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9화
얼핏 보면 초라한 펍처럼 보였다.
손님들이 편안하게 카페 테이블, 혹은 바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관광객은 없고, 대부분이 흑인 로컬 관객들이었다.
오른쪽 벽에는 아담한 무대가 보였다.
프로 음악가의 무대인지 학예회 무대인지 헷갈릴 정도로 수수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지.’
지금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한 백인 음악가가 무심한 듯, 무대에 혼자 앉아 기타를 쳤다.
얼핏 들으면 평범한 기타 연주였지만, 자세히 들으면 경탄이 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심장이 멎을 법한 아름다운 톤, 미묘하게 원곡의 박자를 어기면서도 균형을 유지하는 엇박의 리듬감까지.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라는 미도리의 연주 외에는 비슷한 연주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런 연주가 나오는 곳이라면 다른 음악이 얼마나 굉장할지 짐작이 같다.
내가 고개를 돌려 배영웅을 바라봤다.
“여기, 전문 재즈 바군요!”
내 말을 들은 배영웅이 싱긋 미소 지었다.
“맞습니다. 할렘 로컬들만 다니는 곳이에요. 여기가 가장 연주가 유명하다고 해서요. 도움이 되실 것 같았어요.”
벌써, 무대 전 몸풀기에 가까운 기타 연주만 들어도 온몸이 흥분됐다.
왠지 모르게 주변 관객들이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마저 음악적으로 들리는 기분이었다.
배영웅 실장이 맥주를 두 잔 주문하며 바텐더에게 오늘 공연에 대해 말을 건넸다.
“오늘 공연, 누구죠?”
“오늘 잘 오셨수. ‘에메랄드 스팔도’ 공연 날이야.”
“오….”
배영웅이 휘파람 소리를 냈다.
뜻하지 않은 수확이라는 뜻이었다.
나도 배영웅 실장과 같은 생각이었다.
“오늘 운이 좋은 데요 실장님?”
“그러게요.”
배영웅은 매번 운전할 때마다, 비원더가 참고할 만한 음악을 틀어 주었다.
그중에는 에메랄드 스팔도도 있었다.
천재 기타리스트로서 17살에 데뷔할 때부터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재즈 보컬 앨범상을 거머쥔 천재였다.
이후에도 매번 앨범을 낼 때마다 재즈계를 뒤흔드는 슈퍼스타였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그냥 로컬 바에서 연주를 한다고요?”
배영웅이 내 질문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고개를 저으며 핀잔을 줬다.
“그냥 로컬 바가 아니죠. ‘뉴욕의 유명 재즈 바’지.”
“아….”
“아마 에메랄드는 성공하기 전부터 여기서 연주를 했을 거예요.”
배영웅의 말을 듣고, 눈을 감고 은은하게 연주되는 기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렇게 풍성한 음악에, 어린 시절부터 라이브로 노출되는 사람은 대체 어떤 음악을 만들 수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이윽고, 무대에 한 명씩 연주자들이 올라왔다.
드러머와 피아니스트, 베이시스트, 기타리스트 그리고 보컬리스트인 에메랄드까지 4인조의 단출한 구성이었다.
그중 베이시스트는 뜻밖의 인물이었다.
‘소닉 독…!’
길거리에서 연주하고 있던, 미래의 슈퍼스타 베이시스트, 소닉 독이 침울한 표정으로 베이스를 조율 중이었다.
역시나, 뛰어난 사람은 눈에 띄는 법인가?
버스킹이나 하길래, 아직 성공하기 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세계적인 재즈계의 슈퍼스타인 에메랄드 스팔도의 베이시스트로 공연할 정도라면 이미 뉴욕계에 상당한 실력자라는 뜻이었다.
이윽고, 관객들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오늘의 주인공, 에메랄드 스팔도가 무대에 걸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난해하면서도 귀를 간지럽히는 아방가르드 재즈 사운드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배영웅이 감탄했다.
“매번 들었던 스팔도 음악인데, 라이브로 들으니 남다르네요.”
“그러게요. 음원보다 라이브가 훨씬 더 화려한 것 같아요.”
하지만 뭔가 마음에 걸리는 합주였다.
조금 화합이 되지 않는 느낌이다.
눈을 감고 집중해서 음악을 듣다 보니 그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균형이 깨지는 원인은 소닉독의 베이스 연주에 있었다.
소닉 독은 정말 훌륭한 베이시스트였다.
하지만 스팔도의 음악에는 아주 조금 과했다.
에메랄드 스팔도는 철저하게 자신의 의도에 맞춰서 연주자를 조율하는 타입의 뮤지션이다.
그녀의 음악에 소닉 독의 화려한 연주가 더해지니, 이미 복잡하고 어려운 음악이 제대로 정돈되지 않았다.
노래 중인 스팔도의 표정에도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잠시만요.”
첫 곡이 끝나고, 스팔도가 잠시 휴식을 청했다.
밴드 멤버들이 모두 바깥에 나갔다.
관객들 표정을 보니, 흔하게 있는 일은 아닌 듯했다.
배영웅 실장이 바텐더에게 팁을 주며 말을 걸었다.
“원래 이런 경우가 많나요?”
“처음 봤수. 뭔가 문제인 모양인데?”
2분이 채 지나지 않아, 스팔도와 밴드 멤버들이 무대에 다시 돌아왔다.
스팔도가 태연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다시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베이시스트였던 소닉독이 사라졌다.
소닉 독이 앉았던 자리는 비워진 채로, 스팔도가 직접 콘트라베이스를 잡고 연주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배영웅 매니저에게 슬쩍 속삭였다.
“저 잠깐 바깥에 나가 볼게요.”
“왜요?”
“뭐 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요.”
배영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혼자 나가는 건 위험해요. 같이 가시죠.”
“좋아요.”
바깥에 나가면서 배영웅 매니저가 푸념했다.
“아, 그래도 기껏 스팔도 연주인데… 너무 빨리 나가는 거 아닌가요?”
“더 중요한 일이 있어요.”
“더 중요한? 뭔가요?”
내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 끝에는, 침울한 표정으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소닉 독이 서 있었다.
“제가 찾던 사람이요.”
나는 소닉 독 방향으로 ‘잠시만요!’라고 크게 외쳤다.
소닉 독이 주변을 돌아봤다.
자신을 부르는 거라고는 아예 생각지도 못한 듯했다.
“소닉 독 당신이요!”
자신에게 한 말임을 인지한 소닉 독이 인상을 구겼다.
“누구시죠? 저를 어떻게 알아요?”
“당신 연주 팬입니다. 방금 전까지 클럽에서 당신 연주 듣고 있었어요.”
“…….”
나를 쳐다보는 소닉독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의 시선을 확인한 배영웅 매니저가 슬쩍, CD를 보여줬다.
“자, 이거 보세요.”
“그건….”
내용물을 확인한 소닉독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야 저 CD는 소닉 독이 길거리에서 버스킹 연주를 하면서 팔던, 자신의 싸구려 솔로 앨범이었으니 말이었다.
“당신 음악을 우연히 뉴욕 길거리에서 듣고, 너무 좋아서 샀어요. 당신은 기억을 못 한 거 같지만.”
내가 자신의 CD를 구매했던 팬임을 확인한 소닉독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고맙네요. 하지만 저, 음악 그만둘 거예요.”
내가 되물었다.
“왜요?”
세계 최고의 베이시스트가 될 정도의 재능이 있는데?
소닉 독이 침통한 표정으로 답했다.
“에메랄드 스팔도의 밴드 연주 기회를 잡았어요! 이런 기회를 5년간 기다렸는데! 결국 허탕이 됐어요. 몰랐겠지만, 방금 짤렸어요. 공연을 망쳤다고 욕이나 처먹고! 전 재능이 없는 거예요.”
배영웅 매니저가 소닉 독을 위로했다.
“자자, 그러지 마시고, 저희랑 잠깐 이야기나 해보시죠. 이분도 음악가입니다. 저는 이분 매니저고요,”
“음악가라니 무슨….’
“자자, 그러지 마시고.”
할 수 없이, 배영웅 매니저가 내 앨범과 사진을 보여줬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스트 웨이브와 녹음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본 소닉독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건…!”
“네, 접니다.”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해보자고요.”
“음….”
소닉 독은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배영웅은 그런 그에게 최후통첩과도 같은 얘기를 했다.
“내일 아침 매일 버스킹 하던 곳 앞의 델리 샌드위치 집에서 기다릴게요. 거기서 봐요.”
“…….”
소닉 독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뒤를 돌아섰다.
우리도 돌아가려던 순간
“잠깐만!”
소닉 독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이라면 몇 시인가요?”
내가 싱긋 웃었다.
“9시까지는 볼일이 있으니 그다음에 봐요.”
소닉 독은 그대로 사라졌다.
배영웅이 내게 물었다.
“내일 볼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럴걸요?”
마지막에 뒤돌아서는 소닉 독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베이스를 잡는 시늉을 다시 하며 걷기 시작했다.
소닉 독을 지켜보는 나에게 배영웅이 슬쩍 물었다.
“돌아갈까요?”
“어딜요?”
“재즈 바요. 아직 공연 안 끝났어요.”
“아!”
그제서야 내가 왜 애초에 재즈바에 가기로 했는지 기억이 났다.
미도리의 제안 때문이었다.
[사진 좀 찍어요! 결국 남는 추억은 사진뿐이라고요오~.]
“정작 관광은 안 하고! 음악가 영입만 죽어라 했네요. 바뀐 게 없네요.”
배영웅 매니저가 싱긋 웃었다.
“저 베이시스트를 영입하려 하시는 거죠? 그럴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일단 쉬기로 했으니까, 오늘 남은 시간은 한번 제대로 보기로 할까요?”
“그러시죠!”
소닉 독 영입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었을까?
이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에메랄드 스팔도의 공연에 몰입할 수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처음으로 조민하 선배가 샌드위치 집에 오지 않았다.
“늦네요.”
배영웅 매니저가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네에….”
나는 배영웅 매니저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어제 재즈 바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확인했다.
배영웅 매니저가 레트로하게 즉석 필름 카메라로 찍어 준 사진들이었다.
‘사진 다들 잘 나왔네. 에메랄드 스팔도랑 사진도 한 장 찍을 수 있었고.’
이렇게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조민하 선배의 경우, 내가 이미 대책을 다 세워놓은 상태였다.
시간문제지, 결국에는 내 뜻대로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녀가 결국 음악으로 대성할 것이라는 ‘미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조민하 선배가 ‘언제’ 음악계로 돌아올 거냐는 거겠지.’
조금 늦어도 상관없었다.
글로벌 비전 대회 예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으니 말이었다.
다만 소닉독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신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정보가 부족했다.
그때, 배영웅 매니저가 내 팔을 두드렸다.
“왔군요.”
뒤를 돌아봤다.
뉴욕 양키스 모자를 푹 눌러쓰고 후드티 차림을 한 소닉 독이 샌드위치 가게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소닉 독은 꼬치꼬치 내 커리어에 대해 물었다.
“이스트 웨이브랑은 어떻게 알았죠?”
“인사도 없나요? 뭐 상관없어요. 이스트 웨이브가 먼저 연락했어요.”
소닉 독이 탄식에 가까운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야! 무슨 일로요?”
“자기 이번 앨범 피처링 해달라고요.”
원래부터 소 눈망울만 했던 소닉 독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왓? 당신들 유명한 사람이에요?”
배영웅 실장이 내 앨범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남한에서 왔어요. 이 친구, 얼마 전 앨범 100만 장 팔았습니다.”
내 경력을 들은 소닉 독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슈퍼스타가 저 같은 놈은 왜 불렀죠? 이해가 안 되네. 나 같은 놈이 하는 음악을 듣고 다닐 이유가 없잖아요.”
“알앤비의 나라 미국이잖아요? 당연히 미국을 동경했죠. 뉴욕 길거리만 걸어도 꿈만 같은 기분이었다고요. ‘아 여기가 알리시아 키스가 있던, 스티비 원더가 노래하던 그곳이구나’ 하면서요.”
“그런 건 팝스타지, 나랑은 상관없어요.”
“그 알앤비의 나라 미국에서 소닉 독, 당신의 연주를 발견했고요. 특별할 수밖에 없죠.”
소닉 독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정작 이 나라는 나를 인정하지 않는데. 지구 반대편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네요.”
드디어 내가 하고 싶었던 주제를 소닉 독이 먼저 꺼냈다.
“그게 왜 그런 거 같아요?”
“네?”
“왜 사람들이 당신 음악을 불편해하는 거 같냐고요.”
소닉 독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내 음악이 별로라서 아닐까… 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