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6화
“김종윤을 라이브 무대에 올려주세요.”
“반칙까지 해서 탈락한 사람을 다시 무대에 올려달라고요? 게다가 탈락하자마자? 너무 어색하지 않을까요?”
“특별 게스트라든지. 방식은 있을 겁니다.”
역발상이었다.
편파 편집이 문제라면, 아예 편집의 여지를 없애버리면 됐다.
김종윤을 라이브 무대에 올려서, 다른 참가자들이 실력으로 김종윤을 눌러버리면 그만이었다.
이윤강 PD가 인상을 찌푸렸다.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만.”
천채왕이 슬쩍 말을 보탰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면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희 아티스트 체면 좀 세워 주세요.”
천채왕의 푸시 덕분이었을까?
이윤강 PD는 떨떠름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 그리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이번에는 절대 립싱크는 못 하게 해주세요.”
“그건, 약속하겠습니다. 저희도 자존심이 있죠.”
“저희 직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음향실에 한국인 직원이 두어 명 있었어요. 그분들을 조심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책임지겠습니다.”
이윤강 PD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 정도면 립싱크는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그러면 해볼 만하지.’
* * *
회의가 끝나자마자 원재호는 권노을과 주하늘을 데리고 연습실로 갔다.
멤버들에게 회심의 새 악기를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히는 이미 있었지만, 뒤늦게 재발견한 악기에 가까웠지만.
‘이거 어떻게 쓰는지 보여주면 깜짝 놀랄걸?’
사실, 이 악기는 권노을이 재호에게 전해 준 악기였다.
하지만 연주자가 아닌 권노을과는 달리, 원재호는 이 악기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다.
연습실에 들어가자 권노을이 원재호에게 물었다.
계획대로였다.
“이게 그거냐? 하몬드 오르간.”
“그래! 이거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엔간한 구형 신시사이저로는 이런 사운드가 구현이 안 된다구.”
하몬드 오르간.
주로 60~70년대에 쓰인 악기다.
주로 록, 소울, 가스펠 등에 쓰였다.
뭔가 전자 피아노 소리답지 않게 포근하고 따뜻한 사운드가 특징이었다.
스티비 원더가 즐겨 사용했던 악기기도 했다.
원재호는 ‘비원더’를 처음 만들던 시기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 6070년대 스티비 원더가 구사했던 강렬하면서도 몽환적인 사운드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권노을이 계속 원재호에게 질문했다.
“이걸 어떻게 써먹을 건데?”
“이미 편곡은 끝냈지.”
하늘이가 입을 ‘헉!’하고 벌렸다.
“벌써요?”
“뭐 단순해.”
재호가 컴퓨터로 음악을 재생했다.
재즈에 가까운 부드러운 밴드 사운드가 흘러나왔다.
신디사이저로 연주한 하몬드 오르간 소리가 곡을 주도했다.
여기에 베이스, 드럼, 현악기 등의 악기가 절묘하게 추가되었다.
기본 연주는 딱 하나의 루프 (반복되는 마디)뿐이었다.
똑같은 연주가 기본적으로 반복되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세심한 악기들을 배치 덕분이었다.
새로운 악기, 새로운 연주가 조금씩 귀에 자극을 더했기 때문이었다.
연주도 과하지 않게 조금씩 화려해져서는,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재즈에 가깝게 화려하게 마무리하는 구성을 짰다.
원재호 스스로 생각해도 절로 감탄이 나오는 곡 구성이었다.
곡이 끝나자마자 원재호와 멤버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때?”
하늘이가 엄지를 들어 보였다.
“너무 멋진데요? 딱 하나의 연주가 반복되는 거 같은데 기승전결이 있다니, 무슨 마법 같은데요.”
“그걸 노린 거야. ‘현기증’이라는 영화는 주술처럼 반복되는 영화잖아? 그 효과를 노렸지.”
권노을도 재호의 어깨를 주무르며 격려했다.
“3의 법칙을 철저하게 지켰네? 거의 수학이네 수학.”
하늘이가 질문했다.
“3의 법칙이 뭐예요?”
재호가 대답했다.
“역시 노을이 너는 바로 아는구나. 하늘이 너는 감각으로 하는 타입이니까 잘 모를 거구. 3의 법칙이란, 음악에서 같은 패턴을 딱 3번 이상 반복하지 말라는 거야. 3번 이상 나온다 싶으면 바로 멜로디를 바꾸는 거지.”
권노을이 원재호의 설명에 말을 덧붙였다.
“환희 너는 매번 감각적으로 하고 있어. 그러니까 작곡을 하는 거지. 그게 ‘3의 법칙’이라는 이름이 붙은 법칙이란 걸 모른 거야.”
그런데 권노을의 표정이 뭔가 미심쩍었다.
“이거 딱 하나만 고쳤으면 좋겠어.”
“뭔데?”
“하몬드 오르간 연주. 지금은 너무 정박 연주야.”
원재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됐다.
“정박이 어때서! 박자는 정확해야지.”
권노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이 곡에서 신스는 몽환적인 느낌을 내려는 거잖아? 곡도 악기가 더해지면서 점점 광적으로 변하고. 그러면 박자가 칼같이 정확하면 광적인 느낌이 안 산다고.”
“그러면 일부러 틀리란 말야? 말이 안 된다구.”
“일부러 틀리는 게 아니라, 감정이 더 중요하다니까! 정 모르겠으면 보여줄까?”
“어떻게? 네가 연주하려구?”
당연히 권노을에게 그 정도 연주 실력은 없었다.
원재호는 그걸 이미 알고 한 말이었다.
하지만 권노을은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내가 목소리로 보여 줄 테니까. 신디사이저 소리 하나 빼고 그대로 틀어 봐.”
바로 권노을이 녹음실로 들어갔다.
핵심 신시사이저 소리를 빼고 연주를 다시 틀었다.
“버~ 티고 버티~ 고 버어~ 티고~”
권노을은 목소리로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흉내 냈다.
원재호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권노을은 절묘하게 리듬을 가지고 놀았다.
분명 세세한 부분에서 틀린 박자도 있었는데, 절묘하게 마지막에는 처음의 정박으로 돌아왔다.
그야말로 서커스 같은, 곡예에 가까운 연주였다.
원재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분명 부드러운 발라드건만, 권노을은 보컬로 춤을 추고 있었다.
그것도 드럼 박자를 절묘하게 밀고 당기면서 갖고 놀았다.
원재호마저도, 이 리듬에 마음을 빼앗긴 채 어깨춤을 추고 말았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권노을이 씨이익 웃었다.
“어때? 이런 느낌이야. 녹음해뒀지? 이런 느낌이야. 다시 녹음하자?”
설득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건만, 원재호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 *
“야 뭐 이런 보컬이 다 있어요? 코러스가 할 게 없는데요?”
“안 그러나?”
조민하와 밴드 마스터가 함께 악보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공연할 곡은 비원더 3인이 만든 자작곡이었다.
악보 정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악보를 확인한 조민하는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비원더 3인이 녹음한 데모 음악의 퀄리티 때문이었다.
이번에 비원더가 작곡한 ‘Return To You’는 단순한 듯 예술성이 높은 팝 음악이었다.
이렇게 단순한 프레이즈가 반복되는 곡일수록, 악기의 구성의 묘가 중요했다.
코러스도 마찬가지였다.
계속해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어와서 자극을 줘야만 4분간 청중의 집중력을 잃지 않고 곡을 끌고 갈 수 있다.
가수는 당연히 무리고, 전문적인 코러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가수가 코러스 부분에 편곡 및 참여가 가능하다면 어떨까?
비약적으로 코러스 편곡이 쉬워진다.
설사 3인조 가수라고 해도, 전문적인 수준의 코러스가 가능한 가수는 거의 없다.
어느 정도 화음을 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음을 부를지 ‘편곡’을 담당하는 것은 아카펠라 그룹과 같은 전문 코러스 그룹 멤버나 가능한 경지였다.
하지만 비원더 이 팀은, 편곡을 담당하는 원재호는 물론 메인 보컬인 권노을까지 코러스 수준의 소양을 갖고 있었다.
조민하가 혀를 내둘렀다.
“진짜 둘 다 코러스 출신 아니에요?”
“아니래. 원재호는 어릴 때부터 꿈이 편곡자였다네? 가장 중요한 악기인 인간의 악기를 잘 알고 싶다면서 연구했다고 하네? 참 특이한 친구야.”
“권노을 군은요? 누가 봐도 전형적인 메보잖아요? 무슨 메보가 코러스를 저렇게 적재적소에 잘 넣어요?”
코러스는 일단 창법이 메인 보컬과 전혀 다르다.
메인 보컬은 곡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기에 강인하게 불러야 했다.
그에 비해, 코러스는 있는 듯 없는 듯 절묘하게 곡을 감싸 안듯 노래해야 했다.
권노을은 메인 보컬일 때는 강렬하게 포효하면서 곡을 이끌었다.
하지만 코러스일 때는 달콤한 솜사탕처럼 녹아드는 노래를 했다.
전문 코러스라 해도 쉽게 이루기 어려운 경지였다.
조민하가 고민하고 있던 사이에 박찬용 드러머가 뒤에서 성큼 걸어 들어왔다.
“메인 보컬은 언제나처럼 훌륭하지만, 코러스가 정말 대단하군. 고작 3명이, 대형 합창단인 마냥 풍성한 화음을 만들었어.”
조민하가 박찬용과 밴드 마스터에게 시선을 돌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쟤들 저렇게 하면 코러스인 저는 뭐가 돼요? 이거 부담돼서 노래하겠나?”
* * *
“합주 끝! 수고하셨습니다.”
밴드 마스터의 외침과 함께 첫 합주가 끝났다.
합주가 끝나자마자 권노을은 털썩, 주저앉았다.
‘이번 곡은 좀 코러스가 많이 필요해서 내 코러스 파트를 많이 넣었더니만, 너무 힘드네.”
약하게 노래 부르는 일이 더 힘들었다.
고음을 강하게 부르는 건 이제 익숙해졌다.
힘을 쫙 빼고, 작게 불러야 하는 코러스 파트가 되려 더 목에 부담이 갔다.
‘원생에서는 코러스만 불러서 좀 나았는데. 이제는 메인 보컬로 노래를 부르면서 또 코러스 파트를 병행해야 하니까 이게 또 고역이네.’
재호 또한 털썩 주저앉아 내게 나지막이 말했다.
“코러스가… 메인 보컬보다 더 힘드네?”
“말도 하지 마, 목 아껴.”
나는 물을 벌컥 들이켰다.
방금의 퉁명스러운 태도는, 지나치게 어려운 코러스 파트를 내게 들이민 재호에 대한 소심한 복수였다.
그때였다.
합주가 끝나자마자 바깥을 나갔던 밴드 마스터에게 문자가 왔다.
-노을이~ 힘들지? 지금 우리들 녹음실 앞 호프집에서 치맥 중인데 안 오고 싶나?
내가 슬쩍 재호랑 환희에게 제안했다.
“밴드 마스터님이 치킨하고 맥주 한잔하자는데?”
“뭐해? 가자?”
“가요 횽! 고고!”
치맥이란 말을 듣자마자 없던 기운이 솟아났다.
우리는 서둘러 합주실을 빠져나갔다.
* * *
늦여름이라고는 하지만 많이 날씨가 선선해졌다.
지금처럼 늦은 밤에는 심지어 살짝 시원한 기분마저 들었다.
가끔은 이런 고요함이, 음악 소리보다 좋았다.
연습실 주변 공원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들어오다 보니 어느새 호프집에 도착했다.
정작 들어오자 밴드 멤버들은 우리는 뒷전이었다.
박찬용 드러머와 밴드 마스터가 이번 곡 편곡에 대한 열띤 토론 중이기 때문이었다.
“이 곡은 워낙 델리케이트 해서 그렇게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고 안 하나!”
“이 친구야. 그렇다고 이 부분을 적당히 넘어가면 안 돼. 이런 부분은 절대 그대로 넘어가면 안 되네.”
내가 슬쩍 끼어들었다.
“무슨 일이시죠?”
밴드 마스터가 박찬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친구가 편곡에 문제가 있다 지적질을 하도 해서. 화났다!”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전주 말씀이시군요.”
박찬용 드러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곡은 바흐 곡처럼 수학적으로 정밀하게 계산된 곡이야. 건드리기 어렵다는 건 아네. 하지만 그렇다고 적당히 넘어가도 될 문제는 아냐. 이 곡에서 전주는 클라이맥스 전, 곡의 절정으로 치고 달리는 중요한 부분일세. 근데 그 전까지와는 달리 너무 밋밋하지 않나?”
재호가 머리를 긁적였다.
“나름대로 연주에 기타 연주를 더 가미하고, 퍼커션도 추가하고 하는 식으로 장치를 추가하긴 했는데요.”
“훌륭하네. 하지만 그전까지 코러스에 메인 보컬까지 들어갔을 때보다는 풍성함이 덜할 수밖에 없지.”
“뭔가 더 요소가 필요하겠네요.”
그 순간, 나는 얼마 전, 재호에게 들려줬던 엉터리 노래가 떠올랐다.
“코러스를 추가하면 어떨까요?”
“코러스? 노래를 추가하면 전주가 아니게 되지 않나?”
“코러스라고 해서 꼭 노래가 되리란 법은 없죠. 코러스를 ‘악기로’ 사용하면 어떨까요? 가사를 안 넣고 재즈 스캣(*재즈에서 사용하는 즉흥적인 보컬 애드립 구간)을 넣으면 훨씬 풍성한 느낌이 날 것 같은데요.”
밴드 마스터가 무릎을 쳤다.
“그래!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코러스를 넣으면 되지. 그전까지도 계속 코러스가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했지 않았나? 한 번 더 하면 되지.”
내가 말을 보탰다.
“게다가 저희에게는 편곡이 되는 코러스도 있고 말이죠.”
잠자코 말을 듣고만 있던 조민하가 되물었다.
“누구요? 재호 군이요 노을 군이요?”
“조민하 선배님이죠 당연히. 여태까지는 저희가 주도했으니까, 이 부분은 신선하게 조민하 선배님이 맡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밴드 마스터가 탕탕탕 탁자를 두드렸다.
“조~ 오타! 결정됐다! 민하가 내일까지 코러스 편곡해 와라이! 내일 협주 때 맞춰보자.”
조민하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