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72화 (172/280)

제172화

가수 대기실.

앤젤은 마스크를 쓴 채로 권노을의 무대를 보고 있었다.

“야… 대박이다 진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권노을은 ‘슈퍼스타 T’ 시절부터 최고의 가수였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도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데 어째 차이가 점점 줄지 않고 늘어만 갔다.

이제는 비교를 하는 게 말이 안 될 지경이었다.

4분이 넘는 곡 길이 내내 권노을은 화려한 고음을 쏟아냈다.

게다가 박찬용의 강렬한 드럼이 지휘하는 밴드 사운드에도 밀리지 않았다.

되려, 너무 목소리가 커서 놀랄 정도였다.

권노을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무대 위에서 노래의 무게감을 보여주었다.

후렴이 끝났다.

이 곡은 후렴까지는 평이한 고음이었다.

다만 브릿지에 난이도가 있었다.

바로 그 브릿지 부분으로 바로 돌입했다.

*

난 찾을 거야

멈추지 않아

기다려줘~ 어어어어어어~

3옥타브 C.

전설의 테너 파바로티가 불러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던 음이었다.

하지만 이 곡은 C를 넘어 D였다.

게다가 길게 끌기까지 해야 했다.

4마디의 고음을 끌고 마지막은 화려한 애드립으로 갈무리했다.

그리고 숨 쉴 틈도 없이 바로 후렴이 이어졌다.

*

빛을 찾아

이 세상 어딘가에

내가 원하잖아

네게 전해줄게

“끄아아아아!!!”

관객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권노을은 후렴을 두 번 더 반복한 다음에야 곡을 잔잔하게 마무리했다.

게다가 그 모든 부분이 곡예 같지 않았다.

‘빛’을 찾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듣는 사람조차 힘이 불끈 나게 하는 선곡이었다.

이건… 그야말로 노래의 교본과 같은 무대였다.

“야… 나도 좀 노력 많이 했다 생각했는데. 이제 이놈 쫓아가기는 무리겠네.”

앤젤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뭐 상관없었다.

권노을이 내 앞에 가는 게 오히려 좋을 수도 있었다.

그의 뒤를 쫓아가기만 해도 ‘A급 가수’ 정도는 따 논 당상이었다.

‘이기지 못할 거면 합류하라.’ 앤젤이 지금 바로 그 상태였다.

“이 노래를 반만 따라 해도 동양 최고 가수는 저절로 되겠는데.”

이제는, 권노을이 내 친구라는 사실이 다행스러워질 정도였다.

‘권노을이 어떻게 하라고 했더라?’

앤젤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발성 연습을 시작했다.

디즈니랜드에서 권노을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어드바이스를 되새기면서 노래를 준비했다.

권노을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실력이 늘었을지, 앤젤 본인도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 * *

권노을 대기실.

대기실에 들어가니 바로 배영웅이 나를 맞이했다.

“원래 이렇게 어려운 노래였나요?”

“하하.”

원래는 이 정도 난이도의 노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일부러 내가 애드립을 더 늘렸다.

오디션에 맞춰서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였다.

고음 애드립 이후 바로 후렴으로 넘어갔다.

숨 쉴 구석조차 없었다.

그냥 내 원래 호흡을 믿고 바로 후렴으로 넘어갔다.

다행히 내 노림수는 적중했다.

내가 브릿지로 고음을 부르는 그 순간, 관객과 내가 노래 속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들의 영혼이 내 소리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을 봤다.

한 명 한 명이 내 목소리에 웃는 모습이 보였다.

눈이 하나하나 마주쳤다.

평소에는 관객을 상상해야만 했다.

공연을 할 때는 그런 모습을 직접 내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배영웅 매니저가 내게 따뜻한 물을 전달했다.

천천히 물을 들이켰다.

배영웅 매니저가 내게 격려를 해줬다.

“너무 좋았어요. 저도 힘이 나던데요!”

“정말요?”

“네. 뭔가 따뜻해지는 노래네요.”

그게 내 의도였다.

적어도 배영웅 매니저에게는 내 의도가 제대로 전해졌다.

힘든 세상에서 희망을 전해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싶었다.

“다행이네요. 의도가 전달됐다니.”

“관객들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게 공연의 좋은 점이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바로바로 내 목소리에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고음을 부르는 그 순간, 관객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숨을 멈추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나조차 힘이 났다.

공연을 할 때마다 시간을 멈출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반응이 이 정도면 녹화에서도 괜찮겠죠?”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방송은 다음 주에 하겠지만요. 그래도 이거보다 더 반응이 컸던 경우도 있었어요.”

“언제요?”

“재호 아티스트 무대는 이거보다 더 난리가 났어요. 여성 팬들이 워낙 많아서.”

“…아무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네요.”

“아니 아니! 노을 아티스트님도 충분히 잘생겼어요. 재호 아티스트님이 규격 외인 거죠. 외모 신동 소리 들을 정도니.”

내가 노래로 가요계에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면 재호는 ‘외모 신동’ 캐릭터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환희는 일본에서 오타쿠 컨셉으로 인기몰이 중이었다.

최근에는 음악 작업하랴 일본 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일본에서는 반응이 뜨거웠다.

비원더는 예능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그 정점에는 내 ‘킹 오브 싱어’ 우승이 있었다.

모니터를 봤다.

‘킹 오브 싱어’ 정규 방송 1화가 시작됐다.

“자 그럼 가보실까요?”

배영웅이 나를 데리고 대기실을 나섰다.

이번 화에서는 특별히 축하 무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킹 오브 싱어’에 섭외됐다.

무대를 계속 보는 셈이었다.

‘누가 참여할지 궁금하네.’

대충, 우승자가 누구일지는 짐작이 갔지만 말이다.

* * *

심사 위원석에서 무대를 봤다.

개그우먼부터 배우, 뮤지컬 배우까지 다양한 직업군이 출연했다.

하지만 그들 중 우승에 가까운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저 까마귀 가면… 앤젤이네.’

앤젤이 뭔가 달라졌다.

내가 했던 말을 완벽히 지켰다.

그동안 불렀던 모든 창법을 버렸다.

그리고 벽돌 하나부터 노래를 다시 쌓아 올렸다.

원래 앤젤은 테크닉 위주의 전형적인 알앤비 가수의 느낌이었다.

이제는 힘을 뺐다.

원래 목소리로 부르니 앤젤 특유의 음색이 살아났다.

과한 테크닉을 덜자 비로소 원래의 하이톤이 더욱 돋보였다.

더 편안하면서도 개성 있는 목소리였다.

그러면서도 원래 훈련된 가창력의 매력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제서야 노래 잘하는 가수를 넘어 ‘아티스트’가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당연히 앤젤은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진출했다.

노래를 딱 들어 보니 앤젤의 상대도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누구도 아닌, 오창선 선배였다.

발라드의 신, 발라드의 정석, 그런 유명 가수와 대결이라니, 원래 앤젤이라면 어려운 승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잘될 것 같았다.

우선 앤젤이 선곡이 기가 막혔다.

비원더의 ‘음식남녀’였다.

원래 알앤비 곡에 댄스감 있는 비트를 넣어서 뉴잭스윙으로 편곡했다.

라이브 밴드의 리듬에 맞춰 앤젤이 화려하게 노래를 불렀다.

“우오오오오오~예에에에 베이비~~”

조금 과했다.

하지만 여지까지 워낙 절제하면서 불렀기에 이 정도는 봐 줄 수준이었다.

게다가 오디션이니까 이 정도면 납득 가능한 수준이었다.

“네! 무대가 끝났습니다. 그러면 버튼을 들고! 우승자를 선택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도 누군가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미 결과는 뻔했다.

지금의 앤젤을 이길 수 있는 가수는 국내에도 몇 없을 터였다.

“우승자는!!!! 갈가마귀!!!”

앤젤의 승리였다.

‘내 말을 그대로 듣고 따라주니까 기분이 좋네.’

아마 내가 없는 ‘킹 오브 싱어’에서 앤젤을 이길 사람은 찾기 힘들 것 같았다.

한국은 앤젤에게 맡긴다.

나는, 세계 제일의 가수가 될 거니까.

* * *

1주일이 지나고 일요일 저녁 천채왕의 집무실.

천채왕이 비원더 자료를 혼자 정독하고 있었다.

우선 김나리 담당자가 기록한 리포트를 함께 읽었다.

보컬 트레이너의 코멘트가 적혀 있었다.

[권노을: 압도적 재능과 능력을 모두 갖고 있음. 이미 노래의 재능이 한국 제일. 그럼에도 매일 먼저 와서 연습함. 항상 어떻게 해야 노래를 더 잘할 수 있는지 질문함. 최고의 학생.]

“허허… 이놈 봐라. 이뻐 죽겠네 정말.”

천채왕이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배영웅이 쓴 권노을의 리포트를 확인했다.

[자기관리 철저. 노래를 잘하기 위해서 평소에 말도 아끼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음. 성대에 무리 가는 일은 아예 안 함.]

천채왕이 리포트를 덮었다.

권노을은 정말 완벽한 모범생이었다.

최고의 연습생이나 할 법한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

이미 음악방송 1위를 해보고, 아시아 활동까지 하는 스타가 아직까도 그런다는 점이 굉장히 놀라웠다.

이런 친구와 함께라면 세계 최고 가수의 꿈을 같이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되지 않지.’

벌써 문제가 생겼다.

세계 진출 프로젝트의 첫 발판인 권노을의 솔로 앨범의 흥행에 적신호가 켜졌다.

권노을이 부른 드라마 ost가 전혀 힘을 못 쓰고 있었다.

권노을의 문제는 아니었다.

드라마 흥행이 문제였다.

드라마 시청률이 애국가 수준이니, 노래가 잘될 리가 없었다.

지금 권노을은 3일 밤낮을 새가는 타이트한 스케줄로 노래를 녹음하고,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있었다.

권노을을 어떻게 더 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앨범 발매 스케줄 또한, 이제 와서 늦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드라마 OST에 인지도가 지금쯤이라도 올라가면 그게 최선이었다.

‘근데 그게 될 리가… 없지.’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갑자기 망해간다던 드라마 ‘명탐정 수녀’의 인터넷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해서 초록색 검색창으로 가보니, 검색어 순위가 ‘명탐정 수녀’ 드라마 관련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무슨 변수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천채왕이 서둘러 관련 기사를 하나 클릭해보았다.

제목: ‘킹 오브 싱어’ 보고 명탐정 수녀 보기 열풍!

본문: ‘명탐정 수녀’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주 ‘킹 오브 싱어’에는 파일럿 당시 우승자였던 권노을이 출연했다.

그는 자신이 최근 발표한 드라마 OST ‘빛을 찾아서’를 공연했다.

이 곡은 ‘킹 오브 싱어’ 바로 다음에 방영되는 드라마 ‘명탐정 수녀’의 주제곡이었다.

이 곡이 뭐냐 묻는 사회자에게 권노을은 ‘드라마 주제가’라며 “‘명탐정 수녀’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이후 ‘명탐정 수녀’는 큰 관심을 받았다.

바로 ‘킹 오브 싱어’ 다음에 편성되어 관심도가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천채왕이 얼른 명탐정 수녀의 시청률을 확인했다.

아직 시청률이 정확하게 집계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오르고 있었다.

얼핏 봐도 3배는 올라 15% 시청률 정도는 돼 보였다.

“드라마 OST로… 드라마를 띄운다고? 그게 가능해? 드라마가 노래를 띄울 수는 있어도?”

천채왕은 자신이 정말 ‘물건’을 얻었다는 사실을 새삼 또 깨달았다.

권노을과 함께라면 매일 매일이 상식 파괴였다.

노래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야말로 권노을의 행보는 무한대의 가능성을 담고 있었다.

유독 앨범 발매 준비는 너무도 힘들었다.

잠은커녕 밥 먹을 시간마저 부족했다.

이동 중인 차에서 선잠을 자고, 밥까지 먹었다.

* * *

[갈가마귀, 보컬 레전드 ‘오창선’ 꺾고 우승. 대체 그는 누구인가?]

포털 사이트들이 ‘킹 오브 싱어’ 관련 기사로 도배가 됐다.

그럴 법했다.

워낙 압도적인 가창력과 색깔이었다.

하지만 ‘갈가마귀’가 앤젤이란 걸 예상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과거의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틀에 박힌 앤젤의 노래와는 너무 달랐으니 말이었다.

네티즌 수사단도 열심히 찾고 있었지만 모두 허사였다.

설마 파일럿 프로그램에 나와서 탈락한 가수가 또 나오겠느냐는 ‘심리적 함정’ 덕분에 짐작이 더욱 어려웠다.

게다가 앤젤의 우승은 나에게도 이득이 되었다.

갑자기 내 관련 기사도 쏟아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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