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6화
다음 날, 이번에는 다른 멤버들과 함께 직접 넵튠 한을 만나 연기 수업을 받았다.
넵튠은 멤버 3인 모두에게 ‘개나리’를 완곡해 보라 요구했다.
넵튠은 우리 노래를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늘었네! 노래 실력이야 뭐, 원래 훌륭했고. 문제는 감정 표현이었는데. 많이 좋아졌어. 특히 환희는 확실히 가사를 쓰던 사람이라 그런가? 많이 늘었네.”
환희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노을횽이 도와줬어요. 이 단어를 왜 썼을지, 작사가 입장에서 고민해보라 하셔서. 그 말 덕분에 제가 나름대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어여.”
내가 환희 어깨를 툭 쳤다.
“뭐 그런 이야기를 다 하냐.”
넵튠 한이 입맛을 다셨다.
“야 근데 뭔가, 지금 상태도 좋기는 한데. 뭔가 좀 아쉽다! 뭐 없을까? 야, 뭐라고 말하기가 좀 그런데. 그래도 썸씽 스페셜이 있어야 할 거 같은데? 근데 이게 연기만으로 가능한 건가?”
썸씽 스페셜이라면 준비해 둔 게 있었다.
강민정의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해 둔 비장의 무기였다.
내가 넵튠에게 말했다.
“사실 하나 생각해 둔 것이 있습니다.”
* * *
비원더의 하우스 밴드의 코러스를 담당하는 조민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밴드 합주 첫 출근길에 나섰다.
비원더의 하우스 밴드 팀과 합주라니, 정말 기대가 컸다.
세션 업계의 레전드 박찬용 선배부터, 잔뼈가 굵은 키보디스트이자 밴드 마스터인 마성규, 전 세계에서 활약하는 기타리스트인 미도리, 거기다가 뉴욕 재즈 공연에서 가끔 보곤 했던 재즈 베이스 신성 소닉 독까지, 인종과 국적, 연령을 초월한 연주의 고수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웠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양재동에 위치한 연습실 겸 녹음실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밴드 매니저 배영웅 실장이 언제나처럼 깍듯이 조민하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자리에 앉자마자 밴드 마스터가 쾌활하게 말을 걸어왔다.
“어 민하 왔나. 야~ 이번 선곡 참 구수하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 나왔어! 딱 내 취향이야. 너는 좋아하나?”
“네 뭐어….”
“별로구만. 그래도 편곡 봤나? 미쳤지. 이거면 민하 너도 좋아할 거다. 권노을 아이디어야.”
조민하는 어제 확인했던 편곡을 떠올렸다.
“이렇게 하면 대체 어떤 무대가 나올지 아예 감이 안 잡히는데요. 이건 트롯이라기보다 흡사 재즈 같은데요. 그것도 아방가르드.”
“합주를 들어보면 알 거다. 자 그럼 해볼까? 다들 모이세요!”
밴드 멤버들이 악기 조율을 멈추고, 한자리에 모였다.
밴드 마스터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야 이거 참. 어떻게 하나? 미국인도 있고, 일본인도 있고. 그냥 영어로 하면 되겠지요? 오케이?”
소닉 독과 미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민하가 속으로 감탄했다.
‘권노을 저 사람, 어떻게 이렇게 전 세계에서 유망한 연주자를 다 끌어왔을까? 저 미도리란 기타리스트, 방금 기타 뜯는 거 들어보니까 정말 장난이 아니던데!’
그때였다.
여태껏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조용하게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박찬용이 슬쩍 어딘가에 손 인사를 했다.
조민하가 박찬용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원더 3인이 합주실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프로듀싱을 담당하는 원재호는 들어오자마자 밴드 멤버들과 차례로 악수했다.
권노을은 조민하에게로 다가가 인사했다.
“선배, 오셨군요. 지난번 노래 녹음 감사했습니다. 생각보다 편곡이 더 좋더라고요.”
“아직도 안 알려 줄 거예요?”
“뭘요?”
“코러스 비법이요.”
“아직도 그거 생각하시는 거예요?”
‘당연하지’라고 조민하는 생각했다.
권노을이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솔직히 선배님께는 알려드릴 게 없는데요. 지난번 편곡도 제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 이번 곡은 어떠세요?”
“‘개나리’요? 편곡 재미있던데요. 그거 노을 군이 아이디어 냈다면서요.”
“에이. 뭐 실제 일은 다 재호랑 밴드 마스터님이 하신 거죠, 뭐. 코러스 편곡도 재호가 했고요.”
권노을 나름의 ‘겸손’이었다.
아니면 연막이라 볼 수도 있었다.
‘이 팀의 음악을 담당하는 건 원재호와 주환희야. 하지만 진짜 중심은 권노을이 아닐까?’
권노을에게는 도대체가 20대 초반으로 볼 수는 없는 원숙함이 느껴졌다.
침착하게 지금, 이 순간 부닥친 문제를 분석하고, 이를 정확하게 해결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개나리’라는 뻔하디뻔한 트로트를 대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걱정했다.
정작 완성된 편곡을 보니,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다.
조민하가 중얼거리듯 작게 속삭였다.
“편곡 좋더라고요.”
권노을이 못 들은 척 시치미를 뗐다.
“뭐라고 하셨어요?”
“편곡 좋다고요!”
권노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죠! 다 재호랑 밴드 마스터 선배님 덕분이죠. 멤버가 너무 좋아요. 민하 선배도 코러스 잘 부탁드려요. 이번 편곡에서도 코러스가 중요하니까요.”
조민하가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만큼 중요하겠어요! 황당할 정도로 어려운 미션을 스스로한테 부여해 놓고.’
하지만 왠지 권노을은 이번에도 해낼 것 같았다.
밴드 마스터가 모두에게 외쳤다.
“자, 이제 연습 시작하겠습니다. 영어 짧으니 이해해주시고. 저는 오랜만에 비원더 하우스 밴드 마스터를 맡게 된 마성규입니다. 야~ 이거 슈퍼스타 T 이후 거의 1년 만 아이가? 감동스럽네. 노을 군한테 실수한 일도 있는데 이렇게 다시 불러줘서 고맙고요. 이렇게 멋진 멤버들과 함께하게 돼서 더 고맙습니다. 앞으로 비원더가 탈락할 때까지, 아니 탈락 안 할 거니까, 우승할 때까지 한번 달려 봅시다!”
밴드 멤버들은 물론, 비원더 3인까지 모두 뜨겁게 박수쳤다.
밴드 마스터가 걱정스러운 듯, 권노을에게 질문했다.
“노을이! 근데 너 이거 정말 되겠나? 너무 어려우면 지금이라도 조금만 재편곡하는 게 좋지 않을까?”
권노을이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연습을 시작해서, 이제는 재편곡하는 게 더 어려워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밴드 마스터는 여전히 권노을을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더 이상 토를 달지는 않았다.
잠시 후, 밴드 마스터의 고갯짓을 신호로 밴드 리허설이 시작됐다.
조민하는 속으로 조용히 탄성을 질렀다.
우선 밴드 마스터의 안정적이면서 빈틈없는 깔끔한 연주에 놀랐다.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소닉붐의 베이스 연주도 있었다.
우아한 학처럼 여유 있게 움직이는 미도리의 기타마저 놀라웠다.
그야말로 세계적인 개성을 가진 연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 모든 연주들이 박찬용 드러머의 원숙한 리듬에 맞춰 완벽하게 하나로 조율되었다.
‘이 정도면 연주로도 세계적인 수준이겠어. 노래를 더하기 미안할 정도야.’
조민하는 밴드 연주에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소용없었다.
비원더가 다 함께 고음을 터트리는 후반에 이르러, 조민하는 실수로 코러스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권노을의 노래에 너무 놀랐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저렇게 노래한다고? 정말?’
이 노래가 완성된다면, 정말 엄청난 일이 일어날 터였다.
* * *
그리고 드디어, 글로벌 비전 2차 예선 날이 밝았다.
넵튠 한은 굳이 배영웅 매니저에게 부탁해 예선 표를 구했다.
이번 공연만은 꼭 두 눈으로 지켜보고 싶어서였다.
‘우선 강민정 이 친구. 완전 뮤지컬에 미친 친구인데. 작품 활동을 잠깐 미루면서까지 대회 준비를 했단 말이야? 대체 어떤 무대를 보여주려고?’
하지만 그보다 더 궁금한 쪽은 역시 비원더였다.
그중에서도 권노을의 노래 때문에 넵튠은 일부러 공연을 보러 왔다.
넵튠 한은 비원더와의 마지막 연습을 떠올렸다.
세 명 모두 목표대로 나쁘지 않은 연기력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권노을이 노래를 부를 때, 방의 공기가 뭔가 달라졌다.
하지만 넵튠 한은 분명 느낄 수 있었다.
권노을은 자신과의 연습에서 자신의 진가를 다 드러내지 않았다.
권노을은 ‘아직 연습이 덜 돼서요. 밴드 리허설 때까지는 반드시 완성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마, 그 최후의 한 방을 어젯밤까지 연습하면서 다듬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훌륭한 노래인데. 대체 어떤 노래를 하려고?’
넵튠 한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2차 예선이 시작됐다.
첫 번째 무대는 강민정의 무대였다.
넵튠 한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우선, 전주에 귀를 기울였다.
“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의외의 전주였다.
30인조 오케스트라가 장중하게 구성진 트로트 멜로디를 연주했다.
마치, ‘트로트 오페라’ 같은 구성이었다.
여신처럼 온몸을 비단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강민정이 무대 위에 우뚝 서서 노래를 시작했다.
그녀의 호흡 하나하나에 관객들이 열광했다.
‘역시나 엄청난 연기력이야.’
강민정은 그 흔한 몸짓 하나 없이, 오직 목소리만으로 청중들을 몰입시켰다.
순식간에 관객들은 강민정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
한순간 강민정은 남편의 배신에 치를 떠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었다.
인생을 비관해 몸을 던지는 것 같은 감각이 넵튠의 몸까지 느껴질 정도로 실감 나는 연기였다.
연기력만큼 전달력도 빛났다.
‘말도 안 돼. 중저음을 이 정도 성량으로 부른다고?’
강민정은 음 하나까지 모두 강력한 호흡을 실어 전달했다.
덕분에 버스(verse) 부분까지 모든 음이 정확하게 귀에 내리꽂혔다.
강민정의 강렬한 딕션과 풍성한 성량이 주는 청각적 쾌감이 대단했다.
그사이 노래는 대단원을 장식하는 클라이맥스 부분에 도달했다.
강민정이 크게 심호흡하더니, 강렬하게 초고음을 내뿜었다.
[개 나~~~~~~~~~~ 리]
넵튠 한은 두 눈을 감고, 노래를 느꼈다.
처음에는 그저 고음을 즐기던 넵튠 한은 저도 모르게 시간을 세기 시작했다.
가수의 직업병이었다.
‘1초… 2초… 3초… 8초… 아니 대체 언제까지 음을 끌 셈이야??’
강민정은 최고 음 3옥타브 ‘솔’을 무려 10초간 끌고 있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들도 두 손 들 정도의 실력이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관객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넵튠 한 또한 손뼉을 치면서 생각했다.
‘이걸 능가할 소프라노가 한국에 있을까? 아니, 세계에는 몇 명이나 있을까?’
슬쩍, 넵튠 한이 시선을 심사위원석으로 돌렸다.
심사위원들도 술렁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음악에 정답이 있다면, 그리고 그 정답이 클래식 성악이라 가정한다면?
강민정은 그 정답을 완벽하게 실행에 옮겼다.
넵튠 한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게 강민정의 ‘정답’이야. 어떻게 할래? 권노을!”
하지만 왠지, 넵튠 한은 권노을이 걱정이 되지 않았다.
강민정의 ‘전통’에 대항할, 멋들어진 새로운 대답이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비원더 3인이 무대 위에 섰다.
여전히 관객들은 강민정의 노래에 취한 듯, 몽롱한 상태였다.
최근 음악 방송 1위까지 차지한 대형 가수가 무대에 나왔음에도, 미동도 없이 조용했다.
‘어쩔 수 없지. 그만큼 조금 전 민정이의 무대가 대단했으니까.’
이전 무대에 넋이 나간 관객들의 관심을 찾아와야 했다.
그것도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말이다.
이윽고, 전주가 시작되었다.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넵튠 한의 얼굴에 놀람이 번졌다.
“이걸 이렇게 시작한다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