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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가왕-151화 (151/280)

제151화

다음 날, 나는 문루아 일행과 함께 채승아의 프라이빗 비치에 방문했다.

채승아의 프라이빗 비치는 남태평양 어딘가에 자리한 섬에 있었다.

그 섬은 비행기를 타고 괌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 무려 채승아 가족 소유의 경비행기를 타고 1시간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섬이었다.

나는 경비행기 안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을 스쳐 가는 풍경이 낯설었다. 문루아가 내게 물었다.

"어때요?"

나는 최대한 놀라움을 감추며 답했다.

“이런 건 처음이네요. 가는 데만 반나절은 걸리는 곳으로 휴가를 가다니."

문루아가 슬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조용하고 좋아요."

경비행기가 착륙하자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였다.

어찌나 깨끗한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세상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역시 부자는 뭔가 달랐다.

단순히 해변만 갖고 있는 게 아니었다.

채승아의 가족은 건물 5~6개가 딸린 초대형 저택에, 요트까지 가지고 있었다.

사실상 그들 전용 호텔을 가진 셈이었다.

게다가 정원에 있는 식물만 해도 차원이 달랐다.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식물로 가득했다.

정말이지 남국 어딘가에 왔구나 싶은 느낌이었다.

감탄을 금치 못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내게 문루아가 물었다.

"어때요?"

"건물 안에만 있어도 좋겠네요."

여전히 두리번거리며 답하는 내게 문루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바다에 가야죠. 바로 옆인데요. 저는 여기 오면 온종일 수영만 해요.”

"음… 저도 해야 할까요?"

나는 사실 딱히 수영에 취미가 없었다.

수영은 생존을 위해서만 하는 타입이었다.

해변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가져온 MP3 플레이어로 세르지오 멘데스 음악을 들으면 그걸로 행복했다.

문루아가 내게 쿠쿡 웃으며 말했다.

“저는 괜찮은데, 승아는 안 괜찮을걸요! 자기 집에 와서 수영 안 하는 사람은 못 참는다며 직원 시켜서 바다에 던져 버릴 텐데."

그 얘기를 듣고 당황한 나는 말끝을 흐렸다.

"아니 저는 수영복도 안 가져왔는데 그건 좀…”

그때였다. 어디선가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루아, 너 또 이상한 소리 하고 있지!"

어디선가 드라마에서 본 듯한 여성이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바로 그녀가 채승아 배우였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건네자, 채승아는 반갑게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권노을 님! 아이고! 팬이에요! 으, 아니! 수영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뭐 억지로 시키고 그런 무서운 사람 아니에요. 루아, 너!"

채승아가 문루아에게 레이저 눈빛을 쐈다. 문루아가 핏핏거렸다.

“웃겨~. 쟤 노을 씨 팬이라서 저러는 거예요. 일반 손님은 얄짤없어요."

채승아가 짜증을 팍 냈다.

"아 쫌! 노을 님, 걱정하지 말고 내 집이다~ 생각하고 쉬다 가세요."

채승아의 말에 나는 휴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이곳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고 보니 궁금한 점이 있었다.

"저… 승아 배우님? 이라고 해야 할까요?"

채승아가 내 물음에 넉살 좋게 답했다.

"에이! 편하게 누나라고 불러요."

"네… 누, 누나, 제 팬이라고 들었는데… 무엇 때문에 제 팬이 되신 건가요? 가수는 세상에 많고 많은데요."

생각보다 상당히 털털한 그녀에게 내가 어색하게 묻자, 채승아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디션 보면서 감동했어요. 과체중을 극복했잖아요."

"아…”

"저도 키가 커서, 배우 일 시작할 때 좀 대접을 못 받았어요. 하던 발레도 키가 너무 크다고 그만둬야 했고요. 그래서 남 같지 않았어요. 그런 사람이 노래 하나로 다 설득해 버리고! 가수가 된다니, 그거 멋지던데요!”

흥분한 채승아의 칭찬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아… 감사합니다."

갑자기 채승아가 벽을 탕탕 치더니, 내게 맥주병을 마이크 대신 건네며 말했다.

“노래 하나만 불러줘요! 그게 우리 집 숙박비야!”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나는 맥주병 마이크를 받아서 들고 채승아에게 물었다.

"하하… 알겠습니다. 얼마든지 불러 드려야죠. 뭐 부를까요?"

"저는 원래 팝송만 들어서. 'Just Come'이 좋던데요?"

"그거 부르겠습니다."

우리 둘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문루아가 채승아에게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언니, 영어 까막눈이면서 웬 팝송?"

채승아가 입가에는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째려보며 문루아에게 반격했다.

"야, 너 입 다물어! 이거시 영어 좀 잘한다고~."

“자자, 진정하시고! 그럼 'Just Come' 부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문루아와 채승아 사이에 일어날 뻔한 화재를 진압하고 미리 재호에게 빌린 우쿨렐레로 간단하게 반주로 삼아 노래를 시작했다.

그렇게 남국의 작은 섬에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미니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 * *

미니 콘서트가 끝나자 내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왔군!'

뒤를 돌아보니 채승아의 부모님이 서 있었다.

내 계획에서 그들은 중요한 사람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채승아의 아버지인 채민환이었다.

그는 굴지의 건설 대기업 사장이자 지금 내가 묵고 있는 이 프라이빗 비치의 주인이었다.

나는 이 사람과 힘을 합쳐서 소인중을 무너뜨릴 계획이었다.

채민환이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어어~. 너무 노래 잘하네! 누구시죠?"

채승아가 밝게 웃으며 그녀의 아버지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미 채민환과 잘 아는 사이인 문루아의 후배이자, 채승아 본인이 좋아하는 가수인 권노을이라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기 결혼식에 축가 가수로 섭외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 듣고 나서 채민환이 흐뭇한 듯 나와 악수하며 작별 인사를 전했다.

"어어~. 좋네. 이렇게 노래 잘하는 친구가 결혼식에서 축가를 해주면 좋지. 언제까지 있어요?"

나는 덤덤하게 채민환에게 답했다.

"내일모레 돌아갈 예정입니다."

"가기 전에! 내일 커피나 한잔하죠, 어때요?"

"네네, 좋습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럼 내일 오후 2시에 내 방으로 와요. 내 방은 저 옆 건물에 있으니까."

"네넵."

그렇게 대답하고 나는 채민환을 향해 넙죽 고개를 숙였다.

나도 모르게 싱긋 웃음이 나왔다.

다행히 쉽게 채민환과 만날 계획을 잡을 수 있었다.

이제 내 계획을 그대로 실행하기만 하면 됐다.

* * *

그 뒤로 나는 채승아, 문루아와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문루아와 채승아는 하루 종일 수영을 하며 보냈다.

문루아는 술 한 모금 먹지 않았고, 채승아는 수영을 하지 않을 때마다 틈틈이 술을 마셨다.

둘은 맨정신과 취기 사이의 갭을 극복하고 정답게 이야기했다.

그 모습은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다음날은 오전에 일어나자마자 나와 문루아, 채승아 모두 아침 루틴을 끝냈다.

역시나 채승아도 프로는 프로였다.

그녀 혼자서만 독주를 마셨음에도 다음날 우리처럼 일찍 일어나 요가, 발레 등의 스케줄을 문루아와 빈틈없이 소화했다.

우리 셋 모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각자 루틴을 끝내고 나니 벌써 점심을 먹을 차례였다.

채승아 집안의 요리사가 만들어준 바비큐 요리를 셋이 함께 먹었다.

문루아는 식단 관리를 위해 먹지 않겠다며 샐러드 한 접시를 비우더니 바로 수영하러 가버렸다.

채승아와 단둘이 남은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두 분 어제 계속 발코니에서 바다 보면서 이야기하시던데. 언제까지 하신 거예요?"

채승아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몰라요! 히힛. 나만 개많이 마셨어."

채승아는 정말 붙임성이 좋았다. 알게 된 지 하루 만에 나와 말을 놓았다.

사실 나보다 나이가 여섯 살이나 많으니 반말을 하는 게 내게도 편하긴 했다.

"문루아 선배는 안 마셨죠?"

내 질문에 채승아는 코를 찡긋하며 답했다.

"그래요! 걔는 너무 깍쟁이야. 기집애가 어떻게 한 모금도 안 마시냐."

"두 분은 어떻게 친해지신 건가요?"

내 질문이 뜬금없었는지, 채승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그러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채승아에게 나는 쭈뼛거리며 말했다.

"두 분이 직업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신 거 같은데, 어떻게 두 분이 친구가 되셨나 해서요."

"아 그거? 별거 아니에요."

채승아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문루아는 아시아 스타가 된 후 슬럼프를 겪었다.

당시의 문루아는 다른 진로를 알아볼까 싶어 드라마 스쿨에 갔다.

그리고 문루아는 거기서 배우 훈련을 정기적으로 받고 있던 채승아를 만난 것이다.

채승아는 해맑게 웃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 루아는 여자 연예인 같지 않던데? 막 뷰티 팁도 공유해주고, 쓰는 화장품도 막 다 알려주고. 그런 점에 반했어요."

내가 의아하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 거 원래 공유 안 하나요?"

"여배우들은 절대 안 하죠."

하긴, 나도 나랑 친한 비원더 멤버 말고는 노래 팁을 굳이 공유하지 않는데, 그거랑 비슷한 건가 싶었다.

잠자코 밥을 먹는 내게 채승아가 물었다.

"축가, 해줄 거예요? 아빠한테는 노을 씨가 해준다는 거처럼 말하긴 했는데, 사실 나한테 확답은 안 줬잖아요."

나는 그녀의 질문에 일부러 살짝 생각하는 척 뜸을 들였다.

그러고는 차분히 대답했다.

"해 드려야죠."

“와! 대박! 진짜 꼭 해줘요."

손뼉 치며 좋아하는 채승아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말을 꺼냈다.

“다만… 문루아 선배에게 들었습니다. 결혼하는 분이… 소인중 대표라고요?"

채승아는 무심하게 빵을 집어 먹고는, 오렌지 주스를 들이켜며 내 질문에 대답했다.

"네, 맞아요."

“게다가 실례지만… 그분 평판이 안 좋은 걸 문루아 선배가 다 이야기 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무덤덤하게 나를 바라보며 대답하는 채승아에게 내가 물었다.

"근데도 결혼하시나요?"

사실 소인중에 대한 진실은 오늘 밤, 신부 채승아의 부모님이 오면 그때 밝힐 예정이었다.

소인중의 꼬리를 잡으려면 채승아만으로는 부족했다.

내겐 재벌인 채승아 아버지의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전에 채승아가 왜 이 결혼을 하려 하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왜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아니 사실, 보통 일반 여배우라면 '팔자를 고치려고' 부자랑 결혼하려 하는가 싶을 수도 있어요. 저는 그걸 나쁘다고 보진 않아요. 선한 돈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 저도 알고 있고. 돈을 보고 결혼할 수도 있죠. 성격도 조건이고 외모도 조건인 것처럼 돈도 조건인걸요! 돈 보고 결혼하는 게 더 나쁘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냉정하네!”

털털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채승아를 보며 당황한 기색을 띠며 내가 말했다.

"그, 그런가요? 여튼, 하지만 채승아 님은 소인중보다 훠얼씬 부자란 말이죠. 능력 때문은 아니란 건데, 그럼 사실 잘 모르겠어요. 왜 그런 위험한 사람이랑 만나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소인중 씨 멋지잖아요! 유능하고, 시원시원하고."

너무나 해맑은 미소로 그렇게 답하는 채승아를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소인중이 멋지다고? 시원시원하다고?'

온갖 쌍욕이 머릿속에서 튀어나왔지만 일단 간신히 참았다.

지금은 일단 그럴 때가 아니었다. 나는 채승아에게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했다.

“저도 활동하면서 소인중 대표와 부딪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채승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이야기는 루아에게 들었어요."

나는 조심조심 단어를 고르며 축가를 부르겠다는 승낙을 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하루 봤지만 승아 누나 너무 멋있어요. 승아 누나 결혼식에는 꼭 축가 불러 드릴게요."

"와아, 대박! 고마워!"

양손을 얼굴 옆으로 들고 흔들며 좋아하는 채승아를 보며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 결혼, 소인중이랑은 안 하게 될 거지만요.'

아무튼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 * *

점심 식사가 끝나고, 문루아와 채승아가 수영하러 간 사이 나는 커피를 마시러 채민환의 방으로 갔다.

"어어, 들어와요.”

나는 정중히 그에게 인사하고 방에 들어갔다.

자기 방에 앉아 있는 채민환은 작은 체구지만 단단해 보였다.

깔끔한 흰 골프복 차림에, 고령이지만 아직까지도 몸이 탄탄했다.

설렁설렁 편한 노인처럼 보였지만 속에는 건설사 회장다운 노회함이 느껴졌다.

그런 채민환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이 사람과는 조심해서 대화해야 한다고 직감했다.

'뭐 그래도, 자기 딸 지켜주겠다는데, 화내는 사람이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차분히 자리에 앉았다.

직원이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코코넛 오일이 들어가 있어 몸이 따뜻해지는 커피였다.

커피를 마시면서 채민환 대표가 말했다.

"노을 씨는 참 잘 나가던데, 맞죠? TYB 소속이라고."

"맞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채민환은 말을 이었다.

"천채왕 회장하고 좀 알아요. 몇 번 일을 같이했어요. 리조트 개발 관련해서."

"그러셨군요."

천채왕은 이전부터 'TYB 놀이공원'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었다.

그런 그가 건설사 회장과 친하게 지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잠깐, 그런데 천채왕을 안다는 건 소인중도 안다는 뜻 아니야?'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채민환을 슬쩍 떠봤다.

"그… 따님과 결혼하시는 소인중 대표 말입니다.”

딸깍.

갑자기 채민환 대표가 커피를 마시던 손을 멈추고 머그잔을 다시 탁자에 뒀다.

"네?”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나는 잠시 당황하며 조심스럽게 채민환에게 물었다.

"그… 그분에 대해서 좀 아시나요?"

채민환이 갑자기 상체를 주욱 빼고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약간 과장하자면 코가 닿을 정도였다.

"... 잘 몰라요. 혹시 알고 있는 게 있나요? 있으면 꼭 말해 줬으면 좋겠는데."

얼굴을 갑자기 들이민 것 치고는 채민환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온 에너지는 범상치가 않았다.

'뭐, 말해달라는 건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드디어 채민환에게 소인중의 진실을 알려 줄 차례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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