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88화 (188/280)

제188화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배영웅 실장이었다.

그가 내게 dvd를 흔들어 보였다.

“요청하신 자료입니다.”

“감사해요.”

dvd를 그대로 노트북에 넣었다.

배영웅 매니저 또한 내 옆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배영웅 실장이 물었다.

“어쩌다 연예 버라이어티를 볼 생각이 드셨나요?”

“이유미 선배도 나오고, 문루아 선배도 나온다고 해서요.”

버튼을 눌러 영상을 재생했다.

‘소울메이트’, 나도 출연했던 적이 있던 연애 버라이어티 쇼였다.

연예인들이 연애하는 척 미팅을 진행하는 전형적인 당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원래는 딱 질색인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봐야 할 이유가 있었다.

“댄스으~~ 신고식!!”

화면 속 이유미가 ‘댄스 신고식’을 외쳤다.

연예인들이 한 명씩 나와서 차례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방송을 보던 배영웅이 탄식했다.

“야, 너무하네요. 저 사람은 춤을 너무 대충 추는데요.”

화면 속 여성은 리듬도 맞추지 않고 대충대충 동작만 흉내 내고 있었다.

나도 맞장구를 쳤다.

“그냥 막 추는 춤이네요.”

“한국은 너무 춤에 대해서 모르는 거 같다는 생각도 해요. 노래만큼 전문적인 분야인데.”

“…이제 진짜가 나타났네요.”

내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에는 문루아 선배가 등장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문루아가 등장함과 동시에 불이 꺼졌다.

이윽고, 불이 다시 켜지더니 깜짝 등장한 문루아의 기타리스트 미도리가 리드미컬하게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문루아가 마치 탱고 댄서처럼 라이브 기타 연주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곡은 바로… ‘판타스틱 폭시’의 ‘오늘 밤은’이었다.

‘이 무대를 보려고 이 방송 dvd를 수소문해 구한 거였지.’

판타스틱 폭시의 노래를 어떻게든 띄우기 위해 곡 영업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점점 판타스틱 폭시의 노래가 재조명되고 있었다.

오창선 선배, 바질리스크 등이 자기 무대에서 판타스틱 폭시 노래를 불렀다.

내가 직접 심야 라디오에 판타스틱 폭시의 노래를 신청하기도 했다.

조금씩 반응이 왔지만, 진짜 대박은 그쪽에서 오지 않았다.

진짜 대박은 바로 ‘댄스 신고식’이었다.

이미 온 언론이 문루아의 댄스 신고식 무대로 도배 중이었다.

문루아의 무대를 보던 배영웅 매니저가 함성을 질렀다.

“이야… 역시 루아 아티스트님. 굉장하네요.”

“라이브 기타 연주에 맞춰서 춤을 추다니, 엔간한 자신감으로는 할 수 없는 일 아닌가요? 보통은 굉장히 ‘썰렁’하게 느껴질 듯한데.”

배영웅이 초승달 모양의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맞습니다. 아시는군요?”

문루아는 단순히 춤을 잘 추는 수준의 댄서가 아니었다.

단순한 편곡에서도 자기만의 변주, 제스처, 표정 등으로 포인트를 줘서 시청자들이 지루하지 않게 연출했다.

덕분에 단순한 기타 연주에 맞춘 춤마저 멋들어진 공연이 되었다.

내가 솔직하게 춤 감상평을 남겼다.

“이 곡이 이렇게 좋은 곡인 줄 이제 알았어요.”

배영웅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가수든, 댄서든, 연주자든. 미도리와 문루아 아티스트가 이 곡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준 셈 아닐까요? 퍼포머에게 최고의 찬사죠.”

이 댄스 신고식 무대는 발표되자마자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덕분에 판타스틱 폭시의 ‘오늘 밤은’ 원곡도 덩달아 큰 주목을 받았다.

“이거 보세요.”

내가 배영웅 실장에게 음원 사이트 순위를 보여줬다.

“어이쿠.”

‘오늘 밤에’가 음원 차트 TOP 10위 안에 입성해 버렸다.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음원 소비가 폭증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내가 원하던 대로 판타스틱 폭시의 노래가 ‘역주행’에 성공했다.

‘이 정도면 조민하 선배에게 희망이 보이려나?’

* * *

이번 무대로 성공한 건 ‘판타스틱 폭시’만이 아니었다.

문루아 선배도 다시 큰 주목을 받았다.

문루아 선배는 공백 이후, 나와 함께 ‘슈퍼스타 T’에 참여하면서, 솔로 알앤비 가수로 활동했다.

전성기의 댄스 가수 시절 활동 때와는 다른 종류의 인기를 구가 중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번 무대를 통해 다시금 ‘댄스 가수’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오히려 10대 시절보다 지금이 더 성숙하고 아름답다는 평이었다.

문루아 선배에게 통화를 걸었다.

축하라도 해야지.

뚜뚜… 뚜뚜….

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옆에서 요리를 준비하던 배영웅 실장이 말했다.

“당분간은 통화 어려울 거예요. 문루아 담당 실장님하고 지금 문자 중인데. 저 ‘판타스틱 폭시’ 무대 이후 CF 촬영 일정이 물밀 듯이 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한국만도 아니에요. 일본, 대만, 구룡도, 심지어 인도에서까지 오퍼가 왔데요.”

“…스케일이 다른데요? 비원더는 아직 한국 광고도 못 찍어봤는데.”

문루아 선배가 ‘아시아 스타’라는 실감이 났다.

배영웅 실장이 나를 위로했다.

“에이, 비원더는 글로벌 비전에서 전 세계 관객에게 눈도장 찍을 거니까요. 우리는 유럽 광고 찍죠!”

“하하. 그러면 좋겠네요.”

통화해야 할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었다.

문루아의 기타리스트이자, 비원더 라이브 세션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미도리 말이다.

그녀 또한, 기타리스트로서 문루아와 함께 화제가 되었다.

그녀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금방 전화가 연결됐다.

-모시모시 노으루군?

“미도리! 소울 메이트 봤어요. 난리 난 거 아니에요?”

-에이~. 저는 연주자예요. 노으루 군 같은 가수랑은 달라요. 인기가 확 생기지 않고 인기가 생긴다고 꼭 좋지도 않다고요.

“그래도 기사마다 미도리도 같이 소개되던데요.”

킥킥, 미도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런 관심이야말로 바람 같은 거죠. 아이돈케어 데스요. 그보다 노으루군은 어때요?

“뉴욕은 좋은데. 섭외는 난항이네요.”

민하 선배의 이야기를 미도리에게 전했다.

-연주자란 게 그래요. 음악을 만드는데 누구 못지않게 기여하는데. 수익이나 유명세는 턱없이 부족해요. 돈을 크게 벌려면 글로벌 투어를 뛰어야 하는데 그러면 사생활이 없어지고, 그렇다고 연주자가 월드 스타만큼 인생이 뒤바뀔 정도로 큰돈을 단박에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해봤던 경험이었으니 말이다.

이전 생에서는 나도 코러스로 활동했다.

일종의 연주자인 셈이었다.

팬더믹으로 공연이 멈추자 생계유지조차 되지 않았다.

미도리의 말은, 설사 연주자로 ‘성공한다고 해도’ 문제는 계속된다는 말이었다.

미도리의 말을 듣고 보니, 조민하 선배의 고민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해답도 동시에 생각이 났다.

“확실히 연주자는 그런 문제가 있을 듯하네요. 그렇기 때문에 연주자에서 만족할 게 아니라 ‘창작자’가 되어, 자신이 리더가 되는 프로듀서가 되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리더요?

“예를 들어, 미도리는 문루아 선배의 곡 대다수를 함께 작곡하고, 편곡하니까 그걸로 저작권 수입이 나오잖아요. 수익도 굉장할 거고.”

-나쁘지 않은 정도예요.

“연주가 된다는 건 작편곡의 가능성이 있다는 거니까, 결국 자신이 주도하는 ‘창작물’을 만들어 승부하면 될 것 같아요. 저작권법이 창작물은 보호해 주니까요. 조민하 선배의 ‘오늘 밤은’ 같은 곡을 보면 충분히 프로듀서 자질이 있어요.

-잠깐만요. ‘오늘 밤은’이 그 사람 곡이라구요?

미도리의 목소리가 한껏 높아졌다.

“전부 다는 아니지만, 그 곡의 가장 훌륭한 부분! 보컬 애드립과 하모니 파트는 모두 조민하 선배 거예요.”

-와… 와… 듣자마자 너무 좋다고 생각했었어요. 사실은 아방가르드 재즈처럼 굉장히 복잡한데, 일반인이 듣기에는 물 흐르듯 편안하게 느껴지잖아요!

“맞아요. 그런 창작력이 필요해서 조민하 선배를 찾으러 뉴욕까지 온 겁니다.”

-노으루군! 꼭 데려와요. 저 그 사람하고 같이 곡 쓰고 싶어요!

두 배로 커진 목소리였다.

헌데, 그녀의 말 중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

“같이 곡을 쓴다고요?”

-무슨 소리예요! 글로벌 비전 송 콘테스트 출전할 거잖아요. 비원더의 기타리스트는 저라고요.

아직 못 들어 본 이야기였다.

“아니 저는 좋지만! 문루아 선배나 다른 일정은 어쩌고요? 혹시라도 저희 글로벌 본선에라도 진출하면 족히 6개월은 다른 일 못 할 텐데?”

-글로벌 비전에 나가는 건데! 다른 일은 다 제껴야죠. 글로벌 비전에 진출하면 비원더 일에만 집중할 거예요. 박 선배도 똑같은 생각일걸요?

왠지, 위로가 되었다.

나를 도와주는 주변인들 때문에라도, 글로벌 비전 대회에서 꼭 좋은 결실을 거두고 싶어졌다.

‘비원더가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미도리 또한 거대한 무대에서 공연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배에 힘을 꽉 주고, 미도리에게 목소리를 토해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근데 어째 미도리의 반응이 시원찮았다.

-저… 노으루군은 매번 너무 열심히 해요. 뉴욕까지 갔는데, 좀 관광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해요.

“사진이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일전에 다 같이 미국 여행 갔었잖아요? 나랑 루아 사진만 잔뜩 있고 노으루군 사진은 하나도 없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연예인이 이런 말 하기는 좀 우습지만, 애초에 사진 찍는데 취미가 없었다.

예전에야 병 때문에 뚱뚱해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을 맛이 나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버릇이 안 됐다.

-사진 좀 찍어요! 결국 남는 추억은 사진뿐이라고요오~.

미도리는 ‘사진을 찍으라’는 당부의 말을 남기고 통화를 끊었다.

통화가 끝나자, 숨을 죽이고 통화를 듣고 있던 배영웅 매니저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혼나셨네요?”

“다 들으셨어요?”

“마지막 말만 들렸어요. ‘사진 좀 찍어요!’라고.”

“하하.”

“오늘 밤에 그럼 외출이나 같이 좀 하실까요! 딱 한 곳, 노을 아티스트님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긴 했어요.”

“어디요?”

* * *

배영웅 실장과 함께 뉴욕 밤거리를 걸었다.

평소라면 배영웅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를 탔겠지만, 여기는 뉴욕이었다.

“뉴욕에서 운전을 한다는 건… 미친 짓이죠.”

배영웅 매니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배영웅 매니저를 살펴봤다.

“뉴욕에 와보셨나 봐요?”

“세계 음악의 수도니까요. 안 왔을 리가 없죠.”

“뉴욕에는 어떤 일로 오셨나요?”

배영웅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마지못해 대답했다.

“…문루아 아티스트 미국 진출 때문이었습니다.”

“전혀 몰랐네요.”

“처참하게 실패했으니까요.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미국 시장은 아시아 스타도 그냥 귀여운 인형 취급을 하더군요. 아티스트로서 존중이 전혀 없었어요. 10대 영화의 주인공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히로인 역할 같은 배역을 하라 그래서 때려쳤죠.”

배영웅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말을 듣고 보니, 왜 문루아 선배에게 공백기가 생겼는지 알 것 같았다.

‘미국 진출 좌절에 따른 후유증 때문이 아니었을까?’

배영웅의 팔을 붙잡고 위로했다.

“힘내세요. 실장님 잘못은 아니니까요.”

배영웅이 다시 예의 바른 초승달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저는 비원더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저요? 뭔 기대요?”

배영웅이 다시 앞서 걸으며 말했다.

“문루아 아티스트와 제가 못 이룬… 세계 1등의 꿈! 비원더가 이뤄 줄 거라고요.”

“하하….”

점점, 글로벌 비전에서 우승해야 할 이유가 늘고 있었다.

‘어차피 원래부터 우승할 예정이긴 했지만!’

다섯 블록 남짓 걸었을까?

반짝이는 거대한 간판이 보였다.

배영웅이 손가락으로 간판을 가리켰다.

“저곳입니다.”

반짝이는 네온사인이 2층 건물만 했다.

“우와 엄청 크네요. 굉장한 곳일 거 같은데.”

배영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거기는 다른 곳이고요. 여기요.”

배영웅이 가리킨 곳은 휘황찬란한 대형 클럽이 아니었다.

그의 손가락은 옆의 으슥한 건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쥐가 출몰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허름한 건물이었다.

간판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여긴 뭐 하는 곳이죠?”

“들어가 보시면 압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우왓?!”

음악 별천지가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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