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93화 (193/280)

제193화

조민하 선배가 나와 배영웅 매니저가 묵고 있던 호텔 로비에 서 있었다.

그녀가 눈을 부라리며 내게 쏘아붙였다.

“늦었어요. 곧 공항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 일정을 어떻게….”

조민하 선배가 내 말을 끊어 먹었다.

“메리한테 물어봤어요. 오늘 저녁 비행기라면서요. 나도 같은 비행기 티켓 끊었어요. 가요. 한국으로.”

주변을 살펴보니 그녀 발치에는 이민 가방이 두 개 놓여 있었다.

내가 되물었다.

“저… 그럼… 저랑 같이… 하시는 건가요?”

조민하 선배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당연한 말 하게 하지 말고. 빨리 가자구요. 나보다 코러스까지 더 잘하는 가수는 어떻게 노래하는지 알고 싶어졌어요.”

그녀는 말을 다 내뱉은 후, 발치의 짐을 두고 호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

배영웅 매니저가 싱긋 웃더니 조민하의 이민 가방을 한 손에 하나씩 들었다.

배영웅이 내게 눈짓했다.

“가시죠. 집으로.”

* * *

돌아오는 길에는 장장 10시간 넘게 조민하 선배와 이야기를 했다.

모두 ‘코러스’ 노하우에 관계된 이야기였다.

“…어디서 코러스 배웠어요?”

“그냥 어린이 합창단도 참여했고, 학교에서 합창단도 하고. 그랬습니다.”

적당히 얼버무리려 했지만 조민하 선배는 물러나지 않았다.

스튜어디스가 전해 준 식사를 팽개친 채로 내게 쉴 새 없이 꼬치꼬치 질문했다.

“…말이 돼요? 그 버스킹에서의 코러스 편곡. 그건 단순히 아마추어 합창단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그냥. 자주 그런 음악을 듣다 보니까 저절로 되던데요.”

“저절로 된다구요. 그런 편곡이?”

내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회사에서 저희에게 편곡 기회를 많이 주거든요. 자주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던데요?”

조민하 선배가 ‘끄응’하는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휴… 드디어 끝났나?’

안심하고 음악을 들으려 MP3를 키려 했다.

그때, 조민하 선배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렇게 나오겠다는 거죠?”

“네?”

그녀가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을 발사하며 내게 말했다.

“하긴, 그래요. 저도 후배들한테 절대 안 알려줬어요. 직접 보고 어떻게든 가져가는 게 진짜 자기 것이 되니까. 그런 거죠?”

나는 마음속으로만 외쳤다.

‘아니, 그런 게 아닌데요. 제 노하우는, 이전 생에 선배 아래서 코러스 하면서 배운 건데요. 그때, 코러스 팀 리더는 선배였으니까, 굳이 말하자면 미래의 선배한테… 배운 거죠?’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으니, 그저 당황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당신 노하우, 반드시 훔치고 말겠어요. 이번 글로벌 비전 대회 중에. 글로벌 비전 끝날 때까지 계약할 거죠?”

“네, 일단 그렇죠?”

“그 기간에 정말 열심히 해서! 당신의 비법을 알아내고 말겠어요.”

“그, 그러시죠.”

일단은 선배가 의욕이 생긴 것 같으니,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이었다.

‘…그래도 갑자기 열정이 붙으니 좀 부담스럽긴 하네.’

내가 봐도 배부른 소리였다.

“지금부터 당신 버스킹 녹음한 거 들을 거예요.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도 되죠?”

“…네에.”

어째, 엄청 골치 아플 정도로 열성적인 팬을 하나 주변에 둔 기분이었다.

* * *

이제 글로벌 비전 예선이 코앞이었다.

쉴 틈이 없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한숨 자고, 바로 천채왕의 부름을 받아 양재 녹음실에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참석자는 비원더 3인과 천채왕, 배영웅 매니저 그리고 기록하는 김나리 사원이 전부였다.

천채왕은 우선 우리가 카피한 노래들을 확인했다.

피드백은 짧았다.

“훌륭한데? 진짜 안 만나고 연습한 거 맞아?”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뭐 박자야 다 메트로놈이 맞춰 주는데요 뭐….”

천채왕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따로 녹음해서 미묘한 호흡까지 이렇게 잘 맞긴 어려워. 같이 녹음한 거 같은 느낌인데. 역시 1년간 함께해선가?”

“아닙니다!”

재호가 높은 톤으로 불쑥 외쳤다.

그는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인 것을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다만, 아주 미묘하지만, 약간 호흡이 어긋났어요. 예전에는…. 이보다 더 팀워크가 좋았습니다. 슈퍼스타 T 때나, 해외 투어 활동 때는요.”

배영웅 실장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합숙을…. 했을 때 말씀이시군요.”

재호가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천채왕을 향해 말을 토해냈다.

“최근에 사실 저희가, 노을이 앨범 수록곡을 쓰면서 양재 작업실에 살다시피 했습니다.”

천채왕 프로듀서가 혀 차는 소리를 내었다.

“아이구~ 고생했어. 작업을 많이 하는 줄은 알았는데 설마 잠까지 거기서 잔 줄은 몰랐네.”

“아닙니다. 그게 좋았습니다. ‘슈퍼스타 T’ 때 동고동락했던 기억도 났구요. 그래서 저희, 앞으로는 글로벌 비전 오디션 할 때 같이 살 숙소를 구해 주실 수 있나요?”

이전에 내가 재호에게 했던 제안이었다.

그때 재호는 TYB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아 했다.

‘이제는 마음이 바뀌었나 보지?’

천채왕이 바로 배영웅 실장에게 지시했다.

“아티스트들이 스스로 팀워크를 올려 보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배 실장! 최고의 숙소로 부탁해요. 돈 걱정은 하지 마시고.”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천채왕 프로듀서가 우리에게 몸을 돌렸다.

“자, 이제 데모 테이프 준비를 해야 하는데… 뭐할까?”

내가 되물었다.

“네? 저희한테 물어보시는 건가요.”

천채왕이 혀를 찼다.

“당연하지. 비원더는 싱어송라이터잖아? 너희들이 주도해서 해야지. 나는 그냥, 소스를 줄 뿐이야. 방향을 정하는 건 너희들이어야지. 아이디어 없어?”

아무도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천채왕이 비원더 멤버 3인을 가만히 쳐다봤다.

마치 ‘뭐라도 아이디어 좀 내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재호가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야 권노을, 너 나한테 피아노 연습시켰잖아? 뭐라도 말해봐?’라고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사실, 내게는 이미 아이디어가 있었다.

되려, 천채왕이 먼저 우리에게 주도권을 주는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데모 테이프에서 우리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내면서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략을 이미 세워 두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모든 이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천채왕이 내게 질문했고,

“뭔데?”

내가 답했다.

“피아노 한 대로 하는 발라드요.”

“뭐어어?”

천채왕뿐 아니라,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환희가 내게 물었다.

“아니 횽. 다른 사람들은 고음이다. 전조다, 화려한 전주다. 뭐 별의별 무기를 다 쓸 건데여. 피아노 발라드라니 너무 담백한 거 아닌가요?”

내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바로 그거야. 아무도 그런 담백한 편곡은 안 할 거야. 그러니까 오히려 우리가 제일 눈에 띌 수 있지.”

모두의 눈빛이 살짝 날카롭게 바뀌었다.

천채왕의 눈동자가 내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래, 그냥 아무 발라드는 아니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고전적인 멋은 유지하지만 그럼에도 최신 리듬을 살린… ‘마스터 피스’에 가까운 연주가 필요합니다. 이 반주는 재호가 만들어 줄 겁니다.”

재호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내가?”

내가 손으로 재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믿는다, 원재호.”

“차암!”

재호는 고개를 저었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내가 말을 이어갔다.

“멜로디 라인도 중요하죠. 이번에 뉴욕까지 가서 모셔온 조민하 선배님께 멜로디 라인 및 코러스 편곡을 부탁해 보겠습니다. 고급스러운 아카펠라 알앤비 그룹의 느낌으로요.”

천채왕의 눈이 커졌다.

“환희는? 보통 멜로디는 환희가 썼잖아?”

내가 환희에게 어깨동무했다.

“환희는… 가사만 담당할 예정입니다. 저랑 할 일이 있어서요. 그렇지?”

“네에?”

내가 환희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니가 나한테 전화로 한 말 있잖아. 노래 특훈.’

그제야 환희가 입을 크게 벌리고 ‘아!’ 소리를 냈다.

“맞아여 맞아여! 저는 할 일이 있습니다 선생님. 당분간은 그거에 집중하고 싶어여.”

“뭐어… 이유가 있다면야. 그래. 그럼 일정 알려줄게. 메인 프로듀서는 재호가 하고, 녹음 디렉팅은 조민하 씨가 하면 되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키미 작곡가님도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가능할까요?”

“오케이. 시간 맞춰 볼게.”

천채왕이 배영웅 매니저와 함께 상의를 시작했다.

모든 일이 내 구상대로 착착 준비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이번 계획에서 딱 하나 미지의 부분이 있었다.

바로 주환희, 환희와의 특훈만은 아직 변수가 남아 있었다.

‘오늘부터는 이 특훈에 모든 힘을 쏟아야겠어.’

* * *

회의가 끝나고 환희와 둘만 녹음실에 남았다.

단둘이 있자 환희는 자연스럽게 주하늘로 돌아왔다.

그가 내게 물었다.

“…이제 뭘 하면 될까요?”

“글쎄. 솔직히 우리는 보컬리스트잖아. 연습을 한다고 해도 별게 없어. 성대는 소모품이니까. 하루에 10시간씩 연습하고 그럴 순 없잖아?”

“그… 렇죠?”

대답하는 하늘이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특훈이라고는 해도, 연습을 많이 할 수는 없다는 내 말에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앤젤은 말야. 노래 연습을 많이 시킨 게 아냐. 그런 건 너나 앤젤이나 의미가 없어. 연습을 더 해서 실력이 오를 레벨은 아냐.”

“그럼 뭐죠? 앤젤 형이 어떻게 했는지 알려주세요!”

나는 고개를 돌려 하늘이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눈을 감고는, 크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넌 안 돼.”

“네? 왜요?”

“너는 앤젤이랑 처한 상황이 달라. 당연히 해야 할 일도 달라.”

“아, 그냥 알려줘요! 앤젤 형한테는 뭐 알려줬는데요?”

“…그 애의 경우는 개성을 찾으라고 했어. 모든 조합을 다 다시 연구하라 했지. 발성법부터 발음, 심지어 숨소리까지.”

하늘이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도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넌, 모음 하나. 자음 하나. 심지어 숨소리까지 지금도 충분히 신경 써서 내고 있잖아? 그게 네 특기고. 나 보다도 개성은 나아. 지금 하고 있는 걸 더 한들 크게 달라지겠어?”

“…!”

하늘이가 다시 잠자코 의자에 앉았다.

내가 말을 계속했다.

“앤젤의 경우에는 ‘창의성 부재’가 큰 문제였어. 교과서적으로 노래를 잘 부르는 데만 집착했지. 그러니까 개성을 부여하라는 조언이 의미가 있던 거야. 하지만… 가수 ‘주환희’는 아니야. 너는 작사가이자 탑라이너니까.”

하늘이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을 이었다.

“…이미 개성을 충분히 살리도록 탑 라인 작곡과 작사를 하고 있으니까요.”

“역시 이해가 빠르네. 바로 그거야. 너는 이미 비원더의 개성을 담당하고 있어. 개성이 문제일 리가 없지. 네 문제는 차라리… 뭐랄까….”

나는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잠시 헤맸다.

하늘이가 내 말을 끊었다.

“애매함. 그거죠?”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하늘이가 말을 이어갔다.

“제 목소리는 개성도 있고. 테크닉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정작 곡 전체를 두고 보면 기억에 남는 부분이 딱히 없죠, 개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기술도 없는 게 아닌데. 그냥 ‘애매하다’라는 거죠.”

역시나, 하늘이도 이미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었다.

주환희라는 가수의 보컬의 문제는 ‘결정적인 무기의 부재’였다.

이는 개성을 만든다고 해결될 것은 아니었다.

하늘이가 주먹으로 책상을 쾅 하고 쳤다.

“하지만… 그런 걸 갑자기 어떻게 만들어요! 그건 불가능해요!”

그리고는 고개를 책상에 파묻었다.

살짝,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하늘이에게 다가가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야. 울지 마. …사실 방법이 있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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