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96화 (196/280)

제196화

권노을이 서둘러 주머니에서 MP3를 꺼내 화면을 껐다.

‘아이구 깜짝이야!’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갑자기 MP3가 미친 듯이 빛나다니.

혹시나 누가 봤을까 봐 잽싸게 MP3를 제자리에 놓고 태연함을 가장했다.

키미 프로듀서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뭐예요? 왜 빛이 막 나요?”

“저, 저도 모르겠네요. 하하.”

적당히 그녀의 주목을 다른 곳으로 끌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환희 노래, 많이 늘었죠? 어떠신가요?”

키미가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내게 쏘아붙였다.

“늘었다 뿐이에요? 아예 다른 사람이 됐잖아요? 어떻게 된 거예요?”

“자세히 들어 보세요. 애드립이나. 톤이나. 이전하고 크게 다를 바 없는데요.”

키미가 눈을 크게 뜨고 위협적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노을 군. 나도 음악밥 먹고 사는 사람이에요. 당연히 알죠. 근데 아예 존재감이 달라졌잖아요. 존재감을 어떻게 1주일 만에 키워요? 평생 해도 힘든 일인데.”

나와 키미 프로듀서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천채왕이 슬쩍 끼어들었다.

“뭘 한 거야?”

“기본기를 연습했습니다.”

키미 프로듀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계속 질문했다.

“자꾸 그럴 거예요? 기본기 연습으로 일주일 만에 저렇게 되면 다 대가수 되게요?”

“아 그게, 기본기만을 키운 건 아니고요. 사실 TYB가 이미 기본기는 다 다져져 있더라고요.”

TYB는 항상 프로 가수들에게도 보컬 트레이너를 붙여 주었다.

‘내 담당 프로듀서는 가르쳐 줄 게 없다며 거의 개점 휴업 상태이긴 했지만.’

회사에서 제법 성실하게 연습을 시킨 덕에, 주환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기본기가 많이 쌓인 상태였다.

그 갈고 닦은 기본기를 어떻게 쓰는지를 모른다는 점이 문제일 따름이었다.

키미 프로듀서가 계속 캐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려줬나요?”

“알려줬다기보다. 리스크를 감수해 보라고 했죠. 틀려도 괜찮으니까. 최상의 노래를 뽑아내 봐라. 도전적으로 노래를 부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환희가 자기 특기를 찾더라고요.”

“톤 말이군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키미 프로듀서의 말에 동의했다.

재호는 풍성한 저음이 특기였다.

가성을 한껏 활용한 팔세토로 부르는 코러스는 맛깔나는 양념을 쳐주는데도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나는 환희보다 더 음역대는 넓었지만, 기본적으로 풍성한 톤이었다.

고음을 낼 때도, 내 목소리에는 무게감이 어느 정도 있었다.

그에 반해, 환희의 목소리는 깃털 같은 가벼움이 있었다.

아무리 제대로 된 발성이 되어 있어도, 목소리가 단단해지고 커지는 것이지, 목소리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환희의 가느다란 톤은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특징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무기를 집중적으로 잡아보라 조언했다.

그 순간, 마치 마지막 퍼즐을 맞춘 것처럼, 환희의 노래가 다른 레벨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놀랄 정도의 성장이었다.

그리고 지금, 모두가 그 변화의 결과물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채왕 프로듀서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참… 노을이가 보컬 트레이너 100명보다 낫구만! 노을이를 보컬 트레이너로 채용해야 하나?”

키미 프로듀서가 이번에는 천채왕 프로듀서에게 고개를 돌렸다.

“권노을 군은 같은 팀원이잖아요 선생님! 이해도가 같을 수 없죠. 보컬 트레이너들은 노래 전문가고요. 입장이 다릅니다.”

천채왕이 키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 알지 알지! 키미 프로듀서를 필두로, 우리 회사 스태프들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알고 있지.”

“뭐… 권노을 군은 전문성도 보컬 트레이너 못지않은 것 같지만요.”

그렇게 말하며 키미가 내게 비로소 살짝, 아주 살짝 미소 지었다.

천채왕 프로듀서가 다시 나를 쳐다봤다.

“그럼. 이번에는 노을이 노래 한번 들어 볼까? 뭐 언제나처럼 훌륭하겠지만.”

녹음실에 들어가자 상기된 얼굴의 환희가 나를 맞이했다.

환희에게 칭찬의 의미로 엄지척! 을 보여주었다.

환희가 호들갑을 떨었다.

“너무 노래가 재미있어요! 내일도 또 연습하죠!”

내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너 혼자 해도 돼.”

“아 왜요!”

“더 알려줄 게 없어. 이제 하산하거라.”

“쳇! 뭐예요, 싱겁게.”

환희가 툴툴대는 척, 입이 귀에 걸린 채로 방을 나갔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에이, 하필 환희가 너무 잘 부른 다음이라 비교되겠는데?”

그러고 보니, 환희의 노래 실력이 어느 정도 상승했을지 문득 궁금했다.

여지까지 환희의 가창력은 B 레벨이었던 걸로 기억했다.

내용을 확인하려면 MP3를 켜보면 됐다.

‘그러고 보니, MP3가 왜 반짝였지?’

슬쩍, 시간을 확인하는 것처럼, 나 외에 아무도 MP3를 못 보게 슬쩍 화면을 바라봤다.

[축하합니다. 가창력 SSS급을 달성했습니다!]

‘……!’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까 봐 손으로 내 입을 꼭 틀어막았다.

아무리 해도, 노래 실력이 늘지 않아서 그냥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느닷없이 레벨업을 해버렸다.

‘왜지? 내가 평소와 다르게 한 거라곤 환희랑 같이 노래 연습을 한 것뿐인데? 그게 효과가 있었나? 기본기를 다시 가르치면서 내 기본기도 함께 좋아졌나?’

고민해봤자 소용없었다.

지금은 일단 노래를 부를 때였다.

마침 재호의 목소리가 마이크 선을 타고 들렸다.

-자 그럼 지금 MR 켤 게~. 노래 정말 부른다고 생각하고 불러줘.

“그럼.”

반주가 흘러나왔다.

가볍게, 비트에 올라타 노래를 시작했다.

왠지, 평소보다 부담 없는 기분이었다.

마치 반신욕을 하듯 편안한 느낌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노래가 끝나고 나서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뭐지? 왜 아무 반응이 없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바깥으로 나왔다.

“어땠나요?”

“음.”

키미, 재호, 환희, 심지어 천채왕까지 모두 다 입을 다물었다.

‘뭐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구했다.

“마음에 안 드시나요?”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재호가 그대로 피드백 없이 회의를 진행했다.

“자, 그럼 순서를 나눠야겠는데요. 아무래도 제가 처음 인트로를 맡고. 그다음에 환희. 후렴은 노을이가 가는 게 맞겠죠?”

재호가 제안한 파트 배분은 전형적인 비원더의 노래 패턴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어 보였다.

내가 재호에게 제안했다.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 * *

그날 밤.

비원더 멤버들 및 일행들을 모두 내보내고, 키미 프로듀서와 천채왕, 단둘이 녹음실에 남았다.

키미 프로듀서가 천채왕에게 물었다.

“왜 노을 군 노래에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말라고 하셨어요?”

천채왕이 고양이 세수를 했다.

“…너무 건방져질 테니까.”

“네?”

“갑자기 추앙에 가까운 피드백을 받으면 너무 건방져질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래서 아예 피드백을 주지 말자고 했지.”

“선생님….”

천채왕이 등을 소파에 파묻고 본인의 과거 기억을 떠올려봤다.

‘내가, 노래에 순수하게 깜짝 놀라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던 게 대체 얼마 만이지?’

천채왕은 지난 10년간 가요계의 제왕으로 군림해왔다.

사실상 한국의 거의 모든 실력 있는 연습생이 한 번씩 천채왕을 거쳐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당수 뛰어난 가수들과 작업을 해본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권노을 같은 노래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오늘 노래는, 여태까지와는 또 아예 차원이 달랐다.

여지까지 노래도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권노을의 노래에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채고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 압도적인 몰입감이 있었다.

마치 파리지옥처럼 한 번 들으면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는 그런 보컬이었다.

이 압도적인 노래가 대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인지, 천채왕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이건 역사에 길이 남은 최정상 가수, 그중에서도 시대에 몇 명 없는 초대형 가수에게서나 느꼈던 감정이었다.

천채왕의 입술에 점점 미소가 번져갔다.

그가 키미 프로듀서에게 나직이 말했다.

“키미야.”

“네 선생님.”

“노래 다시 한번 틀어 줄래?”

“네.”

키미가 녹음해 둔 오늘 권노을의 가녹음 노래를 재생했다.

사실 오늘 노래는 녹음할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권노을의 노래를 듣자마자 천채왕이 다급하게 키미에게 지시했다.

[이거… 녹음해줘. 빨리! 이건 영원히 갖고 싶으니까.]

키미가 노래를 틀자 권노을의 노래가 느닷없이 중간 부분부터 흘러나왔다.

“흐….”

다시 들어도 탄성이 흘러나오는 노래였다.

호흡 하나마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관객들을 숨죽이게 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를 라이브로 들었던 관객들, 혹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동시대에서 경험했던 관객들, 비틀즈의 연주를 생생하게 눈앞에서 봤던 관객들,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직접 들었을 관객들의 기분이 이랬을까 싶을 정도였다.

“권노을 저 친구. 무조건 월드 스타가 돼야 할 친구야. 그냥 그렇게 돼야 마땅해. 이거 안 되면 우리 책임이야.”

“우리… 책임이요?”

“이건 운명이 우리에게 준 숙제야.”

천채왕이 하하 웃으며 생수를 들이켰다.

키미 프로듀서가 마른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천채왕이 나직하게 말했다.

“한 명 더, 있을걸?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그게 누군가요?”

천채왕이 고개를 돌려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을 보니, 자연스럽게 저 바다 건너 미국이 떠올랐다.

미국 시장에서 누구보다 큰 상처를 받았던, 한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배영웅 실장이지.”

* * *

언제나처럼 배영웅 실장이 볼보 차량으로 비원더 멤버 3인을 집으로 바래다주었다.

이번에도, 권노을이 마지막 순서로 남았다.

오늘따라 집으로 가는 차 안이 수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배영웅 매니저가 언제나처럼 휘파람을 불지도 않았고, 노래도 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운전 중 항상 짓던 초승달 모양의 미소도 사라졌다.

그저 굳게 입술을 꽉 다물고 운전할 따름이었다.

내가 슬쩍 배영웅 매니저에게 물었다.

“실장님 뭐 안 좋은 일 있으세요?”

배영웅이 아무 말 없이 슬쩍 눈을 돌려 나를 봤다.

평소보다 몇 배는 무서운, 살쾡이와 같이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배영웅 실장이 ‘칫’ 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차를 멈췄다.

내가 당황해서 외쳤다.

“무슨 문제 있나요?”

배영웅 매니저가 나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거의…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가 갑자기 내게 버럭 소리 질렀다.

“너무 기뻐서요!”

“네?”

“너어무 기뻐서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배영웅 매니저의 모습은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

항상 깔끔하게 매어져 있었던 타이와 셔츠가 흐트러져 있었고, 초승달 같던 눈웃음도 사라졌다.

그가 눈을 부릅뜨자, 살짝 무서울 정도로 광채가 나는 연한 갈색 눈이 보였다.

‘가만있자… 내가 실장님 눈동자 색깔을 알았던가?’

1년 넘게 같이 활동했건만,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배영웅 매니저가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향했다.

그가 심호흡을 크게 한 후, 내게 조금 차분하게 말을 시작했다.

“…일단, 저는 가수는 본인을 위해 노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꿈을 대신 이뤄 달라거나, 그런 말은 아닙니다.”

내가 배영웅 매니저에 팔을 손으로 살짝 쥐며 대답했다.

“네네 그럼요. 실장님, 지금까지 항상 저희 의견 존중해 주셨는데요.”

‘너무 존중해왔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야. 실장님이 이런 면이 있었다는 걸 지금까지 몰랐어.’

그동안 배영웅 매니저를 전혀 몰랐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영웅 매니저가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어리석은 일이죠. 매니저와 가수는 그냥 계약 관계인데. 꿈을 대신 이뤄주길 바란다는 둥. 그런 건 프로답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피해왔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우연히 제 소망과 가수의 소망이 같아진다면. 굳이 제 소망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닙니까? 좀 진심을 담아 응원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내가 배영웅 실장에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영웅 실장이 말을 이었다.

“노을 아티스트님. 제가 당신을 아티스트라 불렀지요.”

“네 항상 그렇게 불러주셨지요.”

“맞습니다. 저는 제가 담당하는 모든 가수를 그렇게 부르죠. 하지만 정말로 모든 가수가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

“하지만 비원더는 훌륭한 아티스트예요. 그중에서도 권노을, 당신은,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아티스트고요. 난 확신했습니다. 오늘 당신 노래를 듣고서!”

배영웅의 목소리가 점점 떨려왔다.

“…문루아 선배 때문인가요?”

이전에 배영웅 매니저는 문루아를 담당했었다.

승승장구하던 문루아는 미국 시장에서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배영웅 매니저는 그 이유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때문이라 했었다.

배영웅 실장이 핸들에 고개를 푹 숙인 채 감정을 토해냈다.

“동양인이라고 아예 무대에조차 서지 못 하게 할 때의 그 기분을 아시나요? 내게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다면…! 문루아 아티스트가 최소한 무대에 설 기회는 주지 않았을까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배영웅 매니저가 주먹을 하늘로 치켜들며 외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권노을 군이라면…! 저도 그동안 많이 준비했고. 그 어떤 문제가 생겨도, 이 한목숨 바쳐서라도.”

“잠시만요 잠시만요!”

내가 배영웅에 어깨를 흔들었다.

그의 시선이 내게 고정된 걸 확인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내 목숨 바쳐서라니요? 뭔 말이 그래요? 그래 봐야 오디션 아니에요?”

배영웅 매니저가 말을 얼버무렸다.

“아… 저희가 말을 안 했었군요.”

뭐가 더 있어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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