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94화 (194/280)

제194화

다음날부터 환희와 나는 녹음실에서 합숙 훈련을 시작했다.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나~.”

내가 피아노를 짚으며 만든 도레미파솔라시도 계명 소리에 맞춰 하늘이가 발성 연습을 했다.

나는 노래를 할 때 자주 쓰이는 모음을 하나하나 잡아주었다.

“이번에는 ‘이’ 발음!”

“니~ 니~ 니~ 니~ 니~ 니~ 니~ 니~ 니~.”

쉴 때도 그냥 쉬지 않았다.

목을 보호하기 위해 물을 끓여 마셨다.

나는 물 마실 때도 환희에게 계속 노하우를 공유했다.

“물도 물인데, 뜨거운 증기를 성대에 쐬어줘. 목에 그게 더 좋아.”

하늘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이렇게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 줄 몰랐어요 형.”

“아니, 이제 끝이야.”

“네? 모음 연습밖에 안 했는데요?”

“그거면 충분해.”

“노래 연습은요?”

“너는 노래 연습은 필요 없어. 노래 해석은 니가 나 보다도 낫지. 말도 목 쓰는 거니까, 말도 아껴. 성대 보호해야지.”

하늘이가 아무 말 없이 잠자코 다시 수증기를 들이마셨다.

내가 하늘이에게 말을 이었다.

“이탈리아 성악가들은 수련할 때 모음 발음 연습만 1년씩 한다는데? 노래 한 곡조도 못 부르고.”

하늘이가 혀 차는 소리를 냈다.

“그런 짓은 못 하겠네요.”

“그만큼 모음 하나하나가 중요하다는 거지.”

하늘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발음의 중요성 같은 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요.”

하늘이 말이 맞았다.

어휘를 조합해서 사운드와 스토리를 빚는 ‘작사가’니 발음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넌 발음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지. 너무 잘 알아서 문제야.”

“무슨 말이에요?”

“너, 발음으로 장난질 많이 하잖아. 라임도 많이 만들고.”

“장난질이라니요 형! 디자인. 디자인.”

“어쨌든. 창의적인 변주에 능한 만큼 오히려 기본적으로 이 발음일 때는 이렇게 불러야 한다는 정석이랑 너무 벗어나서 부르는 버릇이 있어. 그래서 보컬로서 역량 성장이 멈춘 거야….”

“아….”

주환희는 앤젤과 반대였다.

앤젤은 너무 정석으로, 배운 대로만 노래를 불러서 개성이 없는 게 문제였다면 거꾸로 가수 주환희는 창의적으로 부르려고만 한다는 점이 그의 한계였다.

“너는 창작자인 만큼, 다양한 실험을 하는 걸 텐데. 노래에는 결국 정답에 가까운 정석이란 게 어느 정도 있잖아? 발음이나. 호흡법이나. 공명하는 각도라던가. 그런 걸 하나하나 다시 훈련해 보자고. 어차피 노래를 하루 종일 할 것도 아니고. 조금씩 하면 돼.”

“그럼 지금부터는 뭘 하나요?”

“곧 코러스 부분 편곡해주실 분 올 거야. 머리 세워.”

“아 네네!”

손님이 온다고 하니 잽싸게 하늘이가 왁스로 머리를 다듬고 주환희로 변했다.

오늘은 조민하 선배와 짧게 회의를 할 예정이었다.

곧 재호와 함께 조민하 선배가 녹음실로 들어왔다.

조민하 선배가 우리에게 인사했다.

“뉴욕서 보고 처음이죠?”

“네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민하 선배가 재호와 함께 의자에 앉으며 내게 대답했다.

“오자마자 처음 하는 일이 단순 코러스가 아니라 편곡이라면 오히려 좋은 일이죠.”

“조민하 선배가 노래만 부를 일은 없을 겁니다. 무조건 편곡에 참여하셔야 해요.”

“아주 제대로 부려 먹을 생각이네요.”

말과는 달리 조민하 선배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환희 너는 한 번만 더 발성 연습하고 있어.”

“넵.”

환희를 피아노 연습을 하는 곳에 두고, 녹음실 부스에서 나와 재호, 조민하 선배가 모여 곡 회의를 했다.

“근데, 편곡은 재호군, 탑라인 멜로디는 환희 군이 쓰는 게 비원더의 프로듀싱 시스템 아니에요? 저는 어디 들어가는 거죠?”

“선배님 말씀이 정확합니다. 멜로디는 환희가 이미 다듬고 있고요. 선배는 환희가 만들어 둔 멜로디와 재호가 구상한 코드 진행에서 코러스, 화음을 짜 주시면 됩니다.”

조민하 선배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이 곡, 피아노 하나로만 가는 노래 아니었어요?”

나와 재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민하 선배가 되물었다.

“근데 뭐 그리 바빠요?”

재호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 끝내주는 연주를 하고 싶어서요. 피아노 연습에 매진하고 있구요. 그래서 선배가 도와주셨음 합니다.”

“뭘 얼마나 잘하려고….”

내가 재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조민하 선배의 코러스가 함께라면, 역사에 남은 곡을 쓸 수 있을 거예요.”

“뭐, 그건 두고 보죠.”

“아 그리고, 크레딧과 보상은 꼭 해드리겠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요.”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이미 사기를 당했던 조민하 선배에게는 꼭 약속해주어야 하는 일이었다.

조민하 선배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근데.”

“네?”

“얼마 줄 거예요.”

“…그건 배영웅 실장님하고 이야기 부탁드려요.”

조민하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 MBA 합격한 여자야. 속이려 들면 안 된다구요?”

…왠지 이전 생과 달리 조민하 선배가 이제는 절대 사기꾼에게 당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덜거리는 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뿌듯했다.

* * *

이후 30분 내외로, 짧고 굵게 곡에 대한 논의를 완료했다.

조민하 선배는 워낙 프로페셔널이라, 설명을 길게 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그녀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감을 잡았다.

이후 재호는 피아노 연습을 하겠다며 부리나케 나가 버렸다.

나와 조민하 선배는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멀리서 환희가 발성 연습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나나나 나나나나나~.”

조민하 선배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저 친구는 계속 발성 연습만 하는 거예요?”

“아 그게 실은… 요새 특훈을 하고 있습니다.”

조민하 선배의 동공이 커졌다.

“특훈이요? 이미 데뷔해서 1위까지 차지한 가수가 왜요?”

나는 가감 없이 환희의 고민에 대해 공유했다.

개성이 없고, 가수로서 점점 존재감이 약해지는 것 같다는 환희의 고민을 들은 조민하 선배가 피식 웃었다.

“배부른 고민이네요.”

“그런가요?”

“그럼요! 걸그룹을 봐요. 꼭 무존재감인 사람이 있기 마련이에요. 그 사람 잘못이 아니에요. 모두가 똑같이 빛날 수는 없는 거죠. 코러스만 해도 그런데요 뭐. 모두의 노래가 빛날 수는 없어요.”

잠깐 이전 생을 돌이켜봤다.

조민하 선배 말대로 코러스만 해도 튀는 사람과 묻어가는 사람이 자연스레 나뉘어졌다.

조민하 선배가 계속해서 할 말을 토해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예능이면. 뭐 어때요! 예능을 잘하면 되죠. 특훈이라니 쓸데없는 짓이에요.”

그 말은 좀 의외였다.

내가 조민하 선배에게 되물었다.

“연습이 왜 쓸데가 없나요? 선배처럼 노래 연습 열심히 하시는 분이….”

조민하 선배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제가 연습을 열심히 하는 걸 어떻게 알아요? 내가 연습하는 걸 봤어요?”

아차, 싶었다.

“앗…! 아 그, 오창선 선배에게 들었습니다.”

“선배가 별 이야기를 다 하시네. 엄청 둘이 친한가 봐요?”

“네네 게임 친구입니다. 하하.”

적당히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제가 회귀자인데, 사실 이전 생에는 당신 밑에서 코러스를 했답니다.’ 이럴 수는 없지 않는가.

“됐고. 여하튼 노래는 내 몸이 악기잖아요? 그중에서도 성대이고. 성대는 너무 쉽게 소진돼요. 다른 악기랑 다르죠. 어차피 하루 종일 연습할 수 없다구요. 저 친구도 곧 연습 끝이죠?”

“네.”

“연습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어쩔 수 없죠. 그럴수록 재능이 더욱 중요한 거예요. 타고나기를 노을 씨처럼 태어나면 엄청난 보컬이 되는 거고.”

잠깐, 고개를 돌려 창문을 보았다.

공원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염없이 비를 맞고 있는 저 꽃이 선배가 말하는 노래 실력과 비슷해 보였다.

비는 하늘이 내린다.

하지만 화초를 키우는 데 사람의 노력이 필요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잡초를 뽑아준다던지, 비료를 준다던지, 할 일은 많았다.

“선배님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있죠.”

“예를 들면요?”

“뭐. 노래에 안 좋은 것들. 너무 매운 음식이나 술 같은 걸 피할 수도 있고요. 수면을 충분히 취할 수도 있죠.”

“그래 봐야 얼마나 바뀌겠어요? 노을 씨 정도 하늘이 내린 보컬이나 가능한 경지라고요. 이제 데모테이프 곧 보내야 하는데?”

내가 장난스럽게 조민하 선배에게 제안했다.

“내기할까요?”

“무슨 내기요?”

“앞으로 1주일 안에, 환희 노래가 극적으로 바뀔 수 있는지 없는지 걸고요. 저는 바뀔 수 있다에 걸겠습니다. 지면 제가 우리 팀 회식 살게요.”

조민하는 3초 정도 아무 반응이 없다가, 갑자기 불쑥 손을 내밀었다.

“좋아요. 딜! 한 번 덕분에 가수한테 얻어먹어 보겠네요.”

“그렇게 쉽진 않을 겁니다.”

“두고 보면 알겠죠. 빨리 가봐요. 저 친구 자꾸 문 앞에서 얼쩡대네요.”

연습이 끝났는지, 환희가 녹음실 문 앞을 배회하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환희에게 질문했다.

“연습 끝났어?”

“네 횽. 이제 뭐 할까여? 한 번 더 할까여?”

내가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안 돼 안 돼. 할 만큼 했어. 이제 쉬어. 가사 작업도 해야지.”

환희가 투덜댔다.

“가사하고 멜로디 쓰랴. 노래 연습하랴. 시간이 너무 부족해여.”

“오늘은 처음이라 그렇지. 앞으로는 이렇게 많이 할 필요 없어. 두 번씩 발성 연습하지 말고 한 번씩만 해. 그럼 충분해.”

환희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걸로 충분할까여?”

“뭐 결국 네가 곡을 써야, 우리가 곡을 잘 부르지 않겠어? 작곡이 우선이야.”

환희가 부담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책상에서 필기구를 챙겼다.

“말은 쉽져! 저희들 운명이 걸린 곡인데.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에여. 편곡도 완성이 안 된 러프한 스케치만 나왔는데여.”

“가사가 제일 중요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은지를 잘 정해줘.”

늘 나는 노래는 사운드보다 이야기라 생각했다.

결국 사람 마음속에 남는 건 소리가 아닌, 그 소리에 담긴 이야기니 말이었다.

그러니 가사를 쓰는 환희의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했다.

환희가 가방을 싸며 말했다.

“네 머. 저는 괜찮아여. 걱정은 안 해여. 저희 팀이 워낙 다들 노래를 잘해서. 제가 가사로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정확하게 집어서 풀어내 주거든여. 어쩌면 저는 운이 좋은 작사가죠.”

처음 듣는 칭찬이었다.

“크리에이티브를 담당하는 작사가한테 칭찬받으니 기분 좋네.”

환희가 하하 웃었다.

“당연하죠 횽! 횽처럼 온전하게 가사 속 이야기를 끄집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구요. 결정적인 순간에 꼭 자기 편할 대로 노래를 변형해서 불러요.”

“자기 편할 대로? 그럼 안 되냐?”

멀리서 우리 둘이 하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조민하 선배가 방을 나가며 툭, 우리에게 말을 던졌다.

“안 되죠. 노래에 담긴 이야기를 불러야지. 그걸 함부로 변형하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노래’를 부르게 되잖아요? 모든 노래가 다 똑같게 들리는 가수 가끔 있잖아요. 그럼 작곡가 작사가는 화나죠.”

환희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소리 나게 치며 동의했다.

“맞아여! 결국은 그 노래 본연의… 매력을 살리는 방식으로… 부르면 그게 가장 자기다운 노래… 가… 되죠.”

환희의 말소리가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는 환희가 계속 방금 자신이 한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노래 본연의 매력을 살려? 그럼 가장 자기다운 노래가 돼?’

조민하 선배가 피식 웃더니 내게 속삭였다.

‘뭔가 힌트를 찾은 모양이네요.’

‘그러게요.’

‘1주일 뒤 파트 배분 회의 때 기대할게요. 그때까지 코러스는 완성해 놓을게요.’

‘감사합니다.’

조민하 선배가 무슨 그런 거 가지고 고마워하냐는 듯 미소를 짓고는 총총걸음으로 녹음실을 떠났다.

한편, 주환희는, 갑자기 고민에 빠진 듯, 소파에 앉아 계속 뭐라고 중얼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환희, 아니, 하늘이를 불렀다.

“자, 연습 마무리하자. 아직 안 끝났어.”

가장 중요한 노하우를 전달할 차례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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