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내가 가져온 음식은 과자였다.
문루아가 이리저리 살펴봤다.
"과자... 네요? 분명 고기를 튀기고 있었는데?"
나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드셔보세요."
이유미와 문루아가 살살 과자를 입안에 넣었다.
'와드득'하고 맛난 소리가 들렸다.
이유미가 먹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어머~~."
내가 만든 것은 돼지껍데기 튀김, 멕시코의 국민 간식이었다.
놀랍게도 과자처럼 맛있지만 의외로 살이 잘 찌지 않았다.
탄수화물이 거의 없는 건강식품이기 때문이었다.
이유미가 '너무 맛있다'를 연발하며 돼지껍데기 과자를 흡입했다.
문루아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내게 말했다.
"근데, 이거 다이어트 음식은 맞아요?"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습니다."
"그렇다기에는 맛이 너무 자극적인데요."
한 번 더 웃음이 나왔다. 문루아 또한 내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거 돼지껍데기입니다. 콜라겐이 많아서 몸에 좋아요."
문루아의 눈이 다시 커졌다.
"진짜요? 하나도 안 질긴데요. 오히려 공기가 많아서 바삭한 느낌인데."
"튀기면 공기가 잔뜩 들어가서 이렇게 변해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씨익 웃었다.
"너무 괜찮네요. 계속 먹을 수 있겠어요."
문루아는 흡족한 표정으로 남은 과자를 먹었다.
환희가 갑자기 대화에 난입했다.
"하,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간식이자나여. 튀긴 거고! 다이어트 음식이라긴 어려워여."
미안하지만, 환희의 태클은 이미 내 계산 범위 내에 있었다.
"계산해봤어. 탄수화물 0%고 칼로리도 100g 먹으면 290칼로리밖에 안 돼."
문루아가 반색했다.
"어머!"
이유미 또한 흡족한 표정으로 과자를 먹고 있었다.
이제 마무리 쐐기를 박을 차례였다.
"재호랑 환희는 살을 빼본 적이 없지. 그래서 다이어트 하는 사람 마음을 몰라요. 다이어트에서 가장 힘든 건! 군것질을 못 한다는 거잖아요."
"옳소, 옳소!"
나는 이유미와 문루아의 함성을 들으며 말을 이어갔다.
"다이어트에 필요한 건 진짜 군것질 당길 때, 위기일 때 적당히 먹고 배고픔을 넘길 수 있는 그런 거라고요!"
내 말이 감동적이었는지 이유미와 문루아는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했다.
이건 뭐, 대통령 선거에라도 나갈 수 있을 법한 분위기였다.
결과는 뻔했다.
"우승자는… 권노을!"
나는 두 손을 높이 들고 승리의 기쁨을 표현했다.
"예에에에!"
재호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쉽네."
환희도 툴툴거렸다.
"저는 납득할 수 업써여!"
재호가 사악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자, 하지만 말이야… 권노을!"
내가 무심코 대답했다.
"응, 나?"
재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제 다이어트 식단 대회 우승자로서, 상품이 뭘 거 같냐?"
"상품?"
그러고 보니 우승자 상품을 결정하지 않았다.
재호가 여러 가지 단어를 나열했다.
"우승자는 많은 것을 얻지. 명예, 자부심, 영광..."
"아, 뭐 그래."
내가 심드렁하게 답하자, 재호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명예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
"뭐? 야, 잠깐만!"
불안해진 나는 재호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앞으로 우리가 배고플 때마다, 간식 담당은 '다이어트 대회' 제1회 우승자 권. 노. 을. 되시겠습니다~~."
환희까지 동조했다.
"와! 횽, 돼지껍데기 하나 더 줘 봐여. 유미 누나가 다 먹어버려써요!"
문루아, 이유미까지 '한 번 더 해 주세요오~~'를 외쳤다.
나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바로 돼지껍데기 요리 제조에 들어갔다.
하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었다.
'이러려고 요리 대회 하자고 한 거지, 뭐.'
애초에 재호와 환희의 분위기를 띄우는 게 목표였다.
다이어트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먹고, 쉬었으면 그걸로 됐다.
나는 그렇게, 멤버들과 즐겁게 먹고 떠들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 * *
다음 날 점심 즈음에 양재동 녹음실로 갔다.
내가 녹음실에 도착해 보니, 이미 천채왕 프로듀서를 필두로 키미 작곡가, 배영웅 실장, 김나리 사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늘은 내 솔로 앨범의 수록곡을 모두 정하기 위해 모였다.
음악을 듣기 전, 천채왕이 모두에게 이번 앨범 콘셉트를 설명했다.
"이번 앨범은 '전 곡이 타이틀곡' 콘셉트입니다. 이미 사람들은 CD를 많이 안 듣기 시작했어요. 아마 저도 앞으로는 EP, 디지털 앨범 위주로 진행하겠죠."
나는 천채왕의 말이 맞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아이돌의 시대가 돌아오기까지, 아무도 CD를 사지 않는 시대가 왔다.
천채왕이 이번 앨범의 포부를 밝혔다.
"이번 앨범은, 가요사에 남을 마지막 밀리언 셀러를 목표로 하려 합니다."
회의실에 5초간 정적이 흘렀다.
다들 천채왕의 과감한 선언에 놀란 모양이었다.
내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파이팅 좋다. 배 실장님, 그럼 1번 곡부터 틀어줘요."
배영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넵."
녹음실 사운드로 첫 번째 노래가 흘러나왔다.
익숙한 곡이었다. '명탐정 수녀'의 주제곡이었다. 펑키한 곡이었다.
두려워하지 말고 꿰뚫어 봐
심장 소리에 집중해봐
진실은 언제나 하나니까
눈을 감고 들어봐
이미 꽤 빈틈없이 가사까지 나온 결과물이었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노래였다.
키미 작곡가가 짧게 감상을 말했다.
"의외로 노을 군이 이런 곡을 해 본 적이 없네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천채왕이 훗, 하고 웃으며 내게 말했다.
"여태껏 안 한 건 이유가 있어서야. 너무 뻔하니까. 가창력 좋은 가수가 힘차고 그루브한 휭크 곡을 한다. 한 백 번은 본 광경이잖아? 이 곡이 그거보다 특별한지는 생각해봐야지."
배영웅 매니저가 거기에 한 마디를 얹었다.
"이 곡은 드라마 '명탐정 수녀' 주제가입니다. 권노을 아티스트가 주제가 부르기로 약속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천채왕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아 그래? 그럼 약속이니 넣어야지. 타이틀곡은 어차피 다른 곡이 될 거잖아? 통과."
"넵."
이번 곡은 계약 관계가 걸린, 특수한 노래였다.
그래서 쉽게 앨범 수록이 결정됐다.
하지만 왠지 다른 곡은 그렇게 쉽게 선택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내 예감은 맞았다.
이후로는 10곡을 넘게 듣는 동안 한 곡도 통과가 되지 않았다.
특히 천채왕이 가장 깐깐했다.
대중성 있으면서도 신선하고, 내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노래여야 했다.
"이건 이전에 '슈퍼스타 T'에서 했었던 오리엔탈 발라드야. 일단 보류."
...이런 식이었다.
'이거, 오늘 내로 앨범 수록곡이 다 나오긴 하려나?'
슬슬 걱정될 즈음에 신선한 곡이 드디어 나왔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곡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잔잔한 재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건 비원더의 재호, 환희의 노래가 분명했다.
아이 저스트 워너 비 윗 유~
포에버 아 윌 비 데어 포 유~
가사가 아직 안 나온 모양인지 엉터리 영어 가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에 반해 멜로디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중에서 후렴은 특히 압권이었다.
아이 러브 유~ 아이 러브 유~
아이 캔낫 리브 위드 아웃 유어 러업~
엉터리 영어 가사로도 막을 수 없는 감동이 몰려왔다.
나만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아니었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회의 참석자 모두가 눈을 감고 노래를 느끼고 있었다.
재호와 환희의 곡이 브리지를 넘어서면서 감정이 한층 고조 되었다.
끝도 없이 노래가 전조 되면서 고음의 애드립이 숨 쉴 틈 없이 몰아쳤다.
마지막 애드립 부분에는 나도 모르게 혀를 내두르게 될 정도였다.
재호와 환희의 곡이 끝나자 천채왕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야! 이런 곡이 나와? 재호랑 환희 많이 늘었네!"
키미도 살짝 웃으며 맞장구쳤다.
"좋은데요. 다만, 자기들이 가이드하는 건 반칙 아니에요? '우리가 썼습니다.'라고 광고하는 꼴인데. 이건 블라인드가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노을 군?"
"네, 네에."
천채왕도 머리를 긁적이는 나를 보며 의견을 물었다.
"너는 어땠어?"
나는 솔직한 감상을 먼저 말했다.
"환희가 애쓴 거 같네요."
천채왕이 내 말에 큭큭 웃었다.
"그러게! 노을이 너만 한 음역이 아니다 보니까 마지막 절정은 가성 처리했네. 그래도 '권노을이 부르면 이런 느낌일 겁니다'라는 걸 보여주려고 최대한 노력은 했어. '애쓰긴 했다'랄까? 노을이 네가 부르면 어떻게 될지는 그려졌으니까 성공이지."
키미가 내게 슬쩍 물었다.
"근데요."
"네."
그녀는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돼요?"
나는 잠깐 생각해봤다.
'이 노래의 최 고음은… C5니까...'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키미를 바라보고 답했다.
"네, 됩니다."
"이게… 된다고요? 하, 참...!"
키미가 헛웃음을 날렸다. 천채왕이 내용을 정리했다.
"노을이라면 이 정도는 무조건 가능하지. 그럼 이 노래는 일단 확정한다? 타이틀곡 후보에도 넣어도 될 거 같은데."
다들 천채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비원더 멤버들의 곡의 평이 좋으니 괜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 후에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는 곡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대형 이별 발라드곡부터, 보사노바 리듬의 경쾌한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곡까지, 몇몇 곡이 수록곡으로 선정되었다.
다행히 10곡 정도는 선정이 될 듯했다.
배영웅 실장이 마지막 곡을 재생하기 전 잠시 멈칫했다.
"왜요?"
내가 그를 향해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배영웅이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아, 아닙니다. 좀 특이한 곡이어서요."
천채왕이 손짓으로 재생을 지시했다.
"들려줘요."
"넵."
노래가 나오자마자 회의실 모든 분이 '피식'하고 웃었다.
배영웅 실장이 왜 멈칫했는지 알 것 같았다.
배영웅이 틀은 곡은 그야말로 대놓고 '컨트리' 음악이었다.
강력한 하모니카 소리가 포문을 열었다.
여기에 뚱땅거리는 기타 소리까지 더해지니 여지없는 컨트리 음악이었다.
마지막 후렴의 고음이 끝난 후에는 잔잔한 첼로 소리가 노래를 매듭지었다.
천채왕이 무릎을 탁탁 치며 웃었다.
"야~ 노을이한테 컨트리를 다 줬어? 과감한데? 누구야, 이거?"
배영웅 실장이 말하기를 주저주저했다.
"아… 저..."
천채왕이 계속 말을 이었다.
"누군지 몰라도 강단은 인정해줘야겠는데! 야… 이건 진짜 몰랐다."
사실 나는 이 곡이 좋았다.
전혀 내가 해 본 적 없는 스타일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은근슬쩍 고음을 돋보이게 해주었다.
컨트리에 록발라드 감성이 섞여서 되려 대중적이었다.
나는 그래서 과감하게 내 의견을 피력했다.
"저는 좋은데요. 꼭 미국 노래 같아요."
천채왕도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꼭 미국 시골 온 느낌이더라? 야… 근데 노을이가 이런 노래를 부르면 어떨까? 잘 상상은 안 되네! 한국 대중이 좋아하려나? 하긴 누가 부르냐가 중요하니까..."
천채왕이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고민에 빠졌다.
나도 잠시 곰곰이 생각해봤다.
컨트리는 좀 이색적인 장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에서 히트곡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컨트리라서 성공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컨트리에 딱 붙는 가사, 노래 콘셉트가 좋은 곡이 보통 성공했다.
"가사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툭 던지듯 뱉은 내 말에 천채왕이 거들었다.
"아 그러네. 이 곡은 가사가 중요하겠어. 일단 수록곡 리스트에 넣고 가사 받아줘요."
배영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슬쩍 키미를 봤다.
항상 적극적으로 의견을 공유하던 그녀가 이 곡에서는 유독 조용했다.
그 말은 아마도…
"이거 혹시 키미 작곡가님 곡인가요?"
내 물음에 키미 작곡가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일부러 저 같지 않게 썼는데."
"아무 말이 없으셔서요."
천채왕이 허허 웃었다.
"야~ 네 거였어? 전혀 모르겠던데."
키미는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답했다.
"노을 군이 좀 트로트? 같은 거도 불러보면 좋을 거 같아서요. 트로트를 써봤는데 도저히 안 어울렸어요. 신파가 되더라고요."
천채왕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트로트가 아니라, 컨트리로 빠진 거야?"
"네. 컨트리로 하면 좀 괜찮으니까."
키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건 가사가 좀 중요하겠어. 키미 너도 한번 직접 가사 써봐. 이번에는 네가 썼다는 거 걸리지 말고."
천채왕의 말에 키미가 발끈했다.
"안 걸려요, 선생님! 노을 씨가 워낙 눈치가 빠른 거지!"
천채왕과 키미가 티격태격하는 동안, 나는 서류 더미를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었다.
다음 회의는, 가사 결정 회의였다. A&R 팀장 주도로 오늘 결정된 앨범 수록곡들의 가사를 정하는 회의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이 A&R 팀장은… 사기꾼이었다.
'신이시여 왜 또 이런 시련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