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201화 (201/280)

제201화

배영웅 매니저의 입에서 우리가 바라고 바랐던 그 말이 나왔다.

“합격입니다.”

재호가 질끈 쥔 주먹을 하늘 위에 내지르며 허공에 어퍼컷을 날렸다.

“예스!”

환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로 2초 정도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환희는 단전에서부터 힘을 끌어올려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나도 입이 귀에 걸렸다.

환희가 내 손을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진짜, 어떻게 노래하나 했는데. 이제 벽을 깼어요. 진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자꾸 예능으로 겉돌구 그랬는데. 이렇게 재미있게 노래할 수 있었는데.”

환희가 내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얌마! 뭐해! 떨어져! 징그럽게시리.”

배영웅 매니저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첫 합격자였다고 합니다. 합격자가 드물었나 봐요. 굉장히 이례적으로 어려운 예선이었다고 하는데, 저희는 가볍게 만장일치로 통과했다고 들었어요.”

내가 되물었다.

“그렇게 자세하게 알려줘요?”

배영웅이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죠. 제작사는 ‘합격’ 한 마디만 전달했고요. 제 소스가 있습니다.”

소스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배영웅 매니저는 입을 다물었다.

‘뭐 이윤강 PD가 글로벌 비전 제작을 맡는다고 했으니. 아마 그 사람이 아닐까 싶지만… 굳이 내게 말해줄 필요는 없지.’

일단 합격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다행이었다.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던 김종윤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내가 물었다.

“선배는 연락 안 왔나요?”

“아직. 니들도 합격할 정도면, 생각보다 1차는 좀 물 예선인가 보지? 나야 뭐 무조건 되겠지만.”

그때, 은갈치 색 양복에 부담스러운 용무늬 검은 셔츠 차림의 아저씨가 문을 휙 열고 뛰어 들어왔다.

은갈치 양복이 김종윤을 발견하더니 크게 소리 질렀다.

“됐어요 됐어요!”

김종윤의 얼굴이 환해졌다.

“합격이냐?”

“보결이오! 야. 보결도 으찌나 어려운지! 마, 선배들은 죄다 떨어짔다는 거 아입니꺼. 역씨 선배는 대단하요?”

“보… 결?”

김종윤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나와 재호, 환희는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내가 김종윤에게 부러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보결 축하합니다. 합격자 모자라면 추가 합격되는 거죠? 되겠죠. 뭐. 고생하셨어요.”

재호도 깍듯이 인사했다.

“역시 레전드이시네요. 축하드리구요. 2차 예선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혹시나 합격하신다면 말이지요.”

환희도 말을 이었다.

“역시 선배님이시네여. 존중합니… 푸풋, 아니, 존경합니다.”

‘아유 저 멍청한 놈. 연기가 생활화된 놈이 그거 표정 관리를 못 하냐.’

환희의 마지막 미스가 아쉬웠지만, 하여튼 우리는 짐짓 예의 바른 척 김종윤을 메기고 바로 녹음실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우리가 나가자마자 김종윤의 뺵뺵대는 소리가 등 뒤로 울려 퍼졌다.

[심사위원 이 자식들! 다 죽어! 죽어! 그냐앙~~]

소리를 최대한 죽인 채 큭큭 웃으면서 녹음실을 빠져나왔다.

배영웅 매니저가 우리에게 쾌활하게 말을 걸었다.

“유쾌한 날이네요. 뭐, 당연히 예선 통과 정도는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요. 그래도 확정은 좋은 거죠.”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배영웅 매니저가 우리에게 씨이익 미소를 지었다.

“우리, 오늘은 파티할까요?”

환희가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맹물로여?”

“다른 것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배영웅이 가방에서 어마어마한 양주를 꺼냈다.

그날 밤, 우리는 오랜만에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

배영웅 매니저의 품에서는 산타의 마법 양말처럼 술술 양주가 계속해서 나왔다.

깐깐한 재호는 마시지 않았지만, 나와 환희는 주는 대로 넙죽 마시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놀랍게도 환희와 재호(!)가 쓰러져 버리고 나와 배영웅 매니저만 남았다.

“…재호 얘는 왜 저래요? 술도 안 먹었는데.”

배영웅 매니저가 짓궂게 큭큭대며 말했다.

“술은 안 먹었지만, 제가 드린 초콜릿엔 위스키가 들어 있었어요. 오늘 같은 날 혼자 안 먹는 게 얄미워서.”

내가 피식 웃었다.

환희는 만취해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내가 배영웅 매니저에게 말했다.

“근데 실장님. 술 쎄시네요. 같이 술 먹는 건 처음인 거 같은데요.”

분명 우리 중 가장 술을 많이 마셨건만, 안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뭘요. 이 정도는 되어야 여러분들을 지킬 수 있죠. 다 훈련해 뒀습니다.”

‘술 먹어도 안 취하는 법 훈련이라니 무슨 스파이냐고요!’

그때였다.

갑자기 벌떡! 하고 환희가 일어나더니 내게 꽉 안겼다.

“야! 뭐해 인마. 징그러워. 나가 인마!”

환희, 아니 하늘이는 한층 더 꼼지락거리며 내게 엉겨 붙었다.

“고마워요 혀어어엉~ 형 아니면 내가 이렇게 노래 부를 수 있었을지~~. 나 정말 힘들어써요오오오~~.”

“너 취했어 인마! 잠이나 자!”

내가 직접 환희를 들어 침대에 던져 버렸다.

그사이 배영웅 매니저도 재호를 다소곳하게 안락의자에 앉혔다.

갑자기 드르릉, 하고 배영웅 매니저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확인한 배영웅 매니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노는 거도 이제 끝이네요.”

“왜요?”

“벌써, 2차 예선 요강이 왔어요.”

“벌써요?”

시계를 보니 아침 7시였다.

헛웃음이 나왔다.

“무슨 아침 7시에 그런 걸 다 보내나요. 똥매너네요.”

“글로벌 비전이 갑이니까요. 자기 시간대에 편할 대로 하는 거죠. 제가 2차 예선 요강은 뽑아 둘 테니 눈 좀 붙이시고 확인해 보세요.”

“실장님은요?”

“저도 조금 자야죠.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배영웅 매니저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불쑥 안대와 귀마개를 장착하고는, 소파에 쓰러져 버렸다.

나야, MP3 덕분에 1시간만 자면 충분했다.

1시간 푹 잔 후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무도 잠에서 깰 분위기가 아니었다.

무료함을 달랠 겸 2차 예선 요강을 휘휘 살펴봤다.

선곡이 일단 눈에 띄었다.

‘모두 똑같이 한 곡을 부르게 하다니.’

딱 1곡으로 선곡을 고정했다.

편곡은 가능했지만, 멜로디나 가사를 바꾸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다.

같은 곡을 부르게 함으로써, 참가자들의 실력 차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겠다는 제작진의 사악한 의도가 보였다.

공연 순서도 공개되었다.

우리의 순서는 전체 두 번째였다.

2차 예선 합격자가 32명이니 제법 앞이었다.

그리고 참가자에게는 바로 앞 순서와 바로 뒤 순서, 즉 1번째 순서와 3번째 순서인 가수만 공개되었다.

3번째 가수는 김종윤이였다.

‘지겹다 지겨워.’

그에 반해 1번째 가수는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인물이었다.

강민정, 현재 뮤지컬계 최고로 잘나가는 디바였다.

그것도, 정통 성악파 뮤지컬 배우가 아닌, 걸그룹 출신의 뮤지컬 배우였다.

하지만 전공이 성악이라 금방 뮤지컬에 적응해, 지금은 뮤지컬계 톱으로 잘나갔다.

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투덜댔다.

“아니, 뮤지컬 배우가 왜 음악 오디션에 다 나와? 그냥 브로드웨이 오디션을 봐야 하는 거 아닌가?”

불쑥, 재호의 목소리가 뒤통수에서 들렸다.

“원래 글로벌 비전에 크로스오버 가수 많이 나와.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가수들이 많이 우승했어. 일반적인 거라구.”

“어, 깼냐?”

재호가 머리를 빗으로 정리하며 말했다.

“말도 마! 평소보다 83분이나 더 자버렸다구. 누가 위스키 넣은 초콜릿을 다 가져온 거야?”

‘…진짜 변태 같은 놈!’

재호가 스트레칭을 꼼꼼하게 하며 말을 이어갔다.

“으으읏차! 그러니까 강민정 같은 성악 베이스의 뮤지컬 배우가 글로벌 비전에 나오는 건 이상한 게 아니야. 되려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일걸? 초고음을 내는 성악 소프라노는 문화를 초월해 어디서나 열광하는 요소잖아.”

“일리가 있네. 그러면 그다음 무대인 우리가 부담이 좀 되겠는데? 성악가 다음이면 성량 차이가 티가 나려나?”

“가볼래?”

“어딜?”

재호가 내 눈을 쳐다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당연히, 강민정 공연에 가보면 되잖아?”

“지금 뮤지컬을 하고 있어?”

* * *

바로 그날 밤, 우리는 강민정과 넵튠 한 주연의 ‘마녀 신데렐라’를 보러 대극장에 갔다.

재호는 클래식 음악과 뮤지컬 음악의 팬이라서 그런지, 이런 일정을 잘 알았다.

내가 재호에게 물었다.

“잘은 모르지만, 넵튠 선배 말에 따르면 뮤지컬은 진짜 하기 힘들다는데? 뮤지컬 공연할 때는 라디오 DJ도 안 하고, 심지어 술이나 매운 음식도 안 먹으면서 몸을 준비한다고 했거든. 어떻게 오디션에 참여하면서 뮤지컬을 할 생각을 하냐? 그게 가능해?”

재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글쎄 뭐 본인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나 보지? 게다가 이번이 막공이니까.”

“그래도 다행이네. 넵튠 선배랑 같이하는 공연이 막공인 덕에 급작스럽지만, 공연을 볼 수 있게 된 거잖아?”

옆 좌석에서 가만히 우리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배영웅 실장이 조용히 귓속말을 날렸다.

‘넵튠 아티스트님에게는 선배 보러 왔다고 해주세요. 강민정은 사찰하러 왔다는 것 비밀입니다.’

이윽고, 막이 오르고 공연이 시작됐다.

‘마녀 신데렐라’는 누구나 아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비튼 이야기였다.

왕이 되기보다는 공주의 부군이 되어 주부의 삶을 살고 싶은 왕자와 왕비가 되기보다 군주가 되고 싶어 혁명을 꿈꾸는 신데렐라가 만나 운명이 어긋나기 시작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사실상 이야기 비중은 물론, 노래도 왕자와 신데렐라, 두 사람에게 몰빵했다.

왕자는 넵튠 한 선배, 신데렐라는 강민정 배우가 맡았다.

‘역시나… 대단하네.’

소문난 한국 뮤지컬 신의 디바인 강민정의 공연은 정말 굉장했다.

3옥타브 고음이 2시간 내내 울려 퍼졌는데도 계속해서 에너지를 유지했다.

‘저렇게 한 곡 부르기도 힘든데. 두 시간 동안 저런 컨디션을 유지한다고? 괴물이네, 괴물이야.’

재호가 뒤에서 속삭였다.

‘말도 마, 1막 마지막 곡이 더 대단해. 왕자가 자신을 버린 걸로 착각한 신데렐라가 결국 혁명을 결심하는 내용인데 이 곡이 또….’

‘쉿. 내가 직접 볼게.’

재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1막 마지막 곡인 ‘혁명 선언’이 시작되었다.

정말 재호 말대로 압도적인 곡이었다.

특히 마지막 1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곡의 끝부분이 놀라웠다.

[이 나라. 내가 차지하리라.

곧 돌아오리라.

마녀가 강림하리라~~~!!]

10초간, 압도적인 고음이 쏟아졌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량의 초고음 클라이맥스였다.

신데렐라는 고음을 내지르면서 무대장치를 이용해 문자 그대로 하늘을 날아올랐다.

불꽃놀이처럼 불꽃이 쏟아지며, 마녀로 각성한 신데렐라가 무대 위로 사라지면서 1막이 폭발적으로 마무리됐다.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재호 또한 박수를 쏟아내는 관객 중 하나였다.

“브라보! 브라보! 와!! 내가 이걸 봤다구? 믿을 수가 없네.”

재호가 감탄을 연발하며 손뼉을 쳤다.

나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공연이었다.

여성으로서 낼 수 있는 거의 최고 높은음인 3옥타브 F, 엔간한 가수는 건드릴 수도 없는 그 고음을 10초 이상 지속했다.

심지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과격한 특수 액션을 무대에서 실행하면서.

‘이 정도로 단련된 테크닉을 한국에서 볼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아.’

함께 일어나서 박수갈채를 보내던 배영웅 매니저가 내게 말했다.

“대단한 분이네요!”

내가 답했다.

“괜히 뮤지컬 디바겠어요.”

“근데 저런 창법으로 미션 곡을 어떻게 소화할지 기대가 되네요. 그림은 잘 안 그려져서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데, 이 곡. 저희한테도 안 어울리잖아요. 실장님.”

배영웅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그래요.”

그야 우리에게 안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2차 미션 곡의 정체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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