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90화 (190/280)

제190화

“당신의 문제는 ‘너무 잘났다’는 거예요.”

“??”

소닉 독이 눈을 치켜떴다.

“생각해 보세요. 에메랄드 스팔도는 철저하게 자기 스타일의 음악을 하잖아요?”

“그렇죠.”

“거기에 당신의 강렬한 베이스를 넣으면, 전체 균형이 깨지지 않겠어요?”

내 질문을 들은 소닉 독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럴까요? 그냥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되는 거 아닐까요?”

내가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연어 샌드위치에 캐비어를 넣어봐요. 연어가 맛이 나겠어요? 너무 개성이 강한 재료를 같이 넣으면 안 되는 법이죠. 소닉 독 당신 연주가 꼭 그래요.”

소닉 독이 침묵했다.

너무 뛰어나서 단순 연주자로는 써먹기가 어렵다.

그게 내가 소닉 독의 연주를 듣고 내린 결론이었다.

소닉 독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나는 뭘 해야 할까요?”

“당신이 리더가 돼서, 자기만의 개성을 담은 음악을 해야죠.”

소닉 독이 헛웃음을 날렸다.

“솔로 가수가 되라고요? 이보세요? 나는 보컬리스트가 아니에요. 베이스 연주자라고요! 메인이 될 수 없어요.”

“당신이 메인이 되는 법을 저희가 알려 드리죠.”

“당신들이? 어떻게요?”

“직접 보여드릴게요. 내일, 같이 버스킹 하러 가죠.”

“버스킹?”

“맨날 당신이 하던 곳, 거기서 버스킹 하자고요. 선곡은 당신이 선택해요.”

소닉 독이 나를 멍하니 쳐다보더니, 이윽고 피식 웃었다.

“리허설 한번 없이 하자는 말인가요?”

“어차피 MR 틀고 연주할 거잖아요? MR에 맞춰서 노래하면 걱정 없죠. 내일 몇 시에 할까요?”

“…2시 30분까지 오세요. 3시에 시작하죠. 자리는 제가 맡아 두겠습니다.”

“좋습니다.”

“선곡은 킹제이의 ‘엑소더스’로 하겠습니다.”

“……!”

우리 둘을 지켜보고 있던 배영웅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그만큼 황당한 선곡이었다.

이 곡은 아무런 멜로디가 없는, 이천 년대 정통 힙합곡이었다.

보컬리스트인 나와는 최악의 상성인 곡이었다.

아예, 노래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일부러 소닉 독이 말도 안 되는 과제를 내게 던져 준 셈이었다.

소닉독이 짐을 싸며 말했다.

“…뭔가 보여줘야 할 겁니다. 단순히 노래만 부르면 안 돼요. 솔직히 안 믿기거든요 당신들? 사기꾼 같애! 근데 나한테 누가 사기꾼이 오겠어요? 돈이 한 푼도 없는데.”

소닉독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내가 나갈 채비를 하는 소닉 독에게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걱정 말고 내일 제시간에 꼭 오세요. 제대로 보여드릴 테니까. 아! 그리고 MR은 제가 준비할게요.”

“맘대로 해요.”

* * *

소닉 독이 나간 후, 나는 보컬 연습부터 곡 카피, 운동까지, 매일 하는 훈련을 했고 배영웅 매니저는 언제나처럼 옆에서 나를 지켜봤다.

피아노 앞에서 발성 연습을 마친 내게 배영웅 매니저가 슬쩍 말을 걸었다.

“참, 희한한 여행이네요.”

“무슨 말씀이시죠?”

“코러스를 데려오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현지의 인디 아티스트랑 버스킹을 하게 됐잖아요? 이게 어떻게 돼가는 건지.”

내 머릿속에는 ‘내일 할 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단 내일 버스킹 선곡할 노래부터 연습해야겠어요.”

배영웅이 수첩을 확인했다.

“킹제이의 ‘엑소더스’ 말이죠?”

음원사이트에서 ‘엑소더스’ 음원을 틀었다.

둔탁한 드럼, 심플하게 반복되는 루프의 피아노 소리, 거기에 베이스 소리가 전부인 곡이었다.

보컬리스트인 나에게는 황당할 정도로 안 맞는 곡이었다.

일단 멜로디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드럼과 랩으로만 가득 찬 곡을 보컬리스트에게 함께 부르자고 제안한 셈이다.

곡을 다 들은 후, 배영웅 매니저가 탄식했다.

“뭐 이런 곡이 다 있어요? 아니 좋기는 한데. 노을 군보고 랩 하라는 건가?”

내가 피식 웃었다.

“그건 아니겠죠.”

“그럼 뭔가요?”

“떠보는 거겠죠. 진짜 내가 자기가 믿고 맡길 만한 가수인지.”

이 노래는, 소닉 독이 나에게 준 일종의 ‘과제’였다.

뉴욕의 향취로 가득한 정통 힙합 비트를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의 뮤지션인가?

‘그 정도는 되어야 자기 미래를 걸 수 있다는 뜻이겠지.’

소닉 독의 걱정과는 달리, 내게 이 정도는 껌이었다.

내게는 ‘슈퍼스타 T’ 우승, 그리고 ‘킹 오브 싱어’ 초대 우승 경험이 있었다.

노래 편곡은 내 주특기 중 하나였다.

이 정도면 오디션 프로의 극단적인 과제에 비하면 쉬운 편이었다.

* * *

몇 시간 뒤, 편곡 작업 및 노래 연습을 끝내고, 이번에는 조민하 선배, 아니 메리의 집에 갔다.

아파트 대문 앞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의 메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어요?”

“네.”

“이제 내일모레면 한국 가는 거 아니에요?”

“맞습니다.”

메리가 한숨을 쉬었다.

“민도 독하네요. 설득이 잘 안 돼요.”

“뭔가 변화는 없나요?”

내가 슬쩍 떠봤다.

“음… 조금 마음에 동요가 생긴 거 같긴 해요. 자꾸 한국 웹사이트를 보고, 한국 노래를 듣더라고요. 걸그룹 노래를.”

“그러신가요?”

겉으로 나는 태연함을 가장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옳거니!’를 외치고 있었다.

조민하 선배가 자기 곡이 한국에서 뜨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내가 라디오, 공연, TV 오디션 등 다양한 매체에서 조민하의 곡을 띄우기 위한 영업을 했다는 점은 몰랐겠지만,

메리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매일 늦게까지 뭔가를 본다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늦잠 자서 아침을 스킵했어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조민하 선배를 보지 못한 모양이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도서관을 가보면 되겠네요.”

메리가 나를 안쓰럽다는 듯 쳐다봤다.

“모처럼 지구 반대편까지 왔는데, 관광도 못 하네요? 정말 괜찮아요?”

내가 한껏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이것 때문에 온 건데요 뭘. 놀러 온 것도 아니고. 게다가 관광도 하고 있어요. 그렇죠 실장님?”

“아 네네.”

배영웅 매니저가 품속에서 사진을 꺼내 보여 줬다.

메리는 사진에 관심을 보였다.

“오, 보여주세요. 이거 어디예요?”

내가 대답했다.

“사실, 어제 배영웅 실장님 덕에 재즈 바에 갔어요. 에메랄드 스팔도가 콘서트를 하고 있더라고요.”

메리가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 대단하네요. 저도 그 사람 본 적 있어요.”

“연주가 대단하더라고요. 역시 음악의 나라라는 게….”

사진 속 나는 바텐더 앞에서 배영웅 매니저와 어깨동무를 한 채 활짝 웃고 있었다.

맨 뒤에 조그맣게 에메랄드 스팔도의 모습이 들어 있는 걸 제외하면, 정겨운 동네의 숨결이 느껴지는 사진이었다.

그때였다.

“잠깐만요!”

메리가 오만상을 찌푸리더니 내 말을 끊었다.

“왜요?”

메리의 표정이 180도 달라졌다.

그녀가 천근만근 무거운 톤으로 다시 내게 되물었다.

“…이거, 언제 찍었다고요?”

“어제요.”

“어제요….”

“왜 그러시나요?”

메리가 손가락으로, 사진 오른쪽 구석을 가리켰다.

“이거 봐요.”

그곳에는 포마드로 멋들어지게 머리를 다듬은 동양인 남자가 바 테이블에 앉아, 바로 옆의 히스패닉계 여성과 찰싹 달라붙어 찐한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이게 왜요?”

“민 남자친구잖아요?”

“어이구야.”

갑자기 나와 메리 사이에 싸한 침묵이 흘렀다.

메리가 침묵을 깼다.

“사진 좀 빌려줄래요? 민에게 이야기해야겠어요.”

“…그러시죠.”

메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보면 메리가 뭐라고 할지….”

길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뭘?”

나와 메리가 옆을 돌아봤다.

아파트 대문 앞에,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끝낸 조민하 선배가 서 있었다.

메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

나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조민하 선배가 나와 메리가 보고 있던 사진을 확인했다.

“사진이에요?”

메리가 나에게 나가라고 손짓했다.

“가요?”

“둘이 이야기할게요. 가요 가.”

바로 나는 결정을 내리고, 조민하 선배에게 인사했다.

“선배, 내일 아침에 델리 샌드위치 가게에서 뵙겠습니다. 그럼….”

“잠시만요. 메리, 뭔 이야기를 한 거야. 이 사진은 뭐야?”

인사하고 뒤를 돌려 나가는 내게 조민하 선배의 고함이 들려왔다.

“그 자식이!”

* * *

조민하 선배와 인사한 나는 바로 뉴욕에서 노래 연습을 위해 택시를 타고 스튜디오로 향했다.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동행 중이던 배영웅 매니저가 혀 차는 소리를 냈다.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생각 못 했네요.”

“그러게요!”

배영웅 매니저가 노트북을 켜며 말했다.

“뭐, 조민하 님에게 좋은 소식도 있어요.”

“무슨 말씀이시죠?”

“이거 보세요.”

배영웅 매니저가 인터넷 기사를 읽어줬다.

제목: 판타스틱 폭시 노래 연일 대박. 이제는 수록곡까지?

본문: 판타스틱 폭시의 노래가 레트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루아의 ‘소울 메이트’ 공연을 계기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판타스틱 폭스가 이제는 수록곡들까지 주목을 받게 된 것.

계기는 앤젤의 ‘고져스 싱어’ 무대였다.

앤젤은 오프닝 무대에서 판타스틱 폭시의 ‘오늘 밤에’로 포문을 열었다.

섹시한 반전 매력에 방청객과 심사위원들은 열광했다.

이후 2라운드 무대에서 앤젤은 판타스틱 폭시의 2집 수록곡 ‘지금이라도 내 목소리를 들어줘’를 꺼내 들었다.

팬들만 알고 있는 이 명곡을 앤젤은 여성키까지 소화하는 반전 고음으로 완벽하게 소화했다.

반전 무대에 당황한 심사위원이 마이크를 떨어뜨리는 돌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앤젤의 너스레로 위기를 넘겼다.

만장일치로 1위를 차지한 앤젤은 이런 영광을 또 받을 줄은 몰랐다.

선곡을 도와준 노을이 덕분인 것 같다‘라고 동료 권노을 군을 호명해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한편 다음 방송에서는 챔피언을 차지한 앤젤의 또 다른 반전 무대가 펼쳐질 예정이다.

기사를 다 읽은 배영웅 매니저가 감탄했다.

“이야 대단하네요. ‘지금이라도 내 목소리를 들어줘’ 이거 조민하 님이 쓰신 곡이잖아요? 이런 곡까지 띄우는 계획을 하셨을 줄은….”

“제가 추천 안 했어요.”

“네?”

“통화할 때 같이 있으셨잖아요. 그 곡은 이야기도 안 했어요.”

“그럼….”

“앤젤이 제멋대로 찾은 거겠죠.”

내가 앤젤에게 추천한 곡은 타이틀곡인 ‘오늘 밤은’뿐이었다.

그 곡이 마음에 들자, 자기 멋대로 ‘판타스틱 폭시’의 곡을 디깅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판타스틱 폭시의 수많은 곡들 중, 조민하 선배의 보석 같은 멜로디와 코러스 편곡이 빛나는 ‘지금이라도 내 목소리를 들려줘’를 하필 찾아냈단 말인가요?”

내가 배영웅 매니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대답했다.

“그게 전부가 아니죠. 심지어 그 곡으로 지상파 오디션 프로에서 또 우승한 거죠.”

배영웅 매니저가 한 번 확인해 보자며 방송 녹화 테이프를 구해 왔다.

무대 영상 속 앤젤은 조민하 선배가 작곡한 판타스틱 폭시의 노래를 열정적으로 부르며 무대를 부수고 있었다.

배영웅 매니저가 포털 사이트 반응을 확인한 후, 코멘트를 남겼다.

“지금, 이 곡에 대한 기사로 포털이 도배되고 있네요.”

아유 이 이쁜 놈!

배영웅 매니저가 웃었다.

“와… 우리 계획이 아니라니 대박이네요.”

“맞아요. 하지만 이 덕분에, 조민하 선배에게 줄 선물이 하나 늘었네요.”

선물 중에 최고의 선물을 한 아름 들고 갈 수 있게 됐다.

그건 바로….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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