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71화 (171/280)

제171화

다음 날 오전은 오랜만에 멤버들과 함께 운동과 노래 연습을 했다.

재호랑 환희는 음악 작업에 몰입해서 그런지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평소처럼 달렸는데 금방 둘은 자빠져 버렸다.

내가 둘에게 말했다.

“야, 벌써 지쳤냐?”

환희는 등을 바닥에 닿고 데굴데굴 구르며 말했다.

“아이고 아이고. 허… 억 허… 억. 살려줘여 횽….”

“아직 반도 안 달렸는데?”

재호가 고개를 저었다.

“한 2주 쉬었는데 안 되네.”

“하루라도 쉬면 그렇게 되지. 운동하면서는 못 하냐?”

재호, 환희가 합창했다.

“당연하지!”

“아이 안 되죠 횽!”

“…니네들 죽 잘 맞는다?”

처음 만날 때만 해도, 둘은 앙숙이었다.

특히 연애관이 부딪쳤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환희가 여자를 아예 안 만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곡 작업을 함께하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아마도 구룡도에서 헌팅하다가 방송에서 만난 사람이랑 마주친 게 결정적인 계기였나 본데…?’

일단은 둘이 친해진 것은 호재였다.

앞으로 우리는 노래 작업은 물론, ‘글로벌 비전 송 콘테스트’까지 쉴 새 없이 함께해야 했다.

팀워크는 탄탄할수록 좋았다.

…물론 체력도 좋아야 했다.

내가 둘의 어깨를 떠밀며 말했다.

“자. 충분히 쉬었지? 딱 1킬로만 더 뛰고 끝내자.”

“아… 악마다 악마!!”

악마가 아니라 팀 리더다 인마.

* * *

운동을 신나게(?) 끝낸 후, 샤워를 마치고 오랜만에 멤버들과 간식을 먹었다.

간식이라고 해봐야 단백질 쉐이크뿐이지만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내 곡 작업 비하인드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호가 내게 말했다.

“그 악기 잘 썼어.”

“악기?”

“하르페지 말야.”

“아하.”

하르페지는 당시에 미국에서도 출시된 적 없는 희귀 악기였다.

미국에서 특별히 구해서 재호에게 선물로 줬다.

재호는 기타 연주를 하지 못했다.

악기 수집이 취미인 재호에게는 제법 큰 콤플렉스였다.

그게 도움이 된 모양이다.

재호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다행히 하르페지 덕에 잘했어. 기타 사운드를 꼭 넣고 싶었는데.”

“니 꺼가 무슨 곡이었는데?”

환희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횽은 멤버들이 쓴 곡도 짐작 못 해여?”

“…당연히 알지. 그 알앤비 대곡이지?”

사실, 뻔히 알 수 있었다.

재호와 환희가 가이드 보컬로 불렀으니 모르기가 더 힘들었다.

“그냥 장난 좀 쳐 봤다. 근데 그게 하르페지였어?”

“기타 나 못 쳐.”

“세션 쓰면 되잖아.”

“세션 쓰면 세션 기타리스트에게 너무 기대는 것 같아서. 내 연주로 이 곡은 하고 싶었거덩~. 그래서 하르페지를 이리저리 만져봤어.”

눈을 감고 재호와 환희 곡을 다시 떠올려봤다.

감쪽같이 기타 주도의 알앤비 노래 같이 들렸다.

심지어 전주 부분은 영락없는 어쿠스틱 기타 솔로처럼 들렸다.

“와… 그게 하르페지였어? 당연히 기타인 줄 알았는데.”

“후훗!”

재호가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니 나마저 기분이 좋아졌다.

재호와 환희의 성장 속도는 눈부셨다.

우리가 힘을 합친 지 이제 1년 정도였다.

곡을 본격적으로 쓴 지도 2년이나 됐을까?

그런데 벌써 재호와 환희가 쓴 곡은 국내외 최정상급 작곡가의 곡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곡을 수집해서 비교해보니, 재호와 환희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재호와 환희는 내 특성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음을 끄는 방식, 애드립 라인, 리듬까지 나와 맞게 곡을 썼다.

이번 곡도 재호가 가성으로 내 노래를 흉내 내서 기가 막히게 재현했다.

덕분에 내가 어떻게 불러야 할지 금방 감이 왔다.

어쩌면 나는 내 최선의 작사가, 작곡가를 벌써 찾았는지도 모른다.

재호가 내 팔을 쿡 찔렀다.

“왜?”

“비원더 배 다이어트 대회 1회 우승자 권노을 님. 돼지 껍데기 과자 주세요. 그게 우승자 포상이죠?”

환희가 거들었다.

“1인분은 너무 적어여. 2인분으로 주쎄여!”

…방금 말은 취소다.

이놈들은 내 인생 최악의 작곡가, 작사가다!

툴툴대면서 돼지 껍데기를 튀겼다.

요리하고 있던 나를 지켜보던 환희가 내게 물었다.

“곡 녹음 시작했어여 횽?”

나는 튀김에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질문에 대답했다.

“아니? 딱 하나만 했어.”

“뭘 했는데요?”

“드라마 OST. 그건 드라마 나오기 전에 완성해야 했으니까. 별수 없이 했지. 아마 이번 주 토요일에 방영할걸?”

“와… 급하네여.”

“OST 작업이 다 그런 거니까.”

“근데 그러면. 드라마 잘 돼야 좋은 거겠네여? 잘 될까여? 그 주말 드라마는 엄청 유명한 게 있잖아여? 장동현 배우 나오는 거?”

아차 싶었다.

분명 ‘명탐정 수녀’는 크게 히트한 드라마였다.

마지막에는 말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고전했다.

동 시간대에 장동현이 주연하는 전쟁 드라마가 이미 방영을 시작했다.

이 드라마가 초반 화제를 모두 빨아갔다.

중반 이후, 장동현의 전쟁 드라마가 전쟁 파트가 끝나고 현대로 가서 지지부진해지자, 비로소 ‘명탐정 수녀’가 탄력을 받았다.

매번 새로운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구성이라 중간부터 봐도 상관이 없는 드라마였다.

그 강점이 이어졌다.

그렇게 국내에서의 성공을 토대로, 필리핀부터 남미까지, 주로 카톨릭 국가에 수출해 크게 성공했다.

드라마는 결국 잘될 운명이었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이 드라마 방영 스케줄 중간 즈음에 앨범이 나올 예정이었다.

그 전에 드라마가 떠야 했다.

그래야 내 앨범이 드라마 OST의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지금 일정대로라면, ‘명탐정 수녀’ OST는 내 앨범에 전혀 도움이 안 됐다.

되려 내가 ‘명탐정 수녀’를 도와줘야 할 판이었다.

내 귀에 재호의 코멘트가 아른거렸다.

“…솔직히 우리 집도 다 장동현 나오는 드라마 보던데? 얼굴이 복지라 그러더라구.”

…이거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하겠다 싶었다.

* * *

슬픈 예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명탐정 수녀’ 1화, 2화 시청률은 폭망이었다.

당연히 내가 부른 주제가 반응도 미미했다.

‘빛을 찾아서’는 히트 작곡가 김영훈이 쓴 곡임에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

아무도 안 본 드라마에 OST까지 찾아 듣는 사람은 드물었다.

천채왕 또한 ‘노을이 니 결정이 틀릴 때도 있네~’ 하며 씁쓸한 코멘트를 남겼다.

하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회귀 후, 깨달은 점이 있었다.

사실, 나쁜 결정은 없었다.

얼핏 안 좋아 보이는 결정도, 내가 여하에 따라 좋게 바꿀 수 있었다.

회귀 후 그렇게 몇 번이나 결정을 사후에 옳은 선택으로 바꿨다.

이번에도 그럴 차례였다.

‘그러려고 이 선곡을 한 거니까.’

* * *

‘킹 오브 싱어’ 녹화 날.

정식 녹화 전 드라이 리허설을 위해 무대로 향했다.

파일럿 우승자로 초대됐다.

이미 정체가 공개되었기에, 마스크는 쓸 필요 없었다.

그저 ‘초대’ 우승자 대접을 받고, 축하 무대 격으로 노래만 한 곡 부르면 됐다.

무대 위에 가보니 언제나처럼 밴드 마스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 노을이. 왔어?”

“네넵.”

“초대 우승했는데. 아쉽지 않아? 1화에서도 우승자 해달라고 하지 그랬어!”

“패배하지 않으면 정체가 안 드러나야 하는데. 저는 이미 파일럿이라 정체를 공개해 버려서요.”

“아 그르나? 뭐 어쩔 수 없네.”

사실 이제는 더 큰 무대, ‘글로벌 비전’이 곧 다가오고 있어서 참여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이번 곡 편곡 어떠셨어요?”

“어, 모르는 곡인데?”

“제 신곡입니다.”

“야~ 신곡을 다 하냐?”

내 선곡은, 당연히 ‘빛을 찾아서’였다.

드라마가 뜨는데 시간이 좀 필요하다면, 내가 그 시간을 단축시키면 됐다.

‘킹 오브 싱어’는 화제성 1위 프로그램이 될 운명이었다.

여기서 주제가를 불러서, 드라마에 관심을 일으켜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드라마가 뜨면, 그 드라마의 주제가인 ‘빛을 찾아서’ 또한 더 화제가 될 터였다.

이번 무대를 마중물 삼아 서로 잘 되겠다는 작전이었다.

밴드 마스터가 내게 말했다.

“되게 리드미컬하데? 무슨 모타운(마이클 잭슨 등이 소속되어 있는 흑인 음악 레이블.) 노래 같던데?”

“네, 리듬이 좀 어렵죠?”

“리듬이야 뭐! 찬용 선배가 하니까 문제없고. 내가 문제지 내가. 키보드가 너무 어려워. 거의 프리 재즈야 이거.”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하고 마이크가 있는 자리에 가려 했다.

밴드 마스터가 내 어깨를 살짝 잡았다.

내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네?”

“노을이… 이거 괜찮나? 악보 니가 바꾼기가?”

“네 제가 바꿨습니다.”

“미친… 거 아니야? 이걸 하겠다고?”

“괜찮습니다.”

나는 ‘킹 오브 싱어’라는 엄청난 이름의 프로그램의 초대 챔피언이었다.

‘그러자면 이 정도 무대는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오늘 온 관객들을 자지러지게 만드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준비했다.

노래로 만드는 폭탄을.

* * *

내 무대가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내 다음 차례 리허설 하는 가수는 꼼꼼하게 가면을 쓰고 있었다.

늑대인간 차림이었다.

그가 걷는 걸음걸이만 봐도 누구인지 딱 보였다.

…앤젤이었다.

아무래도 이전에 파일럿에서 내게 패배해서 준우승했던 일이 충격으로 남은 모양이었다.

설욕을 위해 정규 편성 1화에도 또다시 출현했다.

‘…지독한 놈.’

나야 파일럿 초대 우승자로 일종의 ‘명예 졸업’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앤젤은 파일럿과 다른 컨셉의 마스크를 쓰고 또 출연했다.

무서운 집념이었다.

하지만… 왠지 저 녀석의 우승을 막을 녀석은 이제 없을 거 같았다.

왜냐면, 이제 내가 없으니까.

‘호랑이가 없는 곳에서야 여우가… 아니 앤젤이 왕인 법인가.’

그렇게 ‘킹 오브 싱어’ 정식 녹화가 시작됐다.

* * *

진행자가 능숙하게 방송을 시작했다.

“자! 킹 오브 싱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킹 오브 싱어가 정식 편성을 받았습니다!!! 축하 공연으로. 아~ 정말 많은 화제가 되었지요. 초대 우승자! 권노을 군의 무대가 있겠습니다. 박수로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뚜벅뚜벅 걸어 나와 무대에 섰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니, 한결 숨쉬기 편했다.

무대에 우뚝 서니, 이 무대가 얼마나 컸는지가 실감 났다.

내가 나오자마자 관객들이 어마어마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음압이 느껴질 정도였다.

관객들의 기에 눌리지 않도록 기합을 넣고 노래를 시작했다.

박찬용 드러머가 리듬을 깔며 포문을 열었다.

바로 기타와 키보드, 베이스가 치고 들어왔다.

휭키한 그루브의 ‘빛을 찾아서’의 시작이었다.

브라스가 깔리면서 노래를 시작했다.

*

하루 이틀

허무에 굴복하는 날들

진실은 어차피 없다고

남처럼 살라고

그럼 편하다고

신곡이다 보니, 관객들의 반응이 모호했다.

‘신나긴 한데 어색해….’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선 확 사람들이 내게 집중하게 해줘야 했다.

*

빛은 있어

이 세상 어딘가에

내가 원하잖아

나를 비출 거야

시원하게 지르는 고음이 나오자 관객의 탄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래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아직 비장의 무기가 남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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