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11화 (211/280)

제211화

김종윤의 입 모양에서 위화감을 강하게 느꼈다.

처음에는 녹음 상태의 문제인가 싶었다.

영상과 소리의 싱크가 맞지 않는 일은 제법 자주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가수들의 무대와 비교해보니, 확실해졌다.

김종윤만 노래와 입 모양이 미묘하게 맞지 않았다.

‘설마… 노래를 안 부르고 입만 벙긋거리고 있는 거야?’

립싱크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따라서 의심을 공론화하기에 앞서, 우선 철저한 검증이 필요했다.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으면서 립싱크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딱 한 명이 떠올랐다.

핸드폰을 들고는 전화를 걸었다.

* * *

다음 날, 내가 부탁한 립싱크 전문가와 집 옆 연습실에서 접선했다.

‘립싱크 전문가’는 앤젤이었다.

“왔어?”

앤젤은 나와 라이벌 그룹인 ‘잇츠 쇼타임’으로 데뷔해, 대립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가장 친한 동료 가수가 됐다.

잇츠쇼타임 시절, 그는 제작자의 강요로 할 수 없이 ‘립싱크’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게 그에게는 큰 상처가 되어,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회사를 옮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언제나처럼 앤젤이 투덜댔다.

“그래도 연락했으니 좀 낫긴 한대. 너 요즘 연락 너무 뜸하드라? 글로벌 가수 됐다 이거야?”

“바빴지. 너도 바빠지기도 했고.”

“내가 요새 좀 스케줄이 많긴 하지.”

비원더가 ‘글로벌 비전’ 활동을 위해 잠시 국내 활동을 중지한 사이, 앤젤은 쭉쭉 활동을 늘리고 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란 프로그램은 다 1등을 하며 자기의 영역을 만들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내가 차지하고 있던 위치였다.

하지만 질투가 나지는 않았다.

어차피 세계진출 하려면 좀 내려놓아야 하는 자리인데. 남한테 주느니 친구한테 주는 게 낫지 않아.

“이번 앨범은 더 잘된다며? 축하해.”

“아직 멀었지. 노을이 니는 100만 장도 팔았잖아.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야?”

본론으로 들어갔다.

“앤젤 너는 립싱크 해본 적 있지?”

앤젤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있지. 전 회사가 시켜서.”

“나도 알아. 탓하려는 게 아니라 립싱크인지 아닌지 궁금한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해본 사람이 보면 느낌이 올 것 같아서.”

“영상 있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앤젤이 틀어보라 손짓했다.

영상을 틀자마자 앤젤이 흠칫 놀랐다.

“김종윤 선배네?”

“한번 봐줘. 립싱크인 거 같아.”

“확신은 없구?”

“없어서 너한테 물어보는 거야.”

“한번 볼게.”

앤젤은 우선 김종윤의 무대를 한 번 쭉 봤다.

다 본 뒤, 내가 슬쩍 물었다.

“어때? 입 모양이 좀 안 맞는 거 같은데?”

“잠시만.”

앤젤이 다시 영상을 되돌려 처음부터 김종윤의 무대를 봤다.

이번에는 특정 부분을 몇 번씩 되풀이하며 꼼꼼하게 확인했다.

영상을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앤젤이 딱 한 마디를 남겼다.

“립싱크네.”

“…무슨 이유로?”

내 질문을 들은 앤젤이 피식 웃었다.

“너도 처음에 립싱크인 거 같다면서 왜 되묻냐?”

“근거가 중요하니까.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면.”

앤젤이 큭큭 웃더니 영상을 가리켰다.

“솔직히 입 모양이랑 발음만으론 모르겠어. 싱크가 안 맞는 거 같긴 한데. 그건 음향기기의 문제가 있는 걸 수도 있그던?”

“그건 그렇지.”

“하지만 확실한 게 있어. ‘소리’야.”

“소리?”

앤젤은 일부러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숨소리가 너무 깔끔해. ‘개나리’ 정도 고난이도 노래면 호흡도 좀 깨지고, 불규칙한 소음도 좀 들어가야 되그던! 노을이 너처럼 깔~끔하게 부르는 타입도 한 번씩은 뻑이 난다고. 근데 그게 없어.”

앤젤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라이브에는 어느 정도 흠결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이니만큼 숨을 좀 거칠게 쉰다거나, 호흡이 꼬이는 포인트가 있기 마련이었다.

실제로 여태껏, 내가 봤던 김종윤은 라이브 공연 때마다 최고의 고음 직전에 듣기 싫을 정도로 티 나게 호흡을 몰아쉬곤 했었다.

그런데 그런 흠이 이번 공연에는 전혀 없었다.

갑자기 폐활량이 무대 위에서만 늘어날 리도 없는데 말이다.

완벽하다는 건 되려, 가짜라는 뜻이었다.

앤젤에게 내가 다시 질문했다.

“립싱크가 아닐 확률이 어느 정도 될까?”

앤젤이 턱에 손을 괸 채로 영상을 다시 보며 대답했다.

“글쎄다? 5% 미만? 사실 한 2% 본다.”

“한 번 이랬던 사람이 두 번 못 할까?”

내 말을 들은 앤젤이 영상을 중지하고는 나를 응시했다.

“뭐?”

“한 번 립싱크 빨로 이긴 가수가, 다음에는 립싱크 안 하겠냐고.”

“너 이번 라운드 김종윤이랑 붙냐?”

“그래.”

“근데 너는 그때 김종윤이 립싱크를 부를까 봐 걱정인 거고?”

“맞아. 그래서 너를 부른 거야. 확인하려고.”

앤젤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걸 또 한다고?”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너무 쉽지. 왜 또 안 할까 싶은데?”

“어쩌냐. 이건 함부로 ‘너 립싱크지?’라고 떠볼 수도 없고. 그냥 실력으로 누르자니 찝찝하고. 골치 아프겠다야.”

“뭐 그렇지. 그래도 네 의견 덕에 도움 많이 됐어.”

“이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내 의견은 의견일 뿐이야. 증거가 있어야지.”

“아니. 괜찮아. 일단은 확신만 있으면 돼.”

이미 나는 머릿속에서 다음 수를 떠올리고 있었다.

* * *

확신을 얻은 나는 멤버들과 배영웅에게까지 이 내용을 공유했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특히 배영웅은 진지하게 이건 대응법을 논의해야겠다며 천채왕과의 미팅 약속을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채왕과 나는 단둘이서 양재 연습실에서 미팅을 잡았다.

연습실에 들어오자마자 천채왕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엔지니어들하고 체크했어. 립싱크 맞다던데. 100%래.”

“…그렇군요.”

“어떻게 대응하지? 일단 주최 측에 말해도 증거가 없으니.”

“그러게요.”

떠오른 방법이 딱 하나 있었다.

“제가 생각이 있습니다. 우선 이번 대결까지는 주최 측에 립싱크 이야기 말하지 말아 주세요.”

“항의를 하지 말라고? 그래도 괜찮겠어?”

“만약에.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에 저희가 김종윤에게 진다면 그때 해 주세요.”

“그때 되면 김종윤이 탈락 처리돼도 비원더가 회생하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한국이라면 당연히 비원더를 구제해줄 텐데. 해외는 감성이 다를 수도 있어 노을아.”

사실 나는 질 생각이 아예 없었다.

되려, 김종윤을 가장 비참하게 쓰러뜨릴 방법이 무엇일지 그게 지금 내 고민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계획이 떠올랐다.

천채왕과 미팅이 끝나자마자, 밴드 ‘바질리스크’의 기타리스트 요한에게 연락했다.

김종윤이 함께하다 배신하고 나간 밴드다.

바질리스크 또한 글로벌 비전 한국 예선에 참여 중이었다.

“어떠세요 형?”

-망했지 뭐.

“왜요?”

-대진표 보면 몰라? 나 강민정이랑 붙어. 그 사람 노래 왜 이리 잘하냐? 애초에 우리가 왜 클래식 가수랑 라이벌이야? 희귀 장르 라이벌이라니 그딴 게 어디 있어!

내가 하하 웃었다.

“위기네요.”

나는, 요한이 살길을 알고 있었다.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그 지식을 슬쩍 그에게 조금 나눠주기로 했다.

내 목적 달성을 위해서.

“선배. 곡 하나만 더 준비하세요.”

“왜?”

“자, 보세요. 이왕이면 대중적이고, 롹킹하고 강력한 곡이 하나 필요해요. 왜냐면….”

* * *

그렇게 3차 예선 날이 밝았다.

공연장에 도착하자마자 멤버들 모두 굳은 표정으로 메이크업을 받았다.

내가 재호에게 일부러 장난을 걸었다.

“왜 이리 우울하냐? 다들.”

재호가 카메라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안 그럴 수가 있냐? ‘그거’가 있는데.”

‘그거’라고 말하면서 재호가 입 모양으로 ‘조작’이라고 말했다.

“뭐. 어떻게든 잘 해봐야지. 잘될 거야.”

“그냥 말하고 편해지면 되는데.”

“그러다 만약에 ‘그거’가 아니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상황 심각해져.”

“그건 그렇지만….”

재호의 생각과는 달리, 나는 여유만만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으니 말이다.

김종윤은 대놓고 자신이 리허설 전까지는 노래를 못 하다가 본 방송에서 갑자기 노래를 잘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시나리오를 연기 중이었다.

‘아 목 컨디션이 안 좋네. 콜록콜록’ 이런 식의 작위적인 대사를 남발했다.

리허설에서는 엉망이지만, 본 공연에서는 제대로 한 방을 먹여주는 역전 서사를 만들고 있었다.

‘거짓부렁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말이지.’

마침 메이크업 실에 김종윤이 들어왔다.

불편한 공기가 감돌았다.

김종윤이 내게 물었다.

“컨디션 좋냐?”

“평소랑 같죠. 선배는 어때요? 무리하시지 말고 고음 저랑 나누자니까. 너무 욕심부리시던데.”

일부러 슬쩍, 김종윤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말을 유도했다.

김종윤이 앞머리를 휘날리며 말했다.

“도전을 해야지. 게다가 지금도 너희들이랑 나랑 파트 5대 5다? 공평하게 나눈 거야. 두고 봐. 본 공연은 다를 테니까. 나는 무대 체질이야.”

‘무대 체질이 아니라 립싱크 체질이겠지.’

원래는 제법 멋진 대사였을지 모르지만, 김종윤의 실체를 아는 나로서는 기가 차는 말이었다.

그동안 인디 정신이니, 로큰롤이니 온갖 폼을 다 잡던 사람이 결국 컨디션 조절 하나 못 해서 립싱크를 하다니, 아이러니했다.

재호가 입을 열었다.

“너무 무리하시지 말구요. 가성은 편법이 아니에요. 음이 안 올라가면 가성 쓰는 게 멋진 거라구요. 저는 매번 쓰는걸요?”

“그러니까 노래가 안 늘지. 남자라면 진성이야. 오늘 또 도전할 테니까. 두고 봐. 혹시 알아? 오늘 노래 신이 강림할지?”

아무리 봐도 김종윤은 오늘 립싱크를 틀어서 ‘갑자기’ 노래를 잘하게 되는 상황을 포장하기 위해 자꾸 말을 지어내고 있었다.

“네에 뭐어… 화이팅입니다.”

나는 눈짓으로 배영웅 매니저에게 신호했다.

배영웅 매니저가 핸드폰 문자로 뭔가 메시지를 보냈다.

‘이걸로 일단 준비는 끝났어.’

이제는 김종윤에게 한 방 먹여줄 차례였다.

* * *

라이벌 미션은 이전 미션보다 훨씬 잔혹했다.

비슷한 스타일의 가수들을 둘 붙여서 함께 공연시켜 놓으니 더욱 실력 차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유일하게 다른 스타일의 팀이던 바질리스크는 역시나 강민정에게 큰 점수 차로 패했다.

아무래도 연주 위주 록밴드는 뮤지컬 디바를 대중성에서 이기기는 어려웠다.

‘정말 좋은 팀인데. 아쉽게도 대중성이 부족하단 말이야.’

한국에서, 연주 위주의 밴드가 큰 성공을 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였다.

하지만 오늘, 나는 그들에게도 살길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그 전에 우선 나부터 살아야 했다.

드디어, 김종윤과의 라이벌 미션 무대를 할 때가 왔다.

김종윤은 남색 수트, 비원더 3인은 적색 수트를 입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무대에 올라오자마자 심사위원장 바네사가 우리에게 물었다.

“이번 무대. 기대가 큽니다. 준비됐나요?”

김종윤이 ‘넵!’하고 대답했다.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시선을 관중석에서 대기하고 있는 배영웅 실장에게로 돌렸다.

이윽고, 배영웅이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더니만 수신호로 ‘OK’ 신호를 보냈다.

“비원더, 준비됐습니다.”

김종윤을 발라버릴 준비가 모두 끝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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