 마트를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배영웅 매니저에게 물었다.
“근데 그 이야기, 별것도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럼 그냥 공표하면 안 되나요? 차라리 그게 몰래 만나고 다니는 거보다는 나을 거 같은데요.”
배영웅이 슬쩍 내게 속삭였다.
‘그 남자. ‘피치 그룹’ 대표예요.’
피치 그룹이라고 하면 지금 한창 잘나가는 IT 앱 회사였다.
특히 게임을 연속 히트시키며 조 단위의 돈을 전 세계에서 벌고 있었다.
그 회사 대표도 워낙 유명해서 언론에서 몇 번이나 인터뷰했던 기억이 났다.
“그 사람이… 임신한 부인을 두고 비서랑 그런 짓을 했군요.”
배영웅 매니저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그 자체는 사생활이니까요. 알 바 아닌데 문제는 이혼 소송을 너무 더럽게 한다는 거예요. 로펌이 원래 그런가? 그래서 상대편도 절대 트집 안 잡히려고 교제 사실을 비밀로 한다고 하네요.”
“유명한 가수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면 좀 꼬이겠군요.”
“네 뭐, 곧 이혼 서류에 도장 찍으면 별문제 없어지겠죠.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김지태 선배도 힘드시겠네요. 복잡한 상황이네요.”
“뭐, 모두가 자기만의 지옥을 갖고 있는 법이니까요.”
걷다 보니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으니 자유롭게 배영웅 매니저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 있었다.
“근데 그게 막히나요? 아무리 훈훈한 이야기라고 해도.”
“그야. 예정 엔터가 어느 정도 로비력으로 막고 있는 게 있죠. 그 정도 기획사는 다 어느 정도 리스크 관리를 해줍니다.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구요.”
역시나 내 예상대로, 기획사의 입김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알게 모르게 그 기획사의 덕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지금도 그런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걸, 배영웅 실장님은 어떻게 아셨나요?”
배영웅 실장은 피식 웃어넘기더니, 마트에서 사 온 식료품을 하나하나 냉장고에 넣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기다렸다.
식품을 모두 넣은 배영웅 실장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질문이 잘못됐습니다.”
“네?”
“제가 어떻게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짐작하고 있으시지 않나요?”
사실이었다.
아마 그는 TYB와 두터운 친분이 있는 기자, 혹은 자신의 인맥에 있는 기자를 통해 이 정보를 습득했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은 ‘왜 나한테 그런 비밀을 알려 주느냐’였다.
“중요한 것은 이거죠. ‘왜 내가 노을 아티스트에게 이 말을 해줬느냐’입니다. 제가, 물어본다고 다 말해줄 정도의 사람은 아닙니다. 애초에 그런 사람은 연예인 매니저 자격이 없어요. 비밀은 최소한으로만 알고 있는 게 좋습니다.”
“그럼 왜 저한테 알려 주시는 걸까요?”
“저와 선생님은… 권노을 아티스트를 믿습니다. 아니, 다른 아티스트도 당연히 다 믿죠. 그런데 이건 다른 차원이에요. 권노을 아티스트는 노래뿐 아니라, 통찰력도 차원을 달리합니다. 저희는 솔직히, 대형 기획사라 가수는 그냥 노래만 하길 바라는 게 사실이에요. 노을 아티스트만 예외죠. 몇 번이나 회사를 구해줬으니까요. 애초에 조작 논란에서 회사를 구해 주면서 우리 회사에 오기도 했고.”
슈퍼스타 T 이야기였다.
그때도 나는 직업 TYB 기획사가 운영하는 오디션 프로에서 제작진이 멋대로 저지르는 비리를 회사에 알려 주었다.
덕분에 회사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몇 번이나, 권노을 아티스트는 우리 회사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이 정보를 미리 알려 드리는 겁니다. 혹시나 무슨 문제가 생길 경우, 권노을 아티스트의 인사이트가 필요할지 모르니까요. 비상시를 대비하는 거죠. 입도 무거우시니까요.”
“네에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도 했고, 긴장도 됐다.
글로벌 비전을 통해 ‘글로벌 스케일’이 되면서, 이미 MP3로 뭔가를 해결하기는 어려워졌다.
내가 한국 스케일의 놈이라서인지, MP3는 해외 스케일에서는 먹통이었다.
스탯도 MP3로는 이미 한계치까지 올린 상태였다.
이제 내가 의지할 것은 그동안 쌓은 나의 지식과 전략뿐이다.
제발, 내 전략을 쓸 일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배영웅 매니저가 피식 웃어넘기며 말했다.
“제발, 권노을 군의 도움을 받을 일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 * *
하지만 안타깝게도, 곧 그래야 할 일이 터졌다.
기사가 터졌다.
근데, 이게 김지태 기사가 아니었다.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보컬 그룹 B 그룹의 메인 작사가 J 군이 여성과 뽀뽀하고, 손잡고, 데이트하는 듯한 사진이 유출되었습니다. 모두 다른 여성입니다. 인종 또한 백인부터 중동계, 흑인, 남미까지 다양합니다. J 군의 여성 편력은 데뷔 전으로 돌아갑니다. 오디션 프로에 참가했을 당시 그는, 숙소에서 자신의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기곤 했습니다. 그 증거로, 합숙 미션에서 J 군은 커플티를 입은 채로 한 여성과 산책을 즐기곤 했습니다.”
…주하늘, 아니 정확히는 ‘주환희’의 기사가 터져 버렸다.
갑자기 작년, 슈퍼스타 T 시절부터 있었던 모든 스캔들이 몰아서 터져 버렸다.
모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투덜댔다.
“아니, 네티즌 저격 글이면 이해를 하겠어요. 스포츠 신문까지도 이해해. 근데 왜 뉴스에서 저런 기사를 20분이나 내보내는 거예요?”
재호가 말을 얹었다.
“그것도 하필 오늘.”
오늘은 결승 하루 전날이었다.
온종일 밴드와 함께 리허설하던 차에, 하필 이런 일이 터져 버렸다.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배영웅 실장은 물론, 천채왕 프로듀서까지 뉴스를 보자마자 급하게 비원더 숙소로 왔다.
배영웅이 찬찬하게 기사를 정리했다.
“커플티부터 애정 행각까지, 모든 내용에 다 사진이 담겨 있어요. 심지어 동영상을 찍은 경우도 있구요. 되게 선정적인 내용은 없는데, 좀 자료가 많긴 하네요. 한 2년은 이를 갈고 준비한 모양이에요.”
나는 궁금해졌다.
“대체 누굴까요?”
“저 방송국, 가수 김종윤 씨의 아버지가 임원으로 있는 방송국이에요. 원래 방송사 뉴스에서는 저런 연예인 스캔들 같은 걸 단독으로 치지는 않아요. 금기죠. 그걸 굳이 10분 넘게 할애했어요.”
천채왕도 배영웅 매니저의 말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게다가 보통은, 언론이 하루 전에 통보라도 하는데. 아예 말도 하지 않았어. 이례적이야. 기습 공격이었지. 개인적인 복수라고 보는 게 맞겠어.”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천채왕이 질문한 내게 시선을 맞추며 말을 계속했다.
“우선, 저 방송국은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지. 내가 가진 모든 걸 동원해서 매너를 주입할 예정이야. 천채왕이 너무 얕보인 거 같네. 그건 염려하지 말고. 내일 대회 말인데.”
주하늘이 천채왕의 말을 끊었다.
“사퇴하겠습니다.”
“주환희.”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내 말 끊지 마. 나 말 안 끝났어.”
“네… 네.”
천채왕의 말에는, 평소에 담기지 않았던 위엄이 느껴졌다.
항상 우리 비원더에게 친절하게 대해서 그렇지, 그는 대한민국 제일의 프로듀서였다.
이런 비상 상황에서 비로소 그의 실체가 실감이 났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나는 환희, 네가 우리에게 본래 성격을 숨기는 거는 연습생 시절부터 알고 있었어.”
아무도 말을 더 꺼내지 않았다.
천채왕이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 왜 성격을 숨겼는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도 계약을 계속하고는 싶지 않지. 게다가, 신인 가수가 연애라니 더더욱 문제고. 하지만, 최근에 환희가 바뀌었어. 본 모습을 배영웅 실장에게도 드러내고, 연애도 그만뒀다 하더군. 맞나?”
나와 재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영웅 매니저가 컨펌했다.
“맞습니다. 이제는 주환희, 아니 주하늘 아티스트는 저에게도 서슴없이 본 모습을 보여주고 계세요.”
천채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나는 기회를 한 번 더 주기로 이미 결심했어. 문제가 터지고 나서 고치는 게 아니라. 문제가 나오지도 않았고, 회사에서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고치려고 한 거니까. 그거면 됐어.”
주하늘이 비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선생님, 이대로는 비원더는… 우승할 수 없지 않을까요?”
“그건 이제부터 방법을 찾아봐야지.”
나는 슬쩍 인터넷을 확인했다.
역시나 세간의 평가는 짜게 식었다.
특히 포털 댓글이 악플로 도배가 됐다.
-이럴 줄 알았음. 인맥 질로 김종윤 떨어뜨릴 때부터 알아봤다.
ㄴ 그러니까 왜 나대가지고.
-글로벌 비전이란 게 글로벌 호색한 뽑는 건가요?
-주환희는 솔직히 원재호처럼 잘생긴 거도 아니고. 권노을처럼 노래가 지리는 거도 아닌데 왜 껴주는 거임? 그냥 버스만 타면 되는데 그걸 지가 걷어차네. ㅋ
ㄴ 개 공감. 누가 보면 연애나 처하고 에이스인 줄.
그냥 공식 키워드인 ‘주환희’나 ‘비원더’를 쳤을 때 나온 반응이 이 정도고, 키워드를 ‘색환희’ ‘호색희’ 이런 식으로 조금 바꿔 보면 정말 심하다 싶은 조롱 글이 쭉쭉 나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팬클럽 분위기는 그에 비해서는 괜찮았다.
-회사가 빨리 대응해야지 뭐 하는 거임?
-공식 발표 나오기 전까지는 쉿. 우리는 공식 자료만 믿는 거임.
-뽀샵질 한 거 아닌가?
-오빠가 연애 좀 할 수도 있지. 그래도 티는 안 냈네. 걸리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ㄴ ㅇㄱㄹㅇ. 몰래 연애하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쳐도, 걸리지 않게 하라고! 비원더 지금 갈 길도 먼데 아오!
-왜 하필 결승전에 이 지랄이냐.
우울감도 있고, 분노도 있지만, 하여튼 비원더를 손절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수습이 가능할 거 같았다.
슬쩍 시선을 돌려 다른 사람들을 봤다.
천채왕을 중심으로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화이트보드에서 뭔가를 이야기 중이었다.
내가 슬쩍 그들에게 다가가 제안을 던졌다.
“제가 제안할 게 있는데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