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2화
첫 소절이 나오자마자 나와 멤버들의 얼굴이 썩어 일그러졌다.
김종윤 파트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
평소의 뭉개지던 노래와는 아예 다른 노래였다.
분명 김종윤의 노래였지만 기계로 ‘만진’ 소리였다.
‘립싱크네.’
재호가 눈을 질끈 감고는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김종윤의 바톤을 이어받아 노래했다.
하지만 목소리에 떨림이 느껴졌다.
완벽한 김종윤의 노래와는 달리, 감정의 흔들림이 느껴지는 노래였다.
라이브란 그런 것이다.
완벽한 라이브란 존재하지 않는다.
고음에 가서 김종윤은, 연습 때는 단 한 번도 해내지 못한 높은 고음을 가볍게 불렀다.
마치 숨 쉬는 듯 가벼운 표정이었다.
나도 침착하게 내 파트를 부르며 맞받아쳤다.
2절을 지나 노래는 점점 클라이맥스로 향해갔다.
클라이맥스 부분 직전에 밴드 간주가 잠시 흘러나왔다.
김종윤이 여유롭게 팔을 위로 치켜들며 어깨춤을 췄다.
연습 때는 전혀 없었던 여유가 철철 넘쳤다.
어느새 마지막 고음 부분에 돌입했다.
시작은 김종윤이었다.
김종윤이 [It Was You~]하고 강렬한 고음을 치는 파트가 있었다.
비원더 3인은 화음 애드립으로 김종윤을 보좌할 예정이었다.
원래는 이 부분이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였다.
나는 일부러 멈칫멈칫하다 김종윤이 고음을 외치는 그 순간, 김종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It Was…]
그리고 김종윤이 최고의 고음을 불러야 하는 그 순간 미끄러지는 척, 김종윤의 마이크 선을 발로 밟아 선을 뽑았다.
[You~~~~~~]
‘3옥타브 레’의 어마어마한 고음이 공연장에 울려 퍼졌다.
문제는, 김종윤의 마이크에 선이 연결되지 않았는데도, 멀쩡하게 김종윤의 목소리가 담겼다는 거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뭐야 이거?”
“마이크가 연결 안 됐는데 왜 김종윤 목소리가 나와? 원래 저렇게 음향이 좋은 거야?”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다른 사람들 노래만 나오는 게 정상아냐?”
0.5초 정도였을까.
김종윤이 너무 당황해서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이윽고, 김종윤이 고개를 돌려 내게 쌍욕을 했다.
“야 이xx야. 미쳤어? 뭔 지x이야?”
나는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미끄러졌어요. 그보다 빨리 노래부터….”
“아차!”
김종윤이 서둘러 노래를 불렀다.
아니, 정확히는 다시 노래를 부르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이미 관중들의 표정에는 의심이 드리워진 뒤였다.
나는 미소를 숨긴 채, 노래를 무난하게 마무리했다.
* * *
노래가 끝나고, 심사위원 이스트 웨이브가 굳은 표정으로 김종윤에게 물었다.
“What? 이게 뭐지. 코리아에서는 마이크에 선이 연결 안 돼도 노래가 나오나?”
김종윤은 새하얗게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바네사도 눈에 힘을 잔뜩 줬다.
“뭘 한 거지?”
김종윤이 내게 고개를 홱 돌렸다.
“저, 저 새… 아니. 저 녀석이 나랑 부딪쳤어! 일부러 마이크 선을 뽑았다고! 반칙이야 반칙!”
내가 냉큼 대답했다.
“실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스트 웨이브가 한숨을 쉬었다.
“뭐, 파이어 키드가 사과했으니 그렇다고 하지. 하지만 동선이 꼬이는 일도 프로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실수야. 패널티를 주겠어. 하지만 미스터 킴. 당신은… 음… 긴말하지 않겠어. 점수가 말하게 하지. (Let the score talk.)”
바네사도 고개를 저었다.
“나도 딱히 더 할 말 없어. 이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야. 로메로?”
지금껏, 우리 무대에 침묵을 유지했던 로메로가 입을 열었다.
“비원더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겠어. 아직 고민 중이야. 그에 반해 킴. 총. 욘. 이 친구는 음….”
미스터 로메로는 우스꽝스럽게 김종윤 이름을 발음하더니만, 잠시 침묵을 지켰다.
말을 신중하게 고르던 그가 툭 말을 내뱉었다.
“페이크로군. 나는 페이크를 제일 싫어해. 노래는 진실해야지. 리스너는 가짜를 보러 오지 않아.”
가만히 로메로 말을 듣고 있던 심사위원장 바네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끊었다.
“네 머리카락처럼 리얼해야지 로메로. 맞지?”
로메로가 책상을 손으로 쾅 치며 일어났다.
벌떡 일어나면서 그의 가발도 살짝 출렁였다.
“야! 너 그거 폭력이야!”
바네사가 큭큭 웃으며 말했다.
“미… 안… 크큭.”
미스터 로메로가 손가락으로 ‘엿 먹어라’ 사인을 보낸 후,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댄스가수라면 약간의 립싱크는 이해해. 보컬보다 퍼포먼스가 중요한 가수도 있는 법이니까. 근데 정통 싱어가 립싱크를 하면. 대체 우리가 그 무대를 왜 봐야 하지?”
그대로 점수가 발표되었다.
김종윤의 심사위원 점수는 0점.
우리의 점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압도적인 우리의 승리였다.
“예스!”
재호가 주먹을 쥐어 보였다.
나는 슬쩍 곁눈질로 김종윤을 보았다.
김종윤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하지만 포기한 기색은 없었다.
‘예상대로인가….’
그때였다.
관객석에서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서른 남짓의 한 백인 남자가 벌떡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이건 우리 제작진의 오해야. 사과하지. 이번 라운드야 어쩔 수 없고 패자부활전에는 참여하게 해 줘.”
심사위원장 바네사가 미간을 구겼다.
“립싱크라는 반칙을 했는데. 봐주자고요? 이건 당연히 실격이고, 영원히 대회 참가 자격 박탈해야 할 일이에요.”
론이 고개를 저었다.
“스태프의 착오야.”
“AR 버전이 나오는 걸 알고도 미스터 김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잠자코 노래를 불렀다고요? 당연히 노래를 중지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게다가 AR 버전인데 왜 비원더의 목소리는 안 나오죠?”
“어떤 버전인지는 모르겠고, 노래 부른 건 너무 무대에 몰입하느라 몰랐겠지. 아닌가?”
김종윤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 보였다.
“마, 맞아. 너무 몰입하다 보니 그랬네요. 하하하.”
매번 이별을 연기해야 하는 발라드 가수치곤 너무 구린 연기였다.
결국 우리가 압도적 점수 차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지만, 김종윤에게 패자부활절의 기회는 주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됐다.
* * *
공연이 끝난 후 비원더 3인은 대기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우리 순서는 이제 끝났다.
비원더 3인은, 오늘 일정이 끝났으니 메이크업만 지우고 바로 퇴근하면 됐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남아 패자부활전을 보기로 했다.
누가 살아남을지, 그 결과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직원분들의 도움으로 메이크업을 지우고 있는데, 환희가 혀 차는 소리를 냈다.
“허 참!”
내가 슬쩍 환희에게 질문했다.
“왜?”
“어이없잖아요. 립싱크라는 어마어마한 반칙을 저질렀는데. 그냥 봐준다고요?”
“뭐. 제작진 실수라잖아.”
“그게 말이 되여?”
배영웅 매니저가 슬쩍 말을 보탰다.
“사실, 노을 아티스트님 요청으로 슬쩍 음향실에 가봤는데요. 외부인이 한두 명 있더라고요. 외주 제작사 직원이었어요. 한국 직원들이겠죠. 글로벌 비전 담당자는 모두 외국인이니까.”
재호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보탰다.
“그 두어 명만 포섭하면, 얼마든지 음원을 다른 곡으로 조작할 수 있겠군요. 예를 들면 자기 목소리가 이미 담긴 AR 버전의 반주라든지.”
배영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환희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으아! 그놈 어떻게 못 하나여? 이래 놓고 패자부활전 부활하면 또 악재를 극복한 영웅 스토리로 엄청나게 빨아줄 텐데!”
게다가 이번 3차 예선만 통과하면 라이브 무대였다.
본선 전 마지막 고비에서 역경을 극복하면 오히려 인기가 붙을 수도 있었다.
오디션 프로에서 성공하려면, 역시 스토리가 중요하니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아직 카드가 남아 있었다.
내가 슬쩍 환희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어떻게 걱정을 안 해여? 저딴 놈이 또 올라오면 얼마나 성가실지 참!”
“김종윤은 못 이겨. 절대로.”
“그걸 어떻게 장담해여?”
“두고 봐.”
내게는 아직도 비장의 무기가 한 발 남아 있었다.
나는 모니터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패자부활전은 자유곡 대결이었다.
심사위원이 아닌, 오로지 관객의 점수만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순서는 랜덤이었다.
김종윤은 운 좋게도 마지막 순서를 배치받았다.
‘이렇게 행운이 계속되면 저게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제작진의 농간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그리고 김종윤 바로 전 순서는, 밴드 바질리스크였다.
운명의 장난이었다.
김종윤은 하필 자신이 스스로 버리고 떠난 밴드인 바질리스크와 마지막, 패자부활전에서 만났다.
재호가 입맛을 다셨다.
“아쉽네.”
“왜?”
“바질리스크. 나도 참 좋아하는 밴드인데. 이럴 때 마지막에 김종윤을 팍! 이기고 돌아오면 좋겠그던?”
“나도 그래.”
“근데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록밴드가 발라드를 대중성으로 이기기는 어렵잖아. 심사위원 점수였다면 해볼 만한데.”
“아니, 오히려 관객 점수가 더 승산이 있어.”
“뭐?”
“두고 봐.”
어느새 바질리스크의 차례가 왔다.
밴드의 리더이자 메인 기타, 보컬인 요한이 굳은 표정으로 무대에 섰다.
드러머의 스네어 소리와 함께 연주가 시작됐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재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 이건….”
바질리스크는 본래 탄탄한 연주력을 기반으로 하는 펑크 록 밴드였다.
대신 대중성이 좀 부족했다.
그렇다면 익숙한 곡으로 대중성을 채워주면 된다.
지난번, 요한과 통화할 때 나는 요한에게 이렇게 귀띔해줬다.
[선배 말씀대로 강민정을 1:1로 이기긴 어려워요. 대신 패자부활절을 대비하세요. 만약 패자부활전이 있다면 무조건 자유곡 대결이겠죠? 관객들은 이미 많은 노래를 들어 지쳐있는 상태일 거예요. 그럴 때는 어떤 노래를 듣고 싶을까요?]
정답은, ‘이미 알고 있는 신나는 노래’였다.
즉, 전 국민의 노래방 18번 노래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이미 바질리스크가 연습해둔 유명곡을 하나 알고 있었다.
바로 판타스틱 폭스의 ‘오늘 밤에’였다.
이전에 나는, 조민하 선배를 도와주기 위해 일부러 판타스틱 폭스의 곡을 홍보했다.
덕분에 ‘오늘 밤에’는 바로 얼마 전 역주행해서 큰 성공을 했다.
바질리스크는 또한 내 제안으로 이미 판타스틱 폭시의 곡을 콘서트에서 앵콜곡으로 불러 큰 재미를 본 적이 있었다.
[이미 준비했던 곡을, 조금 오디션에 맞게 편곡하면 됩니다. 키 체인지 한 다섯 번 넣어서요.]
-신나게! 신나게! 신나게!
요한이 음악에 취한 채 관객에게 소리쳤다.
모두가 아는 곡이 나오자, 그동안 피곤함에 찌들었던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헤드뱅잉을 했다.
흡사, 바질리스크의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한. 번. 더!!!!
끝날 듯, 끝날 듯, 바질리스크는 계속해서 노래 키를 올리면서 관객이 지칠 때까지 달렸다.
5번 정도 전조해서 이제는 슬슬 관객이 지쳐갈 즈음에야 노래를 끝냈다.
[땡큐! 굿나잇!]
‘짜자잔!’ 하는 신명 나는 연주와 함께 무대가 마무리됐다.
관객들은 만족스럽게 하나둘 무대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 잘 놀았다.”
“이제 가자. 가자.”
“아 잠깐만.”
그때였다.
김종윤이 처량한 목소리로 외쳤다.
“자, 잠깐만! 아직 제 노래가 남았어요!”
내가 씨이익 웃었다.
‘이미 온 국민의 노래방 애창곡으로 신나게 놀았어. 딱 집에 갈 분위기야. 근데 이제 와서 슬픈 발라드를 부른다?’
분위기 싸해지기 딱 좋았다.
예상대로, 김종윤은 큰 표 차로 대패했다.
승자는 내가 어드바이스를 준 바질리스크였다.
‘이렇게 또 한 명 해치웠네.’
* * *
다음 날 아침, 천채왕의 긴급 호출로 천채왕의 사무실에서 다시 만났다.
천채왕이 파하하 웃었다.
“김종윤 그 친구! 탈락하고 진짜 서럽게 울었다던데? 내 속이 다 후련하더라. 이야~.”
“이번에 본선 진출 못 하면 기획사랑 계약 해지된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재기하기 어렵겠죠.”
“뭐 곡 쓰는 능력도 없고. 너무 무리해서 목도 많이 망가졌으니까.”
“네.”
천채왕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그건 그렇고 말야. 김종윤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뒤에 누가 있느냐야. 왜 제작진이 김종윤을 그렇게까지 봐주고 있는 거지?”
“알아보셨나요?”
천채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뒷배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