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29화 (229/280)

제229화

이태원 호텔 지하의 한 클럽.

흔히 보기 어려운 대왕 VIP가 행차했다.

휴고 보스 차람의 회색 정장에, 올백으로 넘긴 화려한 금발, 알마니 티셔츠에 최고급 이탈리아 수제 구두까지 그야말로 온몸이 고급진 손님이었다.

세계 제일의 파티 플래너인 스카티 블랙이 VIP의 정체였다.

오늘 그는 빌릴 수 있는 가장 거대한 룸을 잡고는 흥겹게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그의 클라이언트 중, 최대 클라이언트가 갑자기 불쑥 그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무슨 일이야 마리?”

자신도 모르게 스카티 블랙은 얼굴을 찌푸렸다.

마리 록하트는 스카티에게 상당히 불편한 존재였다.

세상에 겁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스카티지만, 미국을 대표하는 재벌 가문인 록하트에게만은 접어 두어야 했다.

록하트 가문이 원하는 파티를 만들어 주고, 대신 록하트 가문에 재정 지원을 받는 일이 스카티의 주 수입 중 하나였다.

록하트 가문 자체는 스카티와 공존 관계지, 딱히 문젯거리는 아니었다.

문제는 ‘마리’였다.

마리는 다른 록하트 가문 인물과는 달랐다.

항상 냉정했고, 모든 행동에 무언가 꿍꿍이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스카티는 마리를 만날 때는 긴장해야만 했다.

‘좀 멍청해도 단순해서 편한 론이 서울에 있다 해서 놀러 왔더니만, 마리가 왜 왔지?’

스카티는 불만은 마음속에 숨긴 채, 마리에게 영업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리가 손짓으로 룸 내에 모든 사람들을 내보냈다.

우아한 와인색 차이나 드레스가 너무도 잘 어울렸다.

마리가 탁자 위에 있는 탄산수를 집어 마시며 말을 걸었다.

“서울은 웬일이야? 네가 서울에서 파티할 리는 없을 테고.”

“글로벌 비전도 구경할 겸, 겸사겸사.”

“글로벌 비전을? 네가?”

“록하트의 일이 곧 내 일이지.”

“론하고 같이 무슨 사고를 또 치려고?”

스카티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잔소리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아니, 이걸 보여주려고.”

마리의 수행원이 노트북을 꺼내 어떤 영상을 보여주었다.

2006년 말인 요즘, 한창 주목받고 있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너튜브에 업로드된 동영상인 듯했다.

“나도 너뷰트 좋아하지. 힙한데 마리?”

“더 힙한 건 그 안에 담긴 영상이야. 확인해 봐.”

스카티가 슬쩍 영상을 확인했다.

동양인 남자 세 명이 춤을 추는 광경이 담겨 있었다.

갑자기, 세 사람이 어깨를 으쓱대며 엘비스의 노래에 맞춰 리듬을 탔다.

분명 굉장히 훌륭한 보컬이었고, 세 남자의 춤도 괜찮았다.

특히 가운데에서 춤을 리드하는 친구는 전문 댄서라고 해도 믿을 정도.

그런데 왠지 웃음이 나왔다.

50년대 미국을 주름잡던 올드팝인 엘비스의 노래에 맞춰, 동양인 남자 3인이 진지하게 춤을 춘다는 점이 상당히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노래도 춤도 훌륭해서 더더욱 그랬다.

스카티가 파하하 웃으며 말했다.

“재밌는데? 이런 영상 어디서 구했어? 오히려 ‘진지하게 노래하고 춤춰서’ 더 웃긴데?”

“구하다니. 조회수 봐봐.”

“조회수?”

스카티가 시선을 돌려 조회수를 봤다.

‘1천만???’

아직 힙스터만 보는 너튜브에서 이런 황당하게 높은 조회수는 또 처음이었다.

댓글도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영어로, 스페인어로, 중국어로, 또 아랍어까지 온 세계의 언어로 반응이 담겨 있었다.

-이 영상 나처럼 브라질에서 보고 있는 사람? 가운데 남자 너무 귀엽지 않아? 내 스타일이야!

-엘비스가 최고야. 이건 가짜야.

-네 다음 어르신. 난 좋기만 하구만.

-개 웃기네. 코미디언 그룹임?

-비원더라고. 한국 최고의 보컬 그룹일걸. 이건 글로벌 비전 지역 예선 무대고. 한국노래 좋아해서 몇 번 들어봄.

-권노을 오빠 만세! 미국에도 와주세요~.

-2016년에도 엘비스 듣는 사람 손?

-노래는 또 왜 쓸데없이 잘 부르는 건뎈ㅋㅋㅋㅋ

-슈퍼맨 춤이지? 어깨를 으쓱으쓱 하는 게.

-요즘 힙합이니 트랩이니, 요상한 것만 하는 데. 저 동양인들이 오히려 진짜 음악을 아네. 요새 음악은 엘비스 같은 소울이 없어요.

스카티의 파티 플래너의 직감이 그에게 외치고 있었다.

이 친구들이 곧 슈퍼스타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미국에서 파티 플래너는 단순한 파티 플래너가 아니었다.

단순히 남녀가 만나는 곳이 아니기 때문.

정치 금액 모금, 인맥 형성, 승진 결정, 심지어 가수 계약까지 온갖 중요한 일이 모두 파티에서 이루어졌다.

파티를 장악하는 자가 세상을 제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스카티 블랙은 대학 시절부터 곧 스타가 될 것만 같은 예비 셀럽을 감각적으로 영입해 자기 파티에 영업했다.

그의 날카로운 직감 덕분에 그는 지금 월가 대형 투자자부터 정치가, 민티를 소유한 록하트 가문과 같은 재벌, 심지어 음악가들까지, 거미줄 같은 인맥을 갖게 되었다.

모두 미래에 스타를 찾는 스카티의 ‘직감’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스카티 블랙의 직감이 지금 말하고 있었다.

이 영상 속의 이 3인조는 분명 뜰 거라고 말이다.

‘아마 내가 본 동양인 남자 중 처음으로 발견한 스타의 재목 아닐까?’

마리가 여유 있는 미소를 띤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제야, 좀 관심이 동한 모양이네.”

“이 사람들 누군지 알고 있어?”

“물론이지. 스카티, 네 파티에 참석시킬 만한 사람이지?”

스카티가 재미있다는 듯, 마시던 데킬라를 바닥에 내려놓고 대화를 계속했다.

“초대장을 보낼 만한 가치는 되는 거 같네.”

“초대장? 이 친구들, 그 정도가 아니야.”

마리가 지시하자, 마리의 수행원이 너튜브에서 다음 영상을 보여줬다.

이스트 웨이브의 인터뷰였다.

“퐈이어 키드! 내가 지금 가장 주목하고 있는 뉴커머지. 이번 신보, 퐈이어 키드와 함께 만들었으니 기대하라고! 웨잇!”

“…….”

스카티 블랙의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이스트 웨이브는 현재 참여하는 곡마다 빌보드 30위권에 안착시키는 무적의 스타다.

그런 그가, 완전 무명의 동양인 남자 가수를 전폭적으로 밀어주었다.

심지어 자기 정규 앨범의 리드 싱글에 기용했다.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재미있네! 왜 마리 네가 여기까지 행차해서, 나한테 이 친구들을 알려 줬는지 알겠어.”

“뭔데?”

“이 친구들을 데려와서 파티하라는 거 아냐? 지상 최대의 파티를.”

마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론 안 되지.”

“그럼?”

“너랑 론이 하는 마약 파티보다 재미있는 파티를 만들어와. 누구도 안 와서는 못 배길 그런 파티. 저 세 사람도 좋은 미끼가 되겠지.”

“저 녀석들 영업은?”

“내가 책임지고 데려오겠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록하트 집안은 군림하는 집안이었다.

그 노하우는, 바로, 무력이 아닌 ‘파티’였다.

돈을 퍼부어 시민들에게 향락을 느끼게 해주면 그걸로 충분했다.

사람들은, 그들이 이미 누리고 있는 향락을 포기하지 못하고 록하트에게 충성을 바쳤다.

힘으로 하는 지배가 아닌 쾌락으로 하는 지배였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번 새로운 뉴페이스가 필요했다.

현재 빠르게 전 세계의 스타가 되고 있는 비원더라면, 딱 각이 나왔다.

‘여자인 내가 록하트 집안에 가주가 되려면 압도적인 실적이 필요해. 그러자면 내가 주최하는 모든 파티는 최고여야 하지.’

물론 파티는 위험했다.

폭력, 마약, 심지어 성 관련 문제가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건 마리에게는 알 바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그저, 이용하고 버릴 뉴페이스가 필요한 것뿐.

마리에 머릿속에는 벌써 비원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계획이 착착 수립되는 중이었다.

* * *

“비원더가 히트 가수 공식을 바꾸고 있데요. 라디오 DJ와의 친목질에서 너튜뷰 춤 영상과 ‘짤’로.”

배영웅이 우리에게 해외 언론 기사를 읽어주고 있었다.

해외 바이럴이 커진 이후, 배영웅 실장은 매일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외신 기사들을 알려줬다.

요새는 우리가 해외에서도 활동하지도 않은 한국어 노래가 빌보드 탑 200에 들고, 독일 총리가 우리 노래를 좋아한다고 인터뷰를 하는 등, 꿈만 같은 기사가 계속 튀어나오고 있었다.

매일 매일, 배영웅 실장이 비슷한 기사를 읽어주는데도 늘 새롭고 짜릿했다.

“…여기까지입니다. 저희 앨범이 지금 아이튠즈 40개국 1위라네요. 아시아는 거의 전부 다 정복했고, 심지어 네덜란드나 독일, 그리스 같은 일부 유럽 국가에서도 아이튠즈 앨범 차트를 정복했어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네요.”

내가 솔직하게 말하자 배영웅 실장이 피식 웃었다.

“꿈은 아닙니다.”

“알고 있어요!”

재호가 나와 하늘이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자자. 이제 우리, 다음 미션 준비 해보자고. 단체 곡 준비하느라 정작 우리 개인 곡 준비가 아직 안 됐어!”

하늘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션 너무했어요. 민티 CM송을 쓰라니.”

마지막 미션은, 정말 자본주의 냄새 가득한 방송이었다.

자작곡 대결인데, 반드시 지금 이미 흘러나오고 있는 민티의 CM송을 샘플링해야 했다.

사실상 민티 CM송 홍보 방송이었다.

배영웅 실장이 대답했다.

“예전에 저희 가수가 출전하기 전에는, 글로벌 비전에 출연한 가수들이 시리얼을 주제로 곡 쓰고, 자동차 뮤직비디오 찍고. 이런 미션 수행하는 게 당연하다 여겼거든요? 이제 보니까 전혀 아니네요. 제 가수가 경험해보니까 이거 완전히….”

“양아치죠.”

하늘이가 말을 잇지 못하는 배영웅 매니저 대신 말을 끝맺어 주었다.

재호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거 샘플링을 뭘 하긴 해야 하는데. 다 너무 광고음악스러워서 쓸 게 없어. 차라리 CM송을 새로 만들라던 이전 미션이 훨씬 쉬웠네.”

“형 그럼 이 CM송에 피아노 멜로디만 따보는 건 어때요? 그 멜로디는 좀 듣기 좋던데요.”

“이 멜로디는 세련됐는데, 그것만으로는 샘플링한 것 같지가 않아.”

내가 슬쩍 끼어들었다.

“후렴을 그냥 써.”

“미쳤냐? 너무 구리잖아.”

“후렴 파트는 프로그램을 써서 대놓고 목소리 피치(* 음)를 올려버려. 그러면 꼭 악기처럼 들릴걸? 누가 봐도 CM송처럼 보이면서 되게 세련되게 들릴 거야. 악기가 아니라 목소리를 악기처럼 쓰는 거지.”

“오…! 미친, 그런 아이디어를 어떻게 냈냐? 한 번 해볼게.”

응 그거 미래에 유행한 아이디어야.

이스트 웨이브가 2007년도에 저걸로 빌보드를 아주 잡아먹더라 그냥.

하지만 내가 회귀자란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재호와 환희는 순수하게 환호하면서 곡 작업을 시작했다.

다행히도 내 힌트가 곡 작업에 돌파구가 돼 준 모양이다.

“형…! 대박인데요 대박! 재호 형. 여기 한번 따보죠?”

“그래!”

재호와 하늘이가 신나서 곡 작업을 시작했다.

내가 슬쩍 배영웅 실장에게 물었다.

“저 잠시만 외출하고 싶은데, 같이 가주실래요? 안전상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셨으니까.”

“좋습니다.”

* * *

배영웅 매니저와 함께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로 동네 마트로 갔다.

재호와 하늘이가 곡 작업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재호 취향의 허브티와 하늘이 취향의 탄산음료를 사러 가기 위해서였다.

주환희는 운동하는 캐릭터여서 매일 단백질을 먹었다면, 주환희의 본모습은 패스트푸드도 즐겼다.

…그러고 보니, 요새 하늘이는 아예 ‘주하늘’의 본 인격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다.

영어권 대중 대상으로 활동을 시작한 김에 아예 자신의 본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지금의 환희는 겉모습만 꾸며진 주환희일 뿐, 사실상 주하늘이었다.

그 말인즉슨, 배영웅 매니저 앞에서도 서슴없이 ‘주하늘’의 모습으로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배영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환희의 본 모습이 ‘주하늘’이었다는 걸 예전부터 알았다는 거겠지.

이 사람이 대체 나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그러고 보니….

“아, 실장님.”

“네?”

“그러고 보니, 김지태 선배에 대해서 궁금했던 점. 알아보셨나요? 성과가 있었나 궁금해서요.”

“아, 김지태 씨 불륜 스캔들 말이군요.”

“헉!”

내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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