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56화 (156/280)

제156화

나는 갑작스러운 천채왕의 칭찬에 얼떨떨했다.

“제가 뭘 했나요?"

내 질문에 천채왕이 파하하 웃었다.

"아~~~ 요 귀여운 놈! 잘난 걸 모르니까 더 이쁘네.”

'아니! 그러니까 뭐가 잘났냐고요..."

천채왕이 해양 심층수 한 잔을 다 마시더니, 눈을 옆으로 돌려 창문을 쳐다보며 말했다.

“글로벌 비전 송 콘테스트 참가 요청, 그거 아무나 받는 거 아니야."

"누구나 참여 가능한 거 아닌가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천채왕은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참여야 가능할 수도 있지.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버려져. 이런 오디션 프로에는 두 종류의 참가자가 있어. 하나는 자발적으로 온 참가자. 이런 참가자는 간혹 진주가 발견되긴 해. 슈퍼스타 T에서 노을이 너처럼."

나는 잽싸게 고개를 숙였다.

"아유, 감사합니다."

천채왕이 손사래를 쳤다.

"야, 이제 그런 거 됐어! 우리 사이에. 여튼 하지만 진주가 나온다는 건 뭐야? 대부분 펄이란 뜻이야. 아무래도 심사위원이 집중도 덜 하지. 잘 될 확률도, 좋은 사람이 있을 확률도 많이 낮아. 두 번째 참가자는 뭘 거 같아?"

나는 잠깐 생각했다. 사실 짐작은 갔다. 재호의 사례가 있으니 말이었다.

"미리 섭외 받은… 참가자인가요?”

원재호는 이미 잘생기고 작곡 능력도 되는 명문대 학생 가수로 상당히 유명했었다.

슈퍼스타 T 참가 전, 작가가 직접 연락해서 그를 섭외했었다.

덕분에 재호는 처음 예선부터 심사위원의 주목을 받고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주최 측에서 재호에게 점수를 더 주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치열한 오디션 현장에서 한 번이라도 더 관심을 받는 건 엄청난 메리트였다.

천채왕은 그 두 참가자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바로 그거야. 섭외 받은 참가자. 섭외 받은 참가자는 아무래도 관심이 가기 마련이지. 실제로 실력이 더 뛰어난 경우도 많고. 사실 대다수 오디션에서 상위권 참가자는 대개 이미 제작진이 데려온 사람들이야. 아무래도 실력도 다르고 입장도 다르니까.”

"그렇군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를 보며 천채왕이 말을 이었다.

"솔직히 한국 오디션이면야, 한국은 좁으니까 그 차이가 별거 아닐 수 있어. 한 다리 건너면 음악계는 다 알거든. 누가 잘났는지 아닌지, 딱히 제작진의 눈도장을 미리 받지 않아도 금방 알려지긴 해. 노을이 너도, 솔직히 처음 예선 때 지현이… 그러니까 베이비 심사위원이 첫 예선에서 널 본 다음에는 음악계에 싹 소문이 퍼져서, 이미 이 바닥에서 모르는 애가 없었어."

나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였다.

"그랬나요?”

내가 흠, 하며 묻자 천채왕은 유난스럽게 말이 빨라졌다.

"그럼! 소문 다 나지. 근데 글로벌 비전은 좀 달라. 이건 무대가 전 세계란 말이야! 심사위원들이 전 세계의 가수 참가자들을 어떻게 알아! 심지어 글로벌 비전은 막 20년 차 가수도 신인의 마음으로 참여해서 우승하기도 하는 그런 대회인데! 아무도 모르지."

"아… 명성이 알려지기가 어렵겠네요. 무슨 미국 팝가수 이런 정도 아니면."

호들갑스러운 천채왕과는 달리 나는 생각보다 더 무덤덤했다.

천채왕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팝가수도 빌보드 상위권 가수 아니면 어렵지. 그러니까! 이런 건 초반에 섭외를 받는 게 중요한 거야. 미리 눈도장을 찍어놔야 전 세계 심사위원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받을 수 있으니까. 아니면 그냥 구색 갖추기지. 솔직히 동양 가수에 누가 관심이 있겠냐?”

2006년만 해도 그런 시대였다.

“그렇겠네요."

"근데 노을이 네가! 섭외를 받은 거야. 글로벌 비전에! 야~ 이건 진짜 미친 거지. 동양 가수 중에 이런 가수가 인류 역사상 있었을까?"

응?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나는 천채왕의 말을 막고 물었다.

"잠시만요, 제가요?"

"재호가 그 이야기 안 해줬어?"

"뭘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천채왕이 호탕하게 웃었다.

"야, 재호 걔가 은근히 유머 감각이 있네. 아니면 살짝 질투한 건가, 하하하!"

천채왕이 내게 우리의 글로벌 비전 섭외 제안의 뒷이야기를 알려 주었다.

사실 이스트 웨이브가 재호를 부른 것은 '킹 오브 싱어'에서 나를 봤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거기에서 이스트 웨이브는 심사위원으로 참여, 내 노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이후에 그는 내가 발표한 모든 곡을 들어봤다.

당연히 나는 솔로 가수가 아니기에 그 모든 곡들은 '비원더'의 곡들이었다.

비원더의 곡을 들었던 이스트 웨이브는 곡의 프로듀싱에도 흥미를 느껴 프로듀서로서 재호를 초대했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스트 웨이브는 권노을은 동양의 소국 한국에만 갇혀 있기는 아까운 보컬리스트라며, 자신이 미국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글로벌 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여를 제안했던 것이었다.

"...아마 글로벌 비전에 섭외된 건 동양인 중에 너희들이 최초일 거다.”

"그렇게까지 대단한 거였군요.”

다소 차분하게 답한 나와는 달리, 천채왕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말도 안 되는 거지. 노을이 네가 이런 기회를 물어왔는데, 나도 밀어줘야지. 한번 잡아 보자!"

"기회를... 잡나요? 어떻게요?"

천채왕은 내 질문에 답하지 않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자, 일단 얘들 좀 깨워라. 같이 이야기하자."

* * *

내가 사람들을 깨우는 동안, 천채왕은 직접 아침을 준비했다.

사실 요리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제법 능숙하게 자신이 가져온 재료들을 썰어서 토마토 샐러드를 만들었다.

여기에, 본인이 직접 가져온 갓 구운 듯한 빵과 데운 트러플 크림 수프를 곁들였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나오는 아침이었다.

"자자, 해장해, 해장해. 뭐 이리 많이 마셨어."

천채왕의 권유로 멤버들이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다.

심지어 항상 적게 음식을 먹던 문루아조차 천채왕 표 샐러드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맛있게 먹었다.

과연, 직접 먹어본 천채왕의 음식은 깜짝 놀랄 맛이었다.

내가 활짝 웃으며 천채왕에게 말했다.

"너무 맛있네요."

천채왕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가 요리는 못 하는데, 재료는 기가 막히게 찾지. 이게 말이야, 얼마나 좋은 올리브유냐면…"

문루아가 그의 말을 확 끊었다.

"선생님, 하실 말씀 있어서 오신 거 아니에요?"

“아, 맞어 맞어! 아, 나 오늘 오후에도 회의하러 가야 하는데. 고맙다, 루아야.”

어째 천채왕과 친한 여가수들은 죄다 천채왕의 건강 관련 TMI를 끊는 노하우를 습득한 모양이었다.

식사하는 우리를 두고 천채왕이 서서히 말을 시작했다.

“이제 곧, 비원더가 '글로벌 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가할 거야. 아직 일정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올해 안에 예선은 완료해야 하니까. 기껏해야 3개월도 안 남았어."

배영웅이 달력을 보여주며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7월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천채왕이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메시지는 딱 하나였다.

“우리 멤버 모두의 레벨업이 필요해.”

사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미국에 가서, 공연을 보고 또 보컬 트레이너를 만나보고 든 생각이었다.

나의 보컬 실력 그 자체로는 '글로벌 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해볼 만할지 몰랐다.

하지만 세계 시장은 또 다른 세계 시장의 법칙이 있었다.

가요와는 달랐다. 적응이 필요했다.

그리고 또 하나가 필요했다.

그것은…

천채왕의 입에서 나왔다.

"실탄이 필요해.”

환희가 눈이 동그래져서 질문했다.

"실탄이여? 총알?”

천채왕이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여기서 실탄이라고 하면 자작곡을 말하는 거야, 자작곡. 꼭 우리가 쓸 필요는 없지만, 비원더 이름으로 된, 비원더의 곡이 훨씬 많이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해. 글로벌 비전 콘테스트에 일단 참여하면, 무대를 끝도 없이 해야 하거든. 그때 곡을 새로 준비하면 늦어. 미리 곡과 무대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야겠지."

재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천채왕에게 동의했다.

"그렇네요. 상황에 맞춰서 다시 짜더라도, 기본적인 틀은 이미 있는 곡에서 해야지 경쟁력이 있겠구요."

지켜보던 배영웅 매니저가 은근슬쩍 말을 덧붙였다.

"사실 저희, 이제부터 콘서트도 하고 행사도 많이 뛸 생각이었어요. 광고 촬영도 좀 하고요. TYB도 사업이니까요. 음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니 이제 수익을 위해 달려야 하는데.”

환희가 고개를 비죽 내밀며 되물었다.

"는데?"

배영웅 대신 말을 이은 것은 천채왕이었다.

"'글로벌 비전 송 콘테스트', 이건 4년에 한 번 있는 축제야. 한국 가수는 참가도 한 번도 못 해봤고. 근데 여기서 제 발로 우리한테 나와보라 그랬어. 세계 최고의 가수가 될 기회가 왔는데, 그까짓 광고가 대수냐? 가는 거야, 그냥! 지금부터는 미친 듯이 곡만 써! 한 3개월 정도."

천채왕의 말을 들은 재호와 환희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도 되나?’는 표정이었다.

천채왕이 차분하게 물을 마시면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방송도 할 거야. 가끔 콘서트도 해야지. 그래야 에너지 충전이 되지. 다만, 수익 활동보다는 음악 작업 위주로 하겠다는 거야. 재호랑 환희, 너희들은 우리 회사 프로듀서들이랑 당분간 같이 곡 작업해. 세계 최고로 만들어 줄 테니까. 나랑 키미한테 곡 검사받고.”

옆에서 듣기만 해도 빡세 보였다.

하지만 이미 목표가 생긴 재호와 환희는 불편하기보다는 불타오르는 듯했다.

“넵."

"알겠습니다."

그렇게 답하는 그들의 눈빛이 제법 비장했다.

문제는... 나였다.

"저… 저는 뭘 하나요?"

나는 살짝 초라하게 어깨를 움츠리며 손을 들고 질문했다.

나는 창작자가 아니었다. 그럼 나는 뭘 해야 하는지, 그게 애매했다.

천채왕이 슬며시 웃으며 내게 말했다.

“재호랑 환희의 첫 프로젝트가 뭘 거 같아?"

나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노을이 네 솔로 앨범이야. 솔로 가수 활동 한 번 해봐. 노을이 너는 뭐, 노래로는 누가 알려줄 게 없는데, 그래도 솔로 가수는 팀과 다르잖아?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노래 경험을 쌓는 셈이 되겠지. 보컬 트레이너도 이제는 최고로 붙여줄게, 연습 꾸준히 하고. 푹 쉬고."

"네, 네.”

나는 비장하게 답했다. 천채왕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노을이 너 정도면 누가 가르쳐줄 건 없어. 뭘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노래에 나쁜 행동을 하지 마. 너무 놀지 말고. 너무 술 많이 마시지 말고, 오늘처럼."

‘오늘처럼' 이란 말에서 천채왕의 눈빛이 잠깐 번득였다.

"네에…"

천채왕이 그의 눈빛에 기죽은 나를 보며 살짝 미소 짓고는, 장난스럽게 문루아에게 말했다.

"루아 네가 만취도 하니? 대체 다들 얼마나 마신 거야."

환희가 무심코 대답했다.

"루아 누나는 한 모금도 안 마셔써여. 왜냐면 노을 횽이... 읍!"

문루아가 황급히 환희의 입을 막아 버렸다.

"시끄러워요!”

천채왕이 눈을 끔뻑거리며 말했다.

"야, 뭐 어떻게 된 거야, 말을 해야지.”

문루아가 천채왕의 말을 다급하게 끊었다.

"선생님, 이제 가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차 금방 막힐 텐데요.”

"야야, 늦으면 헬기 부르지 뭐.”

어깨를 으쓱이며 답하는 천채왕에게 문루아는 지지 않았다.

"선생님, 그러다가 항공사고나요.”

천채왕과 문루아가 얼마나 친한지 틱틱거리는 말싸움만 보고도 느껴졌다.

슬슬 천채왕이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부탁을 할 차례였다. 천채왕에게 내가 말을 걸었다.

"선생님.”

"어, 왜?”

나를 향해 돌아서는 천채왕에게 조심스럽게 하고 싶은 얘기를 꺼냈다.

“저 솔로 앨범 만들면요."

“어, 그래. 뭐 녹음 한 달 만에 빨리 쳐버리고 3개월 이내에 앨범 내지 뭐. 왜?"

나는 쭈뼛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딱 하나, 부탁이 있습니다."

* * *

뉴욕의 한 고층빌딩 펜트하우스. 이스트 웨이브의 수많은 작업실 중 하나였다.

수많은 여배우와 데이트를 즐기던 그였지만 음악에는 진지했다.

그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스튜디오에 나와 전 세계 프로듀서들이 보내준 작업물을 확인하고, 그중 자신과 일해봄 직한 프로듀서를 연락하는데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보통 별 소득은 없었지만 말이었다.

"댕(Dang)! 오늘도 프레쉬한 친구는 없었군. 이거 요즘 점점 뻔한 놈들만 늘어난단 말이야.”

이스트 웨이브는 최근에 노래에 감동한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할 정도였다.

‘그 동양의 작은 나라에… 그 친구 노래를 들었을 때, 최근에는 그 정도인가?’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고 숙소로 돌아가려던 차에, 매니저가 이스트 웨이브를 호출했다.

"뭐야?"

“소속사를 통해서 노을 권이 연락해 왔습니다."

매니저가 전한 소식에 이스트 웨이브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 그래에? (Right?)”

이스트 웨이트가 씨이익 미소를 지었다.

다시 그의 심장이 음악에 대한 흥분으로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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