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화
며칠 후, 양재동 녹음실에 다시 출근했다.
이번에는 비원더 멤버가 아닌 새로운 사람들을 초대했다.
키미 프로듀서와 노자경이었다.
키미 프로듀서는 단 며칠 만에 곡을 수정해 왔다.
유니버스 스튜디오와 협의하에, 내 색깔에 맞게 2절을 재편곡했다.
원곡의 느낌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2절은 ‘비원더’의 알앤비 느낌을 살렸다.
프로듀서의 자격으로, 키미 프로듀서가 내 녹음 디렉을 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노자경도 필요했다.
노자경이 내게 되물었다.
“노을 씨! 나는 왜 오라 한 거야? 난 춤추는 놈이지 녹음은 잘 몰러~.”
“그래서 와달라고 한 거예요.”
그는 내 ‘댄스 판독기’였다.
댄스 음악은 내가 평소 부르는 알앤비, 발라드와 달랐다.
일단 춤을 추고 싶어야 했다.
춤 전문가인 안무가 노자경이라면 댄스에 대한 촉을 갖고 있었다.
그가 내 노래를 듣고 춤을 추고 싶어지는지에 따라 곡을 수정하면 녹음이 한결 수월해질 터였다.
내가 키미에게 노자경을 소개했다.
“선생님. 이분은 노자경 씨라고, 안무가입니다. 비원더 곡도 안무해주신 적 있습니다.”
“들어봤어요. 춤 좋던데요? 부러워요. 저도 댄스 가수 출신이면 댄스곡 쓰는데 더 수월했을 텐데. 잘 부탁해요.”
“아이구~ 대작곡가님께서! 과찬이십니다.”
내가 키미에게 노자경을 데려온 이유를 설명했다.
키미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노을 군은 발라드는 타짜지만 댄스곡 녹음은 초보니까, 도움이 필요할 만하죠.”
바로 녹음에 들어갔다.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 막힌 비트였다.
앓는 사람도 병석에서 일어나 춤을 출 것만 같은 강렬한 베이스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노래 부르는 내내, 나는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았다.
노래를 듣자마자, 이 곡의 주인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프로듀서 엑스 체인.
혜성처럼 음악계에 등장해 강렬한 EDM으로 세계 클럽계를 제패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의… 매우 나쁜 버릇이었다.
그는 자기 지위를 이용해서 신인 가수들을 착취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데뷔를 시켜주지 않겠다는 협박으로 신인 가수들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
그러다 결국 꼬리가 밟혀, 2009년 즈음에는 여러 범죄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지금부터 3년 뒤의 일이었다.
지금, 2006년에 그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디제이이자 프로듀서였다.
인간쓰레기란 말이다.
갑자기 녹음실 바깥에서 내 노래를 모니터링하던 키미가 노래를 멈췄다.
마이크를 통해 그녀의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 있어요. 노을 군?
“네? 아네. 아닙니다.”
-오늘 집중력이 하나도 없어요.
“아 예… 집중해서 해보겠습니다.”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는 여전히 없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잖아요? 팬들은 다 알아요. 온 마음을 다해서 불러줘요. 평소처럼.
“알겠습니다.”
엑스 체인을 생각하면 온 마음을 다할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몇 번 해도 내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자 우선 키미 프로듀서가 나를 나오라 말했다.
“잠깐 쉬어요. 좀 있다 다시 하죠.”
옆에 소파에서 잠자코 노래를 듣고 있던 노자경이 불쑥 말을 꺼냈다.
“노래 엄청 좋네! 유명한 프로듀서 곡인가 봐요?”
키미가 웃으며 말했다.
“댄스 음악이야말로 사운드 수준이 중요해요. 한국은 아직 멀었죠. 예전보단 낫지만.”
“너무 좋은데? 춤추고 싶어지는 기분이에요.”
노자경이 못 참겠다는 듯 일어나서 꿀렁꿀렁 몸을 움직였다.
일렁이는 움직임이 제법 노래 속의 베이스 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찜찜함을 감출 수 없었다.
뛰어난 재능이긴 한데, 악마의 재능이었다.
그것도 약자인 신인 가수들을 착취하는 악질 악마.
그에 비하면 내 주변의 작곡가들이 얼마나 실력도 있고, 거기다가 좋은 사람이라는 게 다시 느껴졌다.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주제를 키미 프로듀서로 돌렸다.
“이거 2절 고친 건 프로듀서님이죠?”
“네 제가 어제까지 며칠 밤새서 고쳤어요. 그러니까 잠 좀 자게 집중해서 녹음 잘해줘요.”
“원곡이 완성도가 너무 높아서, 고치기 되게 까다로웠을 거 같은데요?”
“힘들었지만, 하고 싶어서 한 거예요.”
“하고 싶어서요?”
“처음에 이 노래 듣고, 좀 분했어요. 왜 내 곡이랑 차이가 이리 큰 건지. 그래서 훔쳐보고 싶었죠.”
키미는 비원더와는 발라드를 썼지만, 원래 댄스 작곡가였다.
아이돌 기획사 TYB의 전속 작곡가니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 그녀에게, 엑스 체인의 곡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터였다.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사운드, 온몸을 그루브감으로 채우는 리듬감, 거기다가 남녀노소 누구나 흔들 수 있는 심플함까지 갖췄다.
2020년대에 회귀한 내가 보기에, 2020년대에도 세련된 음악이라 느낄 법한 곡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 곡을 연구도 할 겸, 곡을 뜯어봤다고 했다.
그 연구의 일환으로 자연스럽게 원곡을 ‘비원더’ 스타일로 바꾸기도 했다.
“…그리고 엑스 체인 스타일로도 곡 하나 만들어봤어요. 들려줘요?”
“네네. 듣고 싶습니다.”
노자경 또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키미가 쑥스러운 듯,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는 바로 노래를 틀었다.
뚜두두두뚜두두두뚜두뚜두~
반복되는 주술적인 신스 소리가 노래의 포문을 열었다.
엑스 체인과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었다.
거기다가, 심플한 드럼과 베이스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노래를 시작했다.
굉장히 강렬하면서도 심플한 느낌, 엑스 체인의 그것과 비슷했다.
노자경이 홀린 듯이 온몸을 비틀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야 이거 너무 좋은데? 야~! 이거! 와우!”
…솔직히 좀 과한 추임새였다.
애써 그를 무시하며 키미에게 물었다.
“진짜 비슷한데요?”
“그렇죠?”
“이건 표절은 아니죠?”
“코드 진행부터 멜로디까지 비슷한 건 하나도 없어요. 스타일만 모방했을 뿐이에요.”
“그럼 괜찮은 건가요?”
키미가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그건 아니죠. 구린 곡이긴 해요. 누가 봐도 남의 곡 느낌을 훔친 거니까. 발표하고 싶은 곡은 아니에요. 여기에 저만의 느낌을 더해야죠.”
“키미 님만의 느낌이라면 어떤 걸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아예 심플하게, 비틀스 노래 수준으로 심플한 파트를 붙여 보시면 어때요?”
“오….”
키미의 눈이 커졌다.
케이팝은 종횡무진 장르와 분위기가 바뀌는 변화무쌍함이 특징이었다.
지금 키미의 노래는, 팝 프로듀서의 곡을 흉내 내 팝처럼 심플했다.
단순한 강렬함은 있었다.
하지만 케이팝 가수 특유의 화려한 자극은 부족했다.
케이팝 곡처럼 서로 다른 장르, 이질적인 분위기를 접붙인다면 전혀 다른 느낌을 낼 수 있었다.
살짝 키미 프로듀서가 심플한 파트를 기존의 곡에다 붙여 보았다.
썩 잘 어울렸다.
곡의 변화도 케이팝 느낌이 나서, 팝가수 짝퉁 같지 않았다.
키미가 박수를 쳤다.
“좋은데요! 이건 내일 녹음실에서 마무리할게요. 자!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게 있죠?”
“예이 예이.”
일은 일이었다.
이제 녹음을 마무리할 차례였다.
설사 그 노래가 악마의 노래일지라도 말이었다.
* * *
사실 내가 제안한 듀엣곡 녹음이 더욱 고난이도였다.
‘너무 재즈를 쉽게 생각했어.’
재호가 스윙재즈 전문가와 함께 신나게 작, 편곡한 가이드 노래를 들어봤다.
아뿔싸 싶었다.
리듬감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막연하게 그루브 있게 부르면 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재즈의 리듬감은 내가 평소 부르던 팝, 알앤비와는 전혀 달랐다.
미묘하게 다른 그루브가 계속해서 나를 거슬리게 할 것 같았다.
재즈 느낌을 내기 위해 미친 듯이 리듬감 연습을 했다.
우선은, 재호가 직접 공수해 온 재즈 드러머가 연주한 내 노래 ‘인생은 아름다워’의 드럼 파트만 미친 듯이 들었다.
그리고 수많은 재즈 명곡을 들으며 나만의 리듬감을 깨치려 노력했다.
다른 장르를 도전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새삼 실감했다.
그렇게 연습실에서 필사적으로 연습을 하던 차에, 누군가 연습실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천채왕이 돼지 껍데기 과자를 들고 서 있었다.
“선생님!”
“이거 니들 좋아한다며? 나는 요리는 못 하고. 사 왔다.”
돼지 껍데기 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와사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맛보다도 이 식감, 이 청각이 너무 좋았다.
소리만으로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거기다가 살도 안 찌니!’
천채왕이 내게 물었다.
“노을이 답지 않게 녹음 고생한다며 요즘?”
“네… 어렵네요. 재즈 리듬이 특히.”
“댄스곡은 어려울 거까진 없지 않았어?”
키미에게 녹음이 어려웠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물론 내가 회귀자여서 미래를 안 다는 부분만 뺐다.
“뭔가 찜찜해서요.”
“뭐가?”
“음악이 너무 신나고, 심플하고, 어둡고, 좋은데요. 뭔가 좀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관심법 같긴 하지만… 뭔가 곡을 쓴 사람이 좋은 사람은 아닌 거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나쁘다? 예를 들면 마약이나 폭행 이런 거?”
“더한 것도 할 거 같은 느낌이에요. 협박이라던가…….”
상납이라던가, 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천채왕이 쓴웃음을 지었다.
“좋은 예술가가 꼭 좋은 사람은 아니지. 히틀러의 다큐 영화가 얼마가 잘 만들어졌는지 알아? 하지만 좋은 사람들이라고 할 순 없잖아.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한 거야.”
“그런 사람들과 타협을 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오신 거군요.”
“내가 완전히 무죄라고 할 수는 없잖아? 나라도 좀 더 올라가서, 좀 나은 윗사람이 되자. 그걸 목표로 해왔어. 뭐 이거도 다 핑계지.”
과정이냐 결과냐, 그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결국 나쁜 과정이 반복되면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법이다.
“만약에. 그런 짓을 계속하다 걸리면 결국 꼬리가 잡히지 않을까요?”
“증거 있어? 그냥 감으로 하는 말인 거지?”
“예를 들어 본 겁니다.”
천채왕이 보온병에서 자신이 엄선한 물을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건강에 좋을 만큼 여유를 가지고 서서히 수분을 섭취했다.
꿀꺽하는 소리가 났다.
물을 마시면서 건강도 챙기고, 생각할 시간도 벌었다.
다 마신 후 그가 입을 열었다.
“글쎄? 결국, 문제는 되겠지.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으니까. 나 때만 해도 훨씬 나쁜 놈들 투성이였어.”
“그렇게 되면…….”
“주동자는 물론, 피해자까지 한번 화제가 된 다음에 잊혀지게 되겠지.”
“제가 참여한 이 노래도. 그렇게 되겠군요? 프로듀서뿐 아니라 가수, 그리고 제가 피처링했던 곡까지도. 없던 것처럼 잊혀지게 되겠네요.”
천채왕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네 직감만 가지고 어떻게 할 수는 없어.”
“당연히 직감만은 아닙니다.”
천채왕의 눈빛이 순간 번득였다.
“뭐?”
“여기, 고소를 당해서 입을 다물었지만 몇몇 신인 가수들이 그가 자신을 협박했다고 말했던 흔적이 있어요.”
“리스크네.”
“맞습니다.”
“리스크가 뭔지 알아 노을아?”
“모르겠는데요.”
“사업가가 제일 싫어하는 거야. 이게 있으면 이야기가 다르지. 내가 유니버스 스튜디오랑 이야기해볼게. 엑스 체인이 아무리 잘 나가봤자 유니버스 스튜디오에는 장기 말일 뿐이야.”
“이걸 알면서 왜 곡을 계속 맡길까요?”
“못 봤을 수도 있지. 아니면 알아도 용인했거나. 하지만 나랑 엮이면 그래서는 안 되지.”
천채왕은 역시나 무서운 사람이었다.
순식간에 무언가를 메모하더니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다 그가 이마를 탁! 소리 나게 쳤다.
“아차!”
“왜 그러시죠?”
“만약에 니 직감이 사실이 됐다 쳐. 그럼 엑스체인 곡은 무효가 될 거야. 그럼 애써 잡은 피처링 기회가 날라가잖아? 그건 또 우리한테 안 좋은 일인데?”
피처링 기회를 살리려면 대안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대안은,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엑스체인의 곡을 대신할 곡이 있어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