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28화 (228/280)

제228화

론과 마리는 녹음실 밖에서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둘은 남매지만 불편한 사이.

나이 차이는 2살밖에 나지 않았고, 심지어 어머니도 달랐다.

민티 그룹 후계자를 두고 다투는 암묵적인 경쟁자라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지금은 둘이 협력해야 할 처지였다.

론이 먼저 말했다.

“어쩌냐? 이대로는 우승자가… 킴이 안 될 거 같은데.”

킴은 김지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마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큰아버지 픽이었지? 미스터 킴이?”

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아버지는 회장은 아니지만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었다.

그가 원하는 사람이 우승하는 것은 집안의 이익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김지태가 탄력을 받을 만할 때마다 사사건건 비슷한 타입의 비원더 권노을이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미스터 킴의 비중을 키워야 해. 설사 최종적으로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노력은 했다는 걸 어필할 수 있게.”

마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가능하겠어? 무리수 아냐?”

론이 마리를 쏘아봤다.

“무리수라니, 나를 뭐로 보는 거지 시스터? 애초에, 코리아의 예선은 내가 맡았었는데. 너는 왜 한국에 온 거지? 나를 믿지 못하는 건가? 아시아 최고 중요 대회인 일본 예선을 네가 주최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한국 예선까지 차지하겠다는 거야?”

영어 문화권에서는 굳이 형제 사이에 존댓말을 하지 않는다.

살벌하게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재벌가라면 더더욱 나이가 한두 살 위라고 서열이 정해지지 않았다.

오로지 실력이다.

마리가 피식 웃었다.

나이도 두 살 어리고, 심지어 여성의 몸이지만, 집안에서의 랭크는 마리가 위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론의 분노도, 귀엽게만 보였다.

“브라더. 나는 그렇게까지 너를 신경 쓰지 않아.”

론의 동공이 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리는 팔짱을 낀 채로 말을 이어갔다.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글로벌 비전이 왜 굳이 예선 참가 국가를 한 곳 늘렸는지. 사업적으로 가치가 있다기엔 너무 작은 나라였으니까.”

“음흉한 속셈 없이는 집안 부엌도 안 오는 네가 그냥 놀러 왔다고? 그걸 내가 믿으라는 건가?”

마리가 말을 잘랐다.

“각설하고. 이런 말 하긴 미안하지만. 론, 네 스타일은 좀… 무리수가 많아. 쓸데없는 적을 만들지. 우리 가문의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 미리 확인하는 의미도 있어.”

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쓸데없는 참견이야! 여튼 김지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일본 일 봤으면 꺼져. 어어! 존스, 녹화 말인데.”

론은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통화하며 사라졌다.

마리는 여유 있게 미소를 지으며 오빠의 퇴장을 바라봤다.

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마리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존스’라면, 지금 글로벌 비전 예선에서 활약 중인 하우스 밴드의 밴드 마스터이자 기타리스트인 ‘조나 존스’를 말했다.

아마, 밴드 마스터를 통해서 어떻게든 김지태에게 유리하고, 비원더에 불리한 상황으로 단체 곡 미션을 끌고 갈 생각이겠지.

자존심이 강해 스폰서의 말을 듣지 않는 심사위원장 바네사와는 달리, 조나 존스는 철저하게 스폰서의 ‘개’였다.

스폰서인 론이 향락적인 파티로 존스를 철저하게 구워삶은 덕분.

하지만 마리의 생각은 달랐다.

‘큰아버지가 킴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동양의 소국의 예선에 불과해. 그렇게 깊이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야. 큰아버지 성격상 그냥 지인이 있으니까 반가워서 지나가듯 한 말이겠지. 론이 말 한마디에 너무 꽂힌 거야.’

그게 론의 약점이었다.

너무 성급하다.

가볍게 상황을 재단한 후, 깊은 고민 없이 자신의 짧은 생각대로 문제를 해결하려 무리수를 두다 문제를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반해, 마리는 냉정했다.

문제의 본질을 지그시 바라봤다.

굳이 전 세계에 손꼽히는 탄산음료 회사인 민티가 천문학적인 돈을 써가며 ‘글로벌 비전 송 콘테스트’를 주최하는 이유는 단 하나.

콜라 회사보다 후발주자인 ‘민티’의 인지도를 키우기 위해서였다.

민티를 유명하게 해줄 가수라면, 심지어 민티의 취약 시장인 아시아에서 그게 가능한 가수라면 누구라도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어제 마리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비원더의 권노을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쩌면, 권노을을 미는 것이 민티에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한 번 알아봐야겠어.”

마리의 관심이, 권노을에게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 * *

파트 배분 연습이 끝나고, 김지태가 권노을을 불러 세웠다.

김지태와 함께 녹음실 근처 베란다로 몰래 빠져나왔다.

김지태는 말보로를 태웠고, 나는 맹물을 마셨다.

김지태가 말했다.

“아직 밴드 리허설이 남았지만. 내가 졌습니다.”

“무슨 말이시죠?”

김지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녹음실의 ‘공기’를 느꼈죠? 그거만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내 노래가 아니라 후배님의 노래에 집중했다는 걸. 설마 이런 팝 발라드에서 연기나 톤, 고음이 아니라 ‘바운스’에 집중할 줄이야. 내가 한 방 먹었군요.”

“과찬이십니다. 가장 인상적인 ‘브릿지’ 파트는 김지태 선배가 맡으셨는걸요. 저는 김지태 선배가 이겼구나 생각했었어요.”

“아니죠. 아니죠. 노을 씨가 맡은 부분이 킬링 포인트에요. 1절 후렴과 마지막 후렴. 게다가 2절 벌스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가져가셨고.”

파트 배분 대결 결과는 애매했다.

얼핏 보면 무승부로 보였다.

김지태는 가장 임팩트 있는 고음 파트인 브릿지 파트를 가져갔다.

하지만 나는 곡 전체의 느낌을 좌우하는 1절 후렴과 2절 벌스, 그리고 곡을 갈무리하는 마지막 후렴까지, 주요 후렴을 모조리 독식했다.

그에 반해 김지태는 가장 임팩트 있는 브릿지 파트를 가져간 것을 제외하면, 2절 후렴 부분 외에 특별한 파트가 없었다.

딱 부러지게 승패가 나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굳이 말하자면 이 정도 차이는 ‘누가 본 방송에서 노래를 잘 소화하느냐’에 따라 갈릴 정도의 차이였다.

마음을 정한 후, 김지태에게 대답했다.

“일단 무승부로 하시죠.”

“무승부요?”

“차라리, 결승 결과 가지고 내기하시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무승부에 가까운 거 같은데요? 어차피 단체 곡 퍼포먼스도 최종 투표 표심에 영향을 미칠 거예요. 결승 결과로 하면 판결이 애매하지 않죠.”

김지태가 헛웃음 소리를 내며 되물었다.

선글라스 덕분에 눈빛이 보이지 않아, 속내를 알기 어려웠다.

“괜찮겠어요?”

“무슨 말씀이시죠?”

“결승에서도 지고, 내기에서도 지고. 그렇게 되면 노을 군에게 너무나도 아름답지 않은 날이 될 거 같은데. 아직 창창한 친구한테 그런 날을 선물하고 싶지 않은데요.”

자신감이 목소리에 묻어나왔다.

하지만 선전포고를 받으면 되갚아주는 게 예의다.

“선배님 내기 받겠습니다. 대신 부가티 말고 소원 하나 들어주세요.”

“내게는 차 말고는 줄 게 없습니다만.”

“보면 알겠죠.”

내게는, 김지태의 소유물 중 탐나는 것이 있었다.

부가티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었다.

점점, 결승에 걸린 판돈이 커지고 있었다.

* * *

컨퍼런스 홀에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온통 플래시가 터지는 통에, 눈이 부셨다.

“노을 오빠! 여기 한 번 봐주세요. 손가락 하트! 손가락 하트!”

‘하하.’

내가 손을 흔들어 주고는, 손가락 하트를 하자 ‘꺄아~’ 하는 소리가 났다.

찍덕 팬까지 생길 줄이야.

‘게다가, 팬분들이 여기는 어떻게 왔지?’

재호가 내 어깨를 톡 쳤다.

“왜?”

“치사하게 너만 하냐?”

“저도 같이할게요 형!”

재호랑 환희까지 껴서 찍덕에게 종합 하트 세트를 선물했다.

“꺄아아!!!”

“외모 신동 원재호!”

“오빠가 나 보고 웃었어~”

심지어 찍덕만 온 게 아니라, 프로 데이터 팔이 아마추어 사진가(?)들까지 붙은 모양이었다.

익숙한 얼굴이 많이들 보였다.

하긴, 오늘은 그럴 만한 자리였다.

지금 내가 온 곳은 ‘글로벌 비전 송 콘테스트’ 미디어 데이 콘퍼런스였다.

처음에는 그냥 ‘기자 회견’이지, 무슨 미디어 데이라고 거창하게 말하나 싶었다.

내가 틀렸다.

기자가 평소보다 100배는 족히 더 많이 왔다.

게다가, 그중 최소 어림잡아 80%는 외신 기자였다.

아니, 한국계 외신 기자가 있을 거란 걸 감안하면 90%인가?

여튼 그야말로 국제적인 미디어 데이 행사였다.

새삼 ‘글로벌 비전’이 전 세계인의 관심사란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기자 회견 중에는 더욱 곤란한 상황이 벌어졌다.

“질문 있습니다~. 권노을 군. 이스트 웨이브랑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아예, 오디션 프로 심사위원과 참가자로 만났습니다. 이후에 먼저 연락을 주셔서….”

“권노을 군에게 질문하겠습니다. 보컬이 정말 출중한데요. 대체 언제부터 노래를 시작하셨고, 어떻게 노래를 트레이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중학교 때, 팝송 경연대회에 나간 친구 재호를 보고 노래에 빠지게 됐고요. 연습은 기본에 충실하고, 다른 가수 노래를 많이 들으려고 합니다.”

“권노을 군 질문입니다. 이스트 웨이브의 다음 신보 피처링에 참여하신다고 들었는데요. 활동 계획은 세우셨습니까?”

이거, 아무리 대답해도 질문이 끝이 없었다.

“권노을 군에게 질문하겠습니다.”

“권노을 군에게 질문합니다.”

“노으루 쿤. 질문입니다.”

민망할 정도로, 외신 기자들이 내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대답을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내가 귓속말로 하늘이에게 물었다.

‘야 이거 왜 이래? 왜 나한테만 질문이 몰리지?’

‘형 질문 중심으로, 비원더가 거의 전체 중 60% 정도 질문을 독식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 우리한테만 마이크가 오잖아요?’

일단은 ‘최선을 다하겠다.’ ‘영광이다.’ ‘잘 모르겠다.’ 등 틀릴 수가 없는 에프엠 대답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개중에는 도저히 정석으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있었다.

“권노을 군 우승 확률을 어떻게 보시나요? 우승하시면 생각하신 세레머니는 있으신가요?”

“생각 안 해봤는데요.”

“지금 생각해봐 주세요.”

“음….”

머리를 슬쩍 굴렸다.

김지태 선배가 가장 위험한 라이벌이리라 짐작했다.

적어도 5:5, 50% 정도 우승 확률은 있어 보였다.

“50%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되거나 안 되거나. 엉터리 수학이지만 마음 편하게 그렇게 생각 중입니다. 우승자는 하늘이 내리는 거 같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세레모니는 진짜 생각이 안 나서요.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우승하고 해보겠습니다.”

나름 과하게 자기를 낮추지 않으면서 적당량의 자신감만 보여주었다.

다행히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드디어 외신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끝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여성 기자가 손을 번쩍 들고는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권노을 군, 해외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이스트 웨이브와의 피처링 작업 외에, 해외 진출 계획은 있나요?”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요? 제가요?”

금시초문인 이야기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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