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59화 (159/280)

제159화

"깝치지 마. 너 따위가 될 거 같냐?"

'말이 점점 격해지네?'

재호와 환희가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내가 둘을 막았다.

어차피 패배할 녀석, 조금 으르렁대는 소리 들어도 상관없었다.

그때, 마침 화장실에서 오창선이 들어왔다.

나도, 매니저도, 비원더 3인도 모두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오창선이 내게 물었다.

"뭐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답하자, 환희가 뭐라 말을 하려고 입을 벌렸다.

"저 사람이… 읍!"

내가 황급히 환희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환희에 속삭였다.

'됐어.’

‘하지만, 횽…’

사실 나는 그 누가 뭐라 해도 상관없었다.

노래 실력으로 보여주면 그걸로 됐으니 말이었다.

오창선의 매니저는 그에게 반응하지 않는 나를 찜찜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 * *

오창선의 매니저의 난입 이후, 우리는 산통이 다 깨져서 금방 술자리에서 나왔다.

우리는 배영웅 실장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귀가했다.

배영웅 실장은 언제나처럼 오늘도 음악을 틀어놓고 그에 맞춰 휘파람을 불며 운전했다.

환희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내게 불평했다.

"그 매니저는 뭐예요, 횽? 너무 건방진데 한마디 해야 하는 거 아니에여?"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거기서 내가 뭔 말을 하냐?”

“말조심하라거나..."

웅얼거리는 환희에 내가 차분히 말했다.

"앨범 발매 여부나 앨범 발매 일정을 알려주면 안 되지."

"그냥 쏴줄 수는 있잖아여."

여전히 뚱한 표정을 짓는 환희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런가?"

나는 그보다는 그냥 실력으로 이겨 버리는 게 더 통쾌하지 않나 싶었다.

사실 오창선 선배하고는 좋은 기억뿐이었다.

나는 이전 생에서 오창선 선배의 코러스를 하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회귀한 가수로서 내 경험치의 대부분은 오창선이 알려 준 것이었다.

'그런데 저 매니저는 모르는 얼굴이었어.’

하지만 저 매니저와는 이야기가 달랐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경우가 없었다.

나는 저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도, 멋진 앨범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백미러를 통해 지그시 우리를 바라보던 배영웅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저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악의를 드러내는 건 하수나 하는 거니까요. 게다가, 저희 내일부터도 바쁘니까요. 아시죠?"

"그럼요."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바로 내일이 이스트 웨이브와 녹음을 위해 하와이로 떠나는 날이었다.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재호가 내 팔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말했다.

"오올~ 하와이 가? 부러운데? 나도 한 번쯤 가 보고 싶었거덩."

“그거야 놀러 가는 거지. 이거 출장이야, 출장.”

내가 핀잔주듯 재호에게 말했다.

고작 4일 일정이었다.

첫날과 마지막 날은 가고 오는 시간이고, 녹음 일정을 고려하면 쉴 시간은 아예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환희도 부럽다는 듯 기지개를 켜며 내게 한마디 했다.

"저랑 재호 횽은 종일 녹음실이에여. 바닷바람 쐬고 싶네여."

"그렇게 말하니까 좀 미안하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와이 맥주라도 사 와여, 형."

이왕 다른 멤버들이 바쁘게 작업하는 동안 다녀오는 거니, 꼭 좋은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창선의 정체불명의 매니저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서, 또 나와 함께하는 팀 동료들을 위해서 꼭 이번 하와이 출장을 잘 해내고 싶어졌다.

* * *

비행기 타고 호놀룰루 공항에 착륙했다.

나는 배영웅 실장과 단둘이 단출하게 왔다.

공항에서 한 발짝을 떼자마자 한국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햇빛이 눈을 부시게 했다.

강렬한 태양 빛이 주는 에너지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배영웅 매니저가 크게 하품을 하며 내게 말했다.

“권노을 아티스트님은 진짜 월드 스타 감인 거 같아요."

"왜요?"

난데없는 배영웅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가 말을 이었다.

"비행기 타고 왔다 갔다 하면 시차 적응이 힘든데, 노을 아티스트님은 언제나 말짱하시네요."

이게 다 빠르게 매일 1번씩 휴식을 시켜주는 mp3 덕이었다.

배영웅의 말을 듣고 보니 나는 의외로 이게 글로벌 비전 송 콘테스트와 같은 글로벌 단위의 오디션에서는 경쟁력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헤헤 웃으며 목덜미를 긁었다.

"잠을 잘 자는 편이라서요. 저희 이제 일정 어떻게 되나요?"

"오늘 밤에 첫 미팅이에요. 그때까지는 자유 시간이고요."

가는 날, 오는 날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일정을 비워 놓는 것이 정석이었다.

우리는 그 길에 아무 문제 없이 도착한 덕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그 여유는 곧 짜증으로 변했다.

* * *

PM 16:00

바닷가만 걸어도 그림이었다.

나는 배영웅 매니저와 하염없이 바다를 걸었다.

PM 18:00

우리는 보트가 정박하여 있는 바다 옆에 있는 식당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끝내주는 맛의 피자를 먹었다.

내가 감탄하며 배영웅 매니저에게 말했다.

"하와이에서 나와서 하와이안 피자인가 봐요."

"당연히 그러니까 하와이안 피자겠죠? 파인애플이 끝내주네요.”

배영웅도 연신 감탄하며 열심히 피자를 먹었다.

나도 먹으면서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와이안 피자는 뭔가? 이걸(특히 파인애플을) 허용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파가 갈릴 정도로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었다.

참고로 나는 불호파였다.

하지만 역시나 본국에 오니 맛이 달랐다.

희한하게도 싱싱한 파인애플은 피자와 절묘하게 잘 어울렸다.

"역시 음식은 본고장에서 먹어야 하나 싶네요."

내 말이 약간 엉뚱해 보였는지, 배영웅 매니저가 되물었다.

"왜요?"

"한국에서 하와이안 피자 맛있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었거든요. 하와이는 다르네요."

배영웅이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재료가 싱싱하니까요. 그리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는 하와이라는 장소, 이 맥락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하와이에서 먹는 하와이안 피자는 다른 맛이라면, 미국에서 듣는 미국의 알앤비 음악 또한 전혀 다른 맛일까?'

나는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PM 20:00

벌써 약속 시간이 30분이 넘게 지났다.

배영웅 매니저가 계속해서 이스트 웨이브 측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답변이 없었다.

나는 삐죽 입술을 내민 채로 물을 마셨다.

혹시나 오늘 이스트 웨이브를 만나게 되면 노래를 부를 수도 있으니 술은 금물이었다.

PM 21:00

약속 시간에서 1시간 30분이 지났다.

나는 짜증이 확 나기 시작했다.

배영웅 실장 또한 밤인데도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는 휘파람도 더 이상 불지 않았다.

PM 23:00

"숙소로 가죠."

배영웅 매니저가 입술을 꽉 깨물고는 내게 말했다.

내가 어이없어하며 그에게 물었다.

"무슨 경우죠, 이건?”

"모르겠네요…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그때였다. 카페를 나가려는 우리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노을 퀀인가?"

헐렁헐렁한 청바지에 맨투맨 차림의 흑인 남성이 우리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후드티 차림에 반바지를 입은 이스트 웨이브가 서 있었다.

이스트 웨이브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워~ 왓업? (어때?) 잘 지냈나?"

"......"

4시간 가까이 늦은 놈들이 너무 당당해서 화조차 나지 않았다.

PM 23:30

이스트 웨이브가 우리를 으리으리한 자기 저택으로 데려왔다.

저택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스튜디오였다.

온갖 비싸 보이는 조각이나 장식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저택 곳곳에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이스트 웨이브의 매니저가 강아지 조각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는 이런 거 못 봤지?"

배영웅 매니저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본 적 없네요."

"그야 개를 먹는 애들이, 개로 조각상을 만들 생각을 하겠어?"

그의 말에 배영웅이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나도 기분이 상했다. 아무리 팝 가수라지만 너무 우리를 무시했다.

녹음실에 들어가자, 이스트 웨이브가 손짓으로 매니저들을 내보냈다.

그러고는 내게 말했다.

"말 들었어. 원래 약속 시간이 지금이 아니라며?"

나는 무표정으로 그에게 답했다.

"좀 많이 늦었죠."

이스트 웨이브가 두 손바닥을 붙이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미안해. 매니저가 시간을 이상하게 매니지했네."

"앞으로는 이스트 웨이브랑 직접 시간 약속을 꼭 해야겠어요."

내 말에 이스트 웨이브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 핸드폰도 없어."

그 말에 내 눈은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핸드폰이 없다고요?"

"너무 바빠. 게다가 매니저가 다 해주는데 뭐가 필요해?"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이스트 웨이브가 어이없던 나는 말 없이 그를 한참 쳐다봤다.

'이게 팝스타란 건가? 너무 바쁘고, 언제나 누군가 수족처럼 도와주는 사람이 붙어있어서 자기 핸드폰조차 없는?'

왠지, 팝스타라는 존재가 나랑 별로 안 맞을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사실 상관없었다. 개인적으로 이스트 웨이브와 친해질 필요는 없었으니까.

대신 그와 음악적인 교감만 있으면 됐다.

"뭐 좋아요. 그럼 일단 곡부터 들어보죠.”

"시간이 없어. 두 시간 안에 녹음 가능해?”

내 눈은 또다시 튀어나올 기세로 커졌다.

"두 시간이요? 두 시간이면 비트 선택하기도 빠듯할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게 이스트 웨이브가 차분히 말했다.

"매니저가 오늘 새벽 2시까지만 시간 잡아뒀거든. 그게 끝이야."

"그게 끝이라고요?"

"응, 그게 전부야. (That’s all). 그거면 될 거라는데?"

이스트 웨이브는 다시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그걸로 작업이 안 되잖아요."

"안되지."

내 말에 맞장구만 치고 대책은 내놓지 않는 그가 너무 답답해진 나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바꿔야겠죠?"

"매니저가 아무래도 너희가 동양인이라 좀 우습게 보나 본대."

어이가 없었다. 매니저가 자기 권한으로 소속 가수보다 앞서서 인종 차별을 한다는 뜻 아닌가?

"그걸 그냥 놔둬요? 작업하기로 했잖아요. 그러면 제대로 해야죠."

살짝 격양된 내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이스트 웨이브는 차분히 답했다.

"네가 맞아. (You’re right.) 그래도 저 친구, 좋은 친구야.”

'함부로 사람 무시하는 놈이 퍽이나. 너한테나 좋겠지.’

아무튼 나는 그냥 꾹 참고 이스트 웨이브 입장에서 말을 들었다.

이스트 웨이브는 한 마디로, 뭐라고 자기가 하면 권노을이 우스워진다는 처지이었다.

그보다는 매니저가 권노을을 자신과 대등한 아티스트로 인정하게 만드는 게 더 좋은 방법이라 말했다.

그 방법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스트 웨이브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하지만 네 노래만 들으면 저 친구도 바뀔 거야. 나도 그랬으니까. 예스, 예스, 올! 뭐 보여줄 거 없어?"

"갑자기 보여줄 게 있냐고 하면..."

나는 그렇게 말끝을 흐리며 생각하다가, 순간 머릿속에 뭔가 번뜩이는 게 있었다.

이스트 웨이브에 내가 호기롭게 말했다.

“당신 매니저 오라고 해요. 녹음실에서 제가 노래하는 거 똑똑히 들려줄 테니까."

* * *

곧 녹음실에 이스트 웨이브의 매니저와 배영웅 실장이 들어왔다.

배영웅 실장은 계속된 푸대접에 지쳤는지 입술을 앙다물고 있었다.

이스트 웨이브가 자기 매니저에게 말했다.

"요, 저기서 닥치고 이 곡 좀 들어봐."

이스트 웨이브의 매니저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의 말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이스트 웨이브가 엔지니어에게 지시했다.

"틀어 봐."

이스트 웨이브의 초창기 히트곡 '철조망 너머로'가 흘러나왔다.

과거 소울 알앤비 히트곡인 '벽 너머로'를 샘플링해서, 자신이 철조망과 같은 고난을 넘어서 무엇이든 이겨내겠다는 결심을 담은 노래였다.

원곡은 이스트 웨이브의 랩 곡이었다.

대신 '벽 너머로'의 후렴구를 샘플링해서 빠른 비트에, 피치를 잔뜩 올려서 집어넣었다.

'이 원곡은 랩이라 도저히 내가 잘 부를 수가 없어. 그럴 필요도 없지.'

내가 부를 부분은 다른 곳이었다.

나는 후렴에 이스트 웨이브가 샘플링했던 부분을 불렀다.

벽을 너머.

그곳에 네가 있을 거야.

제아무리 폭풍우가 불어도

아무도 손잡지 않아도

내가 곁에 있을게

무엇이 있더라도

폭풍우를 넘어

벽을 넘어서라도

"댕! (Dang!)”

이스트 웨이브의 매니저가 깜짝 놀라 의자에서 떨어졌다.

이스트 웨이브도 놀란 듯 '워호호!’하는 탄식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오로지 미동도 안 하는 건 배영웅 실장뿐이었다.

그야 그는 내 노래를 매일 듣고 있었으니, 마음이 흔들릴 리가 없었다.

녹음이 끝나고, 매니저에게 이스트 웨이브가 슬쩍 말했다.

"토니."

토니라는 이름의 매니저가 대답했다.

“예, 써. (Yes, sir)"

“이 친구랑 나, 두 시간 작업으론 부족할 거 같은데."

"......"

토니가 잠자코 있더니 이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내가 이스트 웨이브에 물었다.

"열 받아서 나간 거예요? 나랑 작업 더 해야 한다고 해서?"

"쉬! (Shh!) 그 정도 친군 아냐. 좀 기다려봐."

이스트 웨이브는 씨익 웃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토니가 녹음실로 돌아와 이스트 웨이브에 말했다.

“내일하고 모레, 시간 비워놨어. 마음껏 작업해."

이스트 웨이브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댓츠 마 보이! (That’s my boy!) 하면 되잖아, 짜샤."

토니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이, 쿨 뽀이(Cool boy)."

"아, 저요?"

토니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죽여주는 노래였다. 킬링 보이스야 킬링 보이스."

"...!"

토니는 당황하는 나를 보며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노래를 듣는데 하늘에서 돈이 내리더구만, 캐시로. 캐시 많이 나오는 녹음 부탁해."

그러면서 토니는 엄지를 척, 세워 보였다.

뜻밖에 배포는 좀 있는 편인 친구였다.

그 덕분에, 다행히도 녹음이 좀 수월해질 것 같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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