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가왕-148화 (148/280)

제148화

천채왕의 사무실.

사무실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면 천채왕은 누구보다 일찍 사무실에 왔다.

새벽 시간이 가장 집중하기 좋기 때문이었다.

여름에도 해가 뜨지 않는 5시 즈음이 그가 집중하기에 최적의 시간이었다.

요새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역시 비원더였다.

생각보다 빠르게 아시아에서 반응이 오고 있었다.

특히 권노을이 보물이었다. 성장이 정체될 만하면 끊임없이 권노을이 뭔가를 해냈다.

권노을은 이번에도 ‘킹 오브 싱어' 우승으로 슬슬 활동을 마무리하던 비원더를 대한민국 관심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쭉쭉 넘어가다 보면 아시아 최고 가수 정도는 생각보다 빠르게 해낼 수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딱 하나 문제가 있지.'

천채왕이 노트를 꺼냈다. 그는 만년필로 '소인중' 세 글자를 적었다.

요새 소인중의 행동이 슬슬 도를 넘고 있었다.

그는 아시아 전역에서 TYB의 활동을 방해했다.

중화권 스타 에이전트라는 권력을 사용해서 TYB 소속 가수의 방송 출연을 막는 갑질부터, 앨범 홍보 사재기까지, 실로 다양한 방식으로 TYB를 괴롭혔다.

더욱 걱정스러운 건 그의 행태였다.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소인중이 매주 주말마다 동남아에서 섬을 빌려 약에 취한 채 광란의 파티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또한 그가 떳떳하지 못한 인맥을 늘려서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루머도 있었다.

아시아 전역에서 소인중이 좀 과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워낙 그가 탄탄한 연예계 인맥을 가진 덕에 누구도 함부로 맞서지 못했다.

한국 가요계의 제왕인 천채왕조차, 소인중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정도가 다였다.

그와 전쟁을 벌이기에는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대로 두기에는 천채왕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컸다.

"뭔가 방법이 없으려나..."

혼잣말하며 천채왕이 창문 바깥을 바라봤다.

사무실에서는 한강이 보였다. 서서히 해가 뜨고 있었다.

눈 부신 햇살을 바라보니, 그 아름다움에 홀려 마음속 고민거리가 눈 녹듯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아침노을을 보면서 천채왕은 왠지 문제가 곧 해결될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예감이, 곧 현실이 되었다.

* * *

나는 다음 날 새벽 비행기로 한국에 귀국했다.

귀국하자마자 만날 사람이 있었다. 바로 노자경이었다.

약속했던 강남역 모처 브런치 카페로 가니 검은색 나이키 트레이닝복 차림의 노자경이 나를 맞이했다.

"여어~ 노을 씨, 여기야!"

'어째 친할수록 말투가 점점 반말에 가까워지네.'

사실 한 살이라도 노자경이 나보다 형이라 그게 더 편하긴 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노자경이 오믈렛과 빵, 샐러드를 시켰다.

"이거, 이거, 이거 좀 주세요! 오케이, 이번에는 내가 쏠게, 노을 씨."

"잘 지내시는 거 같네요?"

내가 기분이 좋아 보이는 노자경에게 안부를 묻자, 그는 윙크가 되지 않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아유, 다 노을 씨 덕분이지."

"무슨 말씀이시죠?"

내 물음에 노자경은 점점 안무가로서 일이 많아지고 있다 설명했다.

그는 오창선 선배 공연 일은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가수들 안무를 짜주기 시작했다.

비원더 안무가 워낙 화제가 된 덕에, 특히 춤 잘 못 추는 발라드 가수들 위주로 의뢰가 끊임없이 그에게 들어온다고 했다.

“...다 노을 씨 덕분이지. 고마워요."

나는 노자경의 낯간지러운 인사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에이, 무슨 말씀을. 자경 님이 잘하셔서죠. 저희도 도움을 받은 거고요.”

그 사이에 오믈렛과 빵, 샐러드가 나왔다.

노자경은 우걱우걱 음식을 해치웠다. 그리고 나를 빤히 보며 물었다.

"안 먹어요?"

나는 쭈뼛거리며 그에게 답했다.

"아 저는 식단 조절을 해야 해서. 아침부터 탄수화물은 좀… 오믈렛과 샐러드만 먹겠습니다."

"아, 그렇구나!"

무릎을 '탁' 치는 듯한 노자경의 손이 '~나!'와 함께 허공을 갈랐다.

“자경 님은 활동하실 때 다이어트 안 하셨나요?"

내가 샐러드를 입에 쑤셔서 넣으며 묻자, 노자경은 무심한 표정으로 답했다.

"나야 뭐 얼굴도 어정쩡한 비인기 멤버니까. 살만 안 찌면 된다고 별 신경도 안 썼어. 운동 좋아하니까 대충 유지는 됐거든요. 앤젤이 고생이었지."

"앤젤이요?"

내가 되묻자 노자경은 한쪽 입꼬리를 비죽거리며 말했다.

"걔는 인기도 많고. 노래도 주력이니까. 턱선이 살아야 한다고 아주 사장이 반 죽여놨죠. 술도 잘 못 마시게 하고."

말이 나온 김에, 나는 앤젤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던 참이었다.

"그... 앤젤을 우연히 만났어요."

노자경이 재미있다는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의 얼굴이 더 내 쪽으로 가까워졌다.

"걔를요? 언제?"

“어제요.”

노자경의 질문 세례는 계속됐다.

"어디서 걔를 다 만나셨데?"

나는 노자경에게 어제 앤젤과 있던 일을 다 이야기했다.

한식당에서 점심부터 소주를 까던 앤젤을 만난 일부터 그가 좌절한 이유, 마지막으로 메일 주소까지 교환하고 연락하기로 한 일까지 모두 다 공유했다.

이야기를 듣는 시종일관 노자경은 큰 리액션을 보였다.

혀를 쯧쯧 차는가 하면 '아이고~' 하고 한숨을 쉬는 등, 큰 감정의 동요를 보였다.

"앤젤이랑 친하셨나 봐요?"

그러나 내가 막상 이렇게 묻자, 노자경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심드렁하게 답했다.

"아니요? 우리는 그런 거 읍었어. 다 비즈니스 관계였죠."

"근데 왜 이리 큰 한숨을..."

흐려지는 내 말끝을 타고 노자경의 한숨 섞인 말소리가 넘어왔다.

"나도 겪어봤잖아요. 오죽 개 같으면 나같이 둔한 놈이 세상을 뜨려 그랬겠어.”

그러고 보니 그랬다. 컨디션을 회복한 후의 노자경은 정말 몸도 마음도 튼튼한 타입이었다.

자살 미수라니,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그게 다 사장이 한 건가요?"

노자경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내 물음에 답했다.

"멤버들은 그런 거 못 하지. 다 소사장 주도예요. 인기 순위로 차등 대우하고. 끊임없이 서로 시기, 질투하게 비교와 이간질로 유도하고. 아주 지옥이 따로 읍써."

"앤젤이 항상 신경이 날카롭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회사 스트레스 때문 같기도 하더라고요.”

나는 뭔가 앤젤에 대한 것들이 좀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 개는 백 프로예요. 회사 처음 들어왔을 때는 참 괜찮았던 친구 거든. 음악에 진지하고. 그나마 걔가 잇츠쇼타임에서 싹수가 있었지."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며 노자경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소사장도 이제 감이 좀 다한 모양인가 봐. 잇츠쇼타임은 무조건 앤젤 위주로 가야 하는데. 말 좀 안 듣는다고 순한 양 같은 놈들 밀어주면, 걔네들이 갑자기 스타가 되나? 스타는 말이죠, 노을 씨, 타고나는 거예요. 제작자는 그냥 지원할 뿐이야. 잇츠쇼타임은 무조건 앤젤 위주로 가야 하는 팀이야. 아~ 소사장이 그걸 모르네."

노자경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소인중의 경력은 슬슬 끝물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이라 그런지 소인중은 가장 꼴사나운 무리수를 남발하고 있었다.

이전 생의 내겐 그게 몰락의 징조라고 느껴지지 않고 잘나가는 사람의 꼴값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미래를 아는 내겐 점차 소인중이 무너질 것이라는 징조가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했다.

"뭐 소인중은 지가 왕이니까요. 남이 뭐라 말해도 들을 사람은 아니죠.”

소인중에 대한 내 의견에 노자경은 손사래를 치며 한술 더 떴다.

"아니죠~. 아이구, 노을 씨 그 사람 몰라요? 누구 말 들을 사람인가? 절대 안 돼."

"하지만 앤젤은 아닐 거 같더라고요.”

내 말이 의아했는지 노자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앤젤이요? 뭘 어떻게 하려고?"

"아니요. 뭐 별건 아닌데. 조금 이따 이야기하죠."

"궁금하게 왜 그래. 그냥 지금 이야기해 줘요!"

내가 뜸을 들이자 노자경이 궁금해 미치겠다는 듯이 졸랐다.

"정 그렇다면…"

내가 하려는 건 딱 하나였다.

바로 소인중의 몰락이었다.

어차피 소인중은 곧 멸망할 운명이었다.

문제는 마지막 1년간, 수많은 사람이 또 소인중에게 피해를 본다는 점이었다.

소인중과 곧 결혼할 신부부터 소인중의 소속 가수 잇츠쇼타임까지 수많은 피해자가 있었다.

‘그렇다면, 어차피 곧 예정된 몰락을 조금 빠르게 당기면 어떨까?'

천채왕과 배영웅이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소인중은 사사건건 비원더를 공격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아시아 활동 중에 전방위적으로 소인중의 압박을 이겨내야 했다.

한국에서야 TYB는 10년간 가요계 정상을 지킨 절대 권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웬만한 보이콧은 실력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시아 시장은 달랐다.

소인중은 애초에 중화권 인맥으로 성공했던 인물이었다.

해외에서의 실적이 그의 자랑이었다. 그는 그 힘으로 비원더를 공격해왔다.

TYB 또한 '아시아의 달' 문루아 등을 보유한 탄탄한 회사니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성가심을 느낄 정도는 충분했다.

소인중이 몰락한다면 비원더의 아시아 활동에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소인중의 몰락은 나만을 위한 일도 아니었다.

문루아의 친구이자 나의 팬이라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도, 그녀의 불행한 결혼을 막기 위해서도 소인중의 몰락이 조금 빨라져야 했다.

게다가 소인중의 소속 가수도 내 눈에 밟혔다.

이제 내게 앤젤은 짜증 나게 하는 자칭 라이벌이 아닌, 내 동료였다.

그의 불행을 1년이라도 더 줄여주기 위해서도 소인중은 하루라도 빠르게 망해야 했다.

'... 그렇다고 내가 뭐 공격할 필요는 없어. 그동안 쌓인 업보를 조금 일찍 터지게 하면 그걸로 충분해.'

나는 이미 계획은 세워 둔 상태였다. 그리고 이 계획 실행을 위해서는, 누구보다 내게 필요한 사람이 노자경이었다.

나는 내 계획을 위해 노자경을 설득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슬며시 문루아와 있었던 일에 대해 말을 꺼냈다.

"제가 축가 제안을 하나 받았어요."

"그렇겠지. 나도 결혼하면 노을 씨 축하받고 싶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노자경의 말에 나는 약간 쑥스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영광이죠. 하여튼 그 사람이 문루아 선배 친구예요. 여배우인데, 문제가 있어요.”

"뭔데요?"

어느새 음식을 다 해치운 노자경은 느긋하게 식후 커피를 마시면서 물었다.

"소인중 대표요,"

"푸훗!"

'소인중'이란 말을 듣자마자 노자경은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

다행히 테이블 옆에는 사람은 없고 식물만 있었다.

노자경의 입에서 뿜어나온 커피가 사라지면서 무지개가 피어났다.

“괜찮으세요?"

내 물음에 노자경은 황급히 냅킨으로 입과 탁자를 닦으며 말했다.

"아, 아니. 그 인간 결혼했잖아... 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이혼했다더라고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노자경은 말끝을 흐렸다.

"기러기 아빠라고 알고 있었는데..."

"근데 저보다 자경 님이 더 소인중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요?"

내 질문에 노자경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사실, 나는 이미 소인중의 사생활을 알고 있었다.

이전 생에서 소인중이 몰락한 후, 그가 얼마나 방탕한 생활을 했는지 사생활 폭로가 쏟아졌다.

그전까지는 소인중이 자기 방송 권력으로 언론을 틀어막았지만, 일단 한번 몰락하기 시작하자 봇물 터지듯 기사가 터져 나왔다.

소인중은 환락의 파티는 물론이고, 수많은 연예계 지망생들을 데뷔를 미끼로 유인해서 농락하고 다녔다.

게다가 불법 촬영을 하도 많이 해서, 정보 조직에서 모두 수거해서 폐기하는데 한세월이 걸릴 정도였다.

“으… 음!"

노자경이 헛기침을 했다. 내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 여배우님, 제가 말도 한 번 못 붙여 봤지만, 너무 불쌍하더라고요. 그래도 제 팬이고, 그래도 문루아 선배의 지인인데. 그분과 소인중의 결혼을 제가 축복할 수 있을까요?"

노자경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못하지.”

"그래서 막으려고요."

소인중을 막는다는 내 말에, 졸다가 화들짝 놀라며 깬 사람처럼 노자경이 상체를 치켜세우며 물었다.

"막아? 어떻게?"

"소인중에 사업은 불법투성이잖아요?”

"음..."

노자경은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무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솔직히 노자경 씨도 대충 눈치는 챘죠?"

"나는 운이 진짜 좋았던 거야, 노을 씨.”

"왜요?"

노자경의 대답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그는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답했다.

"비밀을 알고 있는 놈이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바로 모가지야. 그래서 소인중 회사는 나오기도 어려워요. 앤젤 걔도 엄청 힘들 거야."

"그렇겠죠. 약점을 갖고 있을 테니까."

불법을 저지르는 자는 약점이 많아진다.

따라서 그 약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후벼 파고 쥐어 잡아야 했다.

결국 불법적인 일은 단 한 번으로 끝날 수 없었다.

노자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나는, 진짜 운 좋게 맨몸으로 나온 거예요. 왠 줄 알아요?"

"모르겠는데요.”

으쓱하는 내 어깨를 보며 노자경이 말을 이어갔다.

“나는 너무 가진 게 없는 놈이니까 된 거예요. 걍 일반인으로 살겠다, 입 막고 살겠다, 나는 기자들도 관심 없는 놈이다. 그걸 소사장도 아니까 그냥 내팽개친 거지. 앤젤처럼 어설프게 능력 있어 버리면 절대 안 되지. 그런 사람인데 누가 소인중을 배신하겠어요?"

노자경의 말은 소인중을 무너뜨리려면 내부 배신자가 필요하지만, 찾을 수 없을 거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사실이 딱 하나 있었다.

나는 그냥 회귀자도 아닌, 초자연적인 능력의 MP3까지 가진 회귀자였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노자경에게 말했다.

"제게 이미 생각이 있어요."

(다음 편에서 계속)

0