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07화 (207/280)

제207화

조금 전 강민정의 노래는 넵튠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관객들도 강민정의 무대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관객들은 ‘10초의 고음’의 임팩트 때문에 사신들이 감동했다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넵튠이 보기에, 방금 강민정의 노래에서 진짜 놀라운 부분은 ‘연기력’이었다.

얼핏 보기에 강민정은 전형적인 ‘나쁜 남자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치는 불쌍한 여인’을 연기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연기 속에 미묘한 ‘정신력’을 숨겨 두었다.

나는 절대로 이 슬픔에 패배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강인함이 들어 있었다.

마지막의 고음은 그 강인함의 표현일 따름.

너무나도 연기가 훌륭했기에, 성악 창법으로 트로트를 불렀음에도 어색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압도적인 테크닉으로 시선을 끈 후, 강렬한 연기력으로 감동을 남긴 덕분이었다.

슬슬 넵튠은 비원더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직 이전 무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관객의 관심을 단숨에 사로잡아야 했다.

전주가 나와야 할 순간, 전주 대신 4인의 화음이 뿜어져 나왔다.

[개나리]

‘이렇게 시작한다고?’

시작하자마자 나온 강렬한 화음이 관객들의 귀를 자극했다.

화음으로 3초간 시간을 끈 후에야 밴드가 연주를 시작했다.

‘일단 첫 번째 관문인 ‘시선 끌기’는 성공했어.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해.’

아직 넘어야 할 난관이 많았다.

우선 무엇보다 ‘연기’가 있었다.

관객들은 방금 베테랑 배우 강민정의 몰입감 있는 노래를 들은 상태였다.

어설픈 연기는 바로 문제가 될 터였다.

원재호가 노래를 시작했다.

[나리나리 개나리

나리보다 못해서 개나리

벚꽃에게 밀리는 개나리]

비원더는 이번에는 평소처럼 곡을 배분했다.

원재호가 시작했고, 주환희가 이어받고, 마지막은 권노을이 후렴의 고음을 마무리했다.

1절을 다 들은 넵튠 한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연기야.’

비원더는 강민정과는 또 다른 색깔의 연기를 했다.

비원더가 준비한 캐릭터는 찌질한 남자였다.

여자가 질려서 그를 떠났지만, 그녀가 떠나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녀의 소중함을 알게 된,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 후회만 남은 캐릭터였다.

비원더 3인은 이 캐릭터를 실감 나게 연기했다.

거기다 서로 다른 3명의 음색, 기교, 발음이 조금씩 들어와 끊임없이 귀에 색다른 자극을 주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2절을 넘어, 클라이맥스 파트로 가게 되었다.

두 번째, 하지만 가장 어려운 과제가 등장했다.

원래 비원더는 고음으로는 정평이 나 있는 팀이었다.

특히 메인보컬 권노을은 워낙 가창력이 뛰어나 클라이맥스 부분은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강민정이, 차원이 다른 고품격 초고음을 방금 관객에게 들려줬기 때문이었다.

이게 이번 2차 예선 시스템의 악독한 점이었다.

한 참가자가 뛰어난 무대를 선보이면, 바로 그다음 참가자는 비교 대상이 된다.

조금만 밀리면 바로 짓뭉개질 수 있는 그런 구조였다.

강민정이 10초가 넘는 압도적인 길이의 초고음을 보여준 이상, 권노을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줘야만 했다.

드디어 연주가 서서히 잦아지고, 권노을의 클라이맥스 파트가 다가왔다.

[개… 나리… 개~~~ 나 리이이잉. 개~ 나리.]

권노을의 고음이 콘서트장을 가득 메웠다.

넵튠이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권노을 이 미친 자식. 이걸 숨기고 있었나?’

권노을이 일부러 연습 시에 설렁설렁 불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나 고난이도 애드립을 준비할 줄은 몰랐다.

권노을은 원곡보다 4~5키는 높인 듯한 엄청난 초고음을 구사했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고음을 8초 정도 끌었던 권노을은 바로 숨 쉴 틈도 없이 다음 가사로 넘어갔다.

[차라리 이 꽃을 짓밟고 떠나가오~]

‘……!!’

이번에는 넵튠이 참지 못하고 온몸을 들썩거렸다.

권노을은 ‘차라리’ 파트에서 이전 클라이맥스 최고음을 갱신한, 더 높은 음을 불렀다.

거기다 ‘떠나가오’에서는 다시 한번 더 음을 올려 노래했다.

관객의 예상을 아득히 벗어나는 고음 퍼레이드였다.

물론 가수인 넵튠 한은 알고 있었다.

현재 권노을이 쓰는 이 애드립의 마지막 최고음은 3옥타브 레 플랫이었다.

물론 일반인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압도적인 고음이다.

하지만 권노을 입장에서는 원래 평소에 일반적으로 활용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권노을은 트릭을 사용했다.

일부러 노래를 자신 기준에서 낮은 2옥타브 라 고음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음을 올렸다.

그래서 마지막 음이 더욱 높게 느껴졌다.

강민정이 딱 한 번, 엄청난 고음을 선보였다면, 권노을은 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높인 변칙적인 고음을 애드립을 보여줬다.

‘같은 고음이라도 과정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거구만. 예상할 수 없는 순간, 예상보다 더 높은 음이 등장하니까, 관객이 느끼기에는 평소의 고음보다 훨씬 더 높은 음으로 보이겠어. 음 자체의 고저보다는, 그 음까지 가는 여정이 얼마나 짜릿한지가 더 중요하다는 건가?’

탄식이 나올 정도로 놀라운 노래였다.

무대가 끝나자마자 넵튠 한은 벌떡 일어나 손바닥이 얼얼해질 때까지 박수를 쳤다.

선배라서 의무감에 치는 박수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난 박수였다.

넵튠 한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게 데뷔 1년 좀 안 된 신인의 노래라고? 15년 차 가수라고 해도 믿겠다!”

관객들도 그에 못지않게 흥분해 손뼉을 쳤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이 자신과 같은 평가를 할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두 사람의 무대가 끝나고, 심사위원석을 향해 조명이 켜졌다.

2차 예선에서는 2팀을 한 페어로 취급해 심사했다.

두 팀의 무대를 보고 난 후, 심사위원이 각 팀의 심사평을 공유하면서 점수를 매겼다.

실제로는 32팀 중 상위 16팀이 진출하지만, 느낌으로는 앞뒤의 두 팀이 대결하는 기분이었다.

강민정은 예상대로 무난한 호평을 들었다.

300점 만점에 270점, 상당한 고득점이었다.

강민정이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강민정의 표정을 확인한 넵튠이 속으로 생각했다.

‘높은 점수기는 하지만 민정이는 역시나… 만족하지 못했구만. 부족한 게 뭔지는 대충 짐작이 가지만.’

강민정의 심사평이 끝나자마자 바로 비원더의 심사평이 시작되었다.

스크린이 심사위원석을 클로즈업했다.

넵튠 한은 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했다.

스크린 화면 속 이스트 웨이브가 껄껄 웃고 있었다.

“퐈이어! 퐈이어! 퐈이어어! 역시나 끝내주는 무대구만. 죽여주네 죽여줘.”

심사위원장 바네사가 장난스레 눈을 흘겼다.

“뭐가 그리 대단했어?”

“알잖아 배니. 이건 진짜 끝내주는 노래였어.”

“대단하기는 미즈 캉도 대단했잖아?”

이스트 웨이브도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엄청난 연기였어. 뮤지컬 무대였다면 최고점을 받았을 거야. 브로드웨이에 추천하고 싶은 정도야. 토니 어워드라도 받을지 모르지. 하지만 이건 노래 경연이야.”

심사위원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넵튠 한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심사위원도 넵튠 한과 같은 생각이었다.

이스트 웨이브가 고개를 까딱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미즈 캉의 노래는 정말 훌륭해. 하지만 내 예상을 벗어난 적은 딱 한 번뿐이었어. 그것도 너무 잘해서 놀란 거지 저렇게 부를 줄은 알았지.”

“클라이맥스 고음 말이지?”

“롸잇.(Right.) 설마 그렇게 오랫동안 숨도 안 쉬고 고음을 낼 줄은.”

바네사가 입술에 미소를 띤 채, 눈을 감고 이스트 웨이브에게 질문했다.

“뭐, 어쨌든 기대치만 넘어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아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미즈 캉은 운이 없었어. 그다음이… 퐈이어 키드였으니까.”

바네사가 눈을 감았다 떴다.

“비원더….”

“퐈이어 키드의 팀도 비슷한 전략을 가져왔어. 연기 위주로, 쫀득한 정석 발라드를 불렀지.”

“맞아. 편곡 방향도 비슷했고. 미즈 캉이 클래식 악기를 썼다면 비원더는 5인조 소규모 밴드를 썼다는 정도 차이. 취향 차이지만 기본적인 비전은 같았어.”

“클라이맥스에서 고음으로 죽여 주겠다는 작전도 똑 닮았고 말야. 그러니까 더더욱 비교가 되지. 배니, 너는 어땠어? 퐈이어 키드의 고음.”

심사위원장 바네사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바네사가 말을 할 기색이 없자, 대신 이스트 웨이브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뭐, 내 평을 먼저 이야기해 보자면, 미쳤지. 이건 정말… 너무나 정석적인 알앤비 보컬이야. 근데 왠지 우리가 알던 기대를 묘하게 배신해. 다 듣고 나면 우리가 고음 소울 보컬에 원했던 게 모든 기교와 고음이 다 들어 있지. 정말 엄청난 보컬이야. 왜 그런 걸까?”

“완벽하게 단련돼서 아닐까? 고음, 애드립, 호흡. 모든 부분에서 우리 기대치를 뛰어넘었어.”

이스트 웨이브가 자기 말을 보탰다.

“거기다 ‘창의력’. 다 아는 내용이지만 묘하게 순간순간마다 내 예상을 벗어나게 부른단 말이야. 그래서 지루하지 않아. 기가 막혀.”

넵튠 한이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토해냈다.

“바로 그거야.”

권노을은 분명 뻔한 클리셰를 썼다.

하지만 왠지 기대를 벗어나 노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부르는 노래 한 소절, 단어 한 개, 심지어 그가 쉬는 숨 하나마저 이상하게 집중하게 됐다.

그게 바로 ‘창의력’의 힘이었다.

이스트 웨이브가 주먹으로 탕탕 탁자를 내려치며 심사평을 마무리했다.

“미즈 캉의 무대는 완벽한 무대였어. 흠잡을 게 없는 무대! 이런 멋진 무대를 본 것도 럭키한데. 흠결도 있고, 좀 부딪치기도 하지만 강렬하게 몰입되는 최고의 순간이 있는 퐈이어 키드의 무대까지! 이건 뭐랄까 ‘최고의 무대’라고 할까? 이렇게 멋진 무대를 보다니. 벌써 흥분되기 시작하는데? 안 그래?”

바네사가 싱긋 웃으며 말을 보탰다.

“맞아. 그리고 이런 무대가 초장부터 두 개나 나왔어. 다음 무대 하는 사람 굉장히 부담되겠는데? 이거 엔간한 무대로는 기억이나 남겠어? 그럼 다음 무대 가죠.”

이윤강 PD가 다음 참가자를 호명했다.

참가자들의 개인 사정으로 순서가 당일 바뀌었다.

“다음 무대는 ‘김종윤’ 씨 무대입니다.”

“제길! 왜 하필!”

김종윤의 외마디 비명이 무대 뒤 대기실에 울려 퍼졌다.

* * *

권노을은 대기실에서 다른 가수들의 무대를 지켜봤다.

1차 예선은 데모 테이프여서, 실제로 모든 참가자의 무대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종윤처럼 실망스러운 무대도 있었지만, 대부분 무대는 상당히 놀라웠다.

저런 사람을 이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훌륭한 퀄리티의 무대들이 종종 나왔다.

옆에 있던 조민하가 내게 슬쩍 말을 건넸다.

“우리가 제일 잘해요.”

‘걱정 말아요’라는 말이 숨겨져 있는, 일종의 조민하식 격려였다.

“고맙습니다, 선배.”

“고맙긴요. 덕분에 이렇게 훌륭한 팀에 들어가게 해 준 내가 고맙죠. 그건 그렇고, 좀 이상하지 않아요 저 사람?”

그러면서 조민하가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가리켰다.

스크린에는 턱걸이로 합격한 김종윤이 보였다.

“왜요?”

“저 사람 무대 딱히 그리 뛰어나 보이지 않았는데. 어떻게 붙었네요. 합격할 레벨은 아닌 거 같은데. 혹시 조작 아니에요?”

“하하 설마요.”

“당신, 예전에 슈퍼스타 T에서 조작 스캔들 때문에 프로그램 사라질 뻔했잖아요?”

정곡을 찔렸다.

“하하… 설마 세계 최고의 오디션에서 그러겠어요?”

조민하가 한숨을 푹 쉬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요.”

‘에이 설마….’

하지만, 의심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