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04화 (204/280)

제204화

“넵튠 아티스트님이 있잖아요? 우리 회사 소속이시고. 권노을 아티스트와도 친하시고. 딱 맞는 분이신 거 같은데요?”

그러고 보니, 바로 우리 주변에 또 한 명의 뮤지컬 배우가 있었다.

강민정과 함께 주연을 맡은 넵튠이 바로 우리 곁에 있었다.

애초에 우리를 소개해준 것이 넵튠 선배였다.

그는 조금 전 식사 자리에도 참여했지만, 강민정이 너무 우리에게 공격적으로 나오자 강민정을 달래주려 혼자 남아 지금 차에는 없었다.

어제 ‘마녀 신데렐라’ 공연을 떠올려 봤다.

재호가 말했다.

“넵튠 선배 연기도 훌륭했어.”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 오히려 터트리는 신데렐라 배역보다, 받쳐주는 왕자 배역이 더 준비가 어려웠을지 몰라.”

강민정이 거세게 몰아붙이는 연기를 했다면, 넵튠은 강민정의 에너지를 받아주고, 승화하는 리액션 위주의 연기를 했다.

환희가 제안했다.

“그럼 선배에게 한 번 물어볼까여?”

“좋지.”

내가 넵튠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넵튠 선배는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사과부터 했다.

-야 미안하다. 민정이가 좀… 그래? 설마 밥 먹자고 해놓고 갑자기 노래 훈수를 그리 오래 할 줄은 나도 몰랐네.

“아닙니다. 재미있었어요.”

-재미있었다고? 뭔 소리야. 나도 너희 옆에 있었는데!

“그냥 상황이 좀 재미있었네요. 편하게 말씀하시는 거 보니 강민정 선배하고는 같이 안 계시는 거 맞죠?”

-그래, 나 혼자야. 왜. 뭔데?

“저, 연기 좀 가르쳐 주세요.”

넵튠 선배에게 조금 전까지 우리가 나눴던 모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강민정과 글로벌 비전에서 대결하게 된 일, 그리고 그 대결에서 성악 테크닉보다는 연기력이 우려된다는 말까지 모두 다.

솔직히 공유해야 넵튠 선배가 우리를 도와줄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넵튠은 담담하게 ‘니들 작업실로 갈게’ 딱 한 마디만 남기고는 전화를 끊었다.

배영웅 매니저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요. 금방 오신다잖아요?”

“네.”

하지만 나는 좀 답답했다.

일단 예선이 시작된 이상, 일정이 매우 타이트했다.

당장 2차 예선은 바로 다음 주였다.

‘1주일 만에, 연기력이 늘 수가 있을까?’

* * *

넵튠 한은 들어오자마자 의자에 앉아 우리에게 물었다.

“연기력을 키우고 싶다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게 강민정을 이기는 비결인 거 같습니다.”

“좋은 포인트야. 민정이는 자기가 성악 발성과 기교 덕에 뜬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야. 걔는 연기력이 일품이야.”

재호가 감탄했다.

“아 역시….”

넵튠이 우리에게 질문했다.

“다들 원곡 암기는 다 했지?”

“네!”

“좋아. 연기 팁 그 첫 번째. 연기는 암기부터 시작이야. 암기하지 않은 대본, 암기하지 않은 노래는 연기가 불가능해.”

첫 번째 팁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이 나왔다.

넵튠 한이 고개를 재호에게 돌렸다.

“한 명씩, 그냥 편하게 다 불러봐. 재호부터.”

재호를 시작으로 환희, 내가 모두 ‘개나리’를 불렀다.

눈을 감은 넵튠 한은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모두의 노래를 음미했다.

노래를 다 들은 후, 넵튠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솔직히, 나쁘지 않아. 데뷔한 지 2년 차인 가수 노래라고 누가 믿겠어. 연기력도 좋아. 하지만….”

환희가 되물었다.

“하지만?”

“비교 상대가 강민정이라면… 글쎄… 민정이보다는 연기의 임팩트가 많이 부족한 게 맞아.”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가수치고 연기력이 좋은 들, 매일같이 무대에서 연기를 갈고 닦은 배우보다 연기력이 뛰어나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희망은 있어. 너희, 노래 부를 때 무슨 생각 하냐?”

다들 ‘주인공의 심정에 몰입한다’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했다.

넵튠 한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거야 뭐, 다들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감정이입 하지 말아야지. 악보대로만 기계적으로 부를 거야.’ 이러는 가수는 없잖아. 뭐가 문제일까. 음… 너희 노래 가사 적어놓은 가사지 좀 보자!”

들고 있던 가사지를 건넸다.

환희가 재호에게 물었다.

“횽은 악보를 들고 다녀여?”

“응. 그래야 화성이나 리듬을 수정할 때 기록하지.”

“와 저는 안 돼요. 그런 거.”

“너야 애드립을 워낙 많이 치니까 그걸 다 악보에다 적다간 난리 나지. 노을이두.”

그러고 보니 3명 모두 노래 준비를 위해 가사지에 뭔가를 빼곡히 써 두었다.

하지만 서로의 스타일은 달랐다.

넵튠이 3인의 가사지를 펴 보여주며 차이점을 설명했다.

“자 봐. 재호는 아무래도 작곡가라 그런지. 음악적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어. 악상기호 많이 신경 썼고. 화음도 일일이 디테일하게 확인했고. 음악적으로는 아주 좋아.”

우리 셋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환희가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

“저는 작사가라….”

넵튠이 말을 이었다.

“그래, 안 그래도 환희 너는 작사가답게 가사의 운율에 신경 많이 쓰더라. 발음도 굉장히 섬세하게 따지고. 그에 반해 노을이는.”

넵튠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되물었다.

“저요?”

“그래 너. 노을이 너는 음악적인 부분도, 가사도, 다 꼼꼼하게 챙기더라? 가사지가 아예 너덜너덜하던데. 솔직히, 이 정도 준비하는 가수는 우리 ‘천신군단’ 중에도 거의 없었어. 가사지만 봐도 노래 실력을 알 수 있다니까.”

내가 진짜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저희 이 정도면 된 건가요?”

넵튠 한이 잠깐 말을 멈추더니, 한층 무거워진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렇겠지. 차고 넘쳐. 하지만 민정이 같은 탑 배우와 연기로 소위, 맞짱을 뜨고 싶다? 그럼 이 정도로는 안 되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넵튠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노을이 너는 좀 하고 있더라. 재호랑 환희, 너희는 보통 노래에 몰입을 어떻게 하니?”

“가사 속 주인공의 심정을 생각하고 부르죠. 연인과 이별한 주인공.”

“그 주인공이 누군데? 이 ‘개나리’의 주인공은 누구야? 어떤 사람이야? 남자야 여자야? 원곡은 여자지만 너도 본인이 여자라고 생각하고 노래할 거야? 애인하고는 왜 헤어졌어? 언제 헤어졌어? 지금은 다시 보고 싶기는 해?”

재호와 환희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넵튠 한이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노을이는… 어디서 배웠는지, 이런 디테일을 좀 챙기더라! 무서운 놈. 근데 배우가 아닌데, 이런 걸 굳이 왜 해? 그냥 내가 노래 부른다고 생각하고 몰입하면 되지. 나도 뮤지컬 하기 전, 가수만 할 때는 이런 거 신경 안 썼어. 그 정도로도 충분해.”

내가 넵튠에게 말을 보탰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강민정을 연기로 능가하기는 어렵겠죠.”

“빙고! 바로 그거야. 그러니까 재호 환희, 둘은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캐릭터를 잡아. 기한은 내일까지. 나머지는 내일 알려줄게.”

* * *

넵튠은 풀 죽은 재호와 환희에게 ‘야 그래도 너희 진짜 대단한 거야. 예전에 2년 차일 때 우리 팀 멤버들보다 100배는 더 나은 상황이라니까?’라고 위로해주고 연습실을 떠났다.

재호가 씁쓸하게 웃었다.

“한 방 먹었네. 나는 노래를 잘 만들고 잘 부를 생각만 했지. 돌이켜 보면 가사 속 화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내가 이 상황이면 어떨까만 생각했지.”

내가 재호의 어깨를 툭 치며 그를 위로했다.

“보통은 그 정도면 충분해. 상대를 잘못 만난 거지.”

“그러게! 벌써 뮤지컬계 최고 디바가 상대로 나오면 앞으로는 어떡하니?”

“레전드 가수들이 다 떨어졌다잖아. 뭐 엄청 골치 아프지 않겠어? 게다가 TOP4는 일단 뽑으면 또 사골 국물 우려내듯 오랜 기간을 거쳐 뽑잖아.”

재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어?”

‘아차!’

원생에서 글로벌 비전 한국 예선에는 참여한 적 없었지만, 그래도 본 적은 있었다.

덕분에 글로벌 비전 한국 예선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예정인지 짐작이 갔다.

원생에서의 한국 대표는 김종윤이었다.

글로벌 본선에 나가서는 예선 1차에서 광탈했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위해서도, 또 나를 위해서도 절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역사였다.

내가 적당히 재호에게 얼버무렸다.

“아 그냥 그렇게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했더라고오~.”

“한국도 그렇게 할지는 모르는 거잖아. 싱겁긴.”

“하여튼, 이 정도면 해볼 만한 상대야. 어떻게든 이겨내야지.”

넵튠이 재호와 환희에게 ‘캐릭터 구축’ 과제를 주는 동안, 내게는 또 다른 과제를 제시했다.

[노을이 넌 캐릭터 구축은 됐어. 표현력도 민정이한테 크게 안 밀려. 그보다 민정이는 분명 엄청난 고음으로 승부할 거거든? 민정이에 안 밀릴 고음을 부를 체력이나 길러. 알았지?]

‘체력이야말로 갑자기 1주일 만에 길러집니까!’

별수 없이, 내가 아는 한 가장 체력이 좋은 체력왕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선배. 요새 체력관리 어떻게 하세요?”

바로 체력왕에게 ‘체육관으로 오라’는 답변을 들었다.

* * *

내가 통화한 체력왕 선배의 정체는 문루아였다.

그녀는 댄스가수로서 10년 넘는 기간 동안 아시아 정상에 선 가수였다.

당연히 철저하게 본인의 체력을 관리했다.

핑크색 운동복 차림의 문루아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하안참 연락 없더니만! 대뜸 하는 말이 뭐, 체력을 키우고 싶다고요?”

“네… 선배가 체력, 최고잖아요.”

문루아가 당황한 듯, 살짝 눈을 감았다가 다시 치켜떴다.

“내, 내가 무슨 최고예요! 여튼, 오늘은 내가 하는 것 중에서도 최고로 힘든 메뉴를 시켜 줄 테니까 각오해요. 평소 훈련하고는 차원이 다를 테니까.”

“네, 괜찮습니다.”

넵튠 한에게 혹독하게 연기 트레이닝을 받고 있을 재호랑 환희를 떠올리며 각오를 다졌다.

문루아 덕분에 방문한 체육관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인공 암벽이 우뚝 솟아 있었다.

문루아가 정상을 가리켰다.

얼핏 봐도 10층 건물은 족히 되는 높이였다.

“우와….”

문루아가 스트레칭하며 말했다.

“올라가다 보면 감탄이 아니라 욕이 나올걸요!”

“이, 이걸 오르는 건가요?”

“당연하죠.”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정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서 떨어지면 저 죽어요!”

“안전장치 다 해놓고 가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요. 자!”

문루아가 철컥철컥, 내 몸에 안전장치를 걸어 주었다.

하지만 얼핏 봐도 정상까지는 너무 먼 거리였다.

‘아이고야.’

MP3로 살을 빼고, 매일같이 운동했어도 힘든 건 힘든 거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이미 문루아 선배는 저 위로 올라가 버렸다.

안 쓰던 근육을 너무 썼는지 손가락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때였다.

밑에서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렸다.

“성악 레슨 받으라니까! 하라는 건 안 하고 여기서 만나네요?”

‘윽! 저 고압적인 목소리는.’

목소리가 들렸던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역시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강민정이었다.

나는 최대한 불편한 내색을 감춘 후, 웃는 상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선배가 여긴 어떻게?”

“방금 루아랑 같이 온 거 봤어요. 루아한테 여기 소개한 거 저예요.”

“아… 두 분이 아는 사이셨죠?”

“매일 연락해요.”

그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문루아 선배에게는 나와 강민정이 글로벌 비전 다음 라운드에서 대결한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겼으니까.

강민정을 만난 김에, 잠시 올라가기를 멈추고 암반에 기대 휴식을 취했다.

슬쩍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의외네요.”

“뭐가요?”

“문루아 선배 같은 팝 가수랑도 친해지시다니. 노래는 성악이 정답이라 생각하시잖아요! 문루아 선배는 노래 절대 성악 창법으로 안 하시는데요.”

강민정이 혀 차는 소리를 냈다.

“루아는 댄서잖아요? 내가 상관할 분야가 아니에요.”

‘아, 댄스 노래는 노래도 아니다?

강민정의 음악관은 뭔가 듣는 사람을 찜찜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강민정과 조금씩 쉬어가며 암벽을 탔다.

어찌나 큰 인공 절벽인지 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스파이더맨처럼 암벽 사이를 날아다니는 문루아와는 달리 강민정은 나와 비슷한 페이스로 등산했다.

마침 나도 그녀에게 궁금한 점이 있던 차였다.

내가 슬쩍 강민정 옆으로 가 그녀에게 질문했다.

“그건 그렇고, 강민정 선배는 왜 굳이 글로벌 비전 같은 데 출연하세요?”

강민정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뜻이죠?”

“아니 별거 아니고요. 글로벌 비전이 성악 콩쿨은 아니잖아요? 이미 프로 성악가신데 굳이 그런데 나가실 필요가….”

강민정이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게 궁금했어요? 나도 솔직히 팝 음악의 잣대로 판단 받는 거 싫죠.”

“그렇죠? 아무리 가끔 팝페라 가수, 크로스오버 가수가 글로벌 비전 우승한다고 해도 글로벌 비전이 성악 콩쿨은 아니니까요.”

“콩쿨은 아니죠. 맞아요.”

강민정이 잠시 입을 다물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글로벌 비전에 참여한 이유는 말이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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