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6화
강민정이 소개한 곳은 스포츠 마사지 샵이었다.
마사지 샵에 가보니 정작 강민정은 없었고, 마사지사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아아아! 아아아!”
마사지사가 가열차게 내 몸을 비틀었다.
심지어 강민정 선배도 없으니, 완전히 당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서서히 풀려왔다.
그리고 내 옆에는, 오랜만에 만난 문루아 선배가 옆 침대에서 마사지사에게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내가 문루아 선배에게 물었다.
“좋네요.”
“당연하죠. 그러니까 내가 왔죠. 무슨 생각하는 거예요.”
문루아 선배가 뾰로통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눈빛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강민정 선배는 왜 안 오시나요.”
“오늘 안 왔어요. 이제는 거리를 좀 두고 싶네요.”
“왜요.”
“왜긴요, 이제 다음 주면 진짜 마지막 결승이잖아요? 적이랑 친한 척하기 싫겠죠.”
그러고 보니 이제 글로벌 비전 한국 예선도 막바지였다.
벌써 다음 주가 마지막 무대였다.
그리고 비원더는, 근소한 차이지만 종합 점수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충분히 견제할 만했다.
일정을 떠올려 보니 새삼 이제 정말 최후의 대결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떻게, 마사지 샵은 끊어 주셨네요? 적한테 좋은 일을 해주시네요.”
“미운 놈 떡 하나 준다는 뭐 그런 거겠죠. 벌써 시간 늦었으니까 10분만 더 받고 다들 자러 가요.”
마사지를 받는 동안 이런저런 기억을 떠올려봤다.
그러고 보니, 바질 리스크 요한 선배도 오늘 무대가 끝나고 비슷한 말을 했었다.
[나 이번에 영국 밴드 레이블에서 연락받았다. 계약 논의해보자고. 조건은 글로벌 비전 본선 진출이야. 이제 장난으로 할 수가 없게 됐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 줄 테니까. 각오해.]
바질 리스크 또한, 우승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하긴, 그렇게 치면 김지태 선배는 더더욱 진지해져서는 갑자기 자기 차까지 걸면서 열의를 불태우고 있고.’
문루아 선배가 내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민정이가 노을 씨랑 김지태 선배랑 이야기하고 있었다는데, 맞아요.”
“마침 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이야기 했어요.”
잠시 고민했다.
아무래도 예정 엔터테인먼트가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는 아직 선배에게 하지 않는 것이 맞아 보였다.
100% 확신이 없었다.
김지태 선배가 얼마나 연관되었는지도 몰랐고, 말이다.
“그냥 노래 이야기했습니다. 저 근데, 김지태 선배는 차 좋아하시나요.”
“그럼요. 그분 노래 외에는 딱히 취미도 없고, 가족은커녕 여자친구도 없다고 들었어요. 오로지 자동차 외길 인생일걸요? 엄청 비싼 차일 텐데? 뭐더라.”
“어떤 차인지까지는 모르시나요.”
“네 잘 몰라요.”
“음….”
혹시라도 내가 이기면 저 차도 내 것이 될지도 모르니까, 자동차에 대해서 알아보는 게 좋겠다.
* * *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포털 기사를 확인했다.
[비원더, 무대 찢다!]
[권노을, 엘비스 연상시키는 강렬한 애드립으로 여심 찢어.]
[우승 1순위 권노을, 광폭 행보 어디까지?]
“휴~.”
다행히도 내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아무래도 비원더가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가 아니겠냐는 예상이 가장 많았다.
인터넷 커뮤니티 반응도 흥미로웠다.
-권노을은 영어로 노래할 때 무슨 팝가수 같지 않냐?
ㄴ 이거 맞음. 한국 가수처럼 느껴지질 않음
ㄴㄴ 그야 팝가수보다도 노래를 잘하니까.
-권노을은 이미 월드 스타인 듯? 이번에 이스트 웨이브 앨범에 피처링했다는데?
ㄴ 구라 즐.
ㄴㄴ ㅋㅋㅋㅋ 진짜거든? 이스트 웨이브가 직접 인터뷰서 말함.
-다 필요 없고 권노을 점점 잘생겨지지 않아? 성형 수술했나?
‘…성형수술 같은 건 안 했는데!’
내 이름을 검색하면 ‘권노을 성형수술’이라고 연관 검색어가 나올 정도로 내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부쩍 많아졌다.
아무래도 무대를 계속해서 진행하면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점점 나를 신경 써주기 시작한 모양이다.
MP3는 고이 넣어둔 지 오래였지만, 아마 MP3로 스탯을 확인해본다면 외모 스탯을 한 A-정도까지는 찍지 않았을까?
인지도까지 늘어서 그런지, 요새는 대한민국 4대 남성 보컬에 권노을을 넣어줘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까지 커뮤니티에 나오기 시작했다.
=
[우리나라 보컬 등급 정리]
오랜만에 보컬 서열 정리하고 있는데 애매한 게 있어서 적어 봄. 솔직히 오창선하고 권노을, 누가 더 낫냐? 나는 권노을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오창선이라는 사람들도 있던데 어케 생각함?
=
댓글란은 전쟁터였다.
그래도 히트곡이 많고, 오랜 기간 활동했던 오창선이 낫다는 사람들과 전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고, 최신 히트곡이 있는 권노을이 비벼볼 만하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반반이었다.
-권노을이 솔까 낫지. 다른 한국 발라드 가수들은 잘나가도 기껏해야 한국물에서 논 거 아냐. 나 일본 갔는데 권노을 솔로 노래 자꾸 나오더라. 그것도 한국 말 루. ㅠㅠ 시부야 한가운데서 한국말 울려 퍼지니까ㄹㅇ 갑자기 독립운동가 된 것처럼 애국심 솟아오름. 나는 권노을에 한 표.
감개무량했다.
이전 생에 나는 아무도 몰라주던 무명의 코러스였다.
알바로 생계를 해결하다 쓸쓸히 생을 마감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리스트, 오창선 선배와 대등하게 겨루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더욱 상황이 흥미로워지고 있었다.
해외 반응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조식으로 재호가 준 두부샐러드를 씹으며 해외 뉴스 사이트를 돌아봤다.
메인에 글로벌 비전 글로벌 예선을 주목하는 글들이 죽 올라와 있었다.
그중, 당당하게 한국인 대표로 내 이름이 나와 있었다.
[이번 주에 볼 것: 이 가수를 주목하라. 남한의 보컬리스트 권노을이 이끄는 알앤비 트리오 ‘비원더’. 현재 글로벌 비전 한국 예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일반적인 3인조 아이돌과는 달리, 이 팀은 철저하게 자신들이 직접 곡을 쓰는 싱어송라이터다.]
[옐로우 센세이션이 도래하는가? 글로벌 비전 한국 예선 시청률이 심상치가 않다.]
[흑인의 노래 알앤비. 백인이 모자라 이제는 동양인까지 불러도 좋은가?]
일단 내가 화제가 되는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동양인이 왜 흑인의 음악을 훔치냐?’ 등의 악플도 다수 있어 댓글 창은 난장판이 되었다.
심지어 작정하고, 비원더를 비판하는 칼럼을 실은 주요 해외 언론도 있었다.
[비원더, 또 하나의 ‘도둑질’이다.]
기사를 클릭해봤다.
[알앤비는 흑인의 노래였다. 그것을 엘비스가 마치 자신의 것인 양 훔쳐서 만든 것이 바로 로큰롤이다. 이제는 하다 하다 동양인까지 흑인의 전통문화를 훔치고 있다….]
‘더 안 봐도 되겠네.’
웃기는 소리다.
애초에 팝 음악이란 것은 아프리카 흑인의 음악과, 유럽 음악, 그 외에도 온갖 인종과 문화의 음악이 합쳐서 나온 것이었다.
흑인 가수들도 백인 음악가를 고용해서 곡을 만들곤 했다.
마이클 잭슨 ‘Beat It’, 백인 기타리스트한테 솔로 시키지 않았나.
엘비스의 문제는 흑인 작곡가에게 저작권을 지급하지 않은 것이지, 우리처럼 정당하게 저작권을 해결한 팀에게 ‘음악을 훔쳤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냥 무지성으로 일단, 동양의 아이돌 기획사가 만든 그룹이니까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공산품이라며 비판하는 칼럼도 있었다.
레딧 등 해외 사이트에서 ‘B1The’를 주제로 하는 글들도 대부분 날이 선 듯한 날카로운 비판 글이었다.
-이제 하다 하다 동양인까지 음악을 훔치냐. 저거도 다 미국 작곡가가 만든 거겠지?
-야 웃기지 않냐.ㅋㅋ 아이돌 기획사가 무슨 알앤비 그룹이야. 저것들 기계적으로 군무 추는 거 봐. 착취야 착취.
우리는 모든 무대를 우리가 주도해서 직접 짜고, 곡도 우리가 직접 쓰거나 정당한 대가를 주고 산 노래만 부른다.
다들 현실과는 괴리된, 수박 겉핥기식 비판만 하고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글쓴이들의 동양인에 대한 고정관념, 인종차별만 두드러질 뿐.
하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보통 동양인 가수가 해외 진출하면 욕먹는 게 아니라 무관심인 게 문제야. 문루아 선배도 그랬었고. 그런데 지금은 욕이라도 어마어마하게 먹고 있어.’
덕분에 화제성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다.
확인해보니, 생방송으로 전환한 후 비원더의 구글 검색량이 무려 1,000% 증가했다.
구글 검색량은 그 무엇보다 ‘영향력’을 측정하기에 적합한 지표였다.
이대로라면, 혹시 우리가 ‘글로벌 비전’ 예선에서 탈락한다고 해도, 충분히 해외 진출의 포석을 미리 마련했다 봐도 좋았다.
하지만, 가장 편하게 진출하려면 역시 우승이 필요했다.
평생 먹을 욕을 글로벌적으로 먹은 김에 기필코 우승하기로 결심했다.
그러자면 우선, 곧 있으면 나올 소미션부터 잘 치러야 했다.
김지태에 따르면 소미션은 내일 치러질 예정이라 했으니 아직 하루 정도 시간이 남았다.
슬쩍 통화를 해서, 김지태 선배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 * *
통화를 한 후 30분쯤 지났을까, 김지태가 어마어마한 차를 끌고 비원더 숙소 앞에 나타났다.
재호와 하늘이, 심지어 배영웅 매니저까지 모두 차를 확인하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게 뭐죠.”
“와 대 대박… 부가티잖아요.”
내가 물었다.
“저게 대단한 차인가요? 뭐… 독특하게 생기긴 했네요. 검붉은 것이.”
배영웅 매니저가 내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대단한 차인가요?’라니요!”
“무슨 차길래….”
배영웅 매니저답지 않은 호들갑이라고 생각했다.
…저 차의 값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 차. 15억 원 넘습니다. 한국에서 사려면 이런저런 프리미엄 붙어서 아마 25억 원은 줘야 할걸요.”
“25억 원요?!!”
듣기만 해도 눈이 튀어나올 거 같은 금액이었다.
김지태의 차에 탄 채 밖으로 나왔다.
조수석조차 고급 응접실처럼 편안했다.
문외한인 내가 봐도 가죽 하나까지 모두 심상치 않은 고급이었다.
김지태가 운전하며 내게 물었다.
선글라스 너머로 살쾡이 같은 눈이 번득였다.
“후배님. 갑자기 왜 드라이브하자 그랬어요? 아니 나야 좋은데. 이런 것도 다 아름다운 추억이니까.”
“…내기로 거시겠다는 차가 이 차 맞나요.”
김지태가 피식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제게 차라고는 이 차밖에 없습니다. 후배님.”
“매니저님에게 들었는데. 이 차, 25억 원이 넘는다면서요.”
“잘은 모르지만 그럴 겁니다.”
김지태가 쓴 보잉 선글라스가 유독 환하게 반짝였다.
“노래 내기로 이런 차를 거시다니.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이상한 거 같은데.”
“뭐가 이상합니까? 그냥 재미로 하는 거죠.”
“재미로요.”
오늘 아침에 내 기사를 검색했을 때, 슬쩍 김지태 선배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문루아 선배 말대로, 김지태 선배의 유일한 낙은 ‘차’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음악 말고 아무런 취미가 없습니다. 여자도, 술도, 담배도, 모두 날 배반할 뿐이었어요. 차는 아닙니다. 차는 날 배신하지 않아요. 그저 나와 함께 호흡하며 달릴 뿐입니다. 이 차는 나의 신전이자, 종교입니다. 아, 음악만 빼고요. 실례.]
이런 낯 간지러운 인터뷰까지 했을 정도다.
휴식기 때마다 김지태는 해외여행을 갔다.
부가티의 최대 출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한국의 고속도로 규정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라 했다.
자동차도 함께 이동해야 했기에 여행에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었지만,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정도로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대체 내기에 왜 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김지태 선배. 굳이 이 차 안 거셔도 될 거 같은데요. 좀 작은 거로 해주세요. 고급 레스토랑 식사라던가 어떠세요.”
김지태가 입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아무거나 걸어도 됩니다. 나는 안 질 거니까요.”
대답하면서도 그는 도로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슈퍼카는 슈퍼카였다.
상당한 속도였는데도 마치 고급 응접실 소파에 앉은 듯, 편안한 주행감을 유지했다.
솔직히 되게 갖고 싶어지는 차였다.
뭐, 운전면허도 없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면 이 차, 제가 빼앗아 드리겠습니다.”
호기롭게 대답했다.
“그렇게 나와야지요. 노을 씨. 역시, 나랑 같은 부류라니까.”
그제야 김지태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 후로도 30분 정도 더 드라이브한 뒤에 김지태는 나를 다시 숙소로 데려다주었다.
“그럼. 내일 또 아름다운 경쟁을 해봅시다. 노을 씨.”
“감사합니다!”
그는 가볍게 손 인사를 하고는 부아아앙 소리를 내며 도로 바깥으로 사라졌다.
김지태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의 차를 지켜봤다.
차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의 차 안에서, 영 심상치 않은 물건을 발견해서였다.
‘김지태 차에… 여자 팬티가 왜 굴러다니고 있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