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74화 (174/280)

제174화

초동 15만, 물론 엄청난 기록이었다.

초등 10만 장을 넘은 앨범은 2004년 이후 꼭 3년 만이라고 배영웅 매니저가 말해 주었다.

원더풀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100만 장 판매는 아직 멀었다.

게다가 월드컵 열기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월드컵 본선 2차 경기 날.

나는 동생과 함께 TV에 앉아서 방송을 봤다.

같이 먹는 안주는 돼지껍데기 과자였다.

동생이 코멘트를 날렸다.

“솔직히 낫배드인데. 나라면 그냥 팝콘을 먹겠어. 어차피 야식 먹으면 망한 건데. 뭐하러 맛없는 걸 먹어?”

“맛이 왜 없어? 고긴데. 그것도 돼지고긴데.”

“아 몰라! 느끼해!”

그러면서 동생이 슬쩍 돼지껍데기 과자를 하나 입에 물었다.

와사삭, 하는 고소한 소리가 들렸다.

“느끼하다기엔 자꾸 너 집어먹는다?”

“아~ 시끄러! 그냥 있으니까 먹는 거지. 애초에 왜 자꾸 집에 기어들어 오는 거야? 오빠는 뭐 일정 없어? 앨범 나온 지 얼마 안 됐잖아?”

아픈 곳을 찔렀다.

“다 월드컵이라고 결방하고. 월드컵 특집 방송만 하니까. 나올 곳이 없지.”

“다른 가수들은 월드컵 거리 응원에서 공연하던데? 그런데 나가보지?”

“나 발라드 가순데. 거리 응원이 되겠냐? 초상집 만들 일 있어?”

“치~. 이번 곡은 뭐 그렇지도 않더만!”

또 뼈를 때렸다.

아주 온몸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여튼 동생 말대로 최근 활동은 위기였다.

본선 1차전을 패배했음에도 월드컵 열풍이 더 거세졌기 때문이었다.

나뿐 아니라 신곡이 나온 가수들 모두 아우성이었다.

15만 장 초동 판매로 분위기는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이상 가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역설적으로 모든 원더풀 회원들이 다 초동 때 앨범을 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돌처럼 버전을 여러 개해서 앨범을 파는 시대도 아니고. 뭐 방법이 없는데?’

TV에는 국가대표팀의 스트라이커, 박영환이 보였다.

기가 막힌 미남이었다.

성격도 시원시원한 쾌감, 거기다가 압도적인 득점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당연히, 월드컵 열기를 타고 그의 주가는 최고조였다.

내가 ‘노래만’ 부른 CM 송 CF의 주인공도 박영환일 정도였다.

그야말로 TV만 틀면 박영환이 나오는 정도, 박영환 열풍이었다.

박영환이 경기 전,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스텝을 밟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가벼워 보였다.

아무래도 월드컵 경기의 부담감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박영환을 보던 동생이 말했다.

“오빠? 저 사람 입 모양 좀 봐.”

“입 모양이 뭐?”

박영환은 음악에 취해 뭔가 흥얼거리고 있었다.

“저거… 오빠 노래 아니야?”

“응?”

화면에 집중해봤다.

‘나나난 나나나~ 기다려주어어어어~’라는 입 모양이었다.

“…맞네?”

분명 저건, 내 노래였다.

게다가, 마지막에 브릿지 고음 부분에 ‘워어어~’하는 부분은 워낙 고음이라서 그런가, 카메라에 살짝 노래가 들렸다.

형편없는 고음이지만, 분명히 내 노래를 따라 하고 있었다.

“오올~ 오빠. 이거 효과 좀 있겠는데?”

“에이 그럴 리가 있어?”

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날, 한국은 유럽의 강호를 맞아 1:0으로 벼랑 끝까지 몰렸다.

그러다 인저리 타임에 박영환의 기적 같은 동점 헤딩 골로 1:1 무승부를 만들었다.

당연히 온 동네가 뒤집어졌다.

“박영환! 박영환!”

“야 기적이네 기적이야.”

하지만 그때 나는 몰랐다.

기적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 * *

[원더골 박영환! 대한민국 기사회생! 이제 1승이다.]

[박영환이 즐겨듣는 노래는 무엇?]

[‘빛을 찾아서’…. 듣기만 해도 힘 나는 노래. 연습 때마다 듣죠.]

다음 날 포털 사이트에는 박영환 기사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박영환’이라는 말로 도배된 지면이었다.

박영환의 부모님부터 학교, 어린 시절까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공개됐다.

심지어 박영환이 연습시간마다 듣는 노래까지 화제가 되었다.

그 노래는 바로… 내 신곡 ‘빛을 찾아서’였다.

[연습 전에 항상 이 노래를 들어요. 원래 비원더를 좋아하는 ‘원더풀’이었는데. 이 노래는 비트가 빠르고 가사도 희망차서 힘이 나더라고요? 쉬는 시간에는 주로 발라드를 많이 듣습니다.]

언제 인터뷰를 땄는지, 때마침 박영환의 인터뷰 기사까지 작렬했다.

덕분에 내 노래는 다시 한번 크나큰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마치 로켓의 2단 분리처럼, 다시 한번 동력을 얻어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때마침 천채왕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야~ 노을아 축하해! 방송 봤어? 난리가 났던데.

사실,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박영환이 내 노래를 들은 것은 사실일 것으로 보였다.

그걸 조작할 순 없었다.

하지만 때마침 그때 기사가 나온 것은 이상했다.

인터뷰를 딴 기자를 확인해보니, 스포츠가 아닌 연예부 기자였다.

게다가 예전부터 TYB와 관계가 돈독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TYB 아이돌 컴백 단독을 몇 번이나 딴 자였다.

“선생님이… 하신 거죠? 인터뷰.”

통화기 속 천채왕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눈치 빠르네.

“약간 양심에 찔리네요. 대형기획사 빨인 거 같기도 하고.”

-아니 아니.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마. 내가 박영환 선수한테 이 곡 들으라고 쥐여준 것도 아닌데 뭐. 그냥 나는 우연히 박영환 선수가 원더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뿐이야. 그 정보를 기자분에게 전달한 것뿐이지. 기자분은 그 정보가 기사 가치가 있다 판단해서 기사화해준 거고.

천채왕의 말을 들으니, 기사는 미리 준비한 상태였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 이 기사를 올릴지는 몰랐다.

그런데 마침 내 노래가 대중의 화제가 되었다.

박영환이 전 국민이 보는 월드컵 경기에서 내 노래를 흥얼거렸던 덕분이었다.

그래서 기자가 잽싸게 기사를 터트렸다.

“그렇군요….”

-이 고리에는 그 어떤 편법적인 요소도 없어. 니가 잘한 거야.

“여튼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미리 준비해 주신 덕에 더 큰 열풍이 된 거 같아요.”

-다 네 덕이거든? 고마워하지 마. 내가 횡재한 거지. 박영환 선수가 다음에 자기 주제가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네? ‘글로벌 비전’ 끝나면 한 번 해보지 뭐.

“네넵.”

그러는 사이, 슬쩍 인터넷으로 앨범 판매량을 확인했다.

‘28만!’

그 사이, 15만 장이던 앨범 판매량이 급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분명 분위기를 타고 있었다.

* * *

[발매 후 7일 차.

총 43만 장 판매.

앨범 판매량 100만 장 달성까지 앞으로 남은 판매량: 57만]

축구 경기가 방송된 후 한층 탄력이 붙었다.

음악방송 1위도 무난하게 달성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월드컵 시즌이라 오창선 외에 유명 가수들이 모두 방송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무혈입성’인 셈이었다.

50만 장도 신화적인 기록이었지만 우리의 목표인 100만 장에는 아직 한참 모자랐다.

게다가 월드컵 본선 마지막 경기만을 앞둔 시기였다.

월드컵 열풍이 한층 뜨거워졌다.

사람들은 축구를 보느라, 신곡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

응원곡을 미리 준비했더라면… 이라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발라드 가수인 우리에게 그런 기회가 갈 리가 없었다.

그래도 기회가 왔다.

“…월드컵 거리 응원 무대요?”

배영웅 매니저가 통화로 반가운 소식을 알렸다.

본선 마지막 경기, 거리 응원 콘서트에 섭외가 됐다.

그것도, 마지막에서 두 번째, 가장 좋은 무대였다.

마지막 무대가 월드컵 주제가를 부른 팀인 걸 생각하면 가능한 가장 좋은 순서를 배정받은 셈이었다.

소식을 전달하는 배영웅 매니저의 목소리마저 들떠 있었다.

-진짜 하늘이 도왔어요. 박영환 선수가 노을 아티스트님 노래를 들어 준 덕입니다. 거리 응원하려면 그래도 3곡은 해야 하는데. 다른 곡들 중에 신나는 곡들 뽑아 보세요!

“알겠습니다.”

머릿속으로 괜찮은 곡을 머리를 굴려 봤다.

비원더 곡 중에 하나, 기존 히트곡 중에 하나, 그리고 ‘빛을 찾아서’를 부르면 될 듯했다.

편곡도 급하게 준비해야 했다.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너무도 좋은 기회였다.

놓칠 수 없었다.

* * *

그리고 드디어 월드컵 본선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 날.

비장한 마음으로 거리 응원장에 왔다.

한강 공원이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재호가 그 광경을 보며 감탄했다.

“야~. 진짜 많이들 오셨다. 대단하네. 우리 이정도 관중 앞에서 노래 못 하겠지?”

“혹시 모르지.”

오늘 재호는 내 라이브 세션에 키보디스트로 참전했다.

언제나처럼 드럼에는 박찬용, 기타에는 미도리의 진용이었다.

베이시스트 없는 단출한 구성이었지만 내 마음이 가장 편해지는 멤버였다.

박찬용이 내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 마지막 곡… 정말 괜찮겠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앵콜이 있다면요.”

앵콜곡 선곡이 워낙 도박적이었다.

박찬용 드러머 같은 베테랑도 걱정이 조금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때였다. 대기실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아… 그건 곤란한데요.”

배영웅 매니저가 난처하게 누군가를 막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문을 살짝 열고, 배영웅 매니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저… 이분들이 인사를 굳이 하겠다고 하셔서.”

고개를 돌려 바깥을 봤다.

그곳에는 록밴드 ‘바질리스크’의 보컬, 김종윤이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잠시 인사라도 좀 할까 했는데. 너무하시네. 좀 들어가도 될까요?”

“네… 뭐….”

김종윤은 대기실로 들어오자마자 내 방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대놓고 염탐하는 중이었다.

“박찬용 드러머님 같은 분이 여기 다 계시네. 이런 초짜… 신선한 분이랑도 하시나 봐요.”

박찬용은 ‘신경 끄게.’ 라고 차분하게 한마디만 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뭐 문제 있으신가요?”

“뭐 문제가 있겠습니까. 죽어라 노력해서 밑바닥에서 박박 기어 와서, 기껏 기회를 아슬아슬하게 잡아보는 사람도 있고, 재수 좋아서 공놀이 선수가 대충 노래 불러줘서 빡 뜨는 사람도 있고. 뭐 그런 거죠.”

‘공놀이? 대충 노래 불러줘서? 월드컵 주제가를 부르는 가수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가만히 보고만 있던 재호가 차갑게 손을 저었다.

“자, 그럼 곧 리허설 하니까 나가 주시죠.”

“야. 아이돌 멤버가 세션도 하시네. 참 개꿀이네요. 잘생기면 연주도 잘해지나 봐?”

“나가 주세요.”

김종윤이 투덜대면서 바깥으로 나갔다.

원재호가 바로 날 선 표정으로 말했다.

“뭐 저런 경우가 다 있죠? 저는 그렇다 치고 찬용 선배한테? 클래식 지휘자가 정명훈한테 대드는 수준인데.”

박찬용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그 정도는 아닐세. 저 친구. 인디 시절에는 상당히 인격자였는데. 무명 생활을 오래 거치면서 변했다는 소문을 들었네.”

코러스를 하면서 실컷 본 경우였다.

무명일 때는 좀 겸손하다, 조금 잘 나가면 오만불손해지는 그런 타입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 특징이, 오래 못 갔다.

“잘되어 봐야 진짜 인격이 나오는 법이니까요. 못 나갈 때 가수 하기는 쉽죠.”

“그것도 그렇긴 하네. 자! 됐고. 리허설이나 해보세!”

그날 리허설을 할 때도 김종윤은 매의 눈으로 나를 지켜봤다.

계속 경계하다가, 마지막 노래가 나오자 잔뜩 나를 비웃었다.

‘이따위 선곡을 하다니. 망했네.’라는 표정이었다.

나도 씨익 웃었다.

‘니 맘대로 생각해라. 하지만 이 선곡. 지금은 어색하지만, 정작 본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미칠걸? 왜냐면… 내게는 필살 게스트가 준비되어 있으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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