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91화 (191/280)

제191화

최고의 선물, 그건 역시 금융치료였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조민하 선배의 곡이 울려 퍼졌다.

저작료가 엄청나게 늘어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내가 배영웅 매니저에게 물었다.

“저작료가 보통 언제 나오죠?”

나는 저작권료를 받을 일이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가창비를 조금 받는 정도였다.

그렇기에 나는 저작권료가 언제 들어오는지 잘 몰랐다.

배영웅 실장이 손가락을 꼽으며 계산했다.

“저작권이라고 해도 노래방, TV, 라디오 등 종류마다 다른데. 뭐 분기에 한 번씩은 받지 않을까요?”

‘분기 당 한 번이라.’

“아직은 계약금이 손에 들어오려면 멀었다는 뜻이네요.”

배영웅 매니저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마 이미 알 거예요. 그분은 베테랑이니까 자기 곡이 이 정도 떴으면, 곧 주머니에 얼마 정도 돈이 꽂힌다, 정도는 알고 있을 거 같은데요?”

그때였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그런데, 발신자가 전혀 내가 상상치도 못한 사람이었다.

“조민하 선배?”

일단 전화를 받았다.

-와요.

“네?”

-할 말 있으니까, 집으로 오라구요!

조민하 선배는 할 말만 하고 전화를 툭 끊어 버렸다.

배영웅 매니저가 짧게 감상평을 남겼다.

“화나셨군요.”

“네.”

처음으로, 조민하 선배의 초대를 받고 선배의 집으로 향했다.

* * *

조민하 선배의 아파트 앞에서 와장창창창, 하는 엄청난 소리가 났다.

“으왓! 민! 그만해!”

마당에는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대문 앞에서 메리가 뚱한 표정으로 서서 나를 기다렸다.

내게 메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돼가는 거예요?”

“딱 보면 몰라요? 한뚜까리 하고 있죠.”

“네.”

“오, 혹시나 말인데. 끝났어요.”

“네, 저 둘 관계가 말이죠? 아무래도 그런 일이 있었으니.”

메리가 눈을 반쯤 뜬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가 아니에요.”

“그럼?”

그때, 마침 문가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조민하 선배의 ‘전’ 남자친구였다.

당황했는지 늘 포마드로 깔끔하게 다듬었던 머리가 산발이 되었다.

그가 후다닥 나가고, 그 뒤를 이어 조민하 선배가 씩씩거리며 문밖에 나왔다.

“꺼져!”

조민하 선배가 뭔가 하얀 가루를 대문에 뿌렸다.

“뭔가요?”

“소금이오!”

“뜻밖에… 고전적(?)이시네요.”

“당신!”

조민하가 갑자기 평소보다 세 배는 큰 목소리로 내게 소리 질렀다.

“네? 저요?”

“그래요 당신. 당신한테 선언하러 왔어요. 나 다시 음악 할 거예요.”

“오… 축하드려요.”

조민하 선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신은 미국에 있어서 몰랐겠지만. 제 노래가 요새 한국에서 반응이 왔어요!”

“아 예….”

“드디어 제 기회가 온 거라구요! 한국에서 음악 작업할 거예요. 이따위 유학! 치워버리고!”

“유학 그만두신다고요?”

“때려치울 거예요. 이따위.”

메리가 슬쩍 내게 수군댔다.

‘유학 초기부터 남친이 민을 많이 도와줬어요. 그 사람 아니면 벌써 적응 못 하고 컴백홈 했을 거예요.’

‘아… 그래서 상처도 깊은 거군요?’

‘그렇게 보면 돼요.’

민이 우리 둘에게 호통을 쳤다.

“뭘 둘이 쫑알대요! 여튼! 나 이제 음악 하러 갈 거예요. 잘 가요. 서울에서 봐요.”

내가 작게 속삭였다.

“코러스는요?”

“코러스?”

조민하가 헛웃음 소리를 냈다.

“제가 계속 부탁드렸었는데….”

조민하가 내 앞에서 허리에 손을 얹고, 웅장하게 연설을 시작했다.

“내가 코러스 10년 차예요. 당신은 가수라 모르겠지만, 아무도 코러스에 관심을 주지 않아요. 푼돈이나 주면 다행이죠! 이제 간신히 프로듀서로 기회를 잡았는데 뭐 하러 다시 코러스로 돌아가요? 뭐 정 필요하면 후배는 소개해줄 수는 있어요.”

조민하 선배는 음악에 희망을 가진 거지, 코러스를 다시 하고 싶어진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다시 음악을 하고 싶어졌을지언정, 나와 코러스를 하고 싶은지는 또 다른 문제였던 셈이었다.

‘하지만 뭐, 다시 설득하면 되지.’

드디어 진실을 공개할 타이밍이었다.

“선배님.”

“왜요?”

“선배님 노래가 왜 떴는 줄 아시나요?”

“그야 내 노래가… 대중에게 발견돼서 아니에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게 왜 하필 지금 이었을까요?”

조민하 선배의 동공이 흔들렸다.

“무… 무슨 말이죠? 그냥 저절로 된 거 아니에요?”

“저절로 되는 건 없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주변 환경이 살짝 도와주는 경우는 있지만요. 그렇죠 실장님?”

“물론입니다.”

배영웅 실장이 싱긋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내가 배영웅 실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를 담당해주시는 분입니다.”

“알고 있었어요.”

“이분과 제 소속사 TYB, 그리고 제가 선배 곡을 홍보했어요. 그리고 시작한 지 딱 4일 만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겁니다.”

조민하 선배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내가 그동안 나와 배영웅 실장이 해왔던 일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라디오 신청곡 같은 사소한 일부터, 주변 선후배 동료들에게 노래를 소개한 일, 심지어 내가 공유하지 않았는데도 그 소문을 듣고 문루아가 판타스틱 폭시의 곡을 스스로 선곡한 일까지 모두.

“…물론, 선배님 곡이 너무 좋아서 가능했습니다. 홍보한다고 안 좋은 곡이 뜨진 않아요. 하지만 이미 좋은 곡이라면, 어떻게 전달하는지에 따라 성적이 갈립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예요? 저 이미 서른이에요. 저보고 당신 회사 연습생으로 들어가라고요?”

“나이는 상관없습니다. 다만 선배는 프로듀서니까… 그냥 저희와 함께하면 이런 마케팅, 홍보 노하우를 함께 경험하실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겁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었고, 저희 회사 소속 가수의 곡이 아니라 이런 변칙적인 노력밖에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앞으로 저희와 함께하시면 반년 동안 한국 최고의 마케팅 노하우를 보시면서 배울 수 있을 겁니다. 프로듀서 일에 엄청난 도움이 될 거예요.”

조민하가 고개를 크게 저었다.

“그렇다고 코러스를 하라고요? 너무 웃기네요. 내가 당신의 뭘 믿고? 그래, 인기 가수인 건 알아요. 하지만 그거뿐이잖아요?”

“무슨 말씀이시죠?

조민하 선배가 한 걸음 내 앞으로 가깝게 다가왔다.

그녀가 인상을 크게 구기며 말했다.

“나는! 한국 최고의 가수 오창선 선배와 함께 한 사람이에요. 뭐 TYB 소속이라고 기고만장한 건 알겠는데. 당신 정도 경력이면 오창선 선배보다 한참 후배예요. 굳이 당신한테까지 가서 배울 게 있을 거 같아요?”

조민하 선배는 내게 말했지만, 나 대신 배영웅 매니저가 한마디 보탰다.

“실례지만, TYB는 훨씬 크고 체계적인 회사라 배울 점은 더 많으실 것 같은데요.”

조민하는 배영웅 실장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회사 말고! 권노을 씨 이야기하는 거예요.”

나는 조민하 선배의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니까, 저를 음악인으로서 믿지 못하시겠다는 말씀이군요.”

“뭐 비슷해요. 꼬맹이.”

내가 조민하 선배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보여 드리겠습니다.”

조민하 선배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어떻게요? 여기서 노래라도 하려고요?”

“오늘 오후 3시에, 매일 뵙던 델리 샌드위치 집 앞 광장으로 와주세요. 버스킹 할 예정입니다. 거기서 제 음악을 보여 드리지요.”

조민하 선배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 *

조민하 선배와 이야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버스킹 공연 준비는 모두 끝낸 상태였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 따뜻한 물을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배영웅 매니저가 내게 물었다.

“이해가 안 되네요.”

“뭐가요?”

“어차피 코러스 일을 할 예정이라면, 같이 일하는 가수가 노래를 잘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죠? 그냥 핑계 같은데요.”

내가 하하 웃었다.

“음악인들이 뭐 그런 존재 아닐까요?

배영웅이 큭큭 웃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매니저 일하면서 많이 봤죠.”

“조민하 선배는 오창선 선배 음악이 너무 좋았을 거예요. 가수로서 오창선 선배를 존경하기도 하고요. 그런 마음이 있었으니까 코러스 자리에 만족하지 못해도 버텼던 거겠죠.”

돌이켜보면 나도 비슷했다.

이전 생에서 나는 오창선 선배의 코러스를 했었다.

오창선 선배의 음악이 너무 대단했기에, 다른 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오창선 선배를 잊을 만큼 멋진 무대를 그녀에게 보여줘서, 그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만큼 조민하 선배의 코러스는 명품이니까.’

어떤 노래든, 두 배로 맛깔나게 만들어 주는 조민하 선배 특유의 화음을 꼭 손에 넣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데모 테이프 녹음을 위해서는 꼭 조민하 선배가 필요했다.

“아.”

그러고 보니, 또 하나 필요한 것이 떠올랐다.

생각난 김에 바로 재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노을아.

재호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낮아져 있었다.

“목소리가 왜 그래? 우울하냐?”

-뭐 우울해. 그냥 피곤한 거지. 레퍼 찾으랴, 편곡하랴.

그러고 보니, 재호는 편곡을 담당하니, 모든 악기를 다 카피해야 했다.

곡 카피 과제가 노래를 담당하는 나보다 백배는 더 까다로울 터였다.

“힘내라.”

-야 됐어! 그건 그렇구. 너 나중에 시간 되면 하늘이한테 전화 좀 해.

“왜?”

-우울한 건 내가 아니라 걔야.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질문을 반복했다.

“왜?”

-나도 몰라~. 니가 한번 말해봐.

더 이야기 해봐야 시간 낭비고, 환희에게 직접 물어보는 편이 더 빨라 보였다.

“뭐 여튼 알았어.”

나도 재호에게 할 말이 있었다.

“너 요새도 피아노 연습 빡세게 하냐?”

-뭐~ 맨날 하지. 내 주 악기니까.

“요새 카피하느라 바쁠 건 아는데, 그랜드 피아노 연습도 좀 신경 써줘. 내가 생각한 편곡 아이디어가 있는데. 니 피아노 연주가 핵심이야.”

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내가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뭐, 너한테 손해 보는 일은 아니잖아? 조금 바쁘겠지만.”

-…그래 머. 하면 좋은 거니까. 꼭 하늘이한테 전화해봐? 걔 요새 좀 이상해.

“그래그래.”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환희에게 통화했다.

-네 형… 왔어요?

딱 목소리를 듣자마자 감이 왔다.

이 가라앉은 톤은 환희가 아니라 주하늘이었다.

“뭐 요즘 기분 안 좋다매?”

-에이~ 뭐! 다 그런 거죠 뭐~. 열심히 해야죠오~.

“뭐 문제없어?”

-아니에요 아니에요.

“니가 횽횽 안 거리는 거면 벌써 지친 거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혀엉.

하늘이는 억지로 주환희를 연기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말에 건들건들한 에너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불독처럼 끈질기게 계속 질문을 퍼부었다.

“무슨 문제 있는지 이야기해 봐아~.”

하늘이가 ‘아이’ 하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냥 제가 좀 한심해서요.

“뭐가?”

-재호 형은 이스트 웨이브랑 작업하고. 노을형은 이스트 웨이브 곡에 피처링하고. 심지어 앤젤은 오디션 프로 단독으로 우승도 하는데. 나는 뭐 하고 있나 싶어서요. 웃기기나 하고. 내가 개그맨인지, 가수인지….

‘그 말을 들으니까 뭐가 문제인지는 알겠네.’

주환희도 물론 인기는 상당했다.

특히 일본에서 덕후 컨셉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오히려 매출로는 일본 시장을 책임지는 주환희가 가장 훌륭했다.

하지만 가수로서는 어떨까?

앤젤과 나, 재호가 점점 자기 분야에서 치고 나가는 모습에 우울감을 느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우리 넷은 모두 슈퍼스타 T로 데뷔한, 동기들이었다.

비교 대상이 될 만했다.

-다른 사람들은 1년 만에 완전 달라졌는데! 저는 솔직히 머리만 폼 나게 세우고 다녔지. 딱히 노래가 늘지도 않았잖아요. 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앤젤 말이야, 사실 내가 도와줬어.”

-네?

“내가 도와줬다고.”

-아니 형! 우리는 같은 팀인데. 왜 저는 안 도와주고 라이벌 팀이던 사람을 도와주고 있. 어. 요? 팀. 웍. 어. 디?”

하늘이 말이 스타카토로 딱딱 끊어졌다.

“몰랐지. 너야 항상 잘하니까.”

“저도 해줘요오~. 팀이잖아요!”

“통화로는 좀 그렇고. 귀국하고 나서 너도 도와줄게.”

-꼭이에요 형!

간신히 하늘이를 달래고 전화를 끊었다.

‘이거 참. 하나 도와주면 또 하나가 난리구만.’

한국 가서도 데모 테이프 준비하려, 환희와 트레이닝 하랴,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하지만 우선,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곧 다가올 소닉독과의 버스킹 공연을 잘 끝내야 했다.

이번 여행의 마무리를 잘 지을 차례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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