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내가 ‘킹 오브 싱어’ 정규 방송 1화에서 했던 말이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 ‘갈가마귀’의 노래를 들었을 때였다.
심사위원들 반응이 심상찮았다.
“이거 누구야?”
“이런 가수가 있었어?”
“어디 있다 이제 오셨어요?”
“이런 실력자가 왜? 엄청 수줍은 분인가 봐? 왜 비밀리에 활동해?”
비밀리에 활동이라니, 관종 그 자체인 앤젤과는 참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다들 전혀, 앤젤의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슬쩍 귀띔을 했다.
앤젤에 대한 내 코멘트는 간단했다.
“제 지인인 거 같은데. 너무 노래가 많이 늘었네요.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말을 그만하려 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이 내 말에 호들갑을 떨었다.
“그럼 노을 씨는 갈가마귀가 누군지 않다는 겁니까?”
“알려줘요!”
하지만 알려줄 순 없었다.
나만 알고 있기로 했다.
그럴수록 이 방송이 더 화제가 될 테니 말이었다.
‘그게 앤젤에게도, 나에게도 더 낫겠지?’
앤젤에게는 자기 노래를 알릴 기회였다.
내게는, 내가 직접 부른 드라마 OST 홍보의 장이기도 했다.
아무쪼록 앤젤이 ‘킹 오브 싱어’에서 우승자로 장수하기를 바랐다.
* * *
‘킹 오브 싱어’ 방송 이후에는 갑자기 바빠졌다.
원래 비원더 3인이 하던 앨범 준비를 혼자 다 하려니 몇 배로 일정이 고달파진 느낌이었다.
전 곡을 혼자 녹음하니 훨씬 체력이 달렸다.
심지어 모든 곡을 쉽게 쉽게 녹음했는데도 시간이 많이 소모되었다.
거기다 혼자서 뮤직비디오를 찍으니 3배로 찍을 양이 많았다.
사흘 밤을 꼬박 새서 촬영을 했다.
아무래도 mp3빨로 체력을 매일 회복하지 않았다면, 이미 쓰러졌을 것 같은 스케줄이었다.
나를 운전해서 데려다주는 배영웅 매니저도 나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노을 아티스트는 지치지도 않아요? 차에서 쪽잠만 자면서도 구내염 하나 없이 깔끔하네요! 완전 체력왕인가 봐요.”
“아 네 어쩌다 보니….”
‘초인적인 mp3 빨을 받았어요….’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냥 적당히 얼버무렸다.
배영웅 매니저가 씨이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노을 아티스트는 정말 아예 타고난 월드 스타 같네요?”
“그건 무슨 뜻인가요?”
체력이랑 월드 스타가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하지만 배영웅의 생각은 달랐다.
“해외에서 인기가 생기면 제일 걸리는 게 체력이에요. 문루아 아티스트와 활동할 때도 체력이 제일 문제였죠. 한 나라만 돌기도 힘들잖아요? 근데 일본 돌고, 중국 돌고, 구룡도 가고… 이러면 몇십 배 힘들어지지요.”
이번 솔로 앨범은 한국만 발매 예정이었다.
한국 활동만 해도 이리 힘드니, 월드 스타는 오죽할까 싶었다.
다행인 점은 내게는 월드 스타를 매니징 해본 경험이 있는 ‘배영웅’ 매니저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 외에도 천채왕, 김나리 등 유능한 대표와 직원이 있었다.
그나마 그래서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 부분은 감사한 부분이었다.
배영웅 매니저는 항상 내가 참고가 될 만한 최신 음악을 운전하는 동안 틀어주었다.
덕분에 항상 비원더 멤버들은 트렌드를 익힐 수 있었다.
게다가 연예계에서 알아야 할 정보가 있으면 항상 내게 알려 주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이었다.
운전 중이던 배영웅 매니저가 내게 슬쩍 입을 열었다.
“오창선 씨 새 앨범 나온 거 아세요?”
“아니요. 몰랐어요.”
“혹시나 해서 CD 구해놨어요. 들어보실래요?”
“네네 틀어주세요.”
전형적인 이별 발라드였다.
잔잔한 피아노로 시작해서는 현악기와 드럼으로 장중하게 마무리했다.
마지막에는 화려하게 오케스트라와 밴드가 합쳐져서 오창선의 고음과 함께 노래를 마무리했다.
“좋네요.”
그런데 아예 이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저도 좋아요. 근데…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렇죠?”
“그러게요. 무슨 문제가 있나?”
최근에 어떤 노래를 들어봤는지 되짚어봤다.
그러고 보니 신곡을 들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록밴드가 발표했던 월드컵 응원가 정도였다.
‘음 잠깐? 월드컵 응원가?’
…아뿔싸!
크나큰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2006년 여름은 월드컵의 열기로 가득했다.
아직 2002년 4강 신화의 에너지가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실제 축구 대표팀 성적도 예상을 능가했다.
당연히 새로 나온 노래가 인기가 있기는 어려운 시기였다.
배영웅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정리해줬다.
“오창선 님만 그런 건 아니에요. 요새 음악이 영 관심을 못 받아요. 그나마 ‘킹 오브 싱어’ 정도가 화제성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 방송도 월드컵만 아니었으면 두 배는 잘 됐겠죠.”
물론 TYB도 월드컵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설마 한국 개최도 아닌데 또 잘하랴 싶었다.
하지만 한국은 타국 개최 월드컵 최초 1승을 챙기며, 생각보다 선전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선전했기에, 그 열기도 생각보다 컸다.
생각보다 여름에 나온 앨범이 뜨거운 반응을 얻지 못한 셈이었다.
오창선만 문제가 아니었다.
곧 내 앨범이 나왔다.
내 앨범의 흥행 여부가 당장 걱정이었다.
“이제 와서 앨범 발매를 미룰 수도 없고 말이죠.”
“하하. 그럼요. 앨범 속지 인쇄부터 음원 발표, 뮤직비디오 공개까지. 온갖 업체들이 다 걸려 있어서 이제 와서 바꿀 수가 없어요.”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제대로 배영웅 매니저가 확인사살을 해주었다.
“그렇겠죠?”
배영웅 매니저가 나를 다독였다.
“그래도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오창선 님은 신곡 홍보차 ‘킹 오브 싱어’에 나와서 준우승에 머물렀어요. 실력이 밀려서가 아니라 너무 ‘오창선’ 같아서 패배시킨 거라는 여론도 있지만요. 그에 비해 노을 군은 전 우승자 자격으로 딱 축하 공연을 해서 무게감을 보여줬죠.”
사실이었다.
게다가 내가 부른 드라마 OST에 관심이 주목되어, 드라마까지도 함께 성공한 참이었다.
분명 나에 대한 주목도는 오창선 선배보다 클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걸로 안심이 되진 않았다.
“그래도, 결국 바다보다 위대한 물고기는 없다는 게 제 생각인데요.”
“무슨 뜻이죠?”
“음악에 관심이 없으면 제가 성공하기도 어려울 거 같아서요. 결국, 제가 음악보다 위대하진 않잖아요?”
“회사도 고민 중이니까 좀 기다려 보세요.”
배영웅이 피식 웃었다.
내가 주제를 돌렸다.
“다음 스케줄은 뭔가요? 곧 앨범 발매이긴 하죠?”
배영웅이 ‘핫’ 하고 헛웃음을 짓더니 살짝 날카롭게 말했다.
“내일 발매예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요?”
정신이 없었다.
워낙 많은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날짜 개념마저 사라진 차례였다.
배영웅이 다음 일정을 브리핑했다.
다음 일정은 넵튠 한 선배의 ‘영캠프’ 라디오였다.
오랜만에 ‘앨범 발매’를 기념한 라디오 출연이었다.
발매 하루 전, 앨범에 대한 소회를 미리 나누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음악은 열심히 했고, 공연도 했지만, 팬들과 소통은 거의 하지 못했다.
SNS도 없던 시절이었다.
음악을 준비하느라 TV에 잠시 나오지 않으면 바로 팬들이 나를 볼 수 있는 창구가 사라졌다.
오랜만에 팬들을 볼 생각을 하니 다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팬들을 만나기 위해 일종의 원기옥을 모으는 시간이었다.
이제 팬들을 만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발매 D-1. 앨범 판매량 100만 장 달성까지 앞으로 남은 판매량: 100만]
* * *
매니저와 함께 DJ 부스에 들어갔다.
넵튠 한 선배가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내게 먼저 인사했다.
“어 왔어? ‘킹 오브 싱어’ 봤어.”
“아이고 감사합니다.”
“야. 갈가마귀 누구냐 대체? 말 좀 해봐!”
“아이고! 궁금하세요?”
“너는 알지? 야 빨리 말해봐!”
“말 못 해요! 알아도 모릅니다.”
“저 정도 노래를 잘하는 애가 아무 데도 나온 적이 없다는 게 일단 미친 거지. 말이 안 돼. 지금이 90년대 초도 아니고, 갑툭튀를 한다고?”
“그럴 리는 없겠죠.”
“그럼 뭐야. 갑자기 노래 실력이 는단 말이야? 그게 되나? 그게 되면 바로 보컬 트레이너를 해야지. 떼돈 벌겠는데!”
살짝 귀가 솔깃했다.
앤젤도 바꿨는데, 보컬 트레이너 하면 잘 나갈까 싶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가수로 일단 승부를 해야 할 시기였다.
보컬 트레이닝은 그다음이었다.
* * *
큐사인과 함께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넵튠 한이 능숙하게 오프닝 멘트를 읽었다.
잠시 사연을 읽은 후, 나를 소개했다.
“자. 오늘의 게스트입니다. 요새 화제의 드라마죠. ‘명탐정 수녀’의 OST ‘빛을 찾아서’를 부른 권노을 군을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비원더 권노을입니다!”
“이번에 비원더 공식 팬클럽 생겼다면서요. 싱송라 그룹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 아예 아이돌로 가는 거예요?”
“아 네. 저희로 가득 차 달라는 의미에서 ‘원더풀’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이돌! 아이돌!”
넵튠 한이 짓궂게 되물었다.
비원더는 아이돌이냐 보컬 그룹이냐?
매번 사람들이 되묻는 질문이었다.
이번에도 그런 질문이 워낙 많아서 일부러 넵튠 한이 이 질문을 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게는 이미 해답이 있었다.
“저는 아이돌이란 말에 거부감은 없습니다. 팬분들과 함께할 수 있으면 규정은 짓지 않을 거고요. 회사랑도 항상 상의해서 앨범 컨셉, 가사, 곡, 심지어 패션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패션은 그냥 시키는 대로 입으면 좋을 거 같아요. 오늘 평상복이죠?”
“아 네….”
검은색 티셔츠에. 검은색 반바지에, 검은색 쪼리까지.
좀 구리긴 했다.
“그래도! 원더풀이란 팬덤이 생기니까 훨씬 기대감이 생길 거 같아요. 또 벌써 권노을 군의 솔로 앨범이 나와서, 비원더는 해체하는 게 아니냐 하는 우려 섞인 질문도 많은데요. ‘원더풀에 빠져’ 님이 ‘절대 해체하지 말아 주세요~. 재호 오빠는 왜 티비 안 나와요?’ 하셨고요. ‘노을이 김 묻었어 잘생김’ 님께서는 ‘노을 님 얼굴 너무 빛납니다. 완전체도 보고 싶어요.’라고 해주셨습니다.”
역시나 팬들의 관심은 팀 활동이었다.
데뷔한 지 1년도 안 된 그룹이 솔로 앨범이라니, 너무 빨랐다.
팬들은 해체 걱정을 벌써 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뇌피셜과 찌라시를 엮어서 만든 불화설이 돌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확실하게 말해둘 참이었다.
원더풀들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이번 앨범도 ‘비원더’ 활동의 일환입니다.”
“무슨 뜻이죠?”
넵튠 한은 부러 불독처럼 질문을 물고 늘어졌다.
팬들이 원하는 깊이 있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놓지 않았다.
좋은 진행자였다.
이제 내가 대답해 줄 차례였다.
“저희 팀은 3인이 모두 명확하게 강점이 있습니다. 재호는 프로듀서. 편곡과 연주, 코러스가 가능하고요. 환희는 작사와 작곡, 그리고 역시 코러스에 재능이 있습니다. 저는… 노래를 맡고 있고요.”
넵튠 한이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아주! 노래를 잘하시죠.”
“감사합니다.”
“아니 뭐. 사실이니까. ‘킹 오브 싱어’ 초대 우승자잖아요? 계속하세요.”
“네네. 이번 활동은 어디까지나 저희 셋의 특기를 잘 살려보기 위해서 따로따로 작업했다 보시면 됩니다.”
“그럼 모든 곡이 비원더 멤버들이 작사 작곡 편곡한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만. 모든 곡에 재호와 환희가 어떤 방법으로든 참여했습니다. 우리 셋의 특기를 살리고, 거기에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함께 만든 앨범이라 보시면 됩니다.”
“와… 누가 나오는지 기대해 봐도 되겠네요?”
“네네. 깜짝 놀라실 겁니다.”
안심한 원더풀들의 감사 사연이 쇄도했다.
‘비원더 노래 덕에 우울증에서 벗어났다.’ ‘요즘 비원더 멤버들 노래 듣는 낙으로 산다.’ ‘노을 군 너무 잘생겼다.’ 뭐 그런 내용들이었다.
사연을 읽으면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럼에도 꿋꿋이 읽었다.
이게 원더풀들의 마음이니까, 놓칠 수 없었다.
* * *
다음 날 아침.
언제나처럼 TYB에서 운동을 하기 위해 배영웅의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영웅이 언제나처럼 볼보 차량을 몰고 집 앞으로 왔다.
그런데 평소보다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노을 아티스트님! 대박이에요.”
“뭐가요?”
“첫날 원더풀 분들이 줄을 서서 앨범을 사줬어요. 초동이 벌써 15만 장 팔렸데요. 한국 신기록이에요.”
“와….”
나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았다.
팬들에 대한 고마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발매 당일.
총 15만 장 판매.
앨범 판매량 100만 장 달성까지 앞으로 남은 판매량: 85만]
배영웅 매니저가 말을 이어갔다.
“이 좋은 분위기를 이어 나가야죠! 천채왕 선생님이 운동 끝나고 잠시 만나자고 하세요. 뭔가 비책이 있으신 모양이에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