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86화 (186/280)

제186화

“지금 너는 좀 다크한 노래가 어울려. 그것도 예전에는 소화하기 어려웠던 노래 위주로.”

앤젤에게 곡 영업을 시작했다.

-그럴까?

“목소리가 달라졌다는 걸 좀 임팩트 있게 알려줘야지.”

‘예전에 앤젤의 목소리는 약간 평범한 편이었어. 잘 부르는 건 인정. 하지만 그게 전부였지.’

지금은 달랐다.

현재 앤젤의 목소리는 다크 초콜릿 같은 강한 개성이 있었다.

기껏 자기만의 개성을 얻었건만, 앤젤은 이전처럼 평범한 발라드를 가장 많이 불렀다.

“목소리가 아까워. 좀 다크 섹시한 거로 가봐.”

-다크 섹시?

내가 슬쩍 음악을 소개했다.

조민하 선배의 코러스가 돋보이는, 판타스틱 폭시의 ‘오늘 밤은’이었다.

앤젤이 툴툴댔다.

-뭐? ‘오늘 밤은’ 그거 걸그룹 댄스곡 아냐? 그걸 나보고 부르라고?

“그 정도는 원키로 소화되잖아.”

앤젤이 혀 차는 소리를 냈다.

-사실이긴 한데… 그래두 여자 치는 좀 부담스럽거던?

“잘 생각해봐. 너랑 엄청 어울려.”

-지금 생각해보고 있어.

“봐봐. 주술적인 신디사이저의 소리, 묵직한 베이스, 거기에다가 심장을 뛰게 하는 둔탁한 드럼 소리까지…. 거기에 앤젤의 다크한 에스프레소 같은 목소리가 들어간다! 게임 끝이지.”

-…비행기 태우고 있네.

말은 그렇게 해도, 앤젤의 목소리가 훨씬 누그러졌다.

앤젤이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번 커버해보구 알려줄게. 다른 거 할 수도 있어.”

“조금 힘을 빼고 해. 잘하려고 부르지 말고.”

“알겠어 알겠어.”

잔소리처럼 들렸지만, 욕심을 덜어내면 바로 성공적인 선곡이 될 터였다.

‘지금은 그러지만 나중에는 이런 류에 노래만 하겠다고 닦달을 할걸?’

* * *

앤젤과 통화하면서 조민하 선배에게 어떤 선물을 주어야 할지 감이 왔다.

음악에 대한 용기를 잃은 선배에게는 ‘희망’이 필요했다.

이미 뛰어난 능력이 있는 그녀에게 희망을 주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조각조각 존재하는 희망들을 엮어서 큰 그림으로 그려주면 충분했다.

‘앞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좀 자주 해야겠는데.’

그때였다.

그렇게 음악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나를 배영웅 매니저가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문제 있으세요?”

“저녁 시킬까 하는데요. 뉴욕은 뭐가 유명하죠? 뭘 시켜야 할지 모르겠네요.”

배영웅 실장의 제안에 잠깐 머리를 굴려 봤다.

요새는 다이어트가 생활화가 됐는지 별로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이전 생의 권노을이라면 뉴욕에 가서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을지 상상해보니 뻔한 대답만 나왔다.

“그러게요… 뭐 쉑쉑버거나 중국요리 같은 거 어때요? 아님 피자?”

“그런 거밖에 없나요? 더 의미 있는 메뉴면 좋겠는데요.”

“뉴욕이 그렇지 않나요? 가장 큰 도시지만. 뉴욕만의 문화랄 건 없는?”

배영웅 매니저가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뉴욕은 일단 브로드웨이가 있죠? 최고의 무대.”

“힙합도 유명하잖아요. 나스(Nas)라던지 제이지(Jay-Z)같은… 뉴욕 힙합?”

“재즈 씬도 뉴욕이 중심이고요.”

찾아보면 역시나 뉴욕만의 문화가 많았다.

다만 모두가 ‘뉴욕답다’라기보다는 세계 최고라서,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도시 뉴욕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중에 제일 내 관심을 끄는 포인트가 하나 있었다.

“무엇보다 뉴욕은 음반사 본사가 대부분 있는 곳이잖아요?”

“노을 군에게 연락했던 ‘유니버스’는 본사가 LA에 있지만 그게 예외고 위너라던가… 다른 대형 음반사는 대개 뉴욕에 있죠.”

생각해보면 우리는 세계 음악의 수도에 온 것일지도 몰랐다.

음식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었다.

“…그냥 세계 모든 맛집이 다 뉴욕에 있지 않을까요?”

“그냥 맛집 아무 데나 찾아볼게요.”

“문루아 선배랑 같이 가실 때 뭐 안 드셨어요?”

“루아 아티스트님은 언제나 샐러드라… 그렇게 먹을 수는 없잖아요?”

“네, 그건 좀.”

체중 조절도 잘되고 있는데, 굳이 뉴욕까지 와서 샐러드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중국요리 시킬게요.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배영웅 실장이 통화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

자연스럽게 길거리의 다양한 소리가 방 안으로 퍼졌다.

지하철 소리부터 발걸음, 수다 소리, 심지어 어딘가에서 공연하는 버스킹 뮤지션의 소리까지.

다양한 소리가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중에서 내 귀를 잡아채는 소리가 있었다.

‘뭐야 저 말도 안 되는 베이스 연주는?’

얼핏 들으면 평범한 힙합 음악을 틀어놓았다.

하지만 그 곡과 함께 곁들여진 라이브 연주가 기가 막혔다.

실제 연주자의 라이브 베이스 연주였다.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그 어떤 악기보다 강렬한 힘을 내뿜고 있었다.

거기다, 랩 파트를 제멋대로 멜로디를 붙여서 노래로 바꿨는데, 이 노래도 기가 막혔다.

기가 막힌 그루브감이 곡 전체를 살렸다.

노래를 듣자마자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소닉 독 (Sonic Dog).

2010년대를 대표하는 천재 베이스 연주자였다.

‘세계 최고의 베이시스트가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다니! 너무 의외인데?’

창문을 열어 슬쩍 소닉 독을 응시했다.

역시나, 길거리 버스킹 연주자는 소닉 독이 맞았다.

소닉 독은 검소한 옷차림에 비니를 쓴 채로, 자기 음악에 취해 쉴 새 없이 베이스를 연주 중이었다.

주변 관객들의 반응을 살폈다.

의외로 반반이었다.

좋아서 휘파람을 부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나치게 화려한 연주가 거슬린다는 듯 찡그리는 표정도 있었다.

이를 보니 대충 짐작이 갔다.

너무 대중에게 어려운, 개성 강한 연주였다.

소닉 독의 강렬한 개성은 편안하게 듣기에는 독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밴드를 이끌며 최고의 솔로 베이시스트가 될 예정이다.

그리고 수많은 가수들과 협업하며, 명곡, 명반을 쏟아낸다.

소닉 독의 개성 강한 연주가 양념처럼 들어가 멋진 작품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밴드의 베이시스트가 결정된 것 같은데?’

* * *

다음 날 아침에도 다시 샌드위치 가게에서 죽치고 앉아 있었다.

“언제까지 기다리실 건가요?”

페페로니 소시지가 가득 담긴 샌드위치를 베어 물며 배영웅 매니저가 질문했다.

“…글쎄요? 첫 강의가 9시 전에 시작일 테니까 곧 오시지 않을까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아니, 여긴 뉴욕이니까 영어식으로 말하자면 ‘Speak of the devil’ (악마도 제 말하면 온다)인가?’

조민하 선배가 종종걸음으로 들어왔다.

야구모자에 뉴욕 야구팀 유니폼을 걸친, 캐주얼한 차림이었다.

나를 본 조민하가 얕은 한숨을 내뱉고는 내게 물었다.

“또 왔어요?”

“선배님 노래 중 재미있는 게 많더군요. 어제 샅샅이 뒤져 봤습니다.”

조민하 선배의 얼굴이 약간 상기됐다.

“그런 걸 뭐 하러요.”

“정말 창의적인 편곡이 많더라고요. 장르도 가리지 않고요. 좀 더 다양한 장르를 해보시면….”

“저 오늘은 과제가 있어서 바빠요. 그만 말해요. 모처럼 뉴욕까지 왔는데 여기서 저한테 시간 빼앗기지 말고 다른 사람이나 찾아보면 어때요? 택시!”

조민하는 샌드위치를 받자마자 택시를 타더니 쌩~ 하고 가버렸다.

“가 버렸네요.”

배영웅 매니저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게요.”

“너무 단호한데요. 설득이 어려울 거 같기도 하고요. 이제 3일밖에 안 남았는데요.”

“내가 도와줄 수 있다!”

뒤통수 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한국말을 하고는 있는데, 매우 어설픈 한국말이었다.

돌아보니, 외국 여성이 서 있었다.

‘흑인… 아니 흑인 백인 혼혈인가?’

피부는 하얀 편인데, 머리는 내츄럴 아프로였다.

인종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저한테 말했어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떠나가는 조민하의 택시를 가리켰다.

“제 이름은 메리예요 반가워요. 저 친구 내 룸메이트예요. 민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라면서요?”

메리가 내게 악수했다.

영어로 말하자 훨씬 자연스럽게 들렸다.

“아! 조민하 선배 룸메이트세요, 어쩐지… 근데 웬 룸메예요?”

“여기 렌트가 얼마인지 알아요? 혼자서는 절대 감당 못 해요. 민을 만나서 다행이었죠.”

“그렇군요… 근데 제게는 어쩐 일로…?”

메리가 팔짱을 낀 채로 내게 물었다.

“민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음악 다시 하자고 쫓아다닌다면서요?”

“아 네네….”

“내가 도와줄게요!”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네?”

“내가 봐도 민은 음악에 맞아요. 가라오케만 가면 노래를 얼마나 많이 부르는지! 민은 꿈을 숨기고 있어요. 그건 건강에 좋지 않아요. 민이 행복해지면 좋겠어요.”

“MBA 가면 안 행복해지나요?”

“MBA에 간 조민하로는 1페이지 시놉도 못 써요. 코러스, 프로듀서, 가수 조민하라면? 3편짜리 시리즈 영화 각본도 나오죠. 자기에게 맞는 길을 가는 게 좋다 생각해요.”

좋은 의도였다.

‘너무’ 좋은 의도였다.

“그게 전부… 인가요?”

“오 노! 당연히 조건이 있죠. 저 한글 배우는 법 좀 알려줘요.”

“한글이요?”

“타이조 왕건 원어로 이해하고 싶은데 너무 어려워요!”

…알고 보니 그녀는 한국 드라마의 중증 덕후였다.

한국어를 쓰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는 뜻이다.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 순간부터는 술술 이야기가 풀렸다.

“…그러니까, 민은 보통 오후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해요. 저녁에는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거나, 재즈바에 가서 음악을 듣거나 하죠. 가라오케 바도 가고.”

그녀 덕분에 조민하 선배의 모든 스케줄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그 모든 곳을 다 간다는 건 좀 스토커 같아서 지양하기로 했지만, 여튼 일정을 미리 안다는 건 큰 이점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질문했다.

“조민하 선배를 설득하려면 뭐가 제일 중요할 거 같나요?”

메리가 내 질문에 눈을 질끈 감더니 이렇게 슬쩍 말했다.

“…민은 음악에 상처를 크게 받았어요. 상처를 잊을 만큼의 좋은 소식이 있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좋은 소식… 알겠어요.”

“그리고, 절대로 민을 배신하지 마요. 이미 충분히 겪었어요.”

메리가 떠나는 걸 확인하고, 배영웅에게 슬쩍 중얼거렸다.

“‘음악에 상처를 받았다’라….”

배영웅은 무표정을 유지했다.

“그런 사람 많죠. 음악판이 꼭 깨끗하기만 한 곳은 아니니까요. 아니, 오히려 배신이 더 흔한 곳이라고 해야 적절하겠네요. 가수들, 작곡가, 편곡자… 모두 자기 이기적인 이득을 위해서라면 본성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도 처벌이 안 되나요?”

“그냥 철판 깔고 한 번 배신하는 거죠. 한 곡 뜨면 바로 돈방석이니까요….”

한 번만 성공하면 되니까, 그 한 번의 성공을 위해 미련 없이 배신하는 사람이 끝도 없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조민하는 직격으로 그런 사기에 당했다.

어떻게 그녀에게 다시금 용기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고민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내가 할 일의 전부는 아니었다.

조민하에 대해 고민하는 틈틈이, 내 루틴도 해내야 했다.

노래 연습부터 운동, 발성, 곡 카피까지,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하루의 절반이 후딱 갔다.

오전 운동을 마칠 때 즈음이었을까. 재호의 전화가 왔다.

“뭐야? 지금 한국은 밤늦은 시간일 텐데!”

-야 지금 한가하게 뉴욕에서 놀 때가 아니야 권노을! 큰일 났어!

‘아, 또 뭔 일이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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