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5화
하늘이가 눈을 반짝였다.
“뭔데요 형? 앤젤 형한테 알려준 필살기예요?”
“야 또 그 소리냐? 앤젤하고 너는 아예 상황이 달라서 걔한테 한 말은 아무 참고가 안 된다니까.”
하늘이가 손바닥으로 책상을 탕탕 쳤다.
“앤젤 형한테 알려준 거예요~ 아니에요~. 그거만 말해요.”
나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야, 앤젤한테는 필요 없던 조언이었으니까 안 했지.’
하늘이가 좋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앗싸! 뭔데요?”
“루틴이야 루틴. 연습을 버릇으로 만들어야 돼.”
연습은 지루했다.
실력이 게임처럼 매일 규칙적으로 는다면 누구나 연습을 할 것이다.
사실 실력은 계단처럼 정체 구간을 지나다 갑자기 한 번에 는다.
특히 실력이 잘 늘지 않는 구간일 때는 더더욱 연습을 위한 동기 부여가 힘들었다.
앤젤의 경우, 한계에 부딪칠수록 더욱 열심히 연습하는 타입이었다.
앤젤은 연습을 줄이고, 창의적인 고민을 하는 편이 훨씬 노래 실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
“하늘이 너는 앤젤과 반대야. 연습을 지루해하는 타입.”
하늘이는 작사가로 활동하면서, ‘창의적인 발음’과 ‘창의적인 발성’, ‘창의적인 노래’를 연구했다.
창의력이 뛰어난 대신 다른 약점이 생겼다.
“오늘 연습 같이 해보고 확실히 알았어. 너, 기본기 연습을 경시해.”
“저요? 아니에요오~. 저 매일 회사 트레이너가 시키는 대로 하는데?”
“그런 수동적인 태도를 가지는 게 대충하는 거야.”
물론 환희도 프로였다.
매일 회사가 시키는 연습을 빼먹는다거나 하는 짓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지 않았다.
회사가 시키는 일만큼만 연습하고, 정작 노래 실력 향상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노래 실력을 유지만 하는 정도였다.
내가 하늘이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노래를 더 잘해보겠다는 목적의식이 있어야 연습이 되는 거야. 자, 이제부터 매일 일정한 시간에 내 노래 실력을 점검하는 루틴을 만들어.”
“네에….”
이후 30분간, 나는 계속해서 노래의 기본기를 점검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내용을 다 들은 후 하늘이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아… 이렇게까지 많이 해야 해요?”
“이렇게 해야 껍질을 깨지.”
“형 정도 노래하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싶은데요. 근데 형, 형은 안 지루해요?”
“내가? 왜?”
“저야 이렇게 하면 노래 실력이 늘겠죠. 늘건데. 솔직히 형은 최근에 거의 실력 안 늘었잖아요. 아니아니! 디스가 아니라! 이미 너무 노래를 잘하니까. 형은 연습한다고 노래가 확 늘지는 않잖아요?”
하늘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슈퍼스타 T 오디션을 참여하며 노래 실력 최상급을 찍은 이후, 지금껏 내 노래 실력은 크게 늘지 않았다.
나름대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라서인지, 이후 실력 향상에는 크게 제동이 걸렸다.
앞으로 더 실력을 올리려면 SS급이 아니라 SSS급이 되어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내가 환희에게 대답했다.
“그러게? 그냥 나는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연습하는 게 ‘루틴’이 되어서. 별생각 없이 계속 이 정도로 연습하고 있었어.”
하늘이가 혀를 내둘렀다.
“그게 돼요? 전 금방 지루해지던데.”
“그냥 여자 만나느라 바쁜 거 아니냐?”
하늘이가 ‘윽!’ 소리를 냈다.
나는 무시하고 말을 이어 갔다.
“그게 루틴의 좋은 점이야. 기분 안 좋다고 안 하고, 연습할 기분이라 하고, 그런 게 아니라고. 그냥 하는 거야. 최선을 다하는 상태의 자동화. 그게 바로 네 과제야.”
“…알겠습니다.”
내가 없이도, 스스로 노래 실력을 꾸준히 늘리는 버릇을 만드는 일, 그게 이번 특훈의 목표였다.
* * *
특훈 3일 차.
하늘이가 생각보다 빠르게 노래 실력을 쌓고 있었다.
발성 연습을 끝낸 하늘이가 내게 물었다.
“어때요 형? 괜찮아요?”
“많이 늘었는데.”
하늘이가 고개를 가로로 도리도리 저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아니야 굉장히 발성이 깨끗해졌어. 너 차라리, 여기서 좀 더 힘을 빼고, 팔세토를 써보는 건 어때?”
“아~ 아~ 아~ 이렇게요?”
“그래 그래 좋은데?”
하늘이 노래 실력은 내 예상대로 빠르게 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 예상을 웃돌 정도로 초고속으로 늘고 있었다.
이전의 주환희는 전형적인 알앤비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으나, 3일 만에 환골탈태해 놀라울 정도로 고운 하이톤의 미성 알앤비 보컬로 점점 자기만의 색깔을 갖춰 나가고 있었다.
“…대체 너 평소에 얼마나 연습을 대충했길래. 이렇게 단 3일 만에 느냐?”
하늘이가 할 말이 없다는 듯 혀를 내밀며 머리를 긁적였다.
“헤헤.”
사실, 환희가 좀 부럽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노래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쭉쭉 느는 저런 감정을 느껴본 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노래 실력 좀 안 늘려나.”
“뭐라구요 형?”
“아니야 됐어. 자. 다시 발성 연습 한 번만 더 해보자. 이번에는 ‘ㅣ’ 발음이다?”
“넵!”
* * *
그렇게 1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하늘이와 함께 매일 오전 꼼꼼하게 기본기 위주로 연습을 했다.
효과는 뛰어났다.
이제 그 변화를 모두들 앞에서 보여줄 때가 왔다.
바로 비원더 데모테이프 완성곡 발표 및 파트 배분 회의가 있었다.
언제나처럼 녹음실에 비원더 3인, 배영웅 실장, 그리고 천채왕 대표가 모였다.
추가로 내가 요청한 대로 키미 프로듀서와 조민하 선배가 참여했다.
재호가 상기된 표정으로 준비한 노래를 틀었다.
“일주일 내내 고민한 곡입니다. 잘 들어주시구요. 의견 주세요.”
그랜드 피아노, 단 한 대의 소리만 담겨 있었다.
하지만 전혀 비는 느낌이 없었다.
천천히, 그 시작은 잔잔한 안개처럼 시작해 점차 소리가 명료해지며, 마지막에는 영롱하게 빛났다.
심플한 발라드곡이었지만, 피아노 하나만으로도 강약 조절이 완벽했다.
급기야 마지막에는, 듣는 사람이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감정선에 눈을 질끈 감아 버리게 만드는, 그런 강렬한 발라드였다.
노래가 끝나고, 여운처럼 긴 침묵이 이어졌다.
이윽고, 천채왕이 박수를 쳤다.
“이야~ 어떻게 이런 편곡을 했어? 피아노 하나에 감정, 리듬, 모든 흐름이 다 들어가 있네?”
키미도 두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재호 씨 대단한데요? 나 보고도 피아노로 발라드 써보라 하면 이렇게 못 쓸 것 같은데. 설마 끝까지 다른 악기를 하나도 안 쓸 줄은 몰랐네요.”
재호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사실 노을이 덕분입니다.”
천채왕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사실, 노을이가 제게 피아노 연습을 좀 많이 해달라며 이 편곡 아이디어를 줬습니다. 피아노 하나로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되, 오케스트라가 부럽지 않은 그런 편곡이었죠. 그러려면 리듬감을 살려야 했고, 코드 진행도 클리셰 같은 뻔한 진행을 가는 척하다 교묘하게 어긋나는 반전을 숨겨서 청자를 잡아둬야 했습니다.”
키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좋은 장치들이었어요.”
재호가 키미에게 감사하다 말한 후, 계속 말을 이었다.
“미리 노을이가 편곡 아이디어를 줘서 연습할 시간을 벌어 준 덕에 이렇게 단기간에 좋은 결과물이 나오게 됐습니다. 이번 곡은 제 대표작으로 남을 것 같아요. 빨리 녹음에 들어가고 싶은데요.”
재호가 떨리는 자기 손을 보여주었다.
내가 재호에게 말을 덧붙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조금이라도 빨리 이 반주에 노래를 붙여보고 싶네.”
천채왕이 모두에게 말했다.
“자자. 그럼 빨리 한번 파트 분석을 해보죠. 그 전에… 민하 씨라고 했나요? 한번 가이드 들려줄 수 있나요?”
조민하가 천채왕에게 배꼽 인사를 했다.
키미 프로듀서가 곡을 틀며 말했다.
“…가이드 버전은 제가 직접 조민하 씨에게 미리 받아 두었습니다. 한 번 들어볼까요?”
천채왕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키미 프로듀서가 마우스를 클릭해 음악을 틀었다.
여태까지 우리들의 음악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멜로디였다.
멜로디 자체는 환희가 썼으니, 이전과 큰 차이가 없지만, 차이점은 코러스 편곡이었다.
재호가 알앤비 그룹의 감성, 그리고 가요 감성이 담긴 코러스 편곡을 했다면, 조민하 선배는 재즈를 기본 베이스로, 뭔가 팝이 떠오르는 느낌으로 코러스 화음을 디자인하는 타입이었다.
조민하 선배의 편곡 덕분에 노래가 뭔가 좀 더 세련된, 빠다 느낌 나게 바뀌었다.
가이드 보컬이 녹음한 가이드 버전 노래가 끝나고, 천채왕 프로듀서가 짧은 감상평을 남겼다.
“좋네. 가사는 완성됐어?”
환희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완성해서, 미처 가이드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괜찮아. 오늘 파트 정할 때는 그래도 환희 가사로 체크해볼까? 어때?”
멤버들 모두 찬성했다.
착착 계획대로 모든 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녹음 디렉팅을 맡기로 한 재호가 입술을 꼭 깨물고 나와 환희에게 말했다.
“자, 그럼 파트를 정해볼게. 그냥 전곡을 부르면 돼. 가사 붙여서. 누가 먼저 할래?”
내가 환희를 손으로 가리켰다.
“환희부터 해봐야겠지 당연히?”
환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환희가 녹음실에서 자리를 잡은 걸 확인한 재호가 MR을 틀었다.
모두가 숨죽이고 환희의 노래를 기다렸다.
* * *
키미 프로듀서는 초조하게 펜 끝으로 탁자를 두드리고 있었다.
벌써 TYB의 전속 프로듀서로 수많은 곡 작업을 맡아온 지도 어언 5년, 이제는 음악 작업을 하면서 흥분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달랐다.
‘글로벌 비전 송 콘테스트’.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가수들과 대결하는 무대에 참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키미 프로듀서는 잔뜩 신이 났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비원더가 경쟁력이 있을지 아직 확신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멤버들 중 가장 큰 약점은 주환희였다.
권노을은 세계 어디에서도 꿀리지 않는 성량과 존재감을 가진 가수였다.
원재호는 전문 코러스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코러스 실력을 자랑했다.
그에 비해 주환희는 어정쩡했다.
좋게 말하면 단점이 없이 리듬감도 좋고 미국식 삘도 가진, 전형적인 수준급 알앤비 보컬.
자주 들어본 보컬이니 익숙하게 잘 넘어갔지만, 강력한 개성이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비원더의 노래를 듣고 나면, 가장 먼저 기억에서 잊혀지는 부분이 주환희의 파트였다.
‘여태까지는 그래도 상관없었어. 주환희 정도면 한국에서는 수준급의 가수였으니까.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세계 최고의 가수들과의 대결에서 이 정도의 보컬이면 부족할 거란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더 큰 문제는 딱히 대책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제 와서 이미 프로 생활을 오래 한 주환희의 노래 실력이 눈에 띄게 늘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의 파트를 최대한 줄였다간 기껏 쌓아온 팀워크가 깨지게 될까 우려됐다.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을 가진 상태로 키미는 주환희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어?”
키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주환희가 ‘가사’나 ‘발음’ 등이 아닌, 그저 본연의 목소리로 시작부터 자신의 귀를 잡아채고 있었다.
단순히 발성이 좋아져서 목소리가 커졌다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아예 목소리 톤 자체가 살짝 높아져 있었다.
그리고 그 높은 톤은 노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환희의 노래를 날카롭게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같게 만들었다.
지금 주환희는 그저 평범한 양산형 알앤비 창법 가수가 아니었다.
보석처럼 빛나는 개성을 가진 또 하나의 가수였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 * *
노래가 끝나고, 키미 프로듀서가 아낌없이 박수를 쳤다.
그녀가 자기 말이 들리지 않는 주환희가 아닌, 권노을을 향해 외쳤다.
“대체 뭔 짓을 한 거예요? 어떻게 1주일 만에 저렇게 딴사람이 돼요?”
“아 그게 좀….”
권노을이 말끝을 얼버무렸다.
그때였다.
키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권노을의 주머니 속 무언가가… 갑자기 눈이 부시도록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