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68화 (168/280)

제168화

문루아 선배는 곧 전국 투어를 준비하기 위해 내려갈 예정이었다.

문루아는 일단 투어가 시작하면 모든 신경을 투어에 쏟았다.

금주, 절식은 물론, 말까지 아꼈다.

최선의 컨디션을 가지고 무대에 임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오늘, 투어 전 마지막으로 문루아 선배와 커피 약속을 했다.

장외 MC를 맡은 이유미도 함께였다.

가장 큰 이유는 보기 힘들어지기 전에 한 번 더 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A&R 팀장 강호석. 이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TYB 사옥 1층 카페에 들어가니 이유미와 문루아가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루아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 또한 반갑게 둘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유미가 구수하게 화답했다.

“아유~ 노을 군 와쓔? 연예인 물을 먹어서 그런가 점점 잘생겨지네!”

“아아 네. 감사합니다.”

앉자마자 이유미와 문루아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문루아 선배는 언제나처럼 물 흐르듯 아이돌 생활을 계속했다.

이유미가 보기에 놀라울 정도인 모양이었다.

이유미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문루아를 칭찬했다.

“진짜 대단하다니까? 무슨 하루를 5분 단위로 쪼개 살아. 이렇게 전 세계를 돌면서 공연을 하는데 어떻게 안 지쳐? 나는 그냥 나와서 노가리만 까도 지치는디.”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힘드신가요?”

“안 힘들 것 같어? 매번 다른 국적, 다른 문화권 사람들하고 방송하는디. 근데 그걸 춤추고, 노래하고, 다 소화하는 루아는 대체 이건 초인인지….”

문루아가 별 것 아니라는 듯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직업인데요 뭐. 노을 군도 곧 그렇게 돼야 해요.”

“제가요?”

“월드 스타 될 거잖아요?”

“……!”

그러고 보니 문루아는 이미 아시아 최고의 스타였다.

서구권까지 인기가 크진 않았지만, 충분히 내 목표를 조금 먼저 이룬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사람의 삶을 조금 미리 보고 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술은커녕 커피 한 잔도 조심해서 먹는 걸 절제를 해야만 내가 원하는 대로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의 자유를 위해, 사생활의 자율을 조금 포기해야 되는 셈이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문루아 선배가 다시 인기를 얻은 계기도 솔로 앨범이었지.’

그런데 그 솔로 앨범은 좀 특이했다.

모든 곡의 멜로디와 가사를 문루아가 직접 썼다.

오직 편곡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항상 최고의 전문가를 선별하는 TYB다운 방식이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분명 이유가 있었다.

“저 선배. 혹시 최근에 내신 솔로 앨범이요.”

“네?”

“왜 전곡을 다 작곡, 작사하셨나요?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고 싶으셔서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되짚어보면 싱어송라이터라고 해서 전곡을 다 작사하고 작곡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요.”

“음….”

문루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는 주변 눈치를 슬쩍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내게 귓속말을 했다.

“요새 저희 회사 가사가 좀 맘에 안 들었어요.”

“네?”

“뭔가 너무 컨셉에 잡아먹힌 거 같고… 여튼 제 느낌하곤 안 맞았어요. 그래서 좀 무리해서라도 제가 다 쓴 거예요. 곡은 많았는데 작사는 저도 좀 받고 싶었어요.”

“아… 그렇군요.”

나는 당황한 듯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론 연기였다.

이미 알고 있었다.

A&R팀 강호석 팀장의 이름을 본 순간, 이미 짐작이 되었다.

강호석 팀장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전 생에서, 강호석 팀장은 TYB의 몇 안 되는 오점이었다.

그 때문에 TYB 말고 다른 기획사를 가야 하나 고려했을 정도다.

A&R 시스템은 TYB의 자랑 중 하나였다.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천채왕 창립자조차 건드릴 수 없었다.

시스템으로 전 세계의 전문가들의 작업물을 객관적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TYB다운 방식으로 재조립했다.

이렇게 찍어내듯 나오는 음악들이 TYB의 자랑이었다.

강호석 팀장은 이 ‘분업’을 악용했다.

오너는 물론 회사가 담당자 재량을 보장한다는 점을 이용해 자신이 돈을 챙겼다.

곡은 건드리지 않았다.

음악과는 달리 주관적인 영역이 많이 개입되는 ‘가사’를 건드렸다.

자신과 친한 작사가들의 가사를 선정하는 대신 돈을 받았다.

심지어 저작권을 반으로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강호석 팀장은 저작권을 자기 친척 명의로 받다가 그만 꼬리를 잡혔다.

10년간 수많은 곡들의 저작권을 이미 삥땅 친 다음이었다.

강호석 팀장이 부임한 후, TYB의 가사가 조금씩 안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 진행했으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지금은 2006년이었다.

아직 강호석 팀장이 부임한 지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 너무 늦기 전에 되돌릴 수 있었다.

“TYB는 가사를 어떻게 정하나요?”

모르는 척 문루아에게 TYB의 시스템을 물어봤다.

“블라인드로 가사를 회의로 정해요. 결정권자는 회의마다 다르죠. 보통 회사 임원진이에요. 저 같은 경우는 저도 포함됐고요."

“아무도 모르나요?”

“절대.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누군가는 그 서류를 정리는 할 거잖아요? 하다못해 누군가는 이름을 지우기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A&R팀이 하죠.”

아이고, 하고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나, 천채왕이나 이사진 입장에서는 결백했다.

그러니 방심했다.

하지만 회의를 알게 모르게 진행하는 실무진은 A&R 팀이었다.

이사진이 깨끗해도, 실무진이 딴짓을 하면 소용이 없다.

‘그러니까 탈중앙화 개념… DAO라도 했어야 했나? 아니 그런 기술은 개발도 안 됐는데. 게다가 전망도 안 좋았고.’

헛소리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결국 저 A&R 팀장이 문제였다.

저 팀장을 제거해야 했다.

그다음에는 A&R 팀조차도 권한을 나누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실무진이든 이사진이든 어느 한쪽이 결정을 주도하지 못하게 균형을 맞추면 됐다.

그렇게 되면 한 명이 타락한다고 해서 장난질을 칠 수 없게 된다.

…그건 아마 사업가인 천채왕 창립자가 더 잘 알 것이다.

일단은 내 앨범의 가사를 가지고 장난칠 강 팀장을 처리할 차례였다.

슬쩍 문루아에게 떡밥을 흘렸다.

“제가… 신인 작사가들과 좀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어쩌다 보니. 근데 거기서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소문이요?”

“TYB 강호석 A&R 팀장의 동생이… 가명으로 작사를 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가명으로요?”

“네. 심지어 TYB의 곡도 작사한 것 같던데요.”

“이름이 뭐예요 그 사람?”

“‘신지애’ 작사가입니다.”

“엄청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요새 TYB거 엄청 하는!”

“저도 그냥… 소문으로 들은 겁니다. 확실치는 않아요.”

“제가 배영웅 실장님에게 이야기할게요. 회사는 그분이 제일 잘 알아요.”

‘배영웅 실장이 그런 사람이었구나.’

문루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들은 내용을 메모했다.

아무래도 이걸로 문제는 해결이 날 것 같았다.

* * *

얼마 후, 강호석 팀장은 조용히 회사를 나갔다.

회사에서 ‘천채왕 프로듀서가 악마가 잠시 되었다.’라는 흉흉한 소문이 들리긴 했지만.

A&R팀은 대조정을 거쳤고 급히 실무자가 팀장 대리가 됐다고 했다.

배영웅 매니저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래서, 갑자기 A&R 팀에 공백이 생겼어요. 실무자가 갑자기 팀장이 되다 보니까요. 앨범 가을에 나오려면 한시가 급한데 어쩌죠?”

이런, 또 문제가 생겼다.

장기적으로는 강호석 팀장이 잘린 건 무조건 회사에 이득이었다.

앞으로 TYB의 가사는 훌륭하게 만들어질 확률이 높았다.

문제는 바로 ‘지금’이었다.

갑자기 A&R 팀장 자리가 공석이 되다 보니, 내 가사를 골라줄 사람이 없어졌다.

아오! 아직 2006년이면 A&R 팀이 있지도 않고. 그냥 제작자가 맘대로 하던 시절인데.

너무 앞서가는 회사여서 그것도 문제였다.

그때 갑자기 뇌리에 어떤 생각이 스쳤다.

방법이 떠올랐다.

* * *

천채왕에게 연락해서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천채왕의 차를 타고, 한강 드라이브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수석에서 슬쩍 천채왕을 쳐다봤다.

얼핏 보면 표정 변화는 없어 보였다.

불과 얼마 전, 천채왕은 팀장의 비리를 확인하고 분노를 터트렸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적어도 내 앞에서는 완전히 숨겼다.

그게 사업가의 자질인가 싶었다.

천채왕이 내게 물었다.

“왜 자꾸 쳐다봐? 뭐 묻었어?”

“아, 아닙니다.”

“너는 운전 안 배우니?”

“혹시나 음주운전이라도 할까 봐 안 배우고 있습니다.”

“아하하하하! 좋은 생각이야.”

천채왕의 웃음소리는 의외로 방정맞았다.

게다가 운전대를 잡은 채로도 박수를 쳐대는 통에 나까지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천채왕은 운전의 달인이었다.

전혀 흔들림 없이 운전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이야? 역시 앨범인가?”

“네 앨범입니다.”

“사실 이제는 회의에서 나오는 결정을 받아들여야 할 때야. 나도 권한이 없다 노을아.”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 민주적인 제도가 TYB의 장점이었다.

하지만 특수한 상황에는, 그에 맞는 대처법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그 회의를 주최할 A&R 팀장이 아예 없잖아요?”

천채왕 표정이 살짝 굳었다.

“너도 들었구나?”

“네. 이런 때는 선생님께서 재량으로 결정해주시는 게 맞을 것 같아서요. 항상 회의로 결정하더라도. 위기 때는 또 다르게 결정해야 하니까요. 비행기도 위기 때는 수동 운전으로 전환하는 것처럼요.”

천채왕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럼 어떻게 할까? 나는 가사를 어떻게 해야겠다. 이런 의견이 없어. 노을이 너는 있니?”

드디어, 내가 기다렸던 질문이 왔다.

나는 이미 대답을 준비해둔 상태였다.

“키미 프로듀서님은 작사도 참 잘하시더라고요.”

“키미? 그렇지! 특히 걸그룹은 거의 다 작곡하니까. 개인적으로 가장 TYB다운 작사가라고 생각해.”

“키미 님께서 아예 제 곡을 다 작사해주셨으면 합니다.”

“전부?”

“네. 전부 다요.”

천채왕이 잠시 입을 다물고 운전에 집중했다.

뭔가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생각을 끝마친 그는 다시 내게 말했다.

“좋아. 키미한테 맡기자. 제일 안정적인 선택이긴 해. 비원더를 잘 알고. 나도 잘 알고. 베테랑이니까.”

“감사합니다!”

“다만 그냥 키미 혼자 단독 작업은 안 돼. 그건 너무 뻔해. TYB에서 많이 했던 거야. 노을이 너랑 공동작업을 하자. 그게 조건이야.”

“제가요?”

나는 작사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천채왕은 내게 작사를 퍽 시키고 싶은 눈치였다.

“기술적인 면은 다 키미가 채워 줄 거야. ‘슈퍼스타 T’에 참여할 때 보면 노을아. 너는 창작자의 재능을 키워주는 능력이 있어 보였어. 키미하고 같이 작사하면 좀 다른 느낌이 날 거야. 네가 직접 작사에 참여하면 네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노래하기도 더 좋겠지. 싱어송라이터 그룹 비원더에도 어울리고. 오케이, 결정!”

순식간에 천채왕이 결정을 내려 버렸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사실, 한 번쯤 작사에 참여해보고 싶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노력은 무슨, 잘해야지! 잘할 거야. 아, 그러고 보니 노을아. 축하한다.”

갑자기 천채왕이 내게 씨익 미소를 보이며 축하를 건넸다.

짐작 가는 것이 없었다.

“무슨 일일까요?”

“아, 배영웅 실장이 말 안 해줬어?”

내가 우승했던 오디션 프로 ‘킹 오브 싱어’의 정규편성이 확정되었다.

덕분에 나는, 1회 우승자로 영원히 기록되었다.

2022년까지 계속되는 초히트작 임을 감안하면, 내게도 호재였다.

게다가, 정규 편성된 킹 오브 싱어 1화에서도 나는 ‘1회 킹 오브 싱어’의 자격으로 노래를 한 곡 불러야 했다.

시청률이 보장된 예능에 출연 기회를 얻게 된 셈이었다.

천채왕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사실 챔피언으로 계속 나와 달라고 했는데 거절했어. 우리 비원더는 이제 ‘글로벌 비전’에 참여해야 하니까. 한국은 비원더에게는 너무 좁아.”

말만 들어도 놀라운 이야기였다.

“감사합니다.”

“무슨 소리야. 게다가 좋은 소식이 또 있어.”

“또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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