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81화 (181/280)

제181화

잇츠쇼타임의 메인보컬이었던, 한때 라이벌이지만 이제는 친구인 앤젤의 신보가 곧 나왔다.

바로 다음 주에 발매 예정이었다.

‘하필…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만 힘내면 될 때인데.’

동 기획사의 앨범이 나오면 아무래도 내 앨범에 대한 기획사의 케어가 약해진다.

앨범 100만 장 프로젝트에 빨간불이 켜졌다.

* * *

곧 앨범 활동으로 바빠질 테니 식사나 한번 하자고 앤젤에게 연락했다.

약속 장소는 언제나처럼 TYB 엔터 1층 카페였다.

시간에 맞춰 앤젤이 서서히 걸어 들어왔다.

예전에는 재수 없어 보이던 선글라스가, 왠지 이제는 낯가리는 소심이의 방패로 보였다.

화려한 꽃무늬 정장 또한 부족한 용기를 감추려는 술책으로 생각됐다.

‘나 만만하게 보지 마!’라는 외침이 내게는 들렸다.

앤젤에게 내가 먼저 인사했다.

“왔냐?”

자리에 앉자마자 앤젤이 툴툴댔다.

“너는 무슨 이상한 과자를 다 먹구 있어. 다이어트 안 하냐?”

“이거 돼지 껍데기 튀김이야.”

앤젤이 얼굴을 찌푸렸다.

“돼지? 튀김? 살 엄청 찔 거 같은데?”

“다이어트식이야. 먹어볼래?”

“됐그던? 나는 밥 먹을 거야. 여기 메뉴 주세요!”

메뉴를 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가 나왔다.

나는 포치드 에그, 앤젤은 두부 샐러드를 시켰다.

내가 먼저 운을 뗐다.

“너 EP 나온다며?”

“어어! 드디어 나온다 야. 제대로 노래란 걸 해본 게 얼마 만인지….”

“반년 전에는 제대로 된 거 냈잖아.”

“아 쫌! 그사이 니는 신곡에, 정규 솔로까지 냈잖아.”

앤젤의 목소리에 억울함이 묻어났다.

“그러게. 하필 내 앨범 100만 달성까지 쬐끔 남았는데. 조금만 있다 내지 그랬어?”

“야! 뭔 소리야. 니 디럭스 앨범까지 봐줘야 돼? 니 솔로 때문에 한 달을 기다렸어.”

“알아 알아.”

앤젤의 입장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반드시 지금 EP 앨범이라도 발표해야 했다.

앤젤이 출연 중인 ‘킹 오브 싱어’에서 5회 연속 우승을 하면 명예 졸업 제도에 따라 정체를 드러내고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

앤젤은 지금 명예 우승을 앞두고 있었다.

그렇다면 앤젤에 대한 관심도가 최상인 명예 졸업을 하는 순간에 앨범을 발표해야 했다.

심지어 앤젤은 회사를 옮기는 과정 등을 거치며 거의 1분기 동안 활동이 없었다.

그에게는 앨범 활동이 간절했다.

그에 반해, 내 솔로 앨범이 나온 지도 근 한 달이 지났다.

정규 앨범도 아니고, 디럭스 버전 앨범 활동 때문에 활동을 미뤄 달라는 것은 내가 봐도 무리한 요구였다.

차라리 그의 행운을 빌어 주기로 했다.

‘피하지 못하면 즐겨라, 뭐 대충 그런 느낌이랄까?’

“그래 어차피 이제 나 음악 방송 순위도 내려가고 있고. 차라리 니가 대신 먹어라.”

“짜식.”

응원이 효과가 있었는지 앤젤의 표정이 금방 밝아졌다.

문제는 내 앨범이었다.

목표 판매량인 100만 장에 아직 미치지 못했다.

이제 8만 장 정도만 더 판매하면 됐지만, 그 약간이 제일 채우기 어려웠다.

내 앨범을 살 만한 사람은 이미 앨범 구매를 마친 상태.

앞으로 1명 1명은 새로운 방식으로 모아야 했다.

‘방법이 없을까….’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배영웅 실장이었다.

“아! 실장님.”

“식사 다하셨나요? 잠시 미팅 가능할까요?”

“네에… 알겠습니다. 야 앤젤, 힘내라!”

“너부터 힘내.”

* * *

배 실장을 따라 회의실로 들어왔다.

도착하자마자 배영웅 매니저가 다음 주 스케줄을 알려주었다.

“월드컵이 끝나서 예능 녹화가 재개됐어요.”

“그렇지만 제 솔로 앨범은 거의 활동이 종료된 상태….”

디럭스 앨범 타이틀곡 ‘플라이 미 투 유어 홈’ 활동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솔로 가수가 나올 수 있는 공간은 매체를 가리지 않고 거의 다 나온 상태였다.

더 이상 활동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배영웅 매니저의 생각은 달랐다.

“아닙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죠.”

“아직 더 나올 게 있나요?”

“천채왕 선생님 아이디어인데요. 앤젤 아티스트님하고 둘이 같이 예능에 출연해보면 어떨까 하시더라고요.”

“아…!”

과연 천채왕다운 기가 막힌 수였다.

앤젤은 노래가 출중하지만, 예능은 나보다도 못했다.

노래 잘하는 솔로 가수가 나올 수 있는 방송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예전 기획사에서는 잘생기고 예능 잘하는 친구를 앤젤 옆에 붙여 ‘잇츠쇼타임’이라는 팀을 만들었다.

앤젤은 멋있게 노래만 부르면 다른 멤버들이 방송 분량을 책임졌다.

그러다가 딱 한 번, 혼자 나온 인기 예능에서는 큰 위기를 맞이했다.

내가 도와줘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그야말로 재앙이 됐을 터였다.

그만큼 앤젤은 예능감이라고는 ‘제로’였다.

나와 앤젤, 둘이 함께 방송에 출연하면 앤젤의 단점이 크게 상쇄된다.

우선 둘이서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예능 분량이 충분히 나왔다.

둘이서 한 곡씩 노래를 부른다거나, 듀엣곡을 준비해가면 혼자 갈 때보다 많은 분량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나한테까지 득이 될지는 의문인데?’

떨떠름한 내 표정을 읽은 듯, 배영웅 매니저가 피식 웃으며 말을 걸었다.

“노을 아티스트님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네?”

“어디까지나 이번 방송은 권노을 아티스트님의 솔로 1집 100만 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이것만은 믿어 주세요. 저는 다른 팀 좋으라고 소속 가수 시간 내어주지 않습니다.”

배영웅의 눈이 오랜만에 번득였다.

초승달 같은 눈웃음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 어떤 번쩍임이 존재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매니저를 믿고 달려보기로 했다.

‘그게 그의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여지까지 그 일을 너무도 잘 해줬으니까.’

일단은 스태프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 * *

MBS 방송국 ‘렛츠 실버벨’ 녹화 세트.

오랜만에 앤젤과 함께 방송국에 나왔다.

예능 세트를 보니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아마 이게 당분간 예능 마지막이겠지?’

곧 비원더는 ‘글로벌 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여한다.

반년 넘게 진행하는 강행군이 될 예정이다.

만약 해외 본선까지 진출한다면, 반년 동안 한국 방송에 나올 시간은 없을 터였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달그닥 달그닥.”

이상한 소리가 내 주의를 빼앗았다.

옆으로 고개를 슬쩍 돌렸다.

소리의 정체는 앤젤이었다.

오들오들 떨면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다.

얼마나 크게 동요하고 있는지, 의자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내게 들릴 정도였다.

게다가 입으로는 뭔가를 웅얼대고 있었다.

입으로 내는 소리와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섞여서 한층 크게 거슬렸다.

내가 슬쩍 앤젤에게 말을 걸었다.

“뭘 중얼대? 주문 외워?”

“시끄러워!”

“…금강경이라도 외냐? 힘들 때 불경을 외면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있던데.”

“나 교회 다니거던? 불교 아니야.”

“…그럼 사도신경 외우나?”

“아 신경 끄라고 쪼옴.”

다시 앤젤이 뭐라고 쫑알쫑알 대기 시작했다.

“네파르…… 부타…… 키스타….”

전혀 해독이 불가능한 외계어였다. 나는 관심을 거두고, 다시 거울을 쳐다봤다.

분장에 가깝게 변신하는 앤젤과는 달리, 내 메이크업은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았다.

살짝 분칠하고 머리 다듬는 정도면 끝이었다.

메이크업을 금방 끝낸 김에, 출연하는 방송에 대해 생각해봤다.

프로그램 자체는 평이한 퀴즈쇼였다. 다만 다른 일이 중요했다.

초반에 앤젤과 함께 서로의 신곡을 부를 예정이었다.

이 두 곡을 TV에서 부르기 위해 방송에 출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잘… 불러야 할 텐데!’

* * *

‘렛츠 실버벨’의 MC는 문루아와 아시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프리 아나운서 이유미였다.

“자자 시청자 여러분 모두 모두 TV 앞으로 컴컴커어어엄~! 렛츠 실버베에에엘!”

진행 실력이 그사이 늘었다.

문루아 콘서트 장외 아나운서로 외국인 관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무대를 경험한 덕분에 훨씬 성장한 듯했다.

하지만, 그보다 성장한 녀석은 앤젤이었다.

엉뚱하게도 퀴즈 실력이 늘었다.

“문제. 케냐의 수도는?”

“나이로비!”

“문제. 몽골의 수도는.”

“울란바토르!”

“믿을 수 없네요. 정답! 앤젤 씨가 400점으로 선두를 달립니다.”

이제야 앤젤이 뭘 쫑알대고 있었는지 감이 왔다.

‘…중얼대고 있는 게 퀴즈 예상문제였냐.’

앤젤은 백발백중, 계속해서 정답을 맞췄다.

“정답! 정답! 정답!”

계속되는 앤젤의 득점을 구경하다 보니 나는 순식간에 예선 탈락행이었다.

사실 상관없었다.

나는 노래를 하러 왔지, 퀴즈왕이 되려 온 건 아니었다.

탈락이 확정되자 이유미가 내게 마이크를 건넸다.

“아~ 노을 씨! 안타깝네요~. 탈락입니다.”

“앤젤이 제 몫까지 같이 해줄 거라 믿습니다.”

나와 인터뷰를 한 김에 이유미가 자연스럽게 대본에 있던 질문을 꺼냈다.

“아, 근데 정말 의외네요. 앤젤 씨는 굳이 말하자면 비원더의 라이벌인 ‘잇츠쇼타임’ 출신이잖애? 솔직히 얘기하자고요. 둘이 사이 안 좋을 거 같거든요.”

“네네 그랬던 적도 있었죠.”

“이제는 사이좋은 거죠?”

“그럼요. TYB도 제가 소개해줬습니다.”

“오 그런 인연이… 둘이 어떻게 친해졌어요?”

“일본 활동이 계기가 된 거 같아요. 그지?”

내가 슬쩍 앤젤에 어깨를 쳤다.

앤젤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럽게 내게서 마이크를 받아 말을 이었다.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한국 가수들끼리 뭉치게 됐어요. 거긴 한식당도 별로 없거던요. 자꾸 마주치다 보니… 디즈니랜드도 같이 가고… 뭐 그렇게 됐어요.”

이유미가 까르르 웃었다.

“남자들끼리 디즈니랜드를 같이 갔어요? 대단한 우정인데.”

“맞아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저희 둘이 특별 무대를 같이 준비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준비했던 노래를 부를 차례가 되었다.

이미 대본에 있던 내용이지만, 이를 적당한 타이밍에 끄집어낸 건 이유미였다.

이유미에게 ‘따봉’ 표시를 하며 고마움을 슬쩍 표했다.

이제 노래를 부를 차례였다.

우선 앤젤의 EP 타이틀곡, ‘두 번째 고백’을 함께 불렀다.

이 무대에서 나는 코러스에 충실했다.

원래 이전 생에서 직업이 코러스다 보니, 이것도 별로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오랜만에 코러스를 해보니 노래 공부가 많이 됐다.

어떻게 상대방의 멜로디를 더 돋보이게 만들어 줄지 고민하는 코러스의 사고방식은 가수의 입장과는 전혀 달랐다.

평소 안 쓰는 노래 근육을 쓰는 느낌이었다.

이건 나중에 노래할 때 분명히 도움이 될 귀중한 경험이었다.

두 번째 곡은 내 활동 곡 ‘플라이 미 투 유어 홈’이었다.

앤젤이 릴리오브더밸리 파트를 불렀다.

워낙 뛰어난 테크니션이라, 여자키 노래를 한 옥타브 높여서 불러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앤젤도 노래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

하지만 나도 질 수 없었다.

이 곡의 필살기인 3단 변속 고음 파트가 다가왔다.

음을 길게 끌다가, 한 음을 더 올리면서 전조하고, 마지막에는 화려한 애드립으로 마무리하는 부분이었다.

이번에는 라이브 버전으로, 마지막 애드립을 더욱 화려하게 바꿨다.

원곡은 뚝 떨어지는 애드립이라면, 이번에는 올라올 듯 내려올 듯 요동치다 내려오도록 멜로디 라인을 바꿨다.

*

오오오오 오오오오~

노래를 함께 부르던 앤젤도 놀라 눈이 ‘번쩍’ 떠졌다.

‘이 자식이?’라는 표정이었다.

앤젤도 지지 않고 화려한 화음 애드립으로 받아쳤다.

화합보다는 전쟁 같은 듀엣이었다.

정식 팀이 아닌 특별 무대니, 가끔은 이런 대결 같은 무대도 괜찮아 보였다.

“와! 대박! 이런 무대는 처음이었어요.”

이유미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그녀뿐 아니라 제작진까지 짝짝짝, 물개박수로 우리 무대에 화답했다.

휘파람 소리까지 들렸다.

‘유독 반응이 뜨거운데?’

노래를 부른 후 출연자들과 제작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다들 앤젤이 현재 ‘킹 오브 싱어’를 씹어 먹고 있는 화제의 인물 ‘갈가마귀’임을 눈치챈 듯했다.

사실 직접 노래를 들으면 그가 갈가마귀라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 무대는 앤젤이 화제성을 다 잡아먹겠는데?’

* * *

내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앤젤, 폭발적인 다크 감성… ‘갈가마귀’ 아니야?]

[앤젤 뇌마저 섹시한 남자… ‘렛츠 실버벨’ 장원 급제!]

[앤젤의 신곡 ‘두 번째 신곡’은 어떤 곡?]

방송이 나온 다음 날, 포털 뉴스는 모두 앤젤 관련 내용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노래는 내가 사실 더 잘했다.

하지만 앤젤을 화제성으로 이기기는 역부족이었다.

두 달 넘게 숨겨온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으니까.

게다가, 앤젤은 이후 퀴즈쇼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분량을 낙낙하게 가져가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이번 출연은 앤젤에게 더 득이었겠네… 이번에는 배 실장님 말이 틀린 건가?’

살짝 한숨을 쉬며 앨범 판매량을 체크했다.

“어? 뭐야 이거?”

내 예상을 웃도는 판매량이 나왔다.

무려 5만 장이 단숨에 팔렸다.

화제가 된 건 앤젤인데, 내 앨범이 갑자기 미친 듯이 팔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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