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0화
김종윤과 비원더의 합동 연습 2일 차.
[It Was You~~]
김종윤이 아름다워야 할 최고음에서 듣기 흉한 악 소리를 냈다.
노래라기보다는 귀신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였다.
밴드 연주자들의 얼굴도 흙빛이 됐다.
밴드 마스터가 연주를 중지시키고는 김종윤에게 나직하게 물었다.
“…괜찮아요?”
김종윤은 고개를 가로젓더니만, 물 한 병 들고 연습실을 나가 버렸다.
밴드 마스터가 이번에는 내게 물었다.
“야 노을이. 이거 무대 가능하겠나?”
“고음을 나눠서 하고 싶다고 하시니까요. 해드려야죠. 선배님 의견인데.”
밴드 마스터가 혀 차는 소리를 냈다.
“이런 노래를 하게 그냥 두자고? 니들은 이기겠지만 완전 무대 개판 되겠는데?”
재호가 말을 보탰다.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거던요? 차라리 가성 쓰시라구. 최고음을 진성에서 부드럽게 가성으로 넘어가면 훨씬 세련되게 들리고 좋을 거 같다고 했는데. 안 들으시더라구요.”
“노을이 때문에 아이가? 저놈이 그냥 같은 음을 별 힘도 안 들이고 진성으로 불러 버리니까. 비교돼서 그렇겠제.”
“힘이 안 들지는 않습니다.”
일부러 김종윤이 보라고 힘이 안 드는 척 연기하기는 했다.
내가 편안함을 가장할수록 김종윤은 당황해서 무리수를 뒀다.
하루 연습했을 뿐인데 김종윤은 이미 자기 페이스를 완전히 잃은 채로 노래하고 있었다.
그냥 내버려 둬도 스스로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노을 씨.”
고개를 돌리니 조민하 선배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선배님 메리에게 통화해 보셨나요.”
“네네 통화했어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그거보다, 김종윤 저 사람 말인데요.”
“네. 노래가 좀 아쉽죠? 원래 저 정도는 아닌데 좀 페이스를 잃으신 거 같네요.”
“그런 소리 할 때가 아니에요. 잘 들어봐요.”
조민하 선배가 남들이 듣지 못하게 내게 귓속말로 내용을 전달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내용이었다.
* * *
연습 후,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재호와 환희 둘에게 조민하 선배가 해 준 이야기를 공유했다.
“조민하 선배 친구가 김종윤 무대 코러스를 맡았거든? 그분이 선배한테 말해줬어. 김종윤 연습 때는 개판이었다고. 꼭 지금과 똑같았다네?”
“뭐라고!”
“그게 말이 되여??”
역시나 둘 다 나처럼 깜짝 놀랐다.
김종윤은 연습 때는 자기가 낼 수 없는 고음을 무리하게 진성으로 내서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고 말했다.
그러던 것이, ‘본 경연’ 때는 감쪽같이 김종윤의 문제가 사라졌다고 했다.
마치, 누군가가 대신 불러준 듯이 말이다.
기억을 더듬어봤다.
확실히, 나는 2차 예선 때 김종윤의 노래를 직접 대기실에서 들었다.
훌륭한 노래는 아니었지만, 지금 연습 때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
“확실히, 예선 때 노래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지?”
“나쁘지 않았지.”
“근데 정말 그게 나쁘지 않은 노래였을까?”
재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 소리야?”
“노래가 괜히 좋아 보였달까?”
“야 그게 말이 돼? 우리가 좋아하는 가수도 아니구. 사사건건 우리랑 부딪혔던 사람 노래가 괜히 듣기 좋았다구?”
“내 말이 그 말이야. 무슨 마술을 쓴 것처럼.”
뭔가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났다.
나는 조민하 선배에게 다시 통화를 걸었다.
-네.
“선배. 말씀 듣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역시 이상하네요.”
-그렇다니까요.
“대체 뭘까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노을 군 본인이 찾아봐요.
“제가요?”
-음악방송 1위 가수잖아요? 인맥 있을 거 아니에요. 좀 물어봐요.
생각나는 전문가라면 한 명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이거 방송 녹화본 유출하면 안 되죠?
“네, 안 됩니다. 다 저작권이니까요.”
조민하가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하도 메리가 궁금하다고 성화여서 지난 예선만 녹화본 보내줬어요. 한 김에 모든 가수 무대 다 녹화했어요.
“헛….”
-가수들은 안 나와요. 코러스만 보이는 각도이긴 한데. 문제 될 수 있으면 메리한테 처분하라 할게요.
바로 그때, 문득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잠시만요. 선배님.”
* * *
다음 날, 나는 내가 아는 최고의 전문가를 찾아갔다.
‘음악을 잘 아는 수준을 넘어 연출까지 꿰고 있는 사람. 거기다가 음악 마케팅까지 완벽하게 아는 사람.이라면 딱 내 주변에 한 명 있지.’
천채왕 프로듀서가 그 정체였다.
약속한 시각에 맞춰 천채왕의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천채왕이 유쾌하게 내게 말을 걸었다.
“먼저 연락주니까 좋다. 그동안 통화야 자주 했지만.”
“네에.”
막상 대회가 시작되니, 천채왕과 직접 만날 일이 드물었다.
연습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김종윤과 비원더의 노래 차이가 확연했다.
김종윤에게 실력으로 밀리지는 않았다.
김종윤이 반칙을 쓰고 있는 건지, 그 의문을 해소하는 편이 더 승률을 올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천채왕을 만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천채왕과 요즘 천채왕이 즐겨 먹는 건강 식단에 대해서 10분 정도 이야기한 다음, 자연스럽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한번 소금을 바꿔 먹어 보겠습니다.”
“그래그래. 소금이 진짜 중요하다니깐! 이게 말이야 노을아….”
빠르게 말을 끊었다.
“저 선생님.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내가 슬쩍 준비해둔 CD를 내밀었다.
조민하 선배에게 부탁해 전달받은 2차 예선 영상이었다.
화질은 조악하지만, 모든 무대가 담겨 있었다.
천채왕이 CD를 집고는 내게 질문했다.
“이게 뭐니?”
“2차 예선 영상 자료입니다. 여기서, 한 명의 무대가 아무래도 이상해서요.”
“누군가?”
“김종윤이란 사람입니다.”
“아 김종윤? 이번에 너희랑 붙잖아? 3차 최종 예선에서. 라이벌 미션이었지 아마?”
“네 맞습니다. 저희 상대인데요. 2차 예선 무대가 뭔가 좀 이상하더라고요.”
“뭐가?”
“정확하게 뭐라고 말씀은 못 드리겠는데. 뭔가 무대가 실제보다 더 좋아 보인달까요? 눈을 감고 귀로만 들으면 분명 별로였는데. 무대만 보면 훨씬 좋게 느껴져서요. 뭔가 트릭이 있을 것 같습니다.”
천채왕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사랑 아냐? 사랑!”
“그럴 리가요!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지금 저희랑 가장 사이가 안 좋은 가수일 겁니다.”
“알아 알아. 나도 가수들 교우 관계 정도는 알아두고 있어. 그래서, 이 무대에 무슨 트릭이나 반칙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 이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넵.”
“야. 평소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부탁은 딱 잘라 거절할 텐데. 노을이 너는 이상하게 감이 좋아서. 거절은 못 하겠단 말야. 한번 볼게. 잠시만.”
“네, 부탁드립니다.”
천채왕은 숨을 죽인 채로 김종윤의 무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김종윤의 노랫소리 외에는 너무 조용해서 내 침 삼키는 소리까지 정확하게 들릴 정도였다.
영상을 다 확인한 천채왕이 굉장히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런 거구만?’이라는 표정과 ‘야 근데 이걸 어쩌지?’라는 표정이 뒤섞인 느낌이었다.
“감이 오시나요?”
“어. 어. 뭐가 느껴지긴 하는데. 아, 이거 애매하네.”
“무슨 말씀이신가요?”
“일단 이건 마술 트릭이야. 서브리미널 효과라고 하는 거지.”
“서브리미널 효과요?”
“버거 광고를 찍는다 쳐보자. 그런데 그중 아주 잠깐, 0.1초 정도만 ‘배고파’라고 쓰여 있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거야. 그래 봤자 너무 짧은 시간이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저 이미지를 봤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지. 하지만 여전히 뇌는 그 사진을 봤다는 걸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배고픔을 느끼게 될 수 있어. 이 가설이 서브리미널 효과야.”
뭔가 기분 나쁜 테크닉이었다.
“자기가 본 줄도 모르는 메시지에 조종당한다는 건가요? 꼭 최면 같은데요.”
“이번 무대의 경우에는 김종윤 이 친구, 교묘하게 ‘나에게 투표하세요’라는 이미지를 뒤에 무대 영상에 숨겨 뒀어. 무대 뒤 스크린에도 1프레임씩 숨겨 뒀고. 의상이나 장치에도 잔뜩 투표 독려 메시지를 넣었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노을이 네가 감이 좋은 거야. 이거만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눈치를 챘으니까. 나라면 아마 네가 의심스럽다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매력이 있나 보지~’라고 적당히 넘어갔을 거야.”
애매했던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든 보람이 있었다.
“그럼 이제 이 내용을 주최 측에 전달해야겠네요.”
천채왕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게 문제야.”
“네?”
“사실 이거, 남보고 투표하지 말라고 훼방 놓은 거도 아니잖아? 공연 중에 스크린 연출은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도 메시지를 숨겨서 일종의 최면을 거는 건데요. 일종의 반칙 아닌가요?”
천채왕이 하하 웃었다.
“모든 마케팅에는 최면적인 면이 있어요. 이걸로 탈락시키거나 하진 않을 거야. 그게 문제야. 걸고넘어지자니 애매해.”
“그럼 말하지 말까요?”
천채왕이 펄쩍 뛰었다.
“아니! 항의는 해야지. 좀 치사한 꼼수기는 하니까. 다만 이걸로 탈락하지는 않을 거야. 그걸 생각해 두라는 거야. 결국 실력으로 이겨야 해.”
“알겠습니다.”
사실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은 됐다.
‘이런 치사한 짓을 하는 사람이 과연 이거 하나만 할까?’
뭔가 더 꼼수가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 * *
천채왕의 지시로 배영웅 실장이 직접 항의했다.
답변은 싱거웠다.
“미안하다네요.”
숙소에서 배영웅의 말을 들은 비원더 3인 모두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이게 끝인가’ 싶어서였다.
침묵을 깬 건 나였다.
“그게 전부인가요?”
배영웅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더 할 말이 없었어요. 너무 당당하게 우리만의 연출 방식이었다고 그러니까. 앞으로는 조심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끝입니다.”
환희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패널티나 뭐 그런 거 없어여?”
“그런 거는 노래하는 상대방의 마이크를 뺏는 정도의 행동은 해야 생기죠. 참가 자격 박탈은 더 어렵고요. 이번 건은 누굴 방해한 것도 아니고. 하여튼 자기 연출 범위 내에서 한 일이라 큰 문제가 되지는 않네요.”
재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엄중 경고 정도도 안 된단 거군요….”
나는 다운된 분위기를 올릴 겸 재호에게 핀잔을 줬다.
“야 왜 한숨이냐? 어차피 김종윤보다 우리가 훨씬 노래 잘하는데.”
“노래가 문제냐? 아주 온갖 좋은 파트는 다 자기가 독식하려 하는 통에. 연습 때마다 스트레스라구.”
그건 사실이었다.
김종윤은 고음도 내지 못하는 주제에, 온갖 튀는 부분은 다 가져가고 우리를 병풍, 코러스화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멤버들 모두 연습 때마다 김종윤과 싸우다 보니 순식간에 녹초가 됐다.
노래가 아니라 분량 사수가 더 어려운 합주는 처음이었다.
재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환희가 말했다.
“횽들 고마워여.”
“왜?”
“횽들은 김종윤처럼 파트 배분에서 진상이잖아여. 제가 녹음 디렉 보는데 김종윤 같은 인간 한 명 있었으면. 어우….”
“고오맙다… 야….”
‘덕분에 우리 팀의 팀워크는 좋아진 거 같으니 오히려 김종윤에게 감사해야 되나?’
하지만 아직 나는 의심이 풀리지 않았다.
영상 속 김종윤의 무대 속에는 분명 뭔가 더 큰 위화감이 느껴졌다.
애초에, 사진 이미지 하나 더 넣은 정도의 차이가 아니었다.
영상 속 김종윤은 연습 중인 김종윤보다 훨씬 노래를 잘했다.
그날 밤, 도저히 잠이 들지 않아 김종윤의 공연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리고 비로소, 어색한 점을 하나 더 발견할 수 있었다.
“유레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