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3화
‘음악이 뭐라 생각하냐고?’
엉뚱하지만, 또 본질적인 질문이기도 했다.
후배나, 하다못해 동년배가 이런 질문을 했다면 ‘뭐 그런 낯 간지러운 질문을 다 하냐?’라고 면박을 주고 싶어질 수도 있을 거 같은 말이었다.
그만큼 대답이 어려운 질문이었다.
재호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음악은 감동을 리듬과 멜로디로 표현하는 방식이죠.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환희도 말을 얹었다.
“저도 제 자신을 표현할 예술이라 생각하는데. 다른 무엇보다 음악은 사람을 빠르게 집중시키잖아여. 영화는 두 시간 걸려서 하는 일을 음악은 2분이면 하니까. 그런 점이 좋다는 생각을 했죠.”
강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노을 씨는요?”
왠지 내 대답을 가장 기다리는 것 같았다.
‘저놈의 오류를 반드시 잡아내 보고 말리라!’라는 느낌이 드는 눈빛으로 보이는 건 내 착각인가?
내가 최대한 그녀의 눈빛을 피해 조심조심 대답했다.
“제게 음악은. 노래는. 제가 사는 이유입니다.”
강민정이 팔짱을 끼더니 내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무 이상적이기만 한 말 아닌가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노래를 부르는 것 그 자체가 제겐 중요하더라고요. 대가가 없더라도요. 거꾸로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제가 제 노래에 마음이 안 들면 기분이 좋지 않아요.”
강민정이 살짝 입술을 물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글로벌 비전에서 우승하더라도 본인 노래가 마음에 안 들면 우울해할 거란 거예요?”
“아 그 정도 상황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우승할 정도면 제 노래도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재호가 옆에서 나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아닐 수도 있그던? 솔직히 그때는 너두 기분 좋을걸? 빨리 선배님한테 사과해.”
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게, 남한테 기준을 맞추고 살면 너무 피곤하더라고요. 나보다 잘난 사람은 언제나 있으니까. 어떻게든 기준을 나한테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원생에서 무명 생활을 오랜 기간 하며 느낀 지혜였다.
내 말을 들은 강민정이 볼에 바람을 넣어 잔뜩 부풀렸다.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셋 다 틀렸어요. 그런 각오로 음악을 잘할 수 있겠어요? 그 속에 ‘어떻게 실력을 키울지’ 도움이 되는 키워드라곤 없잖아요?”
‘뭐, 우리들의 이유도 다들 지치지 않고 즐겁게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되니까.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닌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건 말건, 강민정은 시선을 내게 고정했다.
“음악은 ‘전통’이에요. 노래하는 방법에는 정답이 있는 거라고요. 안 다치면서 전달력을 최대화하는. 사실 비원더 무대를 봤어요. 노래가 아쉽게도 엉터리예요. 재호 씨는 비음을 너무 많이 써요. 환희 씨는 호흡을 너무 먹고요. 발음 가지고 하는 장난도 너무 많아요. 그리고….”
강민정은 기관총처럼 계속해서 따따따 우리 노래를 지적했다.
대부분 ‘클래식 창법이 아니다’라는 지적이었다.
보다 못한 넵튠이 강민정 말을 끊었다.
“민정아. 얘네들은 뮤지컬 배우가 아니라 가수잖아.”
강민정이 눈을 부라렸다.
“선배, 노래는 정답이 있다고요. 이렇게 좋은 악기들을 가지고, 가진 악기의 포텐셜을 전혀 쓰지 못하는데. 그게 괜찮아요? 자칫하면 성대 결절 같은 큰 부상이 와서 노래를 못 하게 될 수도 있는데. 그건 괜찮나요?”
넵튠이 뭔가 말을 하려다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내가 넵튠 선배에게 속삭였다.
‘저 선배 원래 저러나요?’
‘뮤지컬 연습 때도 그랬어. 뮤지컬 무대서야 전달력이 중요하니까, 진심 어린 충고인가 보다 했지. 근데 가수한테 저러는 건 좀 과해.’
그러거나 말거나 강민정은 이번에는 내게로 타깃을 바꿨다.
“노을 씨. 솔직히 노을 씨는 정말 재능이 있어요. 가지고 있는 악기는 파바로티가 울고 갈 정도예요. 근데 그런 악기를 왜 그런 식으로 쓰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요?”
“정석으로 부를 줄 알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창법을 자꾸 한 음절씩 섞어 쓰잖아요! 잘할 때는 오페라 가수 뺨치는 발성으로 노래하면서. 이번 데모 테이프도 보면 어떤 부분은 창법이 완벽한 ‘소토보체’라고요. 절제된 낮고 작은 음에서 성량과 파워를 집어넣는 것은 프로 성악가도 울고 갈 잠재력이에요. 그런 재능이 있는데 대체 왜….”
(소토 보체: 절반 이하의 작은 음량으로 노래하라는 클래식 음악 악상 기호.)
넵튠이 보다 못해 한마디 하려 입을 열었다.
“야 강민정. 그만해. 얘는 니보다 더….”
저런 말을 들었다간 상황이 더 귀찮아질 것 같아 내가 서둘러 넵튠 한의 말을 끊었다.
“네, 성악 창법도 고려해 보겠습니다.”
말하면서 넵튠 한의 허벅지를 몰래 툭툭 쳤다.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다.
넵튠 한이 내게 귓속말을 건넸다.
‘왜? 도와주려 했는데.’
‘감사합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경쟁자가 실패하고 있는데, 굳이 그 실패를 교정해 줄 이유는 없었다.
저런 식으로 노래를 부르면, 정말 뻔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노래가 돼버린다.
노래는 스포츠가 아닌 예술이다.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려면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강민정은 노래의 목적을 잊고, 수단에만 갇혀, 과거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뻔하게 예상할 수 있는 노래는 감동을 이끌어내기가 어렵다.
‘아니, 근데 잠깐만. 나는 조금 전, 강민정의 노래에 누구보다 큰 전율을 느꼈는데?’
방금 나는 강민정의 노래를 대하는 태도로는 절대로, 노래로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에 누구도 아닌 내가 아주 깊은 감동을 느꼈다.
생각해 보면, 노래로 감동을 못 주는 가수가 뮤지컬 업계 최고 디바가 될 턱이 없었다.
내가 슬쩍 넵튠에게 물었다.
‘선배, 강민정 선배. 노래 좀 뻔하게 부르죠?’
‘잘하기는 하는데 판에 박히게 하는 편이긴 하지.’
‘그런데도 어떻게 뮤지컬계 최고 디바가 된 거예요?’
‘좋은 질문이야. 잘 봐.’
‘네?’
강민정은 아직도 재호와 환희에게 성악을 설파하고 있었다.
넵튠이 질문을 던져 강민정의 관심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민정아. 다음 뮤지컬 정했어?”
“…그러니까 제가 성악 선생님을 소개해 줄 테니 레슨을 꾸준히 받고 발성을 연습하면… 아, 네. 선배. 결정했죠.”
“뭔데?”
갑자기 강민정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1년 뒤에 할 예정이에요. 독일 동화인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이요.”
“아 그 창작 뮤지컬? 거기 여주가 있어?”
“이번에 뮤지컬로 각색하면서 추가했어요. 모든 모험에 다 함께하는 히로인이라는 설정이에요.”
“원작에 없는 캐릭터야? 야, 감정 잡기 어렵겠는데.”
강민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오히려 재미있어요. 제가 과거사를 마음대로 수정해도 되잖아요. 캐릭터에 자유가 좋아요. 제 설정은 이래요. 이 여자 주인공은 공주의 하녀였는데….”
이후 강민정은 끝도 없이 배역에 대한 말을 시작했다.
‘이거 때문이었네.’
틀에 박힌 노래를 고집하는 강민정이 어떻게 뮤지컬계를 좌지우지하는 대배우가 됐는지 감이 왔다.
* * *
강민정과의 브런치가 끝난 뒤, 우리는 배영웅 매니저가 모는 차를 타고 작업실로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강민정은 ‘이 선생님께 레슨받아봐요! 꼭이요!’라는 말을 남겼다.
재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꼰대네. 저렇게 아름답구, 노래도 잘하는 분이 어째 저러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좋게 말하면 올곧은 거지. 노래에 방해된다고 매운 거는 입에도 안 대고 수프만 마시는 거 안 봤어? 그 정도로 독하게 자기관리를 하니까 공연 컨디션이 유지되는 거겠지. 그런 근성이 조금만 방향이 바뀌면 고집으로 보이기도 하고.”
재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에게는 나만의 코러스 방법이 있는데! 조민하 선배한테 칭찬 들은 코러스 창법을 한 번도 코러스 안 해본 사람이 뭐라 해도 되는 거야? 그럼 교회 성가대 창법 해? 나는 절 오빤데!”
“으, 본인이 본인을 오빠라고 하냐.”
느끼한 놈 같으니.
환희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근데요 횽. 저는 어제 뮤지컬은 진짜 좋았거든요?”
재호가 언성을 높였다.
“나도 좋았거덩? 너무너무!”
“왜 화를 내요 횽? 그냥… 저런 성악 꼰대 노래도, 저렇게 감동을 줄 수 있구나. 새삼 감탄했어요.”
드디어 환희랑 재호가, 방금까지 내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내가 슬쩍 둘에게 말했다.
“강민정 저 사람. 착각하고 있어.”
재호가 퉁명스레 물었다.
“뭘?”
“자기 특기가 ‘전통’. 그러니까 단련된 성악 창법이라 믿는 거 같은데.”
“그게 특기 아니야?”
“물론 맞지. 하지만 제아무리 성악 창법을 훌륭하게 마스터한들, 그것만으로 뮤지컬 대배우가 될 것 같아? 성악 전공이 저 사람뿐이야? 아니지. 저 사람의 진짜 특기는 연기력이야.”
“연기력…!”
재호가 뭔가 생각할 거리를 얻은 듯 입을 다물었다.
재호 또한 눈빛이 깊어졌다.
나는 뒤통수를 톡톡 손가락으로 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제 공연을 생각해 봐. 처음에 그녀는 누가 봐도 진짜 신데렐라 같았어. 마녀로 흑화할 때는 진짜 마녀 같았고. 마지막에는 정말 세상을 호령하는 여왕이 된 듯했지. 캐릭터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3시간도 안 되는 분량의 뮤지컬에서 그런 변화무쌍한 서사를 설득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어제 감동해서 눈물을 줄줄 흘린 우리들이 그 증인이고.”
재호가 ‘과연….’ 하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는 연기를 잘 몰라. 하지만 강민정 저 사람. 정말 연기 노력을 많이 하던데? 아마 ‘나는 배우가 아니라 성악가니까, 연기는 진짜 노력해야 해’라는 겸손한 생각이 있어서겠지. 노래에 있어서는 되려 오만한 면도 있지만, 연기는 겸손해서 연기력이 탄탄한 건 아닐까 가설을 세워봤어. 만약 내 생각이 옳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재호가 느릿느릿 대답했다.
“어쨌든, 노래가 뻔하더라도, 테크닉적으로 훌륭한 건 사실이니까. 성악으로 단련된 전달력에, 연기력마저 출중한, 엄청난 뮤지컬 디바가 탄생하는 건가?”
“바로 그거야! 강민정 본인은 자신에 대해 뭐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 사람의 특기는 ‘연기력’일 거야. 아마 트로트를 잘 부른 것도 그 때문 아닐까?”
극적인 가사를 가진 트로트 노래를 완벽하게 여주인공의 감정을 담아, 절절하게 부르는 강민정의 모습이 우리 눈앞에 그려졌다.
트로트에 꼭 나와줘야 한다는 꺾기 하나 없는 노래라도 상관없었다.
그녀는 이미 노래 속 주인공 그 자체로 빙의되었으니까.
그녀가 부르는 노래가 성악이든, 트로트든, 알앤비든, 탱고든 아무 상관이 없어진다.
관객은 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몰입되어, 장르 따위 구분은 잊고 그녀의 노래에 빠져들게 된다.
환희가 굳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연기력에서 심히 밀릴 수 있겠네여.”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강민정을 이기려면… 영혼을 울리는, 그녀의 연기력에 대응해야 해.”
환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매일같이 뮤지컬 무대에 서면서 단련하는 사람을 우리가 연기로 이길 수 있을까여?”
“그러고 보니 그러네?”
생각해 보면, 연기 연습은, 역시 공연만 한 게 없었다.
정극이 아닌, 뮤지컬 무대이긴 하지만, 매일같이 연극의 일종인 뮤지컬을 공연하며 연기력을 단련한 강민정을 우리가 연기로 이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였다.
잠자코 우리 말을 듣고만 있던 배영웅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그분에게 부탁해보면 어떨까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