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2화
시간에 맞춰 광장에 도착했다.
이미 소닉 독은 도착해서는, 음울한 표정으로 베이스 연주 몸풀기 연습 중이었다.
내가 먼저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왜 이리 표정이 안 좋아요?”
소닉 독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로 짧게 대답했다.
“왔군요.”
“오늘 연주 기대할게요.”
소닉 독은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그러지 마요. 실망할 테니까.”
“제 노래는 겁나 기대해주세요.”
내 농담에 소닉 독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곧 그는 미간에 깊게 주름을 만든 채로, 느릿느릿 베이스 연습을 했다.
전혀 신나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도 가볍게 옆에서 목을 풀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오늘 버스킹 공연의 목표를 상기했다.
‘오늘 목표는 그냥 좋은 공연이 아니야.’
이번 공연의 목표는 내가 잘 나가는 게 아니었다.
소닉 독의 은퇴를 막고, 내 공연의 베이시스트로 섭외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그렇기에 노래도 좀 다르게 불러야 했다.
목표를 상기한 채로 광장에 자리를 잡았다.
소닉 독과 배영웅이 이미 자리를 잡아 둔 상태였다.
배영웅이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뉴욕이 의외로 치안이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혹시 모르니 경호원을 좀 깔아 두었습니다. 안전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실장님.’
‘행운을 빕니다.’
배영웅 실장이 다시 본인 위치로 돌아갔다.
배영웅 실장 근처에는 조민하 선배가 서 있었다.
약속대로, 내 공연을 보려 와줬다.
‘이 공연을 보고 나와 함께할지 여부를 정하기 위해서겠지?’
멋진 공연을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내가 장난스럽게 소닉 독에게 물었다.
“앵콜곡은 뭐로 할까요?”
소닉 독이 무슨 소리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네?”
“너무너무 관객들 반응이 뜨거워서 앵콜을 준비해야 할 때를 생각해야죠?”
소닉 독이 혀 차는 소리를 내더니만 내게 핀잔을 줬다.
“그때 고민하면 되죠.”
“그때는 이미 늦어요. 당장 악보 없이 연주 가능한 레퍼토리 있어요?”
“참 자신감은 좋네! 뭐 그때 되면 아무거나 연주해 줄게요. 아는 노래로!”
“그럼 재즈 스탠다드 중에 하나로 하죠. ‘당신이 없는 이 거리’ 어때요? 그 곡 아세요?”
“원키로 할 거죠? 됩니다. 맘대로 해요.”
앵콜곡까지 준비됐다.
이제 무대를 시작할 때가 됐다.
붐박스에 CD를 넣으려 하는 소닉 독을 내가 제지했다.
“왜요?”
“제가 리믹스한 버전으로 하죠. 키나 템포는 바꾸지 않았어요.”
내가 어제 미리 녹음해 둔 버전의 CD를 꺼내 붐박스에 넣었다.
내가 마이크를 들고 힘차게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버스킹은 시간 싸움이었다.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이목을 초장부터 홱 잡아채야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상 최고의 베이시스트. 소닉 독을 소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휘이이익!”
내가 마치 바람잡이처럼 휘파람을 불어댔다.
관객들이 큭큭대며 웃었다.
소닉 독이 수줍은 듯, 시선은 바닥에 고정한 채로 관객에게 인사했다.
나는 바로 붐박스의 음악을 틀었다.
밤! 바바밤!
내가 준비한 음악을 확인한 소닉 독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의 얼굴에 놀람이 번졌다.
완전하게 달라진 리믹스 사운드 때문일 터였다.
원곡은 둔탁한 드럼과 신스로만 이루어진 심플한 정통 힙합곡이었다.
나는 원곡의 키와 템포는 유지한 채로 완전히 새로운 기타 사운드를 얹었다.
‘이거 녹음하려고 미도리랑 얼마나 고생했는지.’
웅장한 기타 리프에 이어, 내가 미리 녹음해 둔 코러스 소리가 퍼졌다.
[엑~소~ 더~스~
I’m Coming Home(집으로 가고 있어)]
은은하게 퍼지는 코러스는, 원곡의 훅(후렴) 가사를 유지하면서도 거기에 알앤비의 부드러운 향취를 가미했다.
소닉 독이 베이스를 살살 간질이며 연주의 시동을 걸었다.
그가 내 목소리가 들어가야 하는 부분을 눈짓으로 신호했다.
마이크를 서서히 잡고는, 타이밍에 맞춰 노래를 시작했다.
“……!!!”
내 목소리를 들은 소닉 독의 홍채가 크게 흔들렸다.
필사적으로 정신줄을 붙잡고 연주는 유지했지만, 얼굴에는 그의 놀람이 다 보였다.
그럴 만했다.
내가 부르는 노래는 솔로가 아니라 ‘코러스’였기 때문이었다.
[우우~ 우우~ 우우~ 우~]
일부러 나는 소닉 독의 ‘반주’가 되기를 자처했다.
이번 공연의 주체는 소닉 독이었고, 목적은 소닉 독의 자존감 회복이었다.
그렇다면 내 노래를 과시하는 일보다는, 소닉 독의 연주를 받쳐주는 일이 더 중요했다.
소닉 독의 연주 스타일은 미래에서 실컷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클리셰를 미리 예상하고, 그에 맞춰 소닉 독과 함께 화성을 만들어나갔다.
[아아 아아~ 우 우~~ 아!]
내가 짧은 음절로 노래를 멈췄다.
이제부터는 베이스 솔로 차례였다.
힙합 비트와 코러스, 그리고 베이스.
이 단촐하고 반복적인 구성에 소닉 독의 화려하고 자기 과시적인 베이스 연주가 너무도 잘 어울렸다.
조화가 이루어지는, 훌륭한 연주였다.
소닉 독이 화려한 테크닉으로 속주와 느린 연주, 초고음과 저음을 넘나드는 현란한 솔로를 구사하자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우와~~~ 대박 대박!”
“멋진데 형씨!”
“베이스를 저렇게 칠 수도 있어? 저런 연주는 처음 보는데!”
정작 소닉 독은 연주를 하면서도 내게 자꾸 말을 걸었다.
‘미쳤어요? 가수가 왜 코러스만 부르는 거예요?’
‘됐으니까 나만 믿고 계속 맘대로 연주해요. 즉흥 연주도 따라가 줄 테니까.’
‘망쳐도 난 몰라요!’
‘망칠 리가 있나.’
소닉 독은 점진적으로 긴장감을 높여갔다.
베이스 연주가 격렬해질수록 내 코러스도 그에 맞춰 점점 고음을 강렬하게 뿜어냈다.
물론, 어디까지나 ‘코러스’로서, 가성 위주의 부담 없는 목소리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후반부에는 가사도 붙였다.
[엑! 소! 더스! 엑! 소! 더스!]
노래의 후렴 부분만 핵심 키워드를 외치며 강조점을 찍어주었다.
그 외에는 ‘아에이오우’ 등 모음만 활용해서 노래를 불렀다.
내 목소리를 마치, 악기의 한 부분처럼 들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베이스가 마치 기타처럼 강렬하게 용트림을 했다.
나는 베이스를 보좌하는 고음 코러스를 덧붙였다.
분명히 같은 드럼과 신스가 반복되는 힙합곡인데 나와 소닉 독의 연주 덕에 절로 기승전결이 생겼다.
그렇게, 우리 무대는 마치 오페라를 마무리하는 장대한 아리아와 같은 스토리가 있는 연주가 되었다.
노래의 마지막 부분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따다단!
연주가 끝나고 3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짝짝짝짝짝짝짝짝!!!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브라보! 브라보!”
“저런 연주는 처음이야!”
“당신 누구야?”
관객들의 반응을 확인한 내가 싱긋 웃었다.
내가 노렸던 대로, 아무도 내 노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모두들 오로지 ‘베이스 연주’에만 몰입했다.
코러스로서, 밴드 악기 중에서도 가장 드러나기 어려운 악기 중 하나인 베이스를 받쳐주는 양념 역할에 충실했다.
지금 소닉 독에 대한 관객들의 환호는 내가 성공했다는 증거였다.
“설마 한 곡만 하고 가겠다는 거야?”
“에이, 그건 안 되지. 하나만 더 하고 가요!”
“앵콜! 앵콜!”
앵콜 콜이 서서히 관객에게서 흘러나왔다.
소닉 독이 뚫어져라 나를 쳐다봤다.
“왜요?”
내가 되물었다.
소닉 독이 갑자기 파안대소했다.
“파하하하하하하하하!”
“뭡니까?”
웃음을 그친 소닉 독이 다시 평소와 같은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이 없는 이 거리’ 연주해주죠. 어떤 템포를 원해요?”
“알려주면 그대로 할 수 있어요?”
“메트로놈 기준으로 정확히 찍어주면 되죠.”
“그게 돼요? 그럼, 이번에는 좀 여유 있게… 68 정도로 갈까요?”
소닉 독이 고개를 저었다.
“더 느리게. 63 정도로. 그래야 ‘보컬이 돋보일 수 있어요’.”
‘보컬이 돋보일 수 있다?’
내가 소닉 독과 시선을 마주쳤다.
소닉 독이 씨익 웃었다.
방금 전 연주에서 내가 베이스를 돋보이게 해준 것처럼, 이번에는 그가 내 노래를 빛나게 해주겠다는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됐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보냈다.
오로지 베이스 하나뿐, 다른 아무 악기도 없었다.
소닉 독이 방금 전의 현란하고 과시적인 연주를 뒤로한 채, 정갈하고 여유롭게 베이스 줄을 뜯기 시작했다.
내가 마이크에다 대고 멘트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이곳,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울려 퍼졌던 노래를 불러 보겠습니다. ‘황당한 그녀’ 중 ‘당신이 없는 이 거리’ 부르겠습니다. 뮤직 큐!”
드럼도, 피아노도, 심지어 기타조차 없이 베이스 하나만 반주 삼아 부르는 노래였다.
하지만 왠지 하나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지금 내 옆의 연주자는 세계 최고의 베이시스트가 될 남자, 소닉 독이었으니까.
그의 여유 있는 베이스 연주에 맞춰 가벼운 마음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이 거리에 당신이 없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히게 돼.
당신이 살고 있는 그 거리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게 해.]
합주를 시작하자 내 눈썹이 절로 흥분으로 찌푸려졌다.
에메랄드 스팔도조차 제어하지 못했던 과시적인 소닉 독의 연주가, 드디어 길들여졌기 때문이었다.
딱 노래에 맞게 다듬어진, 그럼에도 여전히 거친 야성미가 느껴지는 연주였다.
아무도 타지 못했던 명마를 마침내 길들이는 데 성공한 기분이었다.
세계 최고의 명마와 함께 들판을 내달리는 듯한 합주, 기분은 최고였다.
“소닉 독! 한 번 더요. 속도 두 배로!”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부르고, 바로 소닉 독에게 추가 연주를 부탁했다.
소닉 독은 흔들림 없이 베이스만으로 춤을 출 수 있는 현란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이 거리에는 당신의 흔적이 있지
내 마음에는 당신의 조각 넘치지
이곳 외에는 있고 싶은 곳 없지]
화려한 베이스 연주에 맞춰, 마치 원래 있어야 할 부분인 양 저절로 스캣(재즈 보컬 애드립)이 나왔다.
자연스럽게 스캣과 베이스가 하나가 되었다.
[바라두루두루두루두왑~ 아~.아~]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3옥타브까지 넘기는 최고음 스캣으로 마무리했다.
나도 모르게 소닉 독과 연주를 마무리 하자마자 힘찬 하이파이브를 했다.
짜악!
하이파이브 소리가 시원하게 거리에 울려 퍼졌다.
그야말로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우아아아아아아아!!!”
노래가 끝나자마자 격렬한 함성과 박수 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앵콜! 앵콜!”
“저 동양인 친구 누구야?”
“너무 섹시해. 미친 거 아냐?”
관객들이 갑자기 우리 옆으로 몰려들었다.
잘못하면 깔릴 것만 같았다.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확인한 배영웅이 나와 소닉 독을 잡아끌었다.
“관객들이 너무 흥분했어요. 위험합니다. 택시!”
* * *
택시 안에서 소닉 독이 흥분해서 방금 전의 연주를 계속 회고했다.
“관객들이 계속 내 손가락만을 쳐다보는데. 그 희열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베이스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니. 이건 정말이지….”
“주목받으신 게 진짜 처음인가 보네요.”
소닉 독이 고개를 과장되게 끄덕였다.
“당신은 보컬리스트라 몰라요! 베이시스트는 정말, 무관심이라구요. 이런 감정은 처음이에요. 이런 경험을 다 해보다니….”
소닉 독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그사이 차가 멈췄다.
앞자리에 앉은 배영웅이 우리에게 공지했다.
“소닉 독 씨. 집 도착했습니다.”
소닉 독이 입술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내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희, 내일 아침에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무슨?”
배영웅이 소닉 독에게 명함을 줬다.
내가 계속 말을 이었다.
“여기로 연락하시면 언제든지 한국에 오실 수 있습니다. 기다릴게요. 오늘의 느끼셨던 기쁨, 다시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가 살짝, 아주 살짝, 미소 지었다.
나 외에 누구도 보지 못할 만큼 작은 미소였지만 내게는 분명하게 보였다.
그가 내게 대답했다.
“생각해 볼게요.”
느낌이 좋았다.
소닉 독을 집에 데려다주고, 이번에는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는, 상상도 못 했던 게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