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5화
내 다음 마지막 리허설 차례는 바질리스크였다.
김종윤이 긴장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딱 표정을 보니 어떤 타입인지 알 것 같았다.
자기 주관보다는, 남의 반응을 신경 쓰는 타입이었다.
대기실에 돌아가지 않고, 슬쩍 리허설을 구경했다.
미도리도 함께였다.
“바질리스크에 관심 있어요?”
“예전에는요.”
“지금은 관심이 없어진 건가요?”
“뻔해졌죠. 들어보세요.”
바질리스크 연주가 시작됐다.
첫 곡은, 이번 월드컵 공식 응원가 ‘위 어 위너’였다.
은근히 나쁘지 않았다.
“뭐 좀 상투적이긴 한데, 일반적인 노래 아닐까요?”
“아니죠 노으루 군. 더 들어봐요.”
그다음은 바질리스크의 유명 곡 ‘Always Rainy’였다.
나도 제법 들어본 록 발라드였다.
확실히… 뻔하긴 했다.
전형적인 대형 록 발라드였다.
미도리가 고개를 저었다.
“아티스트의 세계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이건 예술이 아니야. 공산품에 가까워요. 그것도 매우 못 만든.”
“소위… 쌍팔년도 발라드라고 하는 감각이긴 하네요.”
“쌍팔? 그게 뭐예요 노으루 군?”
‘아차. 미도리는 일본인이지.’
“약간 엔카? 같달까요! 좀 올드하네요.”
“맞죠 맞죠! 인디 시절 곡들은 참 좋았다구요.”
“인디 시절 곡을 어떻게 알아요?”
“바질리스크 기타리스트랑 좀 아는 사이예요. 일본에서도 몇 번 공연 했었어요. 그때는 팝펑크, 가라지를 제대로 하던 팀이었어요. 연주도 신선했는데.”
기획사에 들어간 이후, 바질리스크는 전형적인 록발라드 밴드가 되어 버렸다고 했다.
앵콜 신곡은 나름 빠른 업템포 곡이었다.
하지만 왠지 신나지 않았다.
이왕 달리는 곡인데, 너무 팝적이라고 할까?
미도리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도 안 좋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색하네요.”
“그렇죠!”
밴드도 밴드지만 보컬 김종윤이 정말 문제였다.
달려야 하는데 발라드 감성이 자꾸 흘러나왔다.
끝 음에서 ‘흐어어어~’하는 소몰이 창법 비스무리한 호흡이 느껴졌다.
그 호흡이 노래의 흥겨움을 모두 망쳤다.
비트만 빠를 뿐, 전혀 흥은 나지 않는 노래였다.
바질리스크 공연이 별로여서 쌤통인 게 아니라, 거리 응원 콘서트 전체가 망할까 봐 걱정이 될 정도의 공연이었다.
그때였다.
주최 측 연출자가 불쑥 내게 와 손을 잡았다.
“노을 님! 안녕하세요. 야~ 반갑습니다. 너무 고마워요! 급하게 섭외했는데 와줘서.”
“아, 아닙니다.”
“게스트도 빵빵하게 섭외해주고. 눈물 나게 고마워요. 지이인짜!”
“아 네 감사합니다. 저 그거 말인데요. 이왕 게스트도 섭외했으니 하나 더 하면 어떨까 싶은데….”
이번 거리 응원 콘서트를 살리기 위한 비책이었다.
“하나 더요?”
* * *
이윽고 해가 지고, 한강 공원에서 거리 응원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관객들이 모여 한강 공원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성원도 열광적이었다.
이미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무엇이든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기실에서 모니터로 지켜보는데도 관객 반응의 음압에 압도되었다.
재호가 내게 슬쩍 말했다.
“‘글로벌 비전’ 미국 예선 때 수준이지?”
“그때보다 더한 거 같기도 한데.”
“재미있겠네 그럼.”
부담스럽지만 재미있는 일이기도 했다.
가수 중 몇 명이나 월드컵 거리 응원 앞에서 노래를 해보겠는가.
스태프의 소리가 들렸다.
“권노을 씨! 다음 무대입니다. 미리 스탠바이 해주세요.”
재호가 시계를 쳐다봤다.
“음? 원래 일정보다 10분 빠르네? 이런 행사는 시간 잘 지키는데 의외인데?”
“그러게?”
싱긋 웃고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아자! 다들 화이팅 하죠!”
관객과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도록 기합을 넣고 바깥으로 나갔다.
* * *
무대에 들어서자마자 엄청난 반응이 왔다.
걸어가는 동안에도 발걸음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열광적인 관객들이었다.
딱히 내가 좋아서라기보다, 분위기가 엄청나게 달구어져 있었다.
그 분위기에 찬물만 끼얹지 않으면 됐다.
그게 오늘 내 임무였다.
“안녕하세요.”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함성소리였다.
기본적으로 발라드 가수였던 내게,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신나고’ 싶어서 준비된 관객들이랄까?
기본적으로 감정에 젖고 싶어서 온 ‘비원더’의 관객들과는 아예 다른 종류의 관객들이었다.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런 이들을 위해 오늘 무대는 다르게 준비했으니 말이었다.
“첫 곡! ‘빛을 찾아서’ 들려 드리겠습니다. 박영환 선수! 화이팅!”
“우와아아아아아!”
최근에 국가대표선수 박영환 덕에 유명해진 곡이니만큼, 관객들이 모두 익숙한 노래였다.
재호가 신디사이저로 화려하게 포문을 열었다.
‘리허설에서는 일부러 힘을 좀 뺐지.’
거리 응원 콘서트는 너무 사람이 많았다.
리허설도 당연히 관객들이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연주는 같게 했지만 사운드는 ‘체크’만 했다.
본 게임에서 진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도록.
“원 투 쓰리. 뛰어!!!”
관객들이 미친 듯이 헤드뱅잉을 하며 점프를 시작했다.
원래는 이런 무대매너는 잘 안 하지만,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법이다.
관객을 미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달리는 관객과 호흡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
하루 이틀
허무에 굴복하는 날들
진실은 어차피 없다고
남처럼 살라고
그럼 편하다고
살짝 울컥했다.
관객들이 내 노래를 따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떼창 소리가 너무 커서 노래를 부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특히 후렴 부분에서 더했다.
*
빛은 있어
이 세상 어딘가에
너무 관객 소리가 커서 어쩔 수 없이 마이크를 관객에게 가져다 댔다.
족히 5m는 떨어져 있는 관객들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
내가 원하잖아
나를 비출 거야
후렴이 마무리될 때까지도, 관객의 노래는 계속됐다.
내 노래가 잘 안 들릴 지경이었다.
“아! 저 노래 좀 하면 안 돼요?”
장난스럽게 관객을 타박했다.
관객들은 ‘와하하’ 웃으면서도 떼창을 멈출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관객이 절대 따라 부를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다.
클라이맥스의 3단 고음 파트였다.
*
난 찾을 거야
멈추지 않아
브릿지 파트에 오자 관객들이 숨을 죽이고 나를 쳐다봤다.
‘간다…! 간다…! 간다아…!’라고 외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관객들이 원하는 고음을 보여주면 됐다.
*
기다려줘~ 어어어어어어~
4마디의 고음에 애드립까지, 앨범을 튼 듯하게 똑같이 불렀다.
사실 조금 더 높게 부를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CD’와 똑같이 불렀다.
관객들에게 ‘빛을 찾아서’를 각인시킬 좋은 기회였으니까.
이왕이면 원래 버전으로 불러 주고 싶었다.
내 정확한 고음을 듣고 관객들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와 대박!”
“노래 너무 잘해. 립싱크 아냐?”
“사랑해요 권노을!!!”
“숨을 쉬긴 하는 거야?”
후렴을 달리면서 노래를 마무리했다.
이미 뜨거워진 관객들은 내 두 번째 곡 ‘음식남녀’에도 화끈하게 반응했다.
비원더의 노래 중 그나마 신나는 노래였다.
재호, 환희 파트를 같이 부르느라 고생은 좀 했지만, 관객 반응이 좋으니 노래 부를 맛이 절로 났다.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약속이나 한 듯, 관객이 앵콜을 외쳤다.
사실 두 곡을 부르고 한 곡 앵콜을 하는 것은 모든 가수들의 약속이었다.
다만 그 곡이 ‘무엇이냐’는 관객의 기대를 전혀 배신할 터였다.
나가는 척 짐을 싸다 슬쩍 무대로 돌아왔다.
마이크를 붙잡고 말했다.
“애국가 들려 드리겠습니다.”
“애국가?”
관객들이 의아하다는 듯 웅성거렸다.
짐짓 진지하게 애국가를 시작했다.
잔잔한 재호의 연주 하나만 가지고 노래를 시작했다.
잔잔하게 1절을 불렀다.
그러다 후렴으로 가는 순간, 박찬용의 거친 드럼 솔로와 함께 노래가 팝펑크로 바뀌었다.
미칠 듯 뛰는 드럼, 강렬하면서 심플한 기타 리프, 거기에 쏟아지는 듯한 청량한 멜로디 라인까지.
‘바질리스크’의 사운드로 재편곡한 애국가였다.
모두 아는 노래를 신선하게 편곡하니, 관객들마저 흥이 났다.
‘빛을 찾아서’ 때보다 큰 떼창이 한강을 쩌렁쩌렁 울렸다.
게다가 슬슬 노래가 지루해지는 3절쯤에는, 또 하나의 필살기가 등장했다.
게스트였다.
“여러분! 보컬 레전드! 보컬의 전설! 오~~ 창~~~ 선~~~ 선배 소개합니다.”
‘끼야아~~~’하는 소리가 났다.
오창선 선배가 무대 바닥에서 ‘폴짝’ 뛰어오르며 등장했다.
마치 마술 같았다.
그는 신나게 무대를 달리며 애국가를 열창했다.
*
무우궁화 사암천리 화! 려! 강! 산!
온 관객이 하나 되어 달렸다.
그렇게 신나게 전체를 한 바퀴 돈 뒤에야, 우리 공연은 막을 내렸다.
“감사합니다! 대! 한! 민! 국!”
“우오오오오~~~”
우리가 내려가고, 김종윤과 ‘바질리스크’가 들어왔다.
김종윤이 깜짝 놀랐다.
관객들이 마치 공연이 다 끝난 듯, 자리에 앉아서 휴식 중이기 때문이었다.
조급하게 김종윤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마지막 무대! 바질리스크 남았습니다. 관객 여러분.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공허한 메아리가 쳐졌다.
우리가 너무 무대를 박살 낸 탓이었다.
* * *
무대가 끝나고, 일부러 대기실에 들어가지 않고 무대 뒤에서 대기했다.
모니터링 한 ‘바질리스크’ 무대는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
일단 두 번째 곡 선곡이 문제였다.
애써 띄운 분위기에서 자기 히트곡이라고 발라드를 불러 버리니 김이 다 샜다.
다시 띄우겠답시고 앵콜곡을 불렀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관객들이 멀뚱멀뚱 바질리스크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내가 다 오싹해질 정도로 싸한 분위기였다.
김종윤은 싸한 분위기에 눈에 띄게 당황한 듯했다.
보다 못한 기타리스트가 연주 후, 관객에게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쓸쓸히 패잔병처럼 퇴장하는 바질리스크를 뒤로하고 사회자가 갑자기 다시 재등장했다.
“마지막 게스트입니다. 오~~ 창~~~ 선~~~!! 특별히 딱! 한 곡만 더 불러 주시기로 했습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앵콜! 앵콜! 앵콜!”
“뭐?”
김종윤의 얼굴이 썩었다.
분명 바질리스크가 무대 마지막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 마지막 피날레 무대를 선배 가수 오창선에게 빼앗긴 것이다.
게다가 할 말도 없었다.
마지막에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것은 본인들이었다.
오창선과 함께, 내 밴드 멤버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왔다.
이번 마지막 무대에서 내 역할은 ‘코러스’였다.
이전 생에서 내 원래 직업이었다.
오창선은 2002년, 한창 전성기일 때 월드컵 주제가를 한 곡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
그 노래를 미리 주최자에게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딱 한 곡만 더 부르면 안 되겠냐고 말이었다.
레전드 가수 오창선이, 2002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응원곡을 한다 하니 특별히 주최 측이 허락했다.
일정 전체를 10분 당겨서 오창선의 시간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오창선의 마지막 무대였다.
오창선의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한강 전체에 울려 퍼졌다.
“다 같이 달립니다!!! 바로 지금! 고고!”
* * *
미국 LA 소재의 세계 최대 음반사 ‘유니버스’ 본사 사무실.
유니버스의 총괄 제작자 제인은 남모를 취미가 있었다.
축구였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축구 선수였던 인연으로 미국인답지 않게 지금까지도 모든 월드컵 경기를 챙겨 봤다.
이번에는 본인이 응원하는 팀 프랑스와 아시아의 맹주 한국이 붙었다.
일 끝나고, 아몬드 간식을 먹으며 보는 축구가 제인의 유일한 소확행이었다.
축구가 시작되기 전, 가볍게 프랑스와 한국에서 어떻게 월드컵을 즐기는지 촬영한 스케치 영상이 나왔다.
특히 한국의 응원 영상이 놀라웠다.
거리를 에워싼 관중들이 콘서트를 즐기면서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의 집중을 빼앗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한 가수였다.
“대체… 저 가수 뭐야? 저 에너지는???? 이름이 쿠언… 노엘?”
엄청난 원석을 발견했다는 예감이 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